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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7. 같이 걸을까(2)
작성일 : 17-06-26 00:26     조회 : 31     추천 : 1     분량 : 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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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눈을 떠보니 오후 2시.

  웬일로 집에 아무도 없다. 텅 빈 거실의 적막함이 싫어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고 돌리다 마침 토크쇼가 이제 막 시작된 화면에서 멈췄다. 사우나 복장에 시골 아지매 가발을 쓴 MC가 들뜬 목소리로 초대손님을 소개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벨런타인데이죠! 그래서 오늘은 사랑받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네 분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러자 러브러브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남녀 두 쌍이 한쪽 벽에서 손뼉을 치며 등장했다. 카메라가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돌아가며 클로즈업했다.

  아이돌 특집인가? 역시 모르는 애들뿐이네. 아이고, 의미 없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보련다.

 

 "안녕하세요. Red Wine의 톡 쏘는 스파클링 막내 라희입니다."

 "안녕하세요. SOUL의 리더 문도준입니다."

 

  어? 지금 저 두 사람, 라희랑 밀가루 맞지?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리려던 손이 딱 멈췄다.

  뭐야, 그냥 사우나 옷 입고도 뭐 이리 예쁘고 잘생긴 건데? 도대체 뭘 먹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고작 며칠도 인연이라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허리를 펴고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MC들은 초대손님들을 보며 칭찬 일색이었다.

 

 "라희양은 작년 발렌타인 때 초콜릿 받고 싶은 여자 아이돌 3위로 뽑혔어요."

 "와우, 영광입니다. 절 뽑아주신 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직접 만들어 드리고 싶네요."

 

  한국물이 좋긴 좋은가보다. 때깔이 달라졌네.

  특히 라희는 오늘 사랑스러움을 컨셉으로 잡았는지 연신 눈웃음 발사 중이다.

  라희의 애교에 감탄을 내뱉은 MC가 이번에는 밀가루에게 화제를 돌렸다.

 

 "도준 군은 이미 다들 아시다시피 3년 연속 남친 삼고 싶은 아이돌 1위, 2년 연속 사위 삼고 싶은 아이돌 1위죠."

 "게다가 얼마 전에는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 하고 싶은 남자 아이돌 1위로 뽑혔잖아요. 엄청납니다!"

 "도준 씨, 이런 걸 보면 내가 잘나긴 잘났나보다 이런 생각 안 들어요?"

 "하하, 제가 잘나서라기보다는 저희 그룹과 드라마 속 이미지가 좋아서인 것 같아요."

 "어휴, 겸손도 하셔라."

 

  밸런타인데이 특집인 만큼 MC들은 작심하고 사우나실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하늘하늘한 춤을 추고, 사랑 노래를 부르고, 박수까지 치며 웃는 모습이 꽤 즐거워 보인다.

  나와는 상반된 TV 속 두 연예인의 모습에 목구멍이 꽉 조여온다.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어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팟-

 

  전기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오색찬란했던 화면이 검은색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찾아온 정적은 아까보다 더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내가 왜 이러지?"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봐도 도무지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찬바람이라도 쐬어보면 좀 괜찮아지려나?"

 

  아주 오랜만에 아니, 귀국하고는 처음으로 동네산책을 나섰다. 해가 짧은 겨울 하늘은 벌써 세상을 무채색으로 물들일 준비를 마쳤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자 몸을 한껏 움츠리고 귀가를 서두르는 이들이 한 명씩 눈에 들어온다. 아빠는 오늘도 늦게 들어오시려나.

  퇴근길에 아빠와 종종 들르곤 했던 포장마차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천막에 붙은 현수막을 통해 포장마차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아른거린다. 따뜻한 국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얼핏 아빠를 닮은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혼자 마시면 맛있어요?"

 "어, 왔어? 술을 맛으로 마시나. 그냥 마시는 거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자 주인아줌마가 아는 체하며 잔을 가져다주었다. 그 김에 나는 소주 한 병과 안주를 더 시켰다.

 

 "나도 한 잔 줘요."

 

  쪼르르, 투명한 액체가 투명한 잔에 내려앉는 모양이 제법 청순하다.

  하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맛은 보라색 반전을 선사한다. 나는 이 깔끔하면서도 반전 있는 맛이 좋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며 기함을 하던 게 고작 몇 년 전이었는데, 그 사이 세상맛을 좀 봤는지 오늘은 술이 달다. 참 달다.

 

 "왜 혼자 있었어. 전화해서 부르지."

 "라디오 들으면서 먹는 것도 괜찮아. 재밌더라고."

 

  살풋 웃는 아빠의 말에 그제야 포장마차 안을 가득 메우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게 울리는 DJ의 목소리를 타고 오는 누군가의 사연이 아빠에게는 제법 재미있나 보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라 흥미가 없어졌다.

  역시 이 집은 안주가 괜찮단 말이지. 도톰한 계란말이 속살에 색색으로 알알이 박힌 채소가 일품이다.

 

 "이번에는 청취자 여러분이 직접 상담해주는 시간이죠. 아까 1부에서 읽어드린 사연에 대해 많은 분이 글을 남겨주셨는데요. 그중 하나를 도준 씨가 골라서 읽어주시겠어요?"

 

  도준? 내가 아는 문도준? 아까 TV 속에서 윙크에 하트 뿅뿅까지 날린 밀가루 문도준?

