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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2. 안녕 낯선사람(2)
작성일 : 17-06-22 22:30     조회 : 37     추천 : 1     분량 : 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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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대박 피곤."

 

  여자 밀가루는 차에 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잔뜩 올려 그린 아이라인만큼 한껏 높은 목소리가 차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덕분에 지부장님이 20분 전부터 빵빵하게 켜둔 에어컨은 빛이 바랬다.

 

 "호텔 침대가 뭐 이래? 너무 딱딱해서 한숨도 못 잤어."

 "여기 침대가 다 그래요. 도준 씨도 못 잤어요?"

 "전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해연이가 진드기 없는 곳으로 고르고 골라 찾은 곳이에요."

 

  볼리비아 생활 20년이면 나도 이렇게 초연해질 수 있을까?]

  딸뻘 되는 아이의 노골적인 불평에도 지부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운전대를 고쳐잡았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신호 대기로 잠시 차가 멈춘 사이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줄지어 선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달렸다.

  1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비눗물을 담은 500mL짜리 페트병을 들고 오더니 다짜고짜 차 앞 유리에 비눗물을 뿌렸다.

  워낙 순식간이라 와이퍼를 작동할 틈이 없었다. 구정물인지 비눗물인지 모를 액체가 유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놓칠세라 카메라를 들고 바짝 다가와 앉은 감독님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다.

 

 "이 친구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차 유리 닦는 거예요. 이렇게 하고 2bs.(볼리비아노/한화 300원)를 받아요."

 "어,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와서..."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일단 뿌리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원치 않는 사람은 비눗물이 뿌려지기 전에 와이퍼를 작동해 거절 의사를 표현하죠."

 

  내가 몇마디 짧은 설명을 하는 사이 유리 청소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소년이 처음에는 흰색이었을지도 모를, 늘어진 상의를 걷어 마른 걸레질을 했다.

  소년은 나름 깨끗해진 유리를 뿌듯하게 쳐다보고는 운전자석으로 움직여 돈을 받았다. 비눗물에 가려 흐릿하던 옷의 얼룩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신호가 바뀌자 길옆으로 비켜선 소년의 옆으로 어린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페트병과 걸레 말고도 신문, 껌 등의 물품도 들려있었다.

 

  이제 신나게 달려보나 했더니 아쉽게도 얼마 가지 않아 또 신호에 걸렸다. 이 거리에서 매번 신호에 걸리기도 쉽지 않은데.

 

 "저건 또 뭐야?"

 

  여자 밀가루의 호기심 어린 음성이 가리킨 곳에는 7살, 10살쯤 된듯한 두 소년이 곡예를 준비하고 있었다.

  형이 무릎을 펴고 허리를 반듯하게 숙이자 동생이 양손에 곤봉을 들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위에 올라간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니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다.

  굳은 얼굴로 낙엽처럼 바르르 떠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어린 자식을 길에 내몬 부모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

 

  결국, 아이가 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신호가 바뀌어 버렸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클랙슨을 울린다. 내게는 그 소리가 어찌나 위협적으로 들리는지.

  부르릉, 자비심 없는 어른들의 위협에 겁을 먹은 아이들은 재빨리 길가로 몸을 피했다. 차가 그들의 옆을 지날 때 동생의 손을 잡고 있는 형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 산타크루스의 도로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저렇게 무기력한 눈빛을 가진 아이는 많이 보지 못했다.

  마치 달빛을 가린 뿌연 먹구름처럼. 저 아이의 눈 속에 담긴 빛을 삼켜버린 것은 무엇일까.

  결국 한 푼도 벌지 못한 아이들이 다시 연습에 돌입하는 모습이 멀어져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사이드미러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저렇게 길거리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많나요?"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 밀가루가 차에 타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바람에 나도 사이드미러에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센터로 가는 길에 못해도 20명은 넘게 더 보실 거예요."

 "도대체..."

 

  왜 많은 아이들이 길에 나서나? 왜 이런 험한 일을 하나? 부모는 뭐하나?

  수많은 물음표가 담긴 당신의 말줄임표에 느낌표를 던져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도 아는 것이 없네.

