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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물밑에서 (1)
작성일 : 19-12-03 22:11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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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물밑에서

 

 

  펜버에 서대륙력 1847년의 첫눈이 내렸다. 실크처럼 얇게 깔리는 소박한 눈이었으나 온 도시를 하얗게 물들이기엔 충분했다.

 

  에밀리는 간만에 가넷, 알레인, 핀과 놀러 나가기로 했다. 모자까지 야무지게 쓴 그녀는 준비를 덜 마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강아지처럼 저택 마당을 뛰어다녔다. 흰 눈 위로 작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다.

 

  얼마 후 현관을 열고 장신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어! 녹스?”

 

  이름을 불린 녹스는 에밀리를 발견하고 반가움보단 질색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그에게로 장난감공 쫓는 개 마냥 빠르게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한 번은 넘어질 것 같아서 그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왔다.

 

  “왁!”

 

  아니나 다를까 에밀리는 얼어붙은 웅덩이에서 발이 미끄러져 앞으로 기우뚱했다. 녹스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중심을 똑바로 세웠다.

 

  “조심 좀 하라니까.”

  “반가워서 그랬어요. 요즘 방에만 처박혀 있었잖아요.”

 

  프라이스 남작의 신상정보를 비비안에게 전달한 뒤로 두 사람은 이전처럼 따로 접선할 일이 없었다. 남작이 이제 막 연회복을 맞추기 시작했으니 그가 주최하는 무도회는 훨씬 나중에 열릴 테고, 그때까진 특별히 해치워둘 일거리가 없는 것이었다. 붉은나무 저택으로 초대장이 날아오면 아마 그제야 슬슬 본편에 진입하리라.

 

  참고로 비비안은 녹스가 프라이스 남작의 생김새를 묘사하자마자 그를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재산이 쓸데없이 많다는 점은 거슬려하고, 중앙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촌부라는 점은 흡족해했다.

 

  “감시는 잘 하고 있어요?”

  “뭐?”

  “아가씨랑 백작님이요. 필요 이상으로 교류하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봐야죠.”

  “내가?”

  “그럼 누가 해요? 할 일도 없으면서. 아, 아니다. 역시 마법사님이라 남몰래 일이 많으신가?”

  “…그놈의 마법사 타령.”

 

  한 마디 되받으면 두세 마디씩 말 많게 떠든다. 얄미운 에밀리의 입술을 녹스는 엄지로 꾹 눌러주었다. 입이 다물린 에밀리는 얌전해진 대신 눈으로 그를 흘겼다. 이걸 확 깨물어버릴까 보다!

 

  어느새 저택을 나온 핀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뒤따라 가넷과 알레인까지 나오기에, 녹스는 쓸데없이 친밀해 보이는 제 손을 치우고 뒤로 물러섰다.

 

  “어라? 헌더드 씨도 계시네.”

  “안녕하세요.”

  “나는 안 보여요? 이 지각쟁이들!”

 

  목소리 높여 소리친 에밀리는 종종 달려가 제 일행 사이에 꼈다. 가넷이 혀를 차며 에밀리의 흩날리는 앞머리를 넘겨주었다. 서로 챙기고 챙김 받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꼭 가족처럼.

 

  녹스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에밀리가 뒤돌아 그에게 물었다.

 

  “우리랑 동행할래요? 일 없죠?”

 

  녹스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지금 막 큰일이 생겼습니다만.”

  “큰일이라니 뭔데요?”

  “당신 빼고 다 알 겁니다.”

 

  말뜻을 알아들은 핀과 알레인이 킥킥 웃었다. 에밀리가 여러 의미로 큰일이긴 하지.

 

  에밀리는 가넷으로부터 ‘니 얘기’라고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녹스에게 한껏 으르렁거려주었다. 녹스는 짐짓 모르는 척 후드를 둘러썼다. 반쯤 농담으로 둘러대긴 했지만 따로 할 일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심통이 난 뒤통수를 원인제공자인 녹스 대신 알레인이 다독여주었다. 대문을 나선 뒤 녹스는 구시가지 쪽으로, 에밀리와 일행들은 신시가지 쪽으로 흩어졌다.

