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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셀프인생2022
작가 : 행복한라니
작품등록일 : 2022.1.12

셀 프 인 생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다키운 후에야 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면. 철 없어서 뭘 몰라서 아무것도 안한채 지나버린 시간들. 성인이 되어서 셀프로 살아가는 빛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꿈은 이룰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3. 열정페이 -1
작성일 : 22-01-12 13:10     조회 : 175     추천 : 0     분량 : 16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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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열정페이

 

  허름한 고시원을 구했다. 한평 남짓한 방이지만 두다리 뻗고 잘수 있는 침대와 옷장이랑 연결된 책상이 있는것만으로도 만족 했다. 샤워실과 주방은 공용이라 불편했지만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같은 시간대만 피하면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방안에 작은 TV가 있지만 모형에 불과 했다. 화질은 물론, 잘 나오지도 않는 이 골동품을 왜 방안에 둔건지. 치워 달라 말하고. 몇 벌의 옷과. 세면도구를 정리하고 장을 봐서 주방 문을 여는 순간 바퀴벌레를 보고 기겁 했다. 주방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여자는 하던 젓가락질을 멈칫하며 나를 보다 아무렇지 않게 밥 알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커다란 바퀴벌레는 도망 가지도 않고. 벽에는 진드기 테이프에 바퀴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져 있었다. 밥통위에는 새끼 바퀴 벌레가 우글 거리는데 밥통은 어떻게 열었을까? 주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 생각없이 바퀴벌레를 반찬삼아 집어 먹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문 앞에는 ‘절대 남의 음식 먹지 마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고, 냉장고 문을 열자 검은 봉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정체 불명의 반찬들은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이 안에 먹을만한 음식이 있을까? 떨어진 검은 봉지를 구기듯 밀어 넣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정수기 물도 언제 올려둔 물인지 알수 없어 마시기도 손대기도 찜찜했다. 장 봐온 비닐을 여자 앞에 놓으며 말했다.

  “이거 드세요.”

 여자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뿐 대답 하지 않았다. 주방 문을 닫고 나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다음달엔, 고시원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67만 원 남은 잔액을 보니 나의 목숨도 67일 남은 듯 했다.

 

 커피숍에서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 바에서 음료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목숨줄이 연장된 기분이랄까. 1주일에 한번 쉬고, 12시간 근무 조건에 월급은 60만 원 받았다. 고시원비를 내고. 교통비와 통신비를 내고 나면 남는건 없지만 일을 할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저녁에 잠깐 써빙하는 정화랑 친구가 되었다. 정화는 대학생이라고 말했다. 대학 생활을 부러워 하자 대답했다.

  “부럽긴, 고등학교랑 별반 다르지 않아. 시간표도 비슷하고. 수업도 비슷해. 선생을 교수님이라 부르는 것 뿐, 명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교수 수준도 높지도 않아!”

 3월에 입학해서 적응 하다 보면 4월, 공부 좀 하려고 하면 교수님 마음대로 휴강, 수업을 하러 가는건지, 과제 받으러 가는건지……. 지금은 학교 축제 준비로 어수선하고, 축제 끝나고 공부도 못했는데 시험이고 개판으로 시험을 보고 나면 방학 이라며 대학에 대한 환상은 버리라고 말했다. 명문대 갈 거 아니면 등록금으로 전문 학원을 다니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위로하려 하는 말이지? 난 캠퍼스 커플은 부럽던데!”

  “연애하러 대학 가니? 한번 놀러와. 남자애들 보면 환상이 깨질테니까.”

 난 가끔 대학을 가지 않은것에 대해 후회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는 말에 정화는 대학 온 것을 후회 한다고 말했다.

  “그런거겠지. 그래도 하고 나서 후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잖아!”

  “보통은 그렇지만, 나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해. 결단을 내려 하는데……. 돌아 갈 길을 찾을 때 까진 직진하고 보는거야!”

 커피숍 사장님은 매장에 나오지 않고 CCTV로 지켜보며 전화로 일을 시켰다. 손님이 없을 때 수다를 나눠도 잔소리 하지 않아 좋다는 말에 정화가 말했다.

  “잔소리 할거면 월급 더 줘야지! 이돈 받으면서 잔소리까지 들으면 누가 일하겠어? 그나마 편하니까 일하는거지!”

 오래 일할 것 같았던 정화는 말도 없이 그만뒀다.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이 앞서다가 친구라 생각했던 내 잘못이라며 체념하게 되었다.

