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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고 2여학생과 멀쩡히 잘 다니던 의대를 휴학한 채 미용이 좋아 미용사의 길을 선택한 남자가 있다.

나이, 출신 지역부터 학력 수준까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케미를 가져올까?

 
18. 그날 밤 옥상에서 그와 그녀 사이에 일어났던 일 2
작성일 : 17-10-27 10:36     조회 : 61     추천 : 0     분량 : 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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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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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을 만큼 얘기는 다 들었다. 이제 내려가기 위해 그녀가 계단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떼려는 순간, 원치 않은 목소리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어이, 채무자! 거기서 뭐하냐?"

 

 시아는 깜짝 놀라 몸이 얼음기둥처럼 굳어버렸다.

 

  "너 또 담배 피러 올라왔냐?

 

 그녀가 엿들은 걸 눈치 채지는 못한 듯 했다. 그리하여 시아는 다시금 당당해졌다.

 

  "남이야 담배를 피건 마약을 피우건..."

  "참나...말을 해도 참 학생스럽게도 한다. 마약?"

  "아, 그러니까 뭔 상관이냐고요."

  "야, 너 내 돈은 언제 갚을 거야?"

  "돈?"

  "그래, 아직 우리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돈 문제가 있잖아."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죠. 내 정신적 피해 보상은 어떻게 해줄 건대요? 내 첫 입맞춤!"

  "허, 참...야, 누가 들으면 정조...아니, 내가 널 어떻게라도 했는 줄 알겠다?"

  "어떻게 했죠, 안 그래요?"

  "와...얘 진짜 사람 잡네. 너, 암튼 내가 다 정리해서 내용 증명 보낼 거야."

 

 내용 증명이 뭔지 모르는 시아는 순간 겁이 났다. 하지만 자존심 상하게 그게 뭐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뭐, 그러시던지..."

  "오...베짱 한 번 두둑한데? 그거 집으로 날라오면 니네 아버지 월급에서 차압될 수 있는 거 모르냐?"

  "차압?"

  "돈이 빠져나간다는 얘기야."

  "헐? 누구 맘대로?"

  "한 마디로 공권력이 동원된다는 거지. 경찰이 집으로 올 수도 있어."

 

 시아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이자 하완은 신이 나서 허풍을 쳤다.

 

  "넌 미성년자고 아직 부모님 밑에 있으니까 잘못을 하면 아버지가 경찰서에 갈 수도 있단 말이지."

  "말도 안 돼!"

 

 순간 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구 맘대로 우리 아빠를 경찰서로 데리고 간대요? 그쪽이 뭔대? 그깟 차가 뭔대요? 사람이 더 중요하지 물건이 더 중요해요? 어떻게 아픈 사람을 끌고 간다는 건대요?"

 

 실바람에도 당장 눈물이 툭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을 하고는 그녀가 하완을 쳐다봤다. 원망과 슬픔이 가득찬 눈빛에 하완은 깜짝 놀랐다.

 

  "뭐, 뭐?"

  "우리 아빠 병원에 있고 잘 걷지도 못하고 아픈데 어떻게 경찰이 데리고 간단 말이에요?"

  "병원?"

  "그래요! 우리 아빠가 뭘 잘못 했다고, 누워 있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 때문에 경찰이 오는 건대요?"

 

 그러면서 그녀가 폭포처럼 눈물을 쏟았다. 하완은 놀라 벙찐 얼굴로 한 마디도 못하고 서있었다.

 

  "엉엉, 우리 아빠가 뭘 잘못 했다고...착하게 살았는데 왜 아픈 거냐고...다른 사람 물건을 훔친 적도 없고 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그냥 열심히 돈 벌며 살았는데 왜...입원한 거냐고요."

 

 감정이 복받친 시아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완은 정말이지 한 발짝도 움질일 수가 없었다. 이 아이한테서 이런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어떤 아픔이 있다는 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분을 울었을 즈음 하완이 천천히 발을 떼 그녀에게로 갔다.

 

  "야, 모...몰랐어. 미, 미안해."

  "됐어요."

  "항상 기세등등한 모습만 봐서 그런 가정사가 있는 줄은 몰랐네. 경찰이 온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그냥 내가 한 말이지. 게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가겠어? 상식적으로...그냥 겁주려고..."

 

 시아가 눈물을 소매자락으로 훔쳤다. 그리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닦을 걸 찾나 싶어 하완도 자신의 주머니에 접어둔 휴지가 있나 싶어 뒤적거렸다. 시아는 콧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그 모양이 어린애가 우는 것처럼 보여 하완은 더 측은했다.

 

  "그럼 월급이 빠져나간다는 건요?"

  "법원에 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차압이 되냐? 소송이 걸린 것도 아닌데..."

