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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3. 열정페이 -2
작성일 : 22-01-12 13:21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1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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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식 식당에 취직했다. 이제부터 쓸데 없는 꿈. 생각따윈 하지 않고 일만 할 생각이었다. 생각하며 사는 것 보다 생각없이 사는 지금이 편했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일만 하던 어느날 밤, 소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해? 자?”

  “어? 어. 자려고……. 왜?”

  “그냥……. 보고 싶어서. 지금도 미용실에서 일해?”

  “지금도 라니? 왜? 그만 뒀을까봐…….”

  “어. 전화 할 때 마다 맨날 바뀌는 것 같아서.”

  “그래. 그만두고 식당에서 써빙해.”

  “또 식당이야?”

  “응 또 식당이야. 밥은 잘 먹고 다니니까……. 근데 왠일이야?”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언제 시간 돼?”

  “너, 꼭 서울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어. 나. 서울이야.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거 너에게 말 안했구나!”

  “어. 말 안했어. 니가 보자고 하면 내가 나가야 하니?”

 소희가 대학 병원에서 일한다는건 미니홈피를 보고 알았다. 서울에 왔음에도 나에게 연락도 없고, 전화를 받지 않는 소희에게 서운해서 투명스럽게 말했다. 멋쩍은 듯 소희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물었다.

  “내일 만날 수 있을까?”

 휴무를 바꿔 만날 순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게 아니라서 미안, 다음주 쉬는날에도 약속이 있어서 보기 힘들 것 같은데. 다. 다음주에 시간 되면 보자.”

  “누구랑 약속 있는데? 급한 약속이야?”

  “왜? 내가 너 아니면 친구 없을까봐?”

  “아. 아니……. 그럼 너 퇴근하고 잠깐 보는건 어때? 할말이 있는데.”

  “내일도 약속 있는데……. 전화로 하면 안되는 얘기야?”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그럼 화요일은 시간 어때?”

 마지못해 화요일 저녁 퇴근하고 소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옛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때로 돌아간 듯 추억할 것도 없는 추억을 되새기다 소희가 불쑥 물었다.

  “나, 너랑 같이 살면 안될까? 월세도 반반 부담하면서…….”

 소희는 내가 지하 월셋방에 사는줄 알고 물었다. 고시원에 산다는 말에 믿지 않는 듯 물었다.

  “니가 일한지가 몇 년인데, 월셋방은 어쩌고 다시 고시원이야?”

  “그렇게 됐어. 꿈 꾸려다 사기 당한 기분이야.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열정페이로는 생활이 안되기에 꿈은 포기하고 다시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생각이라는 말에 소희는 희망이 사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나도 고시원에서 지내. 얼마전까지 룸메이트랑 생활 했었는데…….”

 소희는 좁은 고시원에서 지내려고 하니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고 말했디. 잠자는 거 말곤 할수 있는 일이 없다며. 차라리 내가 사는 반지하 월셋방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말을 꺼냈다는 말에 대답했다.

  “내가 월셋방 살고 있으면, 내가 너랑 같이 살거라 생각 했어?”

  “뭐?”

  “응. 월세를 반반 부담하면 너도 좋잖아. 나중에 우리 돈 모아서 원룸이라도 얻어 사는건 어때?”

  “그것보다 니 생각을 바꾸는게 더 빠를 것 같아. 고시원에서 지내려면 무소유를 실천 하면서 씻고, 잠잘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그러면 ‘이런곳에서 어떻게 살아?’라는 말대신 ‘이런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이런곳에서 7년을 사는 나도 있는데, 왜 못살아?”

  “감사는 무슨, 내가 전생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엄마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건지. 엄마가 아니라 빚쟁이 같단 생각이 들어. 빚 받으려고 날 낳은 느낌이랄까…….”

 소희는 엄마의 험담과 답이 없는 하소연만 늘어 놓았고, 나는 치킨이 맛있었다.

 소희와 헤어지고 나서 소희의 깊은 한숨과 힘들어 하던 얼굴이 맴돌았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회 생활은 힘든거니까. ‘힘내’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찾을땐 바쁘다는 말로 피하고, 딴 친구랑 놀땐 언제고.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소희가 얄미워서 편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식당 안으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지만 알아 보지 못하고 써빙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조금 한가해 지는 틈에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누구…….”

  “뭐야? 모른척 한게 아니라, 진짜 날 못알아 본거였어? 나야. 정화…….”

  “정화는 예전에 알던 사람이고. 지금은 모르는 사람인데요.”

 뒤늦게 알은체 하기가 민망해서 모른척 했더니 서운해 하며 말했다.

  “왜그래? 사람 민망하게…….”

 정화는 연락처를 잃어 버려서 연락을 못했다고 말했다. 퇴근후에 호프집에서 정화를 만났다.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나 없이 잘 지냈나 보네. 얼굴이 좋아졌어.”

  “그래? 나 엄청 못 지냈는데. 자유를 찾은지 이제 1주일째네. 너도 잘 지내지?”

  “응. 나야 뭐, 항상 똑같지. 자유를 찾다니, 그동안 빵에 가 있었어?”

  “얘는 상상을 해도…….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 났거든. 나, 이혼했어!”

