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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고 2여학생과 멀쩡히 잘 다니던 의대를 휴학한 채 미용이 좋아 미용사의 길을 선택한 남자가 있다.

나이, 출신 지역부터 학력 수준까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케미를 가져올까?

 
4회 그는 누구의 운명의 남자?
작성일 : 17-10-25 11:02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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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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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뷰티아카데미로 가는 발걸음이 신선했다. 여긴 얼마나 더 다닐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낯선 냄새와 분위기가 시아는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속박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미술 학원이 아니니까 일단 좋았다. 금세 싫증을 내버릴 언 발에 오줌 누가 될지언정. 그녀가 다니는 새로운 학원을 가린이가 엄청 궁금해했지만 아직 밝히진 않았다. 좀더 안달내게 한 후 터뜨리고 싶은 짖꿏은 생각이 심중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

 

  "흠...너무 일찍 왔나? 내가 학원에 지각도 안 하고 30분이나 일찍 오다니...헐."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 왔을 때 봐뒀던 학원 뒷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기 낮은 정원수가 쪼르륵 심겨 있는 후미진 구석이 담배 피우기 최적의 장소였으므로. 그녀의 비밀 장소로 찜꽁해놨던 것이다. 시커멓게 유리창을 태닝한 흰 차의 보닛과 정원수 사이에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아...생각보다 좁네. 이거 모냥 빠지게스리. 에이, 어쩔 수 없지. 교복까지 입고 왔는데 이럴 수 밖에 없잖아. 담엔 사복을 넣어와야겠어. 아무래도 이 맛이 아니지."

 

 그렇게 어릴 적 제일 좋아했던 빨간 딸기 막대사탕 빨듯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태웠다. 반쯤 피웠을 때 해는 저물고 주변은 꺼무룩해지고 있었다. 순간 불 빛 두 개가 번쩍 하고 그녀를 비췄다.

 

  "아, 깜짝이야!"

 

 시아는 엉거주춤 자세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뭐야..."

 

 그런데 그 불빛이 더 밝아지며 그녀의 이마를 때렸다. 눈이 부셔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불빛을 노려봤다.

 

  "누가 매너 없이 쌍라이트를 사람한테 쏴?"

 

 그 불빛은 흰 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외제차였다. 날렵하디 날렵하고 비싸기 그지 없는. 분명 그녀는 그 차를 만진 적도, 스친 적도 없었다.

 

  "야, 거기 학생! 너 학생 아니야!"

 

 그때 차에서 나온 남자는 바로 아말고였다.

 

  "근데요? 불빛 치워요! 왜 사람한테 빛을 쏴요? 나 시력 나빠지면 책임질 거에요?"

  "쳇, 야...상향등에 시력 감퇴되면 그 차를 누가 사냐? 그게 무기지, 승용차냐?"

  "아니, 너는...너야말로 학생이면서 차에서 나오냐? 무면허 운전하냐? 니네 아빠 차냐?"

  "야, 어디서 이게 꼬박꼬박 반말이야. 고등학생이었네? 난 또 대학생인줄...완전 속았네."

  "너야말로 2학년이라며?"

  "야, 난 본과 2학년이거든?"

  "보, 본과?"

 

 그녀는 순간 문과와 이과 외에 또 과가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에 이 사람에게는 묻고 싶지는 않았다. 실업계나 공고에 있는 전문 과인가 싶어 더는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야, 너 진짜 겁도 없구나. 교복을 입고 담배를 펴? 오호...한두 번 펴본 게 아니구만? 너 어느 학교냐?"

 

 하완이 그녀의 교복의 가슴 부위의 학교 마크를 뚫어져라 살피자 그녀는 이내 가슴을 손으로 덮었다.

 

  "어딜 봐?"

  "야, 나 너보다 나이 많거든? 반말은 아니지. 보아하니 여기 옆에 여고구만? 내가 신고 한번 해? 교무실에 전화해서 그쪽 학교 학생이...손으로 가리면 모르냐? 너 이름 알아내는 게 뭐 어려워? 어차피 학원가서 물어보면 되지. 민원 신고하면..."

  "아, 잠깐, 잠깐만...알았다고, 알았다고요. 끄면 되잖아요."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일단 깨갱하기로 했다. 하지만 끄면서도 부글부글 타오르는 분노는 어쩔 수가 없었다.

 

  ‘복수 하고 싶다. 복수를...’

 

  하지만 그의 잔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요샛 것들은 참...일찍도 배워요. 야, 담배는 많이 피우는 것 보다 언제 시작했는 지가 더 치명적인 거거든? 너 나중에 물 한 모금, 숨 한 번 크게 못 쉬고 죽고 싶냐? 담배 광고도 못 봤어? 쇄골 사이에 손가락 들어갈 만한 구멍 내보고 싶냐?"