 

 ***

 

  낮 동안 에밀리 일행은 시장을 쏘다녔다. 대부분의 행상인은 가을 장터에서 팔고 남은 것들을 떨이하거나, 겨우내 쓸 건조 식재료를 묶어 팔았다. 에밀리는 시든 과일을 밀가루, 우유와 함께 쪄서 만든 푸딩을 다섯 그릇 해치웠다. 그러면서 ‘저택에서 마비된 혀를 치유하는 맛’이라고 중얼거리는 탓에, 알레인이 그대로 집에 가려는 걸 핀이 간신히 뜯어말렸다. 가넷이 즉석에서 튀겨주는 생선요리를 사들고 온 후에야 두 사람은 사이좋게 그것을 나눠먹었다.

 

  한껏 놀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모두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펍으로 향했다. 아직 5시도 되지 않았건만 겨울이라 낮이 짧았다. 시간을 계산해보던 에밀리는 일행과 헤어져서 따로 책방에 들르기로 했다.

 

  거기서 녹스를 또 다시 마주칠 줄은 미처 몰랐지만.

 

  “…어쩐 일입니까?”

  “녹스야말로 여긴 웬일이에요?”

  “에밀리! 잘 왔다. 너 이쪽 신사분과 아는 사이 아니냐?”

 

  책방 주인 마르크 씨는 저번에 녹스가 에밀리와 함께 찾아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 녹스를 무시하고 에밀리에게 들으란 듯 푸념을 했다.

 

  “이 마르크의 책방은 만물상이 아니라고 네가 좀 설명 드리겠냐? 별 구하기도 힘든, 출간된 게 맞는지 의심되는 책만 찾으시니 늙은이 애 먹어 죽겠다.”

 

  녹스는 더더욱 난처한 표정이 됐고, 에밀리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흘겼다. 그녀는 책 제목이 적힌 종이를 마르크 씨의 손에서 휙 뺏어 들었다.

 

  [세 개의 힘: 마법, 신앙, 기술]

  [마법을 헐뜯는 자들]

  …

 

  전부 마법 관련된 서적이었다. 목록을 쭉 훑어보는 에밀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녹스는 헛다리짚지 말라는 듯 빠르게 말했다.

 

  “다 비비안 아가씨의 부탁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르크 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부탁드립니다. 이곳이 만물상이 아닌 건 알지만 인근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들었습니다. 알아만 봐주시면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지나치게 깍듯한 탓에 도리어 거절하기가 힘든 요구였다. 마지못해 수락하는 마르크 씨를 뒤로 하고 녹스와 에밀리는 수확 없이 책방을 나왔다. 에밀리는 따로 사려던 책이 있었으나 녹스의 눈앞에서 19금 연애소설을 펼쳐들긴 영 껄끄러워서 그냥 마음속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녹스는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듯 잠시 서있었다. 그러다 결국 붉은나무 저택 쪽으로 몸을 돌리기에, 가만히 보던 에밀리가 넌지시 물었다.

 

  “같이 펍 갈래요?”

  “위험한 사람이랑 함부로 술 마시는 거 아냐.”

 

  단칼에 거절이 날아들었다. 에밀리가 샐쭉하게 되물었다.

 

  “뭐예요. 술 마시면 위험해지는 타입?”

  “나 말고 너.”

 

  칼 같은 정정에 에밀리의 표정이 더더욱 찌그러졌다. 내 어디가 위험한 사람이야? 용건 끝났다는 듯 성큼성큼 걷는 녹스의 앞을 막아선 그녀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펍에 있어요. 둘이서 데이트라도 하자는 줄 알았어요?”

  “…….”

  “다 같이 친해질 기회 좀 갖자고요. 맨날 도도하게 굴지 말고.”

 

  말은 불퉁해도 나름대로는 붉은나무 저택에서 갑갑하게 지낼 녹스를 배려해서 건네는 제안이었다. 지난번에 알레인과 말을 튼 뒤로 그는 짧게나마 웃는 낯을 보이곤 했다. 앞으로 적어도 한 계절은 같이 보낼 텐데 아무렴 적당히 교류하며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음….”

 

  녹스 역시도 그 생각에는 동의했다. 괜찮은 휴식장소를 하나 알아두면 나쁘지 않을 것도 같고.

 

  “…그럼 안내해줘.”

  “잘 생각했어요! 다들 기뻐할 거예요.”

 

  에밀리는 저택 식구들 모두 녹스 헌더드란 사람을 궁금해 할 거라고 들떠서 말했다. 자신도 그렇다고 덧붙이며 그녀는 싱글싱글 웃었다. ‘내가 녹스에 대해 아는 거라곤 40-32-35밖에 없잖아요?’ 그 숫자가 자신의 쓰리사이즈임을 인지한 녹스가 잠시 경멸하는 얼굴을 하긴 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신시가지에서 가장 큰 펍인 ‘황금 수레바퀴’에 도착했다. 도착했는데…

 

  “…다들 어디로 갔지?”