 정확히 말하면 결혼이 아니라 ‘취집’ 이라고 말했다. 고시원에서 알바만 하다 인생이 끝날 것 같단 생각에 결혼을 했다는 말에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결혼이 장난이야? 니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아무 남자랑 결혼했다고?”

  “사랑타령 하는거 보니 아직 넌 순진하구나. 사랑이 밥 먹여 주니?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거지만 결혼은 조건이지. 조건이 맞으면 결혼은 문제 없는거고.”

  “그래서 돈 많은 남자랑 결혼 했어?”

  “그냥 집 있는 남자랑……. 근데 살아 보니까 내가 손해더라고!”

 남자는 집이 있고. 살림해주는 여자가 필요했다. 정화는 집이 필요 했기에 남자 집에서 살면서 청소와 밥을 하고. 합법적으로 섹스를 하는 댓가로 생활비를 받아 쓰는 것 까진 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시댁일까지 챙기는건 뭔가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댁을 갈 때 마다 보너스를 받듯 갖고 싶은 물건을 쇼핑 하면서 살았지만, 이제 더는 시댁을 참을수가 없어서 이혼을 한다고 말했다.

  “이혼 해 달라고 하니까 이혼 해줘?”

  “그럴 리가……. 그래서 여자를 붙였더니 금방 넘어가드라. 덕분에 난 위자료 받고 이혼할 수가 있었지.”

  “듣고 보니 남자가 불쌍하네.”

  “아니. 그 여자랑 같이 살기로 했어. 모텔 가는척만 하랬더니……. 잤더라고. 그리고 나보고 진짜 이혼 할거냐고 묻는거야. 그래서 내가 이혼 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그 남자랑 결혼 하겠데. 남편도 나보다 그 여자가 좋은가봐. 내가 이기적으로 나쁜 여자라고 생각 들다가도 결과적으로 셋 다 해피엔딩 이잖아.”

 정화는 받은 위자료로 전셋집을 구하고. 1주일 전부터 미용실에서 스탭으로 일한다는 말에 나도 미용을 했었다고 말하자 반가워 하며 물었다.

  “진짜? 너도 디자이너가 되는게 꿈이었어?”

  “꿈은 무슨, 식당일 말고, 폼나게 일 하고 싶어서 겉 멋만 부리다가 망했어. 취직 시켜 준다는 미용학원에 완전 사기 당한 기분이야! 그때 학원만 가지 않았어도…….”

 그때부터 아직까지 고시원에서 지낸다는 말에 정화는 고민없이 바로 같이 살자고 말했다. 방이 2개라 방 하나는 내어 줄수 있다는 말에 거절했다.

  “그냥 살기 뭣 하면, 고시원비를 나에게 주면 되잖아!”

  “불편하게 뭣하러……. 난 괜찮아. 혼자 사는게 편해.”

  “넌 그게 문제야! 맨날 철벽 치고 선 긋는거! 뭐가 맨날 괜찮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할땐 도와 달라 말하고. 그 말이 어렵긴 하지만 콩 한쪽도 나눠 먹은 우리 사이엔 할수 있는 얘기 아냐? 내가 너랑 다른게 뭔지 아니? 넌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보지 못하고 살지만, 난 오늘을 살아. 오늘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내일이 보이거든. 너도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 제안에 좋은지 싫은지만 생각해.”

 정화가 불쑥 봉투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이제야 너한테 빌린 돈을 갚아 주네.”

 봉투 안에는 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이자라는 말에 말했다.

  “내가 사채업자냐? 무슨 이자가 이렇게 많아?”

 돌려주려 했지만 정화는 받지 않았다. 대신 정화에게 줄 것이 있다며 내일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다음날, 정화를 만나서 상자 하나를 건넸다.

  “이게뭐야?”

  “선물!”

 상자를 열어 본 정화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놀라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이거 나 주는거야?”

 박스 안에는 미용재료와 연습가발과 노트가 들어 있었다. 정화는 노트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이런 비법 노트를 나에게 줘도 되는거야?”

 노트안에는 미용 공부를 하면서 적은 노트와, 손님이 올때마다 두상과 얼굴 모양에 따라 시술과정과 시술 전, 후를 그린 헤어스타일은 물론 일하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도 적혀 있었다. 정화는 이런 나의 열정이 아깝다며 같이 미용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깝지. 나의 꿈과 열정이 박스 한가득 쓰레기가 되었는데……. 이젠 아깝지도 않다. 다 지난 일이고……. 난 열정페이를 받으면서 일 할 자신이 없어. 넌 열정페이 받으면서. 미용실에 봉사하는게 좋아?”

  “열정페이는 불만이긴 한데, 그 댓가로 꿈은 이루잖아. 월급도 오르고.”

 나와 다르게 정화는 즐거워 보였다. 반짝이는 눈으로 미용 얘기를 시작하려 하자 듣기 싫은 듯 말을 잘랐다.

  “나도 알아. 나, 자격증 있는 여자란걸 잊었어?”

  “아. 맞다. 그럼 나 좀 가르쳐 주라. 맨날 연습해도 늘 5분이 모자라! 대체 손이 얼마나 빨라야 시간안에 완성 할수 있는거야?”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마. 100점 받을 필요 없잖아. 펌을 잘 하려면 일단 컷트를 잘해야 하는건 알지? 삐져 나오는 머리카락이 있으면 말기 힘드니까. 컷트만 잘하면 펌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 시간 남으면 수정해도 되니까. 완성 못해서 실격 당하는 것 보다 시간안에 완성해서 점수 받는게 중요하니까.”