 정화대신 새로운 알바가 들어왔다. 수란은 고3이라 밤 10시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나면 새벽까지 나 혼자 음료를 만들고 써빙을 했다. 밤10시 이후엔 손님이 없기에 혼자 일하는 것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혼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익숙해진 일이 지겨워지자 재미가 없어졌다. 수란은 매사에 늘 불평. 불만이 많은 아이였다. 오늘도 힘들다고 투덜되는 수란을 보며 내가 더 피곤한 듯 말했다.

  “써빙만 하는데 뭐가 힘들어? 난 만들고 설거지 하느라 너 보다 일이 더 많거든. 바쁠땐 파르페랑 팥빙수는 주문 안했으면 좋겠어!”

 수란은 시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언니 소원 들어준다.”

  “뭐?”

 수란은 출입구 앞에서 손님이 계단을 올라오면 CCTV에 손님이 보이기 전에 나가 자리가 없다며 손님을 돌려 보내고. 손이 많이 가는 식사 메뉴나, 파르페. 팥빙수를 주문 하면 재료가 없다는 핑계로 만들기 쉬운 음료만 주문 받았다. 몸은 편했지만 사장님에게 들킬 것 같아 그만 하라고 말했지만 수란은 절대 들킬일 없다며 자신 만만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면 법이라고 사장님한테 들키고 말았다. 사장님은 매장에 들어와 빌지엔 음료 2개가 찍혀 있는데 음료는 왜 5개가 나간건지 물었다.

 가끔 수란의 친구가 놀러오면 포스엔 찍지 않고, 다른 테이블 음료 나갈 때 같이 들고 나갔다. 눈치를 보다가 이실직고를 해버렸다.

  “친구가 놀러와서……. 그냥 음료수를 내어 줬어요. 죄송합니다.”

  “니가 뭔데 음료를 공짜로 줘? 니가 사장이야? 니 집이야?”

 사장님은 수란을 보며 물었다.

  “넌 대체 주문을 어떻게 받는거야? 메뉴판 안갖다 주니? 죄다 커피에 아이스티 뿐이야? 가끔 나가는 식사 메뉴도 안나가고. 파르페랑 팥빙수도 안나가고……. 너, 일부러 주문 안받니?”

  “빛나 언니가 손이 많이 가는 음료는 만들기 힘들다고 해서…….”

  “뭐?”

 수란은 마치 내가 시킨 것처럼 말을 했고, 사장님은 내 뺨을 때렸다.

  “일 잘한다고 예뻐 했더니 아주 니 마음대로 장사 했구나! 뒷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친구한테 음료를 준게 아니라 삥땅 친거 아냐? 포스에 입력 안하고 현금 따로 챙겨 받았지? 그동안 뒷돈을 얼마나 챙긴거야?”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장님은 믿어주지 않았다. 내 뺨을 때리며 당장 나가라고 말했다.

 내일 모레가 월급날인데, 월급도 못받고 쫒겨 났다. 수란이 원망 스러웠지만 따져 물을수도 없었다. 고시원으로 들어와 사장님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억울함을 호소하다. 수란을 탓하다 썼던 글을 지우고 이유 불문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맹세코 횡령은 하지 않았다며 말했다. 그동안 감사 했다는 인사에도 사장님은 답장이 없었다.

 

 고시원에서 씻고 잠만 잘땐 몰랐지만. 일을 그만 두고 종일 좁은 방 안에 갇혀 있으려니 닭장속에 닭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며칠을 방황하다 떡집에서 찹쌀떡을 받아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일을 했다. 한 팩에 3천 원에 팔면 천오백 원을 벌수 있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10개 못 팔겠어? 그러나 온종일 돌아 다녀도 만 원도 벌지 못했다. 알바가 아니라, 길거리를 돌아 다니며 구걸하는 느낌이었다. 떡을 사주는 사람들도 동정 하듯 찹쌀떡을 사거나, 돈만 주고 떡을 받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게 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두달을 버티고 있을때쯤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 정화야! 잘 지냈지?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커피숍 앞에서 기다릴께. 잠깐이라도 보자-

 커피숍 앞에서 정화를 보고도 몰라봤다.

  “야! 너 왜 나 모른척 하냐?”

 한참을 봤다. 3개월만에 만난 정화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뒷걸음 치며 미간이 찌푸리다 애써 태연한척 말했다.

  “모른척 한게 아니라 몰라 봤어. 꼴이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정화는 부모님을 버리고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커피숍에 찾아와 난리 칠 것 같아서 일도 못하고, 다른 일자리도 찾지 못해 여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보호자인 척 잠을 자고, 환자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씻고……. 쫒겨나면 응급실 대기의자에서 쪽잠을 자다가 건물 옥상에서 잠을 자고. 가끔은 찜질방에서 자기도 하고 했지만 이젠 버틸수가 없어서 죽기 전에 나를 도와줄 친구라도 있으면 삶을 연장할수 있을 것 같아 찾아 왔다는 말에 나도 같은 처지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보다 평범하게 자란 정화가 왜 대학을 그만두고 집을 나왔는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집에 들어 가는게 좋겠다는 말에 화를 내듯 말했다.

