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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3. 안녕 낯선사람(3)
작성일 : 17-06-22 22:33     조회 : 32     추천 : 1     분량 : 6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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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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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 장면을 무난히 마치고, 뜨거운 태양이 부담스러울 두 연예인을 배려해 인터뷰는 팀을 나눠 방 안에서 하기로 했다.

  호세 마리아가 담담히 가족사항과 하루 일과를 설명하는 동안 여자 밀가루는 촉촉한 눈을 들어 아이를 응시했다.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하얀 두 손은 아이의 작은 손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완벽히 착한 언니의 전형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애 앞에서 방이 너무 어둡다고 투덜대던 사람이 카메라가 켜졌다고 저렇게 달라지다니.

  역시 방송인은 다르구나. 아, 이건 칭찬이다.

 

 "......"

 

 "......"

 

  여자팀이 지부장님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남자 밀가루와 루디는 처마 아래에 앉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첫 만남인 데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까 루디가 밀가루를 깐 것도 한몫을 했다.

  멀뚱히 앉아 손톱만 만지고 있는 두 사람을 가여이 여긴 내가 루디의 옆자리에 앉았다.

 

 "El es cantante y es muy popular en Corea. (이 남자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야.)"

 "Pues canta bien? (그럼 노래 잘해?)"

 "Creo que si. Aun que no lo he escuchado. (아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확신이 없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애매하게 답했다.

  요즘 아이돌 노래는 어렵더라. 한국말인데도 정신이 없어서 알아듣질 못하겠더라고. 역시 난 나이에 맞게 90년대 감성이 좋다.

  그러다 보니 아이돌 그룹에도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에게 가장 최신 아이돌은 원더걸스와 빅뱅 정도?

 

 "Quiero que cante una cancion para mi. (나한테 노래 불러주면 좋겠다.)"

 

  루디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부끄러운지 차마 밀가루에게는 말을 건네지 못하고 애꿎은 내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밀가루님은 무심한 얼굴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계신다. 저기, 여기는 전화도 안 터지는 곳입니다만.

 

 "혹시 괜찮다면, 한국 가기 전에 루디한테 노래 한 곡 불러줄 수 있으세요?"

 "네?"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가수라고 했더니 자기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하네요."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던 밀가루가 날 빤히 쳐다본다. 굳이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물음이 들리는 듯하다.

 

 "뭐, 싫음 말고요.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약간 소심해진 나는 재빨리 정정하는 말을 툭 내뱉고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내가 루디의 손가락을 괴롭혔다.

 

 "I'm just..."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귓가에 아주 작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작은 소리.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밀가루가 있었다. 눈을 가만히 감은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

 I'm just listening to the clock go ticking

 I am waiting as the time goes by

 I think of you with every breath I take

 I need to feel your heartbeat next to mine

 You're all I see in everything

 

 I just wanna hold you

 I just wanna kiss you

 I just wanna love you all my life

 I normally wouldn't say this but I just can't contain it

 I want you here forever right here by my side

 

 ♬♪David Choi - By my side

 

  루디와 나는 조용히 그의 노래를 감상했다. 화려한 기교가 없어도 음색이 좋아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속삭이듯, 달래듯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담백하면서 달달한 그의 목소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마치 앞에 사랑하는 여인을 앉혀놓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반주나 무대가 없어도 빛날 수 있구나. 아이돌이지만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것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제법이네. 가수 인정.

  처음과 마찬가지로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를 마친 밀가루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눈가를 길게 늘이며 손가락으로 루디의 볼을 살짝 튕겼다.

 

 "A ti te gusta su cancion? (그의 노래가 마음에 들어?)"

 "Si. Super! (응. 완전!)"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루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외쳤다. 그리고 밀가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Gracias, amigo. Como se llama? (고마워요, 친구. 이름이 뭐예요?)"

 "아, 이건 알아들었다. Me llamo 도준, 문. (나는 문도준이야.)"

 "Aprendi que 'Moon' es Luna en español. no? (Moon은 스페인어로 달이라고 배웠어. 맞지?)"

 "Exacto, chico. (정확해, 꼬마.)"