  계란말이에 박혀있던 고개를 퍼뜩 들어 올리는 날 보고 아빠가 입 모양으로 '들어봐.'라 말했다.

  아빠를 따라 나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정말로 내가 아는 한 목소리가 잔잔히 귓가로 흘러들었다.

 

 "'괜찮아'. 소년원 친구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1위랍니다.

 때로는 '사랑해. 힘내. 넌 할 수 있어.'라는 격려보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안심이 더 절실한 우리.

 괜찮아.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으니 이제 짐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아.'라는 뜻이 숨겨진 짧은 말 한마디에 고개를 돌린 당신의 두 눈가에 물든 붉은 꽃 빛.

 두 눈가에 말갛게 맺힌 붉은 꽃 빛이 까맣게 식어버린 우리의 심장에 물들 때까지 계속 말해줄게요.

 괜찮아요."

 

  나는 시큰하게 아려오는 코끝을 문지르고는 앞에 앉은 한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나와 마주친 아빠의 눈에도 꽃 빛이 들고 있었다. 서둘러 고개를 내렸지만 나는 붉게 물든 꽃이 떨구는 투명한 이슬을 보고 말았다.

  말없이 아빠의 잔을 채웠다. 아빠도 말없이 잔을 비웠다.

 

 "어쩜 목소리가 이렇게 좋아요?"

 "좋은 글을 읽으니 공감이 되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공감이 되던가요?"

 

  음, 하고 잠시 뜸을 들인 밀가루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TV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 글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 누가 생각났을까?"

 "제가 작년에 모금방송 촬영차 볼리비아라는 나라를 다녀왔는데, 그때 한 선생님께 된통 혼났거든요."

 "도준 씨를요? 아니, 혼낼 데가 어디 있다고?"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사연의 주인공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위로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나는 단번에 내 얘기라는 걸 직감했다. 너 이노무시키, 지금 전 국민 앞에서 복수하는 거야?

  눈앞에 놓인 계란말이에 밀가루의 웃는 얼굴이 겹쳤다. 나는 젓가락을 계란말이에 푹 찍어 한입에 쑤셔 넣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문화, 생활, 어려움. 어느 것 하나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헤집어놓지 말라고요."

 "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들쑤시지 말란 의미였나 보군요."

 "맞아요. 그리고 적어도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는 말도 하셨죠."

 "이야. 돌직구네요. 오승환 선수예요?"

 "처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나는 아이를 도와주러 간 건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밤엔 잠도 안 오더라고요."

 

  나의 곱지 않은 말에 잔뜩 일그러졌던 그의 반듯한 얼굴이 떠올랐다.

  좋은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을 테니 자존심이 상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런데 잠도 못 잘 정도였나? 짜식, 소심하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그 친구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내 곁의 한 사람처럼 봐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힘내.'라는 말은 왠지 나와 상관없이 너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괜찮아.'라는 말은 나도 괜찮아야 할 수 있는 거예요."

 

  너는 힘을 내라.

  한 발짝 떨어져서 툭 던지는 말. 진실로 위로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가끔은 성의 없다 느껴지기까지 하는 말.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괜찮으니 너도 괜찮으면 좋겠다.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도 살펴야 할 수 있는 말. 그만큼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는 말.

 

 "저는 그것도 모르고, 떨고 있는 아이를 향해 그저 '힘내. 넌 할 수 있어.'라고 내던지듯 위로했던 거죠. 아이는 위로를 받고도 혼자가 된 것 같아 더 불안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음."

 "그런 면에서 너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괜찮아.'하고 안아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이도 한결 마음을 놓지 않았을까 싶어요."

 

  투명한 잔에서 떨어진 이슬이 묻은 입술이 호를 그리며 늘어졌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내 의도를 잘 파악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잘 잡아낸 것 같다.

  팔찌를 건네며 했던 부탁을 잘 들어준 것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쿡쿡,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제 겨우 한 병 마셔놓고 벌써 취했나 보다.

 

 "그렇게까지 심오하진 않았을지도 몰라요. 도준 씨가 너무 섬세한 거 아닌가요?"

 "하하, 그런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곡은 섬세한 도준 씨의 마음을 담아 신청해주세요."

 "음, 괜찮다는 말을 들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지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봤다. 고개를 기울이고 먼 곳을 바라보는 옆모습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애가 곁에 서서 밀어줘도 괜찮을까? 그러다 내가 먼저 지쳐버리면 어쩌지?

  그래도 해볼 만 하지 않을까. '괜찮아요'라는 말.

  까맣게 식어버린 우리의 심장이 꽃 빛으로 물들 때까지 우리도 그렇게 말해볼까.

  또다시 넘어지고 울음이 터질지라도. 29살 나이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움츠릴 때마다 자신을 다독여줘볼까?

 

  라디오 속 대화 소리가 줄어들고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멜로디는 우리 두 사람의 귓가에 잠시 머물렀다 공기 중에서 흩어졌다.

 

 

 ♬♪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까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우리는 이미 오랜 먼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이니까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 채 다시 일어나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이적 - 같이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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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06-28 14:46
 
로맨스 소설이 이렇게 심각해도 괜찮은 거예요? 아직 도입부를 넘지 않은 것 같은데 몰두하게 만드네요. 강력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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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뗄 17-06-29 00:41
 
안녕하세요. 작가 에스뗄입니다. 제가 아직 이 플랫폼에 익숙치 않아 대댓글이나 작가의말을 적지 못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독자님의 삶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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