  “도와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해. 죽어도 집에는 못 들어가니까. 그 인간이 주는 돈으로 대학 가고 싶지 않고, 자식 팔아 먹은 엄마도 다신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도와 줄거 아니면, 궁금해 하지도 마! 어차피 망가진 몸이고. 망한 인생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나 간다!”

 가려는 정화를 붙잡고 말했다.

  “갈 곳 없으면 재워 줄수는 있어.”

 그리고 내 사정 얘기를 했다. 고아라는 사실은 내 입으로 말할줄이야. 내 모든 얘기를 정화에게 터 놓아도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번 돈으로 겨우 생활 하고 있었는데 월급도 못받고 쫒겨 났다는 말에 정화는 당장이라도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수란이라는 아이를 손 좀 봐줘야 겠다며 열을 올리다 무안한지 웃어 버렸다.

 정화는 매일 즐거워 보이는 내 모습에서 어두운 면이 있을거라 생각 못했다며 ‘고아’라는 말에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애써 위로 하듯 말했다.

  “차라리 나도 고아 였음 좋겠다. 난 13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 근데 엄마는 바로 재혼 하더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면 우리 아빠가 너무 불쌍해지잖아. 그래서 반항 좀 했더니 아저씨가 내 몸을 덮치더라. 그날이후 자주 내 몸을 탐했고. 나는 아저씨랑 같이 사는 것이 두려웠어. 고민 끝에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했지만 엄마는 내 입을 막았어. 이 집에서 살고 싶으면 조용 하라고. 그때 엄마가 딸에게 해줄수 있는 최선의 말이 ‘피임 잘해라!’ 였어. 엄마가 미쳤다고 생각 했지만 내 몸 바쳐 엄마랑 이 집에서 가족처럼 지내려면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어. 아저씨가 준 돈으로 대학까지 갔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망가져 가는데……. 이젠 성인이고, 보호자 따윈 없어도 될 나이니까 집이라는 울타리를 버리고 나왔는데…….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게 없더라. 거지처럼 살면서 이게 사는건가? 그냥 죽고 싶었어. 한강까지 갔지만 죽을 용기도 없고……. 나, 이제 어떡하냐?”

 막막한 정화의 표정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동변상련이 따로 없네. 나도 매일밤 잠들 때 마다 생각 해. 이대로 눈뜨지 않기를…….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오늘을 버티다 보면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단 고시원으로 가서 좀 씻자. 그리고 좀 먹자. 그리고 생각하자.”

 고시원 방바닥에서 생활할수 있겠냐고 묻자 정화가 대답했다.

  “고시원 방바닥. 콩 반쪽도 내겐 감지덕지지.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내가 잘 쓰는 말인데, 정화 입에서 들으니 참 별로였다. 왜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걸까. 그리고 선택 받지도 못하는 걸까? 정화랑 한참 신세한탄을 늘어 놓다 웃었다.

  “아! 이런날은 술 먹어야 하는데……. 술 먹을 돈도 없네!”

  “술은 무슨……. 이럴 때 일수록 냉수 먹고 정신 차려야 하는 거야!”

 정화와 나는 소주잔에 생수를 부어 잔을 하면서 웃었다.

 

 다음날, 월급이 입금 되었다. 어제 커피숍 앞에서 정화와 사정 얘기를 하는걸 사장님이 들은 걸까? 곧바로 사장님께 감사 하다고 문자를 남겼더니 장문의 답장이 왔다.

  -난 말로만 하는 사과는 좋아하지 않아. 성인이라면 사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거야. 내가 손해 본 만큼 빛나씨도 손해를 봐야 된다고 생각했어. 횡령하지 않았다는 빛나씨 말을 믿는다는 의미로 월급을 돌려 주는거야. 함께 일할순 없지만 어디서든 열심히 일하면서 언제까지나 직원으로 일하지 말고 빛나씨가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마인드로 일 했으면 좋겠어. 똑똑한 친구니까,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지?-

 역시 커피숍 사장님은 참 좋은. 따뜻한 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구한다는 팻말을 보고 들어가 면접을 봤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야간에 일하는 일이라 남자 직원이 필요 하다는 말에 말했다.