  "그럼 갚아야하는 돈은 없는 건가요?"

  "아, 뭐...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지. 내가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다. 됐어. 그만 하자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시아는 눈물을 멈췄다.

 

  "아, 정말...힘들었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하완은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뷰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스마트폰 기술이 참 좋아요? 그쵸?"

  "뭐?"

  "이렇게 주머니에 넣어도 녹음도 잘 되고..."

  "녹음?"

  "제가 공부머리는 없어도 잔머리는 꽤 발달해있어서 못된 거는 곧잘 배워요. 스마트하게."

  "너 지금 녹음한 거야?"

  "이거 누가 먼저 시작했죠? 저번 화장실 앞에서?"

  "너 그럼 지금 연기한 거야? 거짓말이야?"

  "그렇게 염려해주실 줄은 몰랐네요. 다행이에요. 아말고씨가 쓰레기는 아니어서...다행히 우리 아빠는 아직은 건강하게 김밥을 잘 말고 계십니다. 천국에서 말이죠."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천국?"

  "아, 정말 센스 없기는...그 천국이겠어요?"

 

 하완이 기함했다.

 

  "와, 너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부모를 팔 수가 있냐?"

  "엄마아빠가 나 대신 몇 백만원을 내야한다고 한다고 하면 아마 이렇게 팔리는 것도 용서할 걸요? 우리 부모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들이거든요."

  "너, 진짜...야, 갖고 와. 너 핸드폰 가져와!"

  "내가 미쳤어요? 이걸 녹음하려고 얼마나 눈물을 쥐어짰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애써 상상하며 겨우 눈물을 떨어뜨린 건데?"

  "너, 이거 공갈이야,"

  "공갈이든 뭐든 어쨌거나 자백을 받았음 된 거 아님? 이제 돈 문제로 날 구속할 생각 마세요. 뭐, 처음부터 낼 생각 따위 안중에 없었지만."

  "야, 치사하게. 갖고 와! 안 갖고 와?"

 

 하완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자승자박할 수는 없었다. 그의 도발에 시아는 달아났다.

 

  "으아악!"

  "너, 거기 안 서?"

  "내가 미쳤다고 서요? 그럼 그쪽 핸드폰도 내놓으라고요! 먼저 도청한 게 누군데?"

 

 뛰면서도 시아는 할 말을 다했다. 그렇게 교실까지 내려온 시아를 여전히 그가 뒤쫓았다. 생각보다 그녀는 잘 달렸다. 교실 밖 복도를 시아가 쌩하고 지나갔다. 로사가 창 너머로 그녀를 보았다.

 

  "쟨 수업시간에 어딜 뛰어다니는 거야? 정말 철딱서니하고는 저래가지고 자격 시험에 붙겠어? 맨날 농땡이칠 궁리만 하니..."

 

 시아가 지나간 다음으로 하완이 뛰어가는 게 또 보였다.

 

  "잉? 하완씨 아니야?"

 

 하완이라는 말에 화장을 받던 린이 눈을 번쩍 떴다.

 

  "응? 하완오빠? 왜? 어딜?"

 

 그리고는 화장을 받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이미 그들은 종적을 감췄다.

 

  "어딜 간 거야?"

 

 엘리베이터를 겨우 잡은 시아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녀를 간발의 차로 놓친 하완은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내려온 시아가 마침 도로로 나가려던 파랑의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오빠, 파랑오빠!"

  "어? 뭐, 뭐야? 너, 넌..."

  "저 좀 태워주세요."

  "어? 빨리요, 빨리!"

 

 그때 하완이 계단에서 나온 게 보였다. 그녀는 파랑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얼른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갔다. 덜컹 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라고 여기고 그냥 앉아버렸다.

 

  "출발!"

  "일단 간다, 그럼!"

 

 신호가 바뀌자 파랑은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한발짝 차이로 시아를 놓친 하완은 분했다.

 

  "아, 씨 바로 앞에서 놓쳤...아, 파랑 자식 나 봤으면서 출발하는 것 봐. 저거 누구편이야? 내가 오늘 잡는다. 니네, 두고 봐."

 

 그가 찰나의 전의를 다지며 자신의 애마로 뛰어가는데 문득 발밑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웃, 그렇지!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거지. 아, 기름값 아꼈네. 내가 간만에 레이스 한 번 뛰어보려고 했건만...크크"

 

 그의 손에 들린 건 다름 아닌 시아의 휴대폰이었다. 높은 오토바이에 오르느라 그녀의 주머니에서 빠진 것도 몰랐던 것이었다.

 

  "넌 내 손바닥 안이야. 이 베이비 몬스터야. 어딜 까불어..."

 

 그렇게 그는 습득한 전리품을 앞주머니에 소중하게 집어넣었다.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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