  “어떻게 알았어? 나, 마음에 안들면 될 때까지 하고 넘어가는거…….”

  “그게 니 성격이니까. 자격증은 요령껏 따는거야. 자격증으로 손님 머리 하는거 아니잖아. 안되는건 과감히 포기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넘어가!”

 정화는 본인 머리는 생각 안하고, 연예인 사진 들고와서 똑같이 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진상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시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고객이 가진 매력을 살리고, 얼굴을 더 예쁘게 보일수 있는 디자인을 할거란 말에 나와 참 다르다는걸 느꼈다. 난 폼 나게 가위질을 하고 싶단 생각 뿐이었는데. 정화는 기술은 금방 배울수 있지만 고객을 모르면 아무 소용 없다며 빨리 디자이너가 되기 보다 밑에서 배울수 있는건 다 배워서 제대로 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라가는건 쉽지만 내려오는건 쉽지 않으니까…….”

 일을 하면서 배운다는 것이 이런걸까. 경력이 쌓인다는 것은 일을 빨리 할 수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수 있는 능력이라며. 정화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나도 미용사가 꿈은 아니었는데. 미용실에서 컷트를 하다가 가위 소리에 꽂혀서 운명이 되어 버린 것 같애. 너도 니 꿈을 찾을수 있을 거야. 운명처럼! 아니면 남자라도 만나겠지!”

  “운명같은 꿈이라……. 남자도 없을 것 같은데. 나에게 괜히 쓸데없는 희망 주지마! 바람 들면 빼느라 힘들어. 내 주제에 무슨…….”

 

 은혜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무슨 장난을 이렇게 정성 스럽게 보내냐고 묻자 진짜 결혼 한다고 말했다.

  “진짜 결혼 한다고? 왜?”

  “왜라니? 사랑하니까! 27살엔 꼭 결혼 할거라고 했잖아.”

  “결혼은 혼자 하니? 너도 조건 맞는 남자랑 결혼 하는 거야? 설마 27살에 결혼하자는 남자가 있어서 하는건 아니지?”

  “조건이라니? 친구가 결혼 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아니야! 미안. 축. 축하해……. 내가 너무 놀라서……. 연애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니까.”

  “남친 있다고 했잖아.”

  “그냥 남자 사람 친구 아니었어?”

  “한번 친구는 평생 친구냐? 친구가 사랑이 되기도 하는 거지. 날 품어 주는 이 남자 품에서 이젠 내 꿈을 이루고 싶어.”

 은혜는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일도 그만두고 신혼을 즐기다 아이 낳고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는 말에 아까워 하며 물었다.

  “고작 ‘집사람’ 되려고 공부 하고, 일했어? 직업이 아깝지 않아?”

  “아까울게 뭐 있어? ‘집사람’이 뭐냐? ‘아내’라는 단어도 있구만. 내가 공부한 이유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였어. 부모님 돌아가시고 호시탐탐 내 재산을 노리는 이모에게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또 부모 없이 자란 아이는 뻔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 이젠 부질없잖아!”

 드라마에서 보면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다. 그런 현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말을 아끼며 물었다.

  “결혼 한다고 일까지 그만 둘 필요는 없잖아.”

  “굳이 일 해야 하는 이유도 없잖아. 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은혜는 돈이 많은건 아니지만 없는것도 아니기에 돈에 집착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이란 적당히 있으면 되는거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들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 소식을 들을때면 난 늘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졌다.

 

  식당일을 하면 별별 손님이 다 있지만 대꾸하지 않고 피하면 그만이었다. 성희롱을 일삼는 일부 손님들도 무시하며 지냈지만 오늘은 참을수가 없었다. 오늘도 나타난 단골 손님은 주문을 하면서 말했다.

  “오늘따라 가슴이 더 커보이네. 속옷을 바꾼거야? 살 찐거야?”

 대꾸없이 돌아서자 내 손을 잡고 물었다.

  “손님이 물어보면 대답은 해줘야지! 대답하기 싫으면 내가 만져봐도 되고…….”

 남자의 손이 내 가슴 쪽으로 향하자 남자의 싸대기를 날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밥 먹으러 왔으면 곱게 밥이나 쳐먹고 가! 그동안 만진 엉덩이도 모자라 이젠 가슴까지 만져 보려고? 자신 있으면 만져봐.”

 남자는 당황한 듯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정색을 하며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아니, 이 아가씨가 생 사람을 잡네. 자주 보는 사이에 살 찐 것 같다고 물어보지도 못해?”

  “이 아저씨가 어디서 발뺌 해? 가슴이 어쩌고, 속옷이 어쩌고 다 녹음 했거든!”

 놀란 사장님이 다가와 일이 커지는걸 막고 싶은 듯 단골손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자주 오시는 사장님이 농담도 못해? 가슴을 만진것도 아닌데 막말로 뭘 한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바해? 일 하기 싫어?”