  “저 보기보다 힘도 쎄구요. 겁도 없어요. 전에도 야간에 일했어요. 집도 바로 앞이라 택시비도 필요 없어요. 일단 시켜만 주시면 안될까요?”

 애원하자, 사장님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 그렇게 일하고 싶으면 월급 50만 원에 하든지!”

  “50만 원요? 12시간 근무 조건에 80만 원이라고…….”

  “그건 남자 알바를 구했을 때 얘기고, 남자랑 여자랑 일하는게 다른데, 월급을 똑같이 주는건 아니지. 싫으면 딴데 가봐!”

  “아. 아니예요. 할께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불합리 하다고 생각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알바를 구할 때 까지만 일 할 생각으로 버텼다. 편의점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밤 8시에 출근해서 카운터에서 캐셔를 보다 물건이 들어오면 물건을 채워놓고, 창고 정리를 했다. 주류 상자가 무겁긴 하지만 못 들 정도는 아니었다. 진열대를 닦으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폐기해야 하므로 따로 챙겨 놓았다. 새벽엔 매장 바닥청소를 하고 아침 알바생이 출근하면 퇴근을 했다. 편의점에서 가져온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정화와 나눠 먹고. 아침에 잠이 들었다. 보통 오후 3시가 지나 일어나 습관처럼 책을 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쌀밥과 김치만으로 저녁을 먹고 출근 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정화랑 사는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낮과 밤을 따로 보내면서 함께 하는 시간엔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아 놓고 내 집처럼 지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자 정화도 알바를 구했다. 이때다 싶어 정화에게 30만 원을 빌려 주면서 말했다.

  “이걸로 다른 고시원을 구하는게 어떨까? 나랑 사는거 불편하잖아!”

 머뭇거리는 정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 말을 이었다.

  “나는 너랑 살면 좋은데, 총무 눈치 보면서 몰래 다니는거 불편 하잖아. 짐에 파 묻혀 사는것도 불편하고……. 이걸로 고시원비 내고 10만 원으로 월급날 까지 버티다 보면 다음달 부터는 숨통이 좀 트일 거야. 내 콩 반쪽을 너에게 다 주는거야!”

  “고마워! 내가 이 은혜 꼭 갚을께!”

 월급타면 적어도 3개월안에 돈을 갚겠다는 은혜는 몇 달째 연락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두 번째 월급을 받는날, 30만 원 받았다. 돈이 모자란다는 말에 사장님이 말했다.

  “어떻게 돈이 모자란다고 말할 수 있지? 도둑년 주제에!”

  “네?”

  “그동안 계산 안하고 먹은 김밥과 샌드위치 햄버거 내가 모를줄 알아?”

  “그건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는 음식 이잖아요.”

  “그래. 버리는 음식을 왜 먹어? 먹었으면 계산을 해야지. 너 먹으려고 일부러 손님한테 안팔고 남겨 뒀다가 먹은거 아냐? 앞으로 재고 안맞으면, 유통기한 지난것도 니 월급에서 빼고 줄테니까. 재고 남길 생각하지 말고 다 팔아! 먹지 말고 손님한테 팔란 말이야!”

 매출이 안나오는 스트레스를 내게 풀 때 마다 참아 왔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 법이 어딨냐며 따져 묻자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싫으면 나가! 너 때문에 매출 안나오면 양심적으로 먼저 나간다고 해야지. 내가 착해서 널 해고하지도 못하고 봐주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할 생각을 해야지.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떠?”

 오늘은 그냥 참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한 나를 보며 사장님이 말했다.

  “출근했네? 안나올줄 알고 나왔는데, 그래 그럼. 열심히 해봐!”

 사장님은 이상하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뚱 하더니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는 내 모습에 밖으로 나가자 한동안 사장님 눈치를 살피다 사장님이 들어오지 않자 금고에서 선수금 10만 원을 챙기고, 오래 두고 먹을수 있는 편의점 음식을 골라 계산 했더니 14만 2천원이 되었다. 영수증 뒤편에 메모를 남겼다.

