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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1)
작성일 : 19-10-26 16:18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4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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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뭐부터 해야 하지?’

 

  침실을 나서면서, 비비안은 제 가출 목표를 상기했다. 어디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집안 뒤집어질 남자를 데려가는 것.

 

  ‘당장 거리에 나가 아무나 끌고 와도 되겠지만…’

 

  그러긴 싫다. 아무리 그래도 하한선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비비안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뢰를 피하려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곳을 꽤나 잘 아는 제3자. 녹스처럼 쓸데없이 참견할 것 같은 측근보다는… 어라.

 

  그러고 보니 녹스가 안 보였다. 비비안은 계단을 내다보았다.

 

  “…녹스? 어딜 간 거야?”

 

 ***

 

  그날 아침, 녹스는 평소처럼 쉬고 있었다. 늘 한가롭던 저택은 평소보다 조금 분주했다. 12월에 접어들어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에밀리는 2층 창문에 겨울용 커튼을 달고 있었다. 밖에서 낙엽을 쓰는 알레인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녹스의 방에서 그 모습이 정면으로 보여, 그는 별 생각 없이 구경했다. 저택을 돌아다녀봤자 일에 방해만 되니.

 

  “일하기 싫어 죽겠어요!”

  “신입 뽑자고 해볼까?”

  “백작님은 들은 척도 안 하실 걸요.”

  “하긴 핀도 겨우 데려왔지.”

 

  대충 이런 식의 불평이 대화의 주 내용이었다. 게다가 떠드는 시간이 80, 일하는 시간이 20. 녹스는 집주인이 고생깨나 해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입으로 투덜대는 것치고 에밀리는 나름 열심히 커튼을 달았다. 다만 천장이 워낙 높아서 그녀는 스툴에 올라가야 했다. 그러고도 까치발을 해야만 커튼 고리에 손이 닿았다. 보는 사람이 불안할 만큼 에밀리는 아슬아슬하게 발을 디뎠다.

 

  네 번째 고리를 꿰던 차에, 스툴이 훅 기울었다.

 

  “어!”

 

  에밀리는 커튼을 쥔 채 순식간에 뒤로 넘어갔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2층 복도에 한바탕 먼지가 일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던 에밀리는, 바닥에 부딪혀야 할 엉덩이나 팔꿈치 대신 누군가에게 꽉 쥐인 허리가 아파서, 이내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라?”

 

  넘어진 에밀리 밑에 녹스가 대신 깔려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차며.

 

  “조심 좀 해.”

 

  에밀리는 대답 않고 녹스의 턱밑에서 눈만 깜빡였다. 그가 저를 끌어당기며 주저앉아, 단단한 바닥 대신 그의 허벅지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임을 잠시 생각한 뒤에야 깨달았다. 움직임을 멈춘 상태에서 그녀는 저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아주 비밀스럽게 물었다.

 

  “내가 넘어질 건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마법사라서?”

  “야. 누가 봐도 네가 위험하게…!”

  “에밀리! 살아있어?!”

  “…있었습니다.”

 

  놀라서 달려오는 알레인을 의식하며 녹스는 어정쩡하게 말을 높였다. 에밀리와 사적으로 친해 보이기는 죽어도 싫은 그의 안간힘이었다. 정작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휘감은 모양새가 그런 노력을 무색하게 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지만.

 

  “허, 헌더드 씨 계셨구나. 다행이다. 진짜 놀랐…”

 

  1층에서 뛰어온 알레인은 안도했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가, 에밀리의 허리께에 놓인 손을 발견하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뒤늦게 그것을 의식한 녹스는 조심스럽게 에밀리를 밀어냈다. 그리고는 부러진 스툴을 멋쩍게 주워와, 조금 날카로운 표정의 알레인에게 건넸다.

 

  “고쳐야 할 것 같네요.”

  “그러게요.”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더 할 말이 없어서였다. 솔직히… 두 남자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가운데 선 에밀리는 둘을 번갈아 살피다가, 묘한 미소를 짓고서는 맥락도 없는 질문을 냅다 던졌다.

 

  “다들 배 안 고파요?”

 

  다음 순간에 두 남자는 에밀리에게 옷자락을 붙잡힌 채 부엌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

 

  부엌에서 따끈한 스튜 냄새가 흘러나왔다. 불 때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는 알레인이 요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부엌에 밀어 넣은 장본인은 녹스의 앞에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밥은 먹고 다녀요? 평소에 식당에서 본 적도 없네.”

 

  저택 식구들의 식사시간은 제각각 달랐다. 크리스토퍼 백작과 비비안 공녀의 식사는 그들이 원하는 때에 각자의 방으로 배달되었고, 나머지 일원들은 두셋씩 모여 2~3교대로 식사했다. 녹스는 일 늘리기가 미안하다며 그간 다른 식솔들과 섞여 식사하곤 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에밀리를 마주치지 않은 이유는,

 

  “헌더드 씨가 너 피해서 식사하시니까 그렇지.”

  “에이, 설마요.”

 

  알레인의 진담을 농담으로 알아듣는 에밀리를 위해 녹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곧 각자의 앞에 그릇이 하나씩 놓였다. 알레인은 녹스에게는 특식이라며 다른 냄비에서 퍼 올린 스튜를 담아주었다. 알레인의 평소 요리 실력을 알고 있으며, 아까 그에게 밉보인 전적까지 있는 녹스는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기분 탓인가?’