  “일 하기 싫은게 아니라 이렇게 모욕을 받으면서 일 못하겠네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오후3시부터 새벽2시까지 PC방에서 일하기로 했다. 담배 연기는 참기 힘들었지만 청소 하고, 자리에 앉아 계산만 하는 일이라 몸도 마음도 편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두달째 되는 월급은 50만 원을 받았다. 사장은 창고에 놔둔 키보드. 마우스 비품이 없어 졌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내가 먹은 라면과 소세지 가격은 뺐다는 말에 따져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비품이 없어진건 전 모르는 일이구요. 라면과 소세지는 결제 하고 먹었어요. CCTV보면 아시잖아요. 제가 사온 김밥을 먹은 날도 있구요.”

  “아. 그러니까 왜 근무시간에 밥을 먹어? 계산하고 먹었는데 왜 재고가 안맞아?”

 사장은 경찰에 신고 하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인줄 알라며 일이나 하라는 말에 나는 이렇게는 일 못한다며. 그동안 일한 10일치 월급도 계산해 달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듣도 보도 못한 욕을 한참을 퍼붓고는 나를 쫒아냈다. 무서웠다. 억울하고 분노가 극에 달해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각 같아선 불을 지르고 싶었고. 컴퓨터를 다 박살내고 싶었고. 하다 못해 금고에서 내 월급을 가져 가고 싶었지만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잊어 버리는 것이 었다. 알바비는 떼이긴 했지만 담배 연기 가득한. 폐인 소굴에서 벗어나 내 폐가 숨 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주유소 알바를 시작했다. 단순히 주유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새벽부터 무슨 차가 이렇게 많은지. 주유뿐 아니라 옆에 세차장도 있어서 나오는 차들의 백미러도 마른걸레로 닦느라 내 몸은 항상 땀으로 젖어 있었다. 쉴틈 없이 일하면서 몸보다 힘든건 손님들이 툭 던지는 말이였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모욕적인 말을 내 뱉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으려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모녀가 나눈 대화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아이를 태운 엄마가 주유를 하면서 딸에게 말했다.

  -공부해! 공부 안하면 너도 저 언니처럼 주유소에서 일해야 돼.-

 그말을 듣고도 반박 할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해 졌다. 머리로는 직업에 귀천이 어딨냐며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뭘 안다고 떠드냐고 싸우고 싶었지만 틀린말도 아니었다. ‘가진게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내가 이꼴인거야.’ 자책하다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일이 힘든건 참을수 있지만 무시 당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일을 그만 두면 조급함에 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지금은 쉬고 싶었다. 의욕을 잃어 버렸다. 나에게 미래가 있기나 한건지. 난 왜 이모양인건지. 우울함에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택배가 도착 했다. 정화가 보낸 선물 이었다. 노랑 오리 티셔츠를 보자 ‘오리’라고 부르며 웃던 아빠가 생각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애써 감정을 숨기며 울고 있는데. 정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냐고 묻는 말에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목 놓아 울어 버렸다. 정화는 한참을 말없이 들어 주다 말했다.

  “그렇게 아빠가 보고 싶어?”

  “보고싶긴, 니가 사준 선물에 감동해서 그런다. 나 요즘 눈물샘이 고장 났나봐.”

 

 소희 폰으로 전화가 왔다. 어제까지 통화 했던 소희가 죽었다는 말을 믿을수 없었다.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믿을순 없는데 눈물은 터져 나왔다. 나와 살고 싶다고 찾아 왔을 때 살려 달라는 메시지 였을까? 소희가 힘들다고 말할 때 마다 말 했었다. ‘너만 힘든줄 아니? 다 힘들어! 난 숨쉬는것도 힘들다. 너가 힘들다고 하면 난 죽어야해!’ 어제도 힘들다고 말하는 소희에게 귀찮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투명하게 건성으로 전화를 받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다정하게 전화를 받았더라면. 힘들다고 말하는 소희를 말없이 안아 줬더라면 소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을 시도해 본 내가 알게 된 건 그 순간만 지나면 괜찮아 진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만 잘 견디면 어떻게든 살수 있다는 말을 소희에게 못한 것이 후회 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주저 앉아 있는 내게 소희 어머니가 봉투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이거 소희가 그린건데, 너 만나면 전해 주라고 하더라!”

 봉투속에는 다섯장의 그림이 각각 그려져 있었다. 병아리가 먹이를 쪼는 모습, 닭과 병아리가 함께 있는 모습, 닭장 속에 닭, 계란 바구니, 치킨과 맥주가 그려진 그림 이었다. 그리고 캘리그라피로 쓴 문구도 있었다.

 ‘닭은 결국 밥상으로!’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일단 그림을 봉투에 넣었다.

 소희의 유서엔 왕따가 제일 힘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선배 간호사들의 압박과 동료 간호사들의 무시. 3교대로 일하지만 자는 시간 빼고 눈 뜨면 어느새 병원. 환자 보느라 정신 없는 하루. 죽을만큼 힘들어도 버텨야 하는 현실. 어둡고 긴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 몸 하나 누울곳 없고. 내 마음 하나 기댈곳 없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며 이대로 눈 감으면 눈 뜨고 싶지 않다고. 제발 살려 주지 말라며. 유서의 마지막은 잊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소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면 일을 그만두면 될걸,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27살 꽃다운 인생을 아까워 할뿐, 소희의 죽음엔 관심 없었다. 난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간호사를 그만 두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할수 없었던 소희가 할수 있는 선택이 이것 뿐이라는 것을. 소희 어머니를 탓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게 해줬더라면……. 삶의 무게를 소희에게 떠 넘기지만 않았어도……. 멍하니 자리를 지키다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닭은 결국 밥상으로!’라는 문구만 몇 번이고 되내어 보았다.