  -PS. 사장놈아, 돈이 없는 것 같으니 모자란 월급은 물건으로 가져간다. 다음 알바생한텐 이러지 말고, 인생 똑바로 살아! 늙은놈이 어린놈한테 반말을 듣고 살고 싶냐? 나이값 좀 하고 살자! 사장놈아!-

 

  고깃집 식당에서 12시간 근무 조건에 한달에 두번 쉬는 조건으로 120만 원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두배의 수입이 생기는 만큼 노동의 강도도 두배였다. 다들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는 일을 나는 계속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 하자마자 청소를 하고 테이블을 다 닦을 때 쯤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내어주면 다같이 밥을 먹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으면 손님도 받았다. 먹는둥 마는둥 밥을 먹고나면 대략 11시, 숨 한번 돌리고 나면 점심 손님이 밀물처럼 한번에 우르르 몰려 들었다. 점심 특선메뉴는 김치찌개. 갈비탕. 정식 뿐이라 주방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을 정신없이 써빙하다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조용해지는 오후 3시가 되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장사를 위해 마늘과 야채를 다듬는 시간이 잠깐의 휴식 시간이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 고기를 먹는 손님들이 또 밀물처럼 들어왔다. 저녁엔 알바생도 있지만 일 손은 늘 부족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물과 물티슈를 갖다 주면서 주문을 받고. 기본상이 나가고. 불판. 고기. 순으로 써빙 하면서 여기 저기서 호출 버튼을 누르는 통에 허리 필 시간도 없이 달려가 갖다주고. 치우다 보면 어느새 퇴근 이었다. 잠깐 누웠을 뿐인데. 아침이고. 또 어제와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오늘을 보냈다. 그렇게 기계처럼 버틴 어느날 감기 몸살에 걸렸다. 출근도 못하고 고시원에서 고열로 앓아 누웠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고, 나에겐 만병 통치약인 진통제도 소용 없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잠을 잔건지. 기절을 한건지. 울리는 벨소리에 겨우 전화를 받았다. 받자 마자 고깃집 사장님의 욕설이 쏟아졌다.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미리 말씀 드린 것 같은데. 들리지도 않는 욕설을 한참을 퍼붓고는 당장 나오라는 말에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고깃집으로 갔다. 죽을힘 다해 말했다. “아파서 일 못해요. 이젠 믿으시겠어요?”

 미안해 하는 사장님 표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나는 일을 그만 두었다.

 

  2003년 봄, 오픈하는 대형 횟집에 취직했다. 주1회 쉬고 12시간 일하는 조건으로 130만원을 받았다. 출근해서 테이블 정리를 하고, 아침 밥을 먹고, 느긋하게 점심 손님을 받고, 브레이크타임엔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손님이 몰리면 그때 정신없이 써빙을 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스끼다시가 많아 힘들긴 해도 직원들도 많기에 고깃집 보단 덜 힘들었다. 고시원 들어가면 뻗어 버릴 만큼 피곤한 일이지만 일할 때 만큼은 즐거웠다. 사람들 틈에서 함께 얘기하고 웃을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지쳐갔다.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건지, 일하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힘든건지. 톱니바퀴처럼 흘러가는 내 일상이 지겨운건지. 그래도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모았더니 고시원을 벗어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갈수 있었다. 햇빛은 들어오지 않지만 깨끗하게 도배가 된 방에 주방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고, 반지층이라 화장실이 계단 위가 아닌 부엌 옆에 있어서 좋았다.

 필요한 가전제품과 가구는 중고로 구매했다.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전자 레인지. 옷장. 책상이 모두 제자리를 찾고, 마트에서 장을 봐서 냉장고도 채워 넣고, 각종 조미료와 예쁜 그릇을 보기 좋게 정리 하자 행복했다. 이제야 닭장에서 벗어나 사람 답게 살수 있을 것 같았다. 고시원에선 짐 둘 곳이 없기에 쇼핑도 못하고 살았는데, 오늘은 기분을 내며 쇼핑도 했다. 물욕으로 행복까지 채웠더니 통장엔 100만 원이 남았다. 그래도 걱정 없었다. 일을 그만 두지 않으면 월급은 계속 들어 올테니까. 그런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날, 사장이 바뀌면서 직원 모두 해고 되었다.

 다행히 나는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복어 전문 식당에서 12시간을 일하기로 했는데,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좀처럼 적응 되지 않았다. 정장을 입고 잘 차려 입고 들어오는 손님을 입구에서부터 정중하게 맞이했다.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고. 써빙을 할때도 상냥한 말투보다 공손하게 음식을 내어 주며 미소를 지어야 했다. 낮은 자세로 주인을 모시는 듯 일하는 기분은 좋지 않지만 팁을 받을땐 기분이 좋았다.

