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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6)
작성일 : 19-11-16 22:16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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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모건 C. 프라이스.

 

  프라이스 남작은 작위보단 재산이 빛나는 타입이었다. 크리스토퍼 백작과는 비교당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할 만큼, 돈도 많고 집도 크고 땅도 넓었다. 거느리는 하인의 수야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잘생겼다. 무척이나. 펜버 같은 촌동네서는 보기 드문 ‘도시형 미남’인데, 어쩐지 혼기를 넘어서도 꽤 오랫동안 독신이었다.

 

  “이런 귀족의 얼굴을 용케 알아냈군.”

 

  녹스가 몽타주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차림새를 하고서.

 

  평소 입던 기성복 셔츠 대신에, 그는 몸에 맞춘 듯 핏이 딱 떨어지는 쓰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위로는 헤링본 패턴의 코트를 걸쳤고, 날렵하고도 멋스럽게 발을 잡아주는 구두까지 신었다.

 

  바로 옆에는 에밀리가 역시나의 차림새로 서있었다. 프릴 달린 하녀복 대신 깃이 반듯한 셔츠를 입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채, 짙은 브라운 컬러의 베스트를 껴입었다. 그리고 일자로 떨어지는 바지를 입었다.

 

  마치 고급 테일러샵의 마네킹과 남자보조처럼.

 

  그게 오늘 프라이스 남작 앞에서 두 사람이 각각 수행할 역할이었다.

 

  “알아낸 게 아니라 알고 있었어요. 붉은나무 저택에서 일하기 전에, 소개장 얻으려고 거기에 보름 정도 있었거든요. 남작은 딱 한 번 봤지만.”

  “한 번 보고 이걸 그렸어?”

  “내 머린 잘생긴 사람 한정으로 잘 굴러가니까요.”

 

  …이걸 칭찬해야 할지.

 

  녹스는 몽타주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림 솜씨는 형편없어도 특징만은 정확히 다 들어가 있었다. 살짝 처진 눈꼬리와 두툼하고 큰 입. 남자치고 각 없는 턱선.

 

  “내 말 못 믿어요? 그 얼굴이 쉽게 잊히는 얼굴이 아니에요.”

 

  에밀리는 프라이스 남작을 마주쳤던 그 딱 한 번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날은, 아니, ‘그날도’ 그녀는 그릇을 깼었고,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필 남작이 그걸 보고 있었다. 여느 귀족들이 그러듯 인상을 쓸 줄 알았건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피가 퐁퐁 솟는 손을 쥐고 살폈다.

 

  ‘흉이 지면 안 되는데.’

 

  이 한마디에 에밀리는 그와 금혼식까지 다녀왔다가, 그에게 이미 애인이 있단 소식을 듣고 깨끗하게 꿈을 접었다. 나중에서야 뜬소문임을 알게 됐지만.

 

  프라이스 남작을 따라다니는 소문은 그 외에도 꽤 많았다. 저택에 끊임없이 여자가 드나든다거나, 이상한 도착증이 있다거나. 특히 남작은 사람을 오래 쓰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그게 실은 하녀들을 유희거리 삼고 버리는 증거라고들 말했다.

 

  정작 그의 식솔들이ㅡ혹은 식솔이었던 자들이 하는 말은 정반대였다는 게 관건이다. 그들은 ‘나사 빠진 우리 주인님이?’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남자들의 질투심이 하늘을 찔러서 못 지어내는 말이 없다며.

 

  “…이렇게 말이 다 다르니까 더더욱 검증을 해봐야겠죠?”

 

  에밀리는 녹스에게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녹스는 차마 똑같은 수준으로 맞장구쳐주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벤자민은 불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걸리면 나 아버지한테 죽어….”

 

  찰리 오터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은 지 1년도 안 된 벤자민 오터는 이미 에밀리에게 휩쓸려서 변장할 옷이며 고객 정보까지 다 줘놓고는 이제 와 콩알만 한 간을 부여잡고 있었다.

 

  모든 일의 원흉인 에밀리는 그를 다독이는 대신, 녹스를 향해 여섯 번째로 물었다.

 

  “녹스, 나 알아보겠어요?”

  “아니.”

  “내가 하녀일이나 하게 생겼어요?”

  “절대.”

  “그럼 붉은나무 저택에서 온 것 같아요?”

  “전혀.”

 

  이거 봐. 에밀리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는 찰나,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벤자민이 ‘좋은 아침, 아, 아니, 오후입니다, 남작님!’ 하는 덕에 에밀리는 문을 등지고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녹스에게 붙어 서서, 치수를 재듯 줄자를 쫙 펼쳐들었다. 그 다음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프라이스 남작에게 목례했다.