 

  영어 동요를 열심히 부르더니 공부도 열심히 했나 보다. 비록 한국어를 영어로 오해했지만, 그 뜻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맞혔다는 뿌듯함은 잠시뿐, 루디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밀가루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Pero luna es niña. Sol es mejor para el. (하지만 달은 여자애 같아. 이 사람한테는 태양이 더 잘 어울려.)"

 "밀.. 아니, 문도준 씨는 태양이 잘 어울린대요."

 "그거 기분 좋네요. Gracias, amigo!"

 

  누가 상남자 루디 아니랄까 봐 여자 명사인 달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러더니 태양을 새 이름으로 추천해주었다. 밀가루는 그걸 또 덥석 받는다.

  밀가루가 손을 내밀자 루디가 수줍게 웃으며 맞잡았다. 그도 루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로 화답했다.

 

 

 *

  4월의 학교(Collegio de Abril)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마을의 유일한 학교다. 즉, 유치원과 초중고 모든 학년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의미이다.

  주변 마을까지 70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 번에 수용할 공간과 교사가 부족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ㄷ자 모양의 단층건물 가운데 자연산 잔디(라 쓰고 잡초라 읽는다.)로 덮인 운동장과 놀이터는 이미 하교했을 시간임에도 학생들로 북적였다.

  촬영팀은 루디 남매가 사용하는 교실을 찾아갔다.

 

 "지난 겨울 방학에는 교실 내 페인트칠을 새로 했고, 다음 달에 시작하는 여름 방학에는 칠판을 보수할 예정입니다."

 "여기, 창문 유리가 다 깨져있네요."

 

  기획기사 작성을 위해 동행한 임 기자님이 지부장님의 설명을 듣던 도중 깨진 유리창을 가리켰다. 말이 좋아 유리창이지, 나무 살만 남은 것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놀다 보면 종종 깨지죠. 그런데 유리가 비싸기도 하고 새로 바꿔줘도 금세 또 깨지거든요."

 "이대로 두면 다칠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아예 다른 재질로 바꿀까 생각 중이에요."

 

  임 기자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는 동안 남자 밀가루는 책상에 걸터앉아 교실을 둘러보고, 여자 밀가루는 칠판 가득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두 연예인의 뒤를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예쁘고 잘생긴 기준은 전 세계 남녀노소가 같은지 나는 두 사람에 관해 묻는 아이들에게 답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Una foto! Una foto! (사진 한 장 찍어요!)"

 "Que bella! (예쁘다!)"

 

  여자 밀가루가 밝게 웃으며 손을 한 번 흔들어주자 사내 녀석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두 연예인이 재밌다는 듯 웃어젖혔다. 밖에 선 녀석들은 나한테 웃어줬네, 너한테 웃어줬네 싸우기까지 한다.

  이 녀석들. 나는 이렇게 안 따라다니더니! 서운하다 못해 괘씸하기까지 하다.

 

  학생들에 둘러싸여 사진 몇 장을 찍어주고 학교에서 나오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로 메추리구이(Codorniz)를 먹었다.

  아직 촬영이 한참 남았음에도 여자 밀가루는 하루종일 기념품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무래도 마지막 날로 배정해 두었던 쇼핑시간을 늘려 내일 저녁에 한 번 시내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

  하아, 난 괜찮아. 촬영만 잘하면 되지. 우리 애들을 위해서 온 사람들인데 쇼핑에 야근이 대수냐. 괜찮아, 진해연. 3일만 버티자.

 

 

 **

  루디 남매와 밀착 촬영을 하는 셋째 날.

  두 연예인이 아이들의 일과를 함께하는 내용으로, 가정 형편으로 인해 방과 후 일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로 했다.

  여자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남자들은 벽돌을 만들어 나르는 일을 한다. 나는 임 기자님과 함께 두 현장을 오가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Aqui, Aqui! (여기, 여기!)"

 "어어, 잠깐만! 잡았다!"

 

  여자 밀가루와 호세 마리아의 물고기 잡기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호세 마리아가 물고기를 몰면 여자 밀가루가 그물로 잡았다.

  둘은 뜻밖에 호흡이 잘 맞았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밀가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갔지만 그럴 수 있지. 쉽지 않은 일인걸.

  오히려 내 신경을 건드린 건 촬영이 끝난 이후였다. 종료 사인이 나자마자 밀가루는 아이의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생수로 손을 씻었다.