 1주일후, 사장님이 직원이 아닌 2시부터 9시까지 알바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급이 줄어 드는건 싫지만 팁으로 충당하고, 내 시간도 생기는거라 알바로 일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뭐라도 배워 두는게 좋을 것 같아 뭘 배울지 생각하다 늘 지나쳤던 메이크업 학원이 떠올랐다.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100% 취업보장’ 이라는 현수막에 끌렸다. 상담을 받는 내내 실장님의 메이크업과 말빨이 나를 사로 잡았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보며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현장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폼나게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충동적으로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330만 원이라는 수강료에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신용카드를 만들어 할부로 수강 등록이 가능 하다는 말에 솔깃 했다. 실장님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강료 330만 원, 메이크업 박스는 좋은것도 있지만. 제일 저렴한걸로 하면 80만원……. 합이 410만원에서 12개월 할부 하면 34만 2천 원도 안되네요. 이것도 부담되면 24개월로 하면 되죠. 그러면 한달에 17만 원정도……. 이정도면 부담 없이 배울수 있는 금액 아닌가요? 취직하면 수강료는 뽑고도 남지!”

 410만 원이 17만 원이 되는 마법 같았다. 6개월 과정을 모두 마치면 자격증을 따지 못해도 수료증 만으로도 취직은 100% 보장 해 준다는 말에 수강등록을 했다.

 17만 원정도는 충분히 갚을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는 즐거움도 잠시. 1주일이 지나자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월세에 공과금과 통신비. 교통비로 숨만 쉬어도 매달 50만 원이 나가고 식비와 카드값을 내고 나면 시간 알바 월급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라 취소 하겠다고 말하자 취소가 안된다고 말했다. 왜? 라고 따져 묻지도 못하고 사정 얘기를 하다 환불 해주지 않으면 신고 하겠다는 협박까지 하자 친절했던 실장님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수업이 장난도 아니고, 처음부터 신중하게 결정 해야지. 사람 갖고 노는것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이젠 협박 까지?”

 메이크업 박스는 개봉 했기에 환불 안되고, 수업도 시작 했기에 10% 수수료가 발생 한다며 결제한 410만 원을 취소하고, 메이크업 박스값과 취소 수수료 113만 원을 결제 한다는 말에 ‘잠깐만’을 외쳤다. 이게 무슨……. 취소 수수료가 33만 원이나 된다고? 고작 1주일 밖에 수업 안했는데, 메이크업 박스도 필요 없는데……. 이대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날리는 건가. 그건 좀 억울한데. 고민 끝에 결국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예요……. 그냥 할게요.”

  “장난하니? 아. 알았으니까 그만 나가봐.”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 내 돈 쓰고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건지. 이럴땐 화가 나기 보다 그냥 침울 해졌다. 내 어깨가. 내 마음이 움츠려 들지만 이내 잊어 버렸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하니까. 우울한 마음도 잠시, 학원에서 새 친구를 사귀며 뭔가를 배우는 기쁨은 컸다. 수업이 끝나면 다들 클렌징 했지만 나는 달라진 내 모습에 흡족해 하며 클렌징 하지 않고 점심을 먹고, 복어집으로 향했다. 데일리 메이크업으로는 조금 과한 화장이지만 문제 될것이 없다고 생각 했는데 사장님은 부담 스러워 했다. 그래서 클렌징을 하고 출근 했지만 그마저도 못마땅한지 봉투를 내밀며 그만 나오라고 말했다.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될거라 생각 했지만 수업을 하면서 저녁 알바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할수 없이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하는 술집에서 일하기로 했다. 새벽5시에 퇴근해서 쪽잠을 자고 9시에 메이크업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2시에 출근해서 테이블 의자에서 쪽잠을 자다가 출근 시간 전에 일어나 일하면서……. 시끄러운 술집은 평일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술을 마시며 즐기는 모습을 보면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지만 깊게 생각 할 시간도 내겐 없었다. 기본안주가 많아서 써빙 할 것도 많고. 치울 것도 많고. 음악소리도 소음이 되는 이곳에서. 담배 연기로 숨쉬기도 힘든 이곳에서. 술 취한 손님들까지 상대하려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기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수면이 부족 했기에 나의 세상은 언제나 취해 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보이는 세상은 온통 노랬다. 내 몸도 점점 좀비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했다. 생각 이란건 마비 되었고. 수업도, 일도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다. 고시원에서 두다리 뻗고 잠을 잘수 있는건 주말 뿐이었다. 그렇게 좀비처럼 버티고 있는 나를 사장님은 더 이상 참아 줄수 없다며 해고 했다. 학원 수업 외에는 며칠을 잠만 잤더니 이제 정신줄이 돌아왔다. 세상은 더 이상 노랗게 회색빛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또렷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내겐 더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월세와 카드값을 내며 버틸수 없다는 생각에 난 이 집을 버리기로 했다. 힘들게 마련한 월셋방을 정리하고 받은 보증금으로 카드값을 내고 카드를 잘랐다. 빚이 있는한 빛을 볼수 없다는걸 뼈저리게 느꼈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온날, 시간과 버린 물건들이 아까워 펑펑 울다 잠이 들었지만 다음날이면 퉁퉁 부은 눈으로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시작 했다. 다시 닭장에 갇혔지만 마음은 편했다. 갚아야 하는 빚도 없고. 당분간 수업에만 열중할수 있으니까.