 

 그의 훈계에 살짝 겁을 집어 먹었지만 말싸움에 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쪽이 뭐 의사에요? 껐으면 됐지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어차피 사람은 죽을 때 다 아파요. 안 아프고 죽는 사람이 어딨어?"

  "니가 죽어가는 사람을 안 봐서 모르는 거지? 그치?"

  "그런 걸 왜 봐요? 재수 없게. 난 매달 보는 피도 끔찍 하구만. 읍..."

 

 이런 말은 남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는데...그녀는 순간 튀어나온 말에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못 알아 들은 듯 했다.

 

  "피? 아, 나도 피는 싫어. 죽어가는 사람 보는 것도 싫고..."

 

 마침 오늘의 해가 생을 다하며 피처럼 흘리는 와인색 노을이 주차장을 잠식했다. 기세 등등한 그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미명에 비친 하완의 옆선은 가위로 오린 것처럼 날렵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잠깐 멈칫했다. 슬퍼보이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같은 교복을 입은 여자애 하나가 시아에게 달려들었다.

 

  "꺅! 찾았다!"

  "악, 어? 가린, 어떻게 여길..."

  "야, 내가 청소 끝나고 널 놓치나 했다. 그런데 널 목격한 누군가가 여기로 갔다길래 미행했지. 니가 다니는 학원이 어디야? 이거야?"

 

 그렇게 그녀를 보자마자 린은 설사처럼 말을 쏟아냈다.

 

 삐삑,

 그가 리모컨으로 흰 차의 문을 잠궜다. 그리고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는 그들 사이를 밀치고 나갔다. 그때 린이 그의 얼굴을 봤다.

 

  "아, 뭐야...막 밀고 지나가? 어? 와웃..."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그를 보며 살짝 기분이 상했던 그녀는 하완의 얼굴을 보자 표정이 금세 풀렸다. 그녀는...금사빠였다.

 

  "뭐야? 저 남자? 너 아는 사람이야? 와...잘 생겼다."

  "내 타입은 아니야."

  "맞아, 내 타입이지. 저 사람 차야? 들고 가는 건 뭔데? 저건 새로운 화구통이야?"

  "저렇게 생긴 화구통 봤냐? 저건 메이크업 박스야."

  "메이크업 박스? 화장하는 거?"

  "그래."

  "그럼 화장해주는 남자야? 오...근사하다. 아티스트 이런 건가?"

  "쟤도 학원생이야."

  "어? ‘쟤도’라니? 몇 살인데? 성인 아냐? 차에서 내렸잖아?"

  "성인이거나 말거나...짜증 나."

  "그런데 학원생인건 어떻게 알아? 너, 혹시 여기 같은 학원 다니는 거야? 저 남자랑? 메이크업? 미용?"

  "...그래."

  "와! 대박! 나도 다닐래."

  "뭐? 아니, 친구따라 어디 간다더니...미술은 어쩌고?"

  "너는? 너야말로 미술은 어따 내팽개치고 화장이 다 뭐냐?"

  "난, 화장은 아직 모르겠고 미용사할 거야."

  "미용사? 니네 엄마도 알아?"

  "어제 폭탄 터뜨렸어."

  "와...너 진짜 빠르다. 어쩌다가? 왜?"

  "우리 집은 니네처럼 부자가 아니니까!"

  "..."

 

 린은 순간 말을 잃었다.

 

  "우리집은 처음부터 예체능 시킬 집이 아니었다구. 뭐, 나도 소질이 그닥그닥이지만..."

  "나도 뭐 잘 하냐...천재들이 쎄고 쎘는데..."

 

 린이 시아 옆에 털썩 앉았다.

 

  "야, 우리 엄마 꿈이 뭔지 아냐? 니네 엄마처럼 임대업자 되는 거. 니네 처럼 외제차는 아니어도...콤비 말고 소형차라도 몰고 시장 보러 가는 거..."

  "..."

 

 말하고 나서 그제야 몰려드는 쓸쓸함이 추위처럼 다가왔다.

 

  "나도 할 거야. 암튼."

  "니 마음이지 뭐, 니네 엄마한테 내가 꼬셨다곤 하지 마라. 우리집에 쫓아올라."

  "내가 미쳤냐? 너 때문 아니야."

  "그럼?"

 

 린이 음흉한 미소를 날리며 시아를 쳐다봤다.

 

  "나 지금 운명의 남자를 만나거든. 저 남자랑 결혼할 거야. 미술이고 미용이건 간에. 뭐든 상관 없어."

  "뭐어? 헐..."

 

 린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시아는 이 상황이 참으로 어이 없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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