 소희에게 내가 동물이라면 닭, 아니면 곰이라는 얘기를 했다. 닭장속에 갇힌 닭 처럼 먹이를 쪼는 것 말곤, 할수 있는 일이 없고. 재주 부리는 곰처럼 일해도 돈은 사장님이 챙기고, 나는 겨우 밥만 먹고 산다는 말에 닭 그림을 그린걸까? 닭은 결국 밥상이라니……. 닭은 식량이다. 맹수의 먹이가 되거나. 사람의 요리가 되거나. 내가 닭이라면 나는 뭘해도 요리의 재료가 되겠지만 나는 사람이니까……. 내 인생을 동물의 먹잇감으로 던져 놓지 말고 내가 닭을 잡아 요리를 하라는 건가……. 닭그림 하나에 생각이 많아졌다. ‘닭은 결국 밥상으로!’ 뒷장에 ‘나는 닭이 아니다.’라고 적다가 ‘세상을 요리하자!’ 라고 적었다. 꿈만 거창해졌다. 무슨 수로 세상을 요리한담? 소희의 죽음보다 더 슬픈건 함께한 추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희의 죽음으로 나는 며칠을 더 우울했지만 시간이 지나 잊어 버렸다.

 

 1년을 일한 보상으로 고시원을 나와 옥탑방 월셋방을 구했다.

 TV속에 나오는 세상은 누가 사는 세상일까? 평범한 일상조차 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흔한 ‘귀성길’ 풍경마저 나에겐 낯선 장면이다. 매년 ‘부자되세요!’라는 새해 인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부자가 되란 말이지? 차라리 ‘복권에 당첨되세요!’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긴 그 흔한 새해 인사도 난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내가 새해 문자를 보냈다.

 -빛나야! 올해는 축하 받을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

 

 어김없이 봄은 왔다. 가벼워진 옷차림 만큼 기분도 좋아졌다. 돋아 나는 새싹에서 에너지를 얻고, 좋은일이라도 생길것만 같은. 뭐라도 시작하기 좋은 날 이었다. 나의 예감은 늘 빗나갔지만 이번엔 좋은 소식이 있었다. 얼마전 이력서 낸 곳에선 연락이 왔다. 가전제품을 도. 소매로 납품하는 작은 회사에서 출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3개월 수습기간이 지나면 정사원이 될수 있다니. 설레였다. 29살 드디어 나도 회사원이라니. 알바 인생을 끝낼수 있는 기회라 정말 열심히 일 했다. 늘 12시간을 육체적 노동을 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면서 6시 칼퇴근하다 보니 내 시간이 생겼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창고에 쌓인 재고 정리와 주문이 들어오면 업체에 보낼 물건을 장부에 기록하고, 인터넷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 송장을 붙이는, 기술이 없어도 배우면서 할수 있는 단순 사무 업무를 맡았다. 세금계산서 발행과 장부 정리는 상화 언니가 맡았다. 쉬운 일이지만 처음 하는 일에 실수도 많았지만 사장님은 열심히 하려는 나를 귀엽게 봐줬다. 그런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었는지 상화 언니는 나를 미워 했다. 사장님도 좋고. 직원들도 다 좋은데. 나를 싫어하는 언니 때문에 회사 생활은 힘들어 졌다. 언니는 내가 실수 하기를 기다렸다가 화를 내면서 내 자존감을 깍아 내렸다. 그럴 때 마다 잔뜩 주눅 들어 풀 죽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으면 거래처 나가는 김대리님이 나를 위로했다.

  “상화씨가 다열질이라 조금 피곤하죠? 오래 일해서 올챙이 시절은 잊어 버렸나봐. 자기는 뭐 처음부터 잘했나? 그래도 뒷끝은 없으니까 빛나씨도 잊어 버려요.”

 김대리를 볼때마다 심장이 쿵 했다. 무심한 듯 챙겨주고. 자상한 모습에 반했지만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때 언니가 불렀다.

  “지금 노닥 거릴 시간 있어요?”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일을 배워야 하기에 최대한 기분을 맞춰주며 잘 보이려 애 썼지만 그럴 때 마다 귀찮아 하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 볼거야? 레시피를 알려 줬으면 직접 만들 생각을 해야지. 요리까지 다 만들어 먹여줘야 해?”

  “재료도 알려주지 않고 뭘 하라고만 하시니까……. 재료가 있어도 넣는 순서도 중요하고, 양도 중요한데. 제가 마음대로 할수도 없고…….”

  “야! 넌 내가 만만해? 사회 생활이 우스워? 어디서 말대꾸야?”

 오늘은 참을수 없었다. 아니 참기 싫었다. 대체 뭐가 불만인건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서 일 핑계로 괴롭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 직접 물어 보기로 했다.

  “이건 말대꾸가 아니라……. 언니를 만만하게 본 적 없구요. 말이 나온겸 물어 볼께요. 뭘 가르쳐 주지도 않고 실수하면 이렇게 화 내는 이유가 뭐예요? 제가 싫은건 알겠는데. 왜 싫은건데요?”