  철저히 이방인인 나는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

 

 "글쎄요... 우리는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죠?"

 

  안타깝게도 그게 현실이랄까. 당신들과 나와 같은 이방인들의 현실.

 

 

 *

  계획도시인 산타크루스는 도시 전체가 반지를 크기별로 겹쳐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반지 모양의 도로를 차선이라 부르고, 각 차선 사이에 거주지가 형성된다.

  과녁으로 치면 촬영팀이 머무는 호텔이 있는 중심가는 1차선 안쪽의 10점, 우리가 찾아갈 마을은 낙(落)에 해당한다.

 

 "마을이 꽤 머네요."

 "어휴, 먼지가 이렇게 많이 날려서 운전을 어떻게 하세요?"

 "하하. 그나마 3년 전에 도로 공사를 해서 이렇게라도 달릴 수 있는 거예요."

 

  15차선을 넘어 더는 차선이라 표현하기도 어려운 시골지역까지 가는 길이 쉬울 리가 없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약 2시간이 걸리는 길의 도로 사정은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흙먼지가 날려 시야를 가리는 건 물론이요, 소 떼가 풀을 먹으려 이동이라도 하는 날엔 아예 시동을 끄고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진흙과 자갈로 되어 있어 비가 오면 마을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와아, 이거 진짜 환상이네!"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해도 작품이 나와요!"

 

  그러나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불평 하나 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이 길을 지나본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쉽게 떠나지 못한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잠깐 내려서 사진 찍고 가실래요?"

 "좋아요!"

 

  아침이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표백제에 담갔다 꺼낸듯 새하얀 뭉게구름이 눈을 시원하게 닦아준다.

  오후에는 자몽과 석류를 섞어놓은 듯한 샐쭉한 얼굴색을 한 하늘이 도도한 자태로 바람과 놀고.

  그리고 가로등 하나 없는 밤에는 새까만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이 박혀있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면 그 많은 별을 다 마실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볼리비아의 하늘과 땅 사이가 한국에서보다 가까워 손을 뻗으면 이 모든 아름다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감독님과 VJ가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내는 사이, 여자 밀가루도 핸드폰을 들고 셀카 삼매경에 빠졌다.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넣었다가 셀카봉을 장착해 저 높이 올려 찍었다가... 바쁘다, 바빠. 그래도 예쁜 애가 저러니 귀엽긴 하네.

  인터넷에서 표현한, 인형 같은 예쁜 외모에 통통 튀는 매력으로 발랄하고 야무진 이미지 그대로다.

 

 "이 와중에..."

 

  남자 밀가루님은 저 혼자 화보를 찍고 계신다. 카메라로 경관을 몇 장 찍더니 손을 이마에 얹고 차 문에 등을 기대어 섰다.

  하얀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검은색 스니커즈. 단출한 옷차림일 뿐이지만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매칭되어 산뜻하다.

  전체적으로 하얀 피부에 머리부터 순서대로 검정, 하양, 파랑 다시 검정. 포인트로 빨간 실팔찌까지. 음, 색감 배치도 좋아.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핏이 좋은 몸매라 막 서 있어도 멋있긴 멋있다. 사진 찍느라 바쁜 사람들을 대신해 나라도 화보를 감상해야지.

 

 "그게 예의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다 갑자기 돌아선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훔쳐본 건 아니지만 나는 왠지 뜨끔해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고, 누가 봐도 어색하게 로봇처럼 돌렸어. 티 났겠지?

 

 

 **

  오늘은 호세 마리아 집에서 아이들을 만난 후 센터와 학교, 주민자치회 등을 방문해 센터의 전반적인 사업을 둘러볼 예정이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차를 몰아 남매의 집에 도착했다. 센스있는 다니엘라와 센터 직원들이 미리 와서 집의 어른들과 대화 중이었다.

  호세 마리아는 깜찍하게도 노란색 바탕에 분홍색 반소매가 어우러진 티셔츠를 입고 우리를 맞았다. 그런데 어째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다.

 

 "Que te pasa? (무슨 일이야?)"