 메이크업 수업이 모두 끝나고 수료증을 받았지만 학원에선 취직을 시켜주지 않았다. 기다리란 말에 2005년 새해부터 샤브샤브 전문점에서 일하기로 했다. 한달에 세번 쉬는 조건으로 월급은 160만 원 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웨딩샵에 자리가 생겼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면접을 보고 출근 하라는 말에 식당일을 그만뒀다. 웨딩샵엔 수업을 같이 했던 도연이가 있었다. 반가워 하며 물었다.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여기 취직 한거야?”

  “우리가 친했던가? 친한척 하니까 좀 당황 스럽네. 나 여기 취직한거 아니고 경험 쌓으려고 잠깐 알바 하다 개강해서 학교 가려는건데.”

  “그. 그렇구나. 근데 웨딩샵 경력은 왜 필요 한거야?”

  “왜 라니? 질문이 당황스럽네. 뭐든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거잖아.”

  “아. 그래. 내가 잘 몰라서…….”

 도연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내 저으며 업무를 인수 해줬다.

 웨딩샵에서 내가 하는 일은 청소하기, 차 대접하기, 피팅룸을 관리 하는 거였다. 촬영이 있는 날에는 드레스를 잡아 주면서 온갖 잡 일을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실장님은 촬영이 있을땐 신부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하고. 평일에는 상담을 하며 계약까지 맡고 있었다. 원장님은 촬영과 편집을 했다. 사진이 나오면 앨범과 액자를 만드는 일은 내 일이었다. 사진이 나오면 양면 테이프를 떼고 틀에 맞춰 붙이는 작업은 간단 했지만 이 앨범을 오십만 원 넘게 팔면서 내 월급은 수습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오십만 원 밖에 주지 않는건 억울했지만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6개월을 버텼다. 여름이 다가오자 일은 조금 한가해졌고, 실장님이 일을 그만뒀다. 새로운 실장님이 오시지 않자 내심 기대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오는 것일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하며 촬영이 있는날, 평소보다 신경써서 메이크업을 하고. 일찍 출근해서 샵 문을 열자 마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잘 차려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딱 봐도 신부도, 손님도 아닌 것 같아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다.

  “‘안녕하세요.’가 먼저 아닌가. 난 실장대신 당분간 일할거야.”

 자신감이 넘치는건 좋은데, 예의가 없는 모습에 기분이 상하는데, 메고 있던 가방을 내게 주며 말했다.

  “여기 사물함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좀 넣어줄래?”

  “사물함은 없고, 그냥 저기 장롱에 넣으면 되요.”

  “그러니까 니가 좀 넣어 달라고. 팔 아프다 얘!”

 얼떨결에 가방을 받아 장롱에 넣었다. 표정이 구겨지자 기분 나쁜 듯 물었다.

  “너, 표정이 원래 그러니? 원래 그런 표정이라면 고쳐! 보는 사람 불편하게 그 얼굴로 무슨 서비스 업을 하겠다고. 그리고 이건 셋팅해줘!”

 못마땅 한 얼굴로 그녀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여자는 실장 대신 일하는거라 자신을 실장님이라 부르면 된다고 말했다. 곧이어 원장님이 들어 오셨다. 원장님은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인사만 받고는 원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말했다.

  “정리 다 했으면, 나 커피좀!”

 대답없이 화장대를 정리하자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대답 할줄 모르니? 커피 달라고 했잖아. 너 원래 행동이 그렇게 굼떠? 커피 달라는말에 무슨 생각이 필요 해?”

  “커피는 저기 주방에 있어요. 취향껏 알아서 드세요.”

  “야! 넌 손님한테도 그러니? 취향껏 알아서 드시라고? 취향대로 먹을 커피는 있고? 손님한테 주는대로 내오라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뒷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 했다.

  “어차피 할 일인데 좀 웃으면서 하자! 불만 있으면 말 하고.”

 그녀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보고 있었다. 신랑. 신부님이 들어 오시자 오바스럽게 인사를 하며 신부를 맞이 했다. 신랑. 신부를 응대 하는 동안 내 할 일은 없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끝낸 실장님은 나를 보며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빛나씨! 신부님 드레스 보여 주세요.”

 신부 드레스를 잡아 주며 실내 촬영 하는 내내 그녀는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신부 얼굴과 머리만 보며 서 있었다. 촬영이 끝나자 그녀는 가방을 달라고 말했다.