  “내가 니 언니니? 여긴 직장이고. 내가 직책은 없지만 너보다 먼저 들어 왔으면 선배라 불러야지. 이런것도 가르쳐 줘야해? 싫은 이유를 말하면 고칠수나 있고? 난 니 존재 자체가 싫은데!”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에 닭똥 같은 눈물부터 나왔다. 몰랐다.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걸. 그래 선배라고 치자. 존중을 받고 싶은거라면 최대한 선배 비위를 맞춰주며 존중 해주려 노력 했지만 선배는 나를 봐주지 않았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장부를 던져 주며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오기가 생겼다. 까짓거 직접 해보지뭐. 회사 사물함에서 지난 장부를 다 꺼내와 양식을 보고 따라 했더니 얼추 그럴 듯 하게 장부가 완성 되었다. 창고에 있는 물건 리스트도 찾았다. 이런게 있으면서 여태 수기로 작성하게 했다니. 창고 물건 리스트를 몇장 복사해서 재고조사를 하고, 창고 정리도 말끔하게 해 놓았다. 사장님 흡족해 하자 선배는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빛나씨, KDFA-24882 재고 몇 개 있어요?”

  “네? KDFA-248882요?”

  “몰라? 쿠디전자에서 제일 잘 나가는 믹서기 있잖아.”

 그냥 쿠디전자 믹서기라 말하면 될걸, 모델명으로 골탕 먹이다니. 이많은 물건의 모델명을 다 외우란 걸까. 선배는 또 물었다.

  “빛나씨, KKSD-6010, KKSD-1010 차이가 뭐야?”

 한참 생각했다. KKSD…… 아 밥솥! 코니 밥솥인데, 차이점이라……. 한참을 생각하며 서 있자 선배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둘다 갖고 와봐!”

 힘들게 밥솥을 갖고 오자 물었다.

  “이제 차이를 알겠어? 무슨 차이야?”

  “크. 크기요?”

  “그래. 6인용 밥솥이 뭐야?”

 박스를 살피며 ‘6인용’ 글자를 찾으려고 하자 선배는 모델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 6010이 6인용, 1010은 10인용, 3010은 몇인용 이야?”

  “30인용?”

  “30인용이 어딨어? 업소용 밥솥! 이런 기본적인것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한다고 앉아 있어? 일하는척 하지말고 제대로 일 해!”

 밥솥을 창고에 갖다 놓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업무랑 상관없는 일인데.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알바 였다면 당장 그만 뒀을 테지만. 직장이기에 오기로 모델명을 다 외웠다. 그러자 또 물었다.

  “빛나씨, tsf-5355 믹서기에 칼날이 몇 개 들어있어?”

  “네? 칼. 칼날이요?”

 판매 하는것도 아니고. 고객 전화를 받는것도 아닌데. 제품의 기능까지 알아야 되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질문으로 괴롭히는 선배를 이겨 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선배에게 질수 없다는 생각에 모델명을 외우고. 사용 설명서는 물론 A.S 연락처도 외웠다. 주 업무보다 선배가 날 골탕 먹이지 못하도록 방어 할 생각에 거래처에 보낼 거래 명세서를 잘못 보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회사는 발칵 뒤집어 졌다. 거래처 마다 물건의 단가가 다른데. A업체에 B 거래명세서를 보냈으니 B거래처의 낮은 단가를 보고 A업체가 컴플레인을 걸었다. 그렇다고 A업체에 B업체 단가를 맞춰 물건을 내 줄수는 없는 일이라 물건을 받아야 하는 A업체는 어쩔수 없이 약속된 금액으로 거래를 하지만, 오래 거래 하지 않을거라고 통보 해 왔다. 사장실로 불려 들어가 죄송하다고 말하자 사장님은 화를 내며 말했다.

  “돈이 오고 가는 일에 죄송이 어딨어? 어떻게 책임 질거야? A업체 대신 다른 거래처라도 뚫어 올 거야? 내가 실수는 해도 되지만 사고는 치지 말라고 몇 번 말했어? 장부는. 서류는 확인 또 확인 하라고 몇 번을 말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내일부터 나오지마!”

 사장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달려가 참았던 숨죽이며 울었지만 흐느낌은 감출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선배는 미안한 듯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 세수 좀 하고……. 오늘 회식은 갈거지? 환영회가 송별회가 되어 버렸네.”

 이대로 퇴근 하고 싶었다. 회식은 무슨……. 그러나 다들 기다린다는 말에 회식 장소로 갔다. 다들 위로해주며 한잔 건네는 술을 다 받아 먹었다. 취기가 살짝 오른 선배도 다시 한번 미안 하다고 말했다.

  “괜찮아요. 전 미운오리라……. 미움 받는거 익숙해요.”

  “야.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 난 니가 잘 되라고……. 그러면서 배우는거지. 난 머리가 안되서 몸으로 얼마나 뛰어 다녔는지 알어? 한겨울에 창고에서 벌벌 떨면서 재고 파악하다가 갇힌적도 있었어.”