 

 "아, 대박. 냄새 어떡해? 비린내!"

 "여기 클렌징으로 닦아봐."

 "안 돼, 안 돼. 향수 좀 줘봐."

 

  생수에 클렌징, 향수까지. 냄새나니까 그럴 수 있지. 조금 과하긴 하지만 백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아이가 없는 데서 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옆에 가서 손을 잡아끌 때까지 아이는 앞에서 손 닦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 말이 없었다. 혹시 상처받은 건 아니겠지?

  밀가루를 쏘아보는 나의 손을 지부장님이 말없이 잡았다. 감독님은 옆에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왜 어제부터 아무도 주의를 주지 않는 건지. 내가 우리 지부장님 봐서 참는다. 한 번만 더 걸리면 안 봐줄 거야.

 

  여기는 벽돌 제조의 현장.

  널따란 밭에는 흙으로 만든 벽돌을 말리고 있고, 마치 만화에 나오는 성같이 생긴 벽돌가마의 근처에는 아지랑이가 연신 피어오르고 있다.

  사실 루디는 어리고 건강이 좋지 않아 벽돌을 트럭에 옮기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즉, 벽돌 제작은 남자 밀가루만 한다는 얘기.

  게다가 내가 일부러 현지인들도 일 안 하는 점심시간으로 잡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제대로 고생은 하고 가야 촬영팀도 보람이 있지 않겠어?

 

 "팔찌 빼야 할 텐데."

 "괜찮아요."

 

  작업을 위해 단체 조끼를 벗고 진흙밭에 들어간 그의 하얀 손목에 걸린 빨간 팔찌가 눈에 밟힌다.

  하지만 밀가루는 내 걱정을 일축하고는 나를 스쳐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 시키.

 

 "Vamos! (갑시다!)"

 

  맑고 투명한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붉은 대지. 성인 대여섯 명은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에 현지인들이 진흙과 물을 붓고 남자 밀가루와 함께 발로 밟는다.

  진흙이 적당히 짓이겨지면 거푸집에 흙을 눌러 담아 모양을 만든다. 현지인들 틈에 섞인 동양인은 마치 물 조절 잘못해서 허여멀건 하게 늘어진 밀가루 반죽 같은 팔로 흙뭉치를 잘도 뒤섞는다.

  그런데 손놀림이 어째 어색하다. 역시 팔찌를 신경 쓰고 있구나.

 

 "팔찌, 빼줄까요?"

 

  카메라 배터리를 가는 사이 그에게 다가가 흘러내리는 팔찌를 팔목에 고정해주었다. 밀가루는 콧잔등 찡긋하더니 손을 돌려 빼냈다. 그 덕에 내 팔에도 붉은 진흙이 묻었다.

 

 "괜찮습니다."

 "그러다 진흙 묻으면 안 지워질 텐데."

 "괜찮아요."

 "그래요. 그럼."

 

  거듭 괜찮다는 그의 말에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난 세 번은 안 묻거든. 손을 쳐낼 것까지야. 쳇.

 

  다시 시작된 촬영.

  거푸집으로 만든 모형은 줄을 맞춰 정렬해 하루 정도 말린 후 가마에 들어간다. 오늘은 전날 늘어놓은 벽돌 중 잘 마른 1,000장만 골라 가마에 넣기로 했다.

  다섯 발자국 이상 떨어져서도 열에 숨이 막히는 집채만 한 가마. 태양이 달군 공기와 가마가 달군 열기가 섞여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마지막으로 어제 가마에서 꺼내 식혀놓은 벽돌을 루디와 꼬마 친구들이 트럭에 옮겨 담으면 촬영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작업과 인터뷰를 마친 후 현지인들과 수고했다는 인사까지 나누고 돌아온 밀가루의 표정이 좋지 않다.

  결국 진흙이 엉겨 팔찌가 망가졌다. 이런, 실로 만든 거라 색이 빠지지도 않겠는데?

  메이크업도 수정하지 않고 생수로 팔찌를 닦는 데 여념이 없는 걸 보니 무척 아끼는 모양이다.

  그러게 내가 빼라고 했잖아, 이 친구야. 난 몰라. 분명히 경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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