  “네?”

  “나, 퇴근해야지. 아침에 내 가방 맡겼잖아.”

 가방을 꺼내주자 수고 하라는 말만 남긴채 나가 버렸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야 원장님 한테 물었다.

  “앞으로 저 분이랑 계속 일 해야 하는 건가요?”

  “응. 촬영 있는 날만 올거야!”

 지금은 비수기라 굳이 실장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이건 아닌 것 같아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열정페이를 받으면서 버틸수 있었던건 언젠가 브러쉬를 잡을수 있을거란 희망 때문이었는데, 이젠 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야 경험삼아 잠깐 일했다는 도연이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학원에서 6개월 배운 메이크업으로. 아티스트를 꿈꾼다고 했을 때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때 꿈깨라고. 그만 두라고 말해 줬더라면 미련하게 버티지 않았을텐데. 9개월을 버티다 결국 올해도 이룬거 하나 없이 2006년 새해를 맞이 했다. 학원을 찾아가 다른 일자리를 소개 시켜 달라고 말하자 미용사 자격증을 따는건 어떠냐고 물었다. 미용사는 국가 자격증에다, 미용 기술이 있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다는 말에 또 설득 당했다. 이번엔 헤어 디자이너라는 꿈을 위해 내가 모은 돈을 다 써 버렸다. 소희는 대학병원에 취직 했는데, 난 여태 뭘 한거지?

 미용사 자격증 6개월 과정을 무시하고. 세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에겐 시간이 돈 이었기에, 필기는 벼락치기로 턱걸이로 겨우 합격하고. 실기는 안되는건 과감하게 포기하고. 되는것만 죽어라 연습해서 첫 시험에 합격 했다. 곧바로 미용실에 취직 했지만 내가 하는 일은 샴푸였다. 출근해서 청소하고. 수건을 개어놓고. 손님이 오면 디자이너 선생님 뒤에서 보조를 해주다 샴푸를 하는 일에 자격증이 왜 필요 했을까? 꿈을 위해 돈 욕심을 버리자 월급은 무감각 했다. 60만 원이 내 수준이라 생각하며.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 하리라.’라는 문구를 생각하며 버텼다. 그렇게 1년이 지났지만 내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날 때 마다 슬럼프가 찾아왔고. 그때마다 ‘디자이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버텼지만 이젠 내가 디자이너가 될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머리’가 보이자 손과 발이 빨라지고 시키는건 물론, 시키지 않은 일도 몸이 알아서 실수 없이 척척 해내고 있었지만 고객의 머리를 만질순 없었다. 월급은 고작 10만 원 올랐고. 배우는건 딱히 없었다. 직접 해봐야 실력이 늘텐데. 디자이너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늘 그랬던 것처럼 삽질만 하다 끝날 것 같아 꿈을 접기로 했다.

 27살이 되도록 모은돈 하나 없이 고시원 방에서 꿈만 꾸는 것이 이젠 의미 없었다. 그만 두겠다고 말하자 원장은 꿈을 들먹이며 퇴사를 막으려 하자 물었다.

  “꿈이 뭔데요? 꿈도 먹고 살아야 꿀수 있는거예요. 열정을 다해 일했으면 그만한 댓가를 줘야지. 당근 주면서 제 열정을 강요하지 마세요.”

 원장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직원 구할때까지 일해 달라고 말했다. 그게 도리라는 말에 대답했다.

  “그럼, 열정페이가 아닌 노동부에서 정한 노동 시간과 최저 시급으로 월급 주세요. 그러면 직원 구할때까진 일 하겠습니다.”

  “뭐, 최저시급? 이런 또라이가 어디서 왔을까? 그냥 나가. 나가버려! 너 이렇게 나가면 다른데 일할수 있을 것 같애? 넌 이바닥에서 매장이야!”

  “챙피 하지 않으세요? 꿈꾸는 아이들에게 이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할거라고 협박 하는거…….근데 저에겐 안통해요. 이 바닥에 발 들여 놓을 생각 없으니까요.”

 미용실을 나오자 폭풍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열심히 일한 댓가가 ‘수고했다.’라는 말이 아니라 ‘협박’이라니……. 학원에서 100% 취업 시켜준다는 말은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광고라는걸 이제 알았다. 화려하고 멋진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습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수강료를 받고. 현장에선 열정을 강요하는 현실에 난 다신 꿈꾸지 않기로 다짐 했다. 그렇게 꿈을 이룬 사람이 더 많겠지만. 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관심과 열정은 저절로 생기고,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난 시작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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