 

  목재 테이블이 안쪽까지 꽉꽉 차있음에도 그중 가넷의 홍당무 머리나 알레인의 금발이나 핀의 꽁지머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바쁜 종업원의 발에 채여서 녹스와 에밀리는 일단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종업원 하나가 에밀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단골 대하듯 ‘맥주 두 잔!’ 외치고 쌩하니 가버렸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녹스는 이제 에밀리에게 대놓고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진짜 몰랐다니까요! 내가 뭐 개수작이라도 부리려고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술집까지 데려왔겠어요?”

 

  말하면서도 너무나 스스로가 할 법한 짓이라 에밀리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테이블에 육중하게 놓인 맥주 두 잔이 발언의 신빙성을 더더욱 떨어뜨렸다.

 

  녹스는 포기했다는 듯 한쪽 턱을 괴고 맥주잔을 쥐었다.

 

  “…흠흠. 이상하네요.”

  “…….”

  “1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왜 벌써들 돌아갔는지…”

  “건배나 해. 팔 아파.”

  “…짠.”

 

  오크나무 잔끼리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제 얼굴보다 큰 잔을 한껏 꺾어 꼴깍꼴깍 들이키는 에밀리와 달리, 녹스는 입술만 조금 축이고 잔을 내려놨다. 그래서 녹스가 반쯤 마셨을 때 에밀리는 한 잔을 더 시켰다. 이왕 저녁시간에 테이블을 차지했으므로, 황금 수레바퀴의 간판메뉴인 저민 훈제오리도 함께.

 

  “마음껏 먹어요. 누가 쏠지는 이따가 가위바위보로 정할 거지만.”

 

  이미 얼굴이 빨갛게 익은 에밀리가 선심이라도 쓰듯 호기롭게 말했다. 녹스는 굳이 대꾸하는 대신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어 그녀의 앞에 놓고 자신도 먹었다. 겉보기엔 투박했는데 안에서 육즙이 자르르 흘러 맛이 좋았다. 나중에 비비안이 음식으로 히스테릭하게 굴면 데려오기 괜찮으리라.

 

  몇 번 그렇게 반복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에밀리가 안 먹고 저를 바라만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녹스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취기 오른 얼굴에 미소를 그득 띄웠다.

 

  “우아하게도 먹네.”

 

  혼잣말처럼 툭 내뱉는데, 절대 혼잣말은 아니었다. 그보단 들으라고 하는 말에 가까웠다.

 

  “얼굴 때문에 그래 보이는 건가?”

 

  …확실히. 노골적인 플러팅은 둘째 치고, 음식을 집어넣는 녹스의 입부터 턱끝, 삼켜 넘기는 목젖까지 집요하게 훑는 에밀리의 시선은 마치 푸드 포르노를 감상하듯 했다. 느릿느릿 음식을 씹던 녹스는 괜히 목이 막혀서 맥주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입 안 대던 술을 쭉 들이키는 그를 보며 에밀리는 휘파람을 불었다.

 

  “잘한다!”

 

  옆 테이블의 짓궂은 누군가가 그녀를 따라 박수쳤다. 에밀리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깔깔 웃었다. 녹스는 그저 해탈한 듯 보였다. 제 무덤 팠으려니 하고. 시끄러운 펍 한가운데서, 에밀리가 우연과 고의를 적당히 섞어 만든 술자리는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

 

  비비안은 발밑에 툭 떨어진 쪽지를 주워들고 헛웃음을 흘렸다. 우편함이 아닌 창틀을 통해 날아든 그것에는 녹스의 글씨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세 개의 힘: 마법, 신앙, 기술] - 재고없음

  [마법을 헐뜯는 자들] - 소재불명

  …

  p.s. 8시경 귀가 예상

 

  마법으로 날려 보낸 거였다. 일전에 비비안이 크리스토퍼 백작에게 보냈던 편지처럼. 녹스가 쓰는 마법 따위야 익숙한 비비안은 그보다는 쪽지 내용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8시 귀가라니. 이게 빠져가지고 농땡이를 피워?

 

  게다가 찾아오라고 목록 뽑아 넘겼던 책들은 죄다 구할 수 없다는 소식뿐이었다. 비비안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작가의 말
 

 1) 펜버에도 제가 사는 지역에도 오늘 첫눈이..!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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