  “선배님이 당했다고 저도 당해야 해요? 난요. 내 후배가 들어오면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 했는데, 쓸데 없는 다짐이었네요. 이게 다 선배님 때문이예요. 쓸데없이 모델명이나 외우고 사용 설명서나 보라 해서……. 근데 괜찮아요. 제가 원래 이모양이라……. 아무리 예쁜 모양을 만들어 보려 발버둥 쳐도 꼭 이렇게 망가지거든요. 부모없는 내 팔자가 이모양인걸 누굴 탓하겠어요!”

 회식 1차는 고깃집 이었는데, 눈을 뜬 곳은 노래방이었다. 언제 필름이 끊겼는지. 끝나가는 노래방 시간을 보니 최소 2시간 이상은 잠든 것 같았다. 회사 사람들은 나를 구석에 눕혀놓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회식이란게 이런거구나. 자리에 앉자 제일 먼저 김대리님이 나를 챙기며 괜찮냐고 물어 봐줬다. 다들 취해 기분이 좋아 보였고. 노래 한곡 불러 보지 못하고 회식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김대리님이 나를 붙잡았다.

  “괜찮으면 한잔 더 할래요? 칵테일바 괜찮은데 아는데…….”

  “이미 많이 마신 것 같은데요. 다음에요.”

  “다음이 어딨어요? 음료처럼 가볍게 칵테일 바에서 한잔만 더 해요. 오늘이 마지막인데.”

 단둘이 가는건 부담스러웠지만 음료라는 말에 가볍게 생각했다. 칵테일이 술 인줄도 모르고. 평소 잘해준 고마운 마음에 거절 못하고 김대리님을 따라 지하에 있는 칵테일 바로 들어 갔다. 촛불이 놓여진 계단을 내려가 안으로 들어가자 꼬마전구와 촛불들로 장식되어 있고, 인도 느낌의 알수 없는 분위기에 어리둥절 하며 바닥에 방석을 놓고 앉았다. 벨벳 느낌의 와인색 방석과 쿠션이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김대리님은 자주 오는 듯 메뉴판을 건네며 좋아하는 칵테일이 뭐냐고 물었다. 영어와 한글이 적혀 있는 메뉴판을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귀엽다는 듯 물었다.

  “칵테일 한번도 안 먹어 봤어요?”

  “네. 굳이 먹으러 올 일이 없어서……. 뭐가 맛있어요?”

  “풉. 백문이 불여일수.”

  “네?”

  “‘백번 듣는것이 한번 마시는 것 보다 못하다.’라는 말 몰라요? 제가 시인이 아니라서 말로 표현이 안되는데. 직접 먹어봐요.”

 직원이 테이블에 칵테일을 내려 놓고, 커텐을 닫아 주자 분위기는 더 묘해졌다. 앞에 놓인 촛불만 응시하며 어색해 하자 김대리님이 말했다.

  “여기 분위기 어때요? 처음이라 좀 이상할수도 있는데. 편하게 마시기엔 좋아요. 기대도 되고. 누워도 되고……. 편하게 마셔요.”

 원래 이런 곳이라고? 나는 촌스럽게 굴지 않으려 애썼다.

  “김대리님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오빠잖아요.”

  “뭐? 오. 오빠. 그래 오빠 좋네. 이제 일하는 사이도 아닌데, 오빠라 부르면 되겠네. 일 그만 뒀어도 자주 연락하고. 가끔 만나면서…….”

 일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취미를 물어보다 영화 얘기를 꺼냈다. 잠깐 한잔 하고 금방 집에 갈 거라 생각 했는데 이상하게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음료처럼 달콤한 칵테일도 맛있고. 취기도 올라오고. 분위기도 적응 되자 편안해졌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한참을 대화하다 보니 새벽4시가 되었다. 졸린건지. 취한건지 눈 앞이 어지럽자 그만 나가자고 말했다. 김대리님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자 김대리님이 내 팔을 꽉 잡고 기대 서 있는 듯 하다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가슴을 잡고 괴로워 하는 모습에 119 신고를 하려 하자 휴대폰을 뺏으며 말했다.

  “괜찮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 잠시 쉬면 될 것 같애. 잠시만…….”

 어쩡쩡한 자세로 부추이고 있는데 저 멀리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안한데, 나 저기까지 바래다 줄수 있을까? 너도 집에는 가야지.”

 모텔을 보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응급실 갈 정도는 아니고 쉬면 괜찮다고 하는데. 길바닥에 버려두고 갈수 없으니 김대리를 부추겨 힘겹게 모텔 앞까지 걸어오자 갑자기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 버렸다.

 할수 없이 내 카드로 방 값을 계산하고 직원의 도움으로 김대리를 방안까지 데려와 눕혔다. 직원이 나가자 참았던 숨을 내쉬다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데 갑자기 나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있으면 안될까?”

  “왜 이러세요?”

 있는 힘껏 밀쳐 냈지만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침대위에서 발버둥 쳐 봤지만 소용 없었다. 술 취한 척 연기 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섀도 없이 김대리님이 말했다.

  “왜그래? 다 알고 들어 왔으면서……. 우리 얘기도 잘 통하고. 마음도 잘 통하고. 몸만 통하면 될 것 같은데. 나, 너 좋아해!”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김대리는 내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힘으로 밀쳐내고 도망 갈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괜한 반항으로 자극하지 말고 침착해야 겠다는 생각에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 이거 놓고. 씻고 올게요.”

  “씻는건 나중에…….”