 "No ha secado la ropa. (옷이 안 말랐어.)"

 "Esta bien. Ya estas bonita. (괜찮아. 지금 입은 것도 예뻐.)"

 "Pero Ruddy me echo el pilfurut a mi! (루디가 나한테 주스를 쏟았단 말이야!)"

 

  한눈에 보아도 왼쪽 가슴주머니 옆의 무늬는 주스 얼룩이다. 루디녀석, 하필 포도 맛을 먹었구나.

  루디는 미안한 마음에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눈치만 보고 있다.

  호세 마리아의 큰 눈에 가득 올라온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이런, 빨갛게 부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설 수는 없지!

 

 "Entonces, como es esto? (그럼 이건 어때?)"

 

  나는 머리카락을 올려 묶었던 공단리본을 머리핀에 엮어 얼룩 옆 주머니에 꽂았다.

  다행히 리본은 얼룩을 가려줄 뿐 아니라 아이의 옷과도 색감이 잘 맞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옷의 포인트라 생각할 것 같다.

  아이의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정작 나는 머리를 푼 것만으로도 더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나는 머리끈 대신 손목을 감싸고 있던 실팔찌로 머리카락을 대충 틀어 올렸다.

 

 "Mejor. A mi me encanta esta cinta! (아까보다 나아. 이 리본 완전 좋아!)"

 "Bueno. Ahora vamos? (좋아. 이제 갈까?)"

 

  호세 마리아는 환한 얼굴로 나의 손을 잡고 카메라로 향했다. 루디도 안심한 표정으로 누나 곁에 따라 섰다.

  남매는 긴장도 되지 않는지 카메라 테스트 중에 센터에서 배운 영어 동요를 부르기까지 했다.

 

 "다들 준비됐죠?"

 

  이제 시작이다. 담 너머에는 외국에서 온 촬영단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촬영대본대로 두 대의 카메라가 두 연예인의 앞과 뒤에서 싸리문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오는 모습부터 찍겠지.

  시작을 알리는 감독님의 말에 촬영 당사자도 아닌 나의 배가 간지럽고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도준이 메이크업 좀 다시 손보고 갈게요."

 

  아놔, 아까 여자 밀가루는 단체 조끼가 크다고 불평하더니 이번엔 남자 밀가루가 메이크업 타령이다.

 

 "지금요?"

 "도준이가 얼굴이 따갑다고 해서요. 선크림을 더 발라야 할 것 같아요."

 "여기 햇빛이 익숙지 않아서 처음에는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요."

 "다음 달에 드라마 촬영 시작이라서요. 외모 관리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거든요."

 

  스타일리스트가 대변인처럼 말했다.

  어차피 밀가루같이 하얘서 밤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구만. 외모 관리가 팬들에 대한 예의인 건 알겠는데, 그럼 일찍 준비하고 나오던가!

  그럼 우리 애들이 쨍하는 햇빛 아래 대기하는 건 괜찮아? 그건 또 무슨 예의지?

 

 "5분 있다 시작할게요. 해연 씨, 애들도 잠깐 쉬라고 해주세요."

 

  결국 감독님은 5분간의 준비시간을 허락했다. 그 덕에 남자 밀가루는 처마 밑에서 선크림을 찍어 바르고 여자 밀가루는 머리를 손질했다.

  남자 밀가루의 바로 앞에 다가선 루디가 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Por que este hombre esta maquillando? (왜 이 남자는 화장을 하고 있어?)"

 "Creo que se vea mas guapo en television. Quieres probar? (TV에서 더 잘생기게 나오나 봐. 너도 해볼래?)"

 "No! Hombre no puede pintarse! (싫어! 남자는 화장하는 거 아니야!)"

 

  내 말에 상남자 루디는 기겁을 하고 고개를 붕붕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 남자 밀가루가 메이크업 수정을 마치고 일어섰다. 아이를 발견한 그가 인사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루디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내 뒤로 숨어버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그룹(이라 소개했다.) 리더 문도준 군은 영문도 모른 채 첫 만남에서 8살짜리 아이에게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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