 

  유독 녹스의 몫만 비주얼이 엉망진창이었다. 초록색과 회색, 그 사이의 어떤. 옆에서 에밀리가 사람 놀리듯 한 마디 얹었다.

 

  “아, 맛있겠다.”

 

  녹스는 알레인 몰래 그녀를 째려봐주고, 나는 미각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스튜를 한 입 떠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고소하면서도, 끓인 과일의 단맛이 났다. 의심부터 한 것에 녹스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어쨌든 이곳에 머무르는 한, 가까이 지내두는 편이 이로울 터. 그래서 그는 음식에 대해 느낀 그대로 말했다.

 

  “맛있네요.”

  “이거 에밀리가 개발한 레시피예요.”

 

  곧바로 후회했지만.

 

  식사하면서는 에밀리가 주로 대화를 주도했다. 아까 2층에서 하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일하기 싫다, 착취당하고 있다, 백작님 밉다, 등을 아무렇게나 떠들면 거의 알레인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사실상 대화를 빙자한 에밀리의 수다였다.

 

  그러다 자연스레 저택 식구들의 사연까지 주제가 흘렀다.

 

  “저택이 좁아 보여도 은근히 넓다니까요. 원래는 스무 명이서 일하던 곳이었으니. 잭이랑 로크 씨는 그때부터 여기 있었대요.”

  “가넷은 장녀라서 동생들 책임지러 여기 왔어요.”

  “아, 참고로 나는 고아. 알레인도.”

 

  에밀리는 대수로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풀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대체로 저택 식구들의 애환과 속사연 같은 것들. 적당히 듣는 척만 하려던 녹스는 어느새 제법 진지하게 경청했다. 옆에서 추억에 젖은 얼굴을 한 알레인 역시도.

 

  그래서 에밀리의 끝없는 이야기를 멈춘 범인은 녹스도 알레인도 아니고 오후 2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였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 나 아직 낙엽 다 못 쓸었어.”

  “아아, 또 노동자로 되돌아갈 시간이라니.”

 

  테이블을 치우며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어쩌겠어?’ 하고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는 두 사람을 보는 녹스는 왠지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느꼈다.

 

  ‘꼭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그리고 그 느낌은, 에밀리가 그에게 특식을 먹이고 저택 식구들 이야기를 해줄 때부터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녹스의 안색을 살핀 에밀리가 만족스럽게 웃고는 그를 저택 밖으로 잡아끌었다.

 

  “다들 참 열심히 일하지 않아요?”

 

  은근히 말 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며. 그녀는 묘하게 설득적인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데는 노동자가 여럿 필요하니까요. 여긴 그나마 백작님 한 분밖에 안 계셔서 그럭저럭 유지가 가능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둘이나 늘어버렸으니….”

  “…….”

  “…셋 중 하나 정도는 노동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한 분은 작위가 있으시고, 한 분은 공작가 외동따님이시네? 이를 어쩌나…”

  “…….”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녹스가 왠지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느낄 때쯤, 에밀리가 멈춰 선 곳은 저택 앞뜰이었다.

 

  왼쪽엔 빗자루가, 오른쪽엔 낙엽이 있었다. 마치 이것을 사용하여, 저것을 쓸어 담으라는 듯이. 가만히 그것들을 쳐다보던 녹스는 혹시나 싶어 에밀리를 돌아봤지만, 어쩐지 그 혹시나가 역시나인 것 같았다.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어요?”

 

  녹스에게 빗자루를 건네고, 에밀리는 해맑게 웃었다. 녹스는 일단 받아들면서도 떨떠름하게 물었다.

 

  “내가 손님 아니던가?”

  “비비안 아가씨가 손님이죠. 당신은 그냥 호신용 단검 같은 거?”

  “…….”

  “제값 못하고 있으니 과일이라도 깎아야지 어떡해요.”

 

  신분을 숨기고 살아온 탓에 공작가 후계자로 대우 받은 날이 길지 않기는 했다. 그래도 살다살다 과일 깎는 칼 취급 받기는 처음이다.

 

  빗자루를 쥐고 녹스는 스스로의 처지에 잠시 애도를 표했다. 어쨌든 그는 남의 고충 다 들어놓고 개무시할 성정이 못 됐다. 일방적인 호의를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편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빗자루질로 갚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경호를 부탁하거나, 경비를 맡기거나, 뭐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에밀리의 시선에 못 이겨 녹스는 천천히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어째, 제법 적성에 맞는 것도 같다.

 

 ***

 

  “핀. 이리 와봐.”

 

  핀은 비비안이 부르는 대로 발코니로 총총 걸어갔다. 비비안은 핀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저 아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어기 지금 빗자루질 하는 거니?”

 

  난간 너머를 내려다본 핀은 입을 떡 벌렸다.

 

  거기엔 녹스가 빗자루를 들고 서있었다. 아니, 들고만 서있는 게 아니라 그는 실제로 그걸 이용해 낙엽을 쓸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에밀리가 서있었다. 무슨 감독관처럼 허리에 손을 짚고서.

 

  아무리 봐도 에밀리가 녹스에게 빗자루질을 시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제, 제가 당장 가서 말릴게요. 에밀리가 위아래가 없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

  “아냐. 놔둬.”

  “…네?”

 

  비비안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에밀리에게 정신팔려있었으니까.

 

  “쟤 너무 마음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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