 김대리는 그대로 내 입술을 덮쳤다. 술과 담배 안주가 뒤섞인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다. 하수구에 코를 박고 있는데 고인 물에 혓바닥을 적시는 느낌이랄까. 입 안에서 놀고 있는 김대리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전에 역겨움에 토가 먼저 나오려고 했다. 우웩 거리며 김대리를 밀쳐 내고 화장실로 갔다. 토 하면서 샤워기를 틀었다.

  “빛나야? 괜찮아? 들어가도 될까?”

  “아뇨. 괜찮아요. 근데 좀 씻어야 겠어요.”

 토하고 나니 술이 조금 깨는 듯 했다. 물을 틀어놓고 여기서 빠져 나갈 궁리를 했다. 욕실 문을 살짝 열어 보니 김대리는 어느새 알몸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조심히 기어나와 가방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112 신고를 하려다 아차 싶었다. 아빠가 가출 신고를 했을 것 같아서 왠만하면 112는 피하고 볼일이었다. 동영상 버튼을 눌러 김대리를 찍었다. 한참을 찍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는지 욕실쪽으로 바라보는 김대리와 눈이 마주 치자 나는 그대로 앞에 놓인 가방을 들고 모텔 밖으로 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와 택시를 잡았다. 얼떨결에 김대리 가방도 들고 나왔다. 가방에는 지갑과 담배 명함집이 전부였다. 지갑을 열어 보니 만 원짜리 서른세 장이 들어 있었다. 눈에 들어온건 가족사진 이었다.

 예쁘게 생긴 아내와 돌도 안된 아기 사진을 보니 기가 막혔다. ‘뭐야? 유부남이었어? 게다가 애도 있었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대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화를 내며 말했다.

  “너 꽃뱀이지? 내 가방 당장 갖고와! 신고 할테니까 딱 기다려!”

  “꽃뱀? 그게 뭔지 모르지만 뱀은 조심해야지. 강간하려다가 실패해서 화난건 알겠는데 이성은 챙겨야지. 신고는 누가 해야 하는데…….”

  “가방 들고 도망가는거 CCTV에 다 찍혔어. 좋은말 할 때 당장 갖고와!”

 순간 말문이 막혔다. CCTV가 있었던가? 장면만 보면 내가 술 취한 남자를 데려와 가방을 훔쳐 도망가는 모습 일 것 같았다. 억울 했지만 나에겐 알몸 영상이 있었다.

  “내가 들고 나온 가방이 니꺼란 증거 있어? 신고 하려면 해. 나도 할말 많고 증거도 있으니까. 근데 그전에 이걸 와이프가 보면 뭐라 할까?”

 모텔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며 말했다.

  “이것도 경찰에 넘기고 사본은 누군가 잘 볼수 있게 길바닥에 버릴테니까 우리 운에 맡겨 보자고. 누가 이걸 보고 퍼뜨릴수도 있고, 폐기 될수도 있고…….”

 다음날 저녁, 김대리는 다 없던 일로 하고 가방은 돌려 달라고 애원했다.

  “뭐가 그렇게 쉬워? 없던일로 하자 그러면 머릿속에서 삭제가 돼? 가방은 모른다는데 왜 자꾸 찾아?”

  “그럼 영상만이라도 제발 삭제해. 그럼 가방은 퉁 칠테니까. 근데 어제부터 반말이 자꾸 거슬린다. 왜 반말인데?”

  “너님한테 반 말도 아까워. 짐승에게 존칭 쓰냐? 난 영상 지울 생각도 없고. 경찰에 넘길테니까 경찰서에서 보자고!”

 김대리는 대뜸 얼마면 되겠냐고 물었다. 돈을 뜯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먼저 꺼낸 돈 얘기에 대답했다.

  “돈? 좋지. 얼마나 줄수 있는데?”

  “백만 원이면 되겠어?”

  “장난해? 그걸로 너님 껌이나 사 드셔! ‘0’을 하나 더 붙여야지.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백 단위에서 놀려고? 천이 넘어가도 모잘라 판에. 니 인생이 달린 문젠데?”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입금되면 동영상 삭제는 물론, 신고도 하지 않겠다는 말에 오백만 원이 입금 되었다.

  “이걸로 없던 일로 하는거다.”

  “계산이 틀리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콜! 이걸로 끝!”

 협박아닌 협박으로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 기분이 이상했다. 불로소득이 이런걸까? 이런식으로 돈을 벌수 있다면 본능에 약한 남자를 골라 적당히 유혹해 놀려 먹다 덮치려는 순간 신고 하겠다. 협박하면 안넘어 올 남자는 없을 것 같았다. 겉모습에 다가오는 남자들은, 그저 여자라면 들이대고 보는 남자들은 당해도 된다고 생각 하지만 꽃뱀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베짱은 내게 없으니까. 꽁돈이 생겼지만 내 돈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쉽게 생긴 돈은 언젠가 쉽게 나갈것만 같았다.

 

 
작가의 말
 

 이력서에 쓸건 꼴통졸업이 전부.

 빛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거리에 나가 눈에 보이는건 커피숍,식당. 주유소, 미용실뿐...

 겉 멋에 꿈을 키워 열정페이로 버텨보지만

 월세. 생활비 하기에도 버거운데 꿈을 이룰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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