 

  타오르는 듯 붉고 풍성한 머리칼에, 어쩐지 매혹적인 턱밑의 점. 테일러샵에 모습을 드러낸 프라이스 남작은 한마디로… 예쁜 남자였다. 벤자민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아니, 네가 왜?

 

  “그래. 좋은 ‘아침’이야, 벤자민 오터.”

  “윽! 마, 말실수입니다.”

  “내 예약시간에 이미 손님이 와계신 듯한데, 이것도 실수야?”

 

  프라이스 남작의 시선이 녹스를 향했다. 벤자민은 잠시 새가슴을 움켜쥐었다가 아까 연습한 대로 읊었다.

 

  “저 친구는 손님이 아니라, 마, 마네킹 같은 겁니다. 워낙 이상적인 몸매여서 저희 가게에서 기성복을 제작할 때 기준 삼고 있거든요.”

  “아아. 마네킹? 잘 빠졌네.”

  “…….”

 

  에밀리가 제공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녹스의 치수에 맞춘다면 펜버 남자 절반쯤은 펑퍼짐한 정장을 질질 끌고 다니게 되겠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남작은 코트를 벗은 녹스의 체격을 보고 납득하는 듯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작업하라 하겠습니다. 남작님께선 오늘 가봉을 확인하실 차례니 어서 안쪽으로…”

 

  뒤통수로 프라이스 남작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에밀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녹스의 가슴팍에 줄자를 둘렀다. 느슨한 줄자를 팽팽하게 잡아당기자 녹스가 ‘윽,’ 하고 작게 신음했다. 에밀리는 경고하듯 그를 짧게 흘겼다.

 

  마침내 남작이 벤자민을 따라 가게 안쪽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녹스가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열심히 재는 거 아냐?”

  “지금 난 오터 테일러샵의 엘리트 직원이니까요.”

 

  그 와중에 노트에 야무지게 ‘가슴둘레=40인치’라고 적는 에밀리를 보며 녹스는 수치심 비슷한 것을 느껴도 되는 건가 고민했다. 물론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는 듯, 그 뒤로 어깨넓이, 허리둘레, 골반둘레, 다리길이, 손발사이즈까지 다 털렸지만.

 

  허벅지둘레도 재야겠다며 위험한 곳에 손대는 에밀리의 뺨을 꼬집어주고 나서야 그녀는 사심 담긴 손길을 멈췄다.

 

  “예민하긴. 그냥 작전 일부잖아요!”

  “작전에 날 추행한다는 계획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억울하면 내 사이즈도 재든가. 줄자 줘요?”

 

  저게 진짜…! 차마 줄자를 받아들지 못하는 녹스에게 메롱 혀를 내밀어주고, 에밀리는 프라이스 남작이 있는 쪽으로 잽싸게 이동했다. 그가 옷을 다 갈아입었을 참이었다.

 

  얼기설기 가봉된 옷을 걸치고도 남작은 미모를 빛내고 있었다. 그는 불쑥 나타난 에밀리의 존재에 개의치 않고 거울만 연신 확인했다. 벤자민이 제발 얌전히 있으라고 황급히 눈치를 줬으나, 에밀리는 천연덕스럽게 남작에게 말을 붙였다.

 

  “어디 불편한 데 있으신가요?”

  “커프스가 조금 퍼지는군.”

  “더 슬림하길 바라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능숙한 손길 아래서 커프스 모양이 다시 잡혔다.

 

  “이 정도면 괜찮으실까요?”

  “일단은.”

 

  뜻밖에도 상당히 매끄럽게 대화가 진행됐다. 프라이스 남작은 편안하게 에밀리에게 몸을 맡겼고, 에밀리는 까다로운 시침질은 은근히 벤자민에게 넘기면서 살갑게 말을 이었다. 비스포크 정장의 최신 유행을 이야기하다 원단 관리법에 대한 자랑으로 넘어가고, 그러다 아는 하녀들의 에피소드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슬슬 시동을 걸었다.

 

  “쫓겨날 뻔했는데, 집주인이 또 봐줬더랍니다. 그 애는 아직도 거기서 일한대요. 120렐(1렐=100에닝)짜리 코트를 걸레짝을 만들고도.”

  “하하! 집주인이 퍽이나 자애로운가봐.”

  “그러게 말이에요. 같은 상황이라면 남작님은 어떻게 하실 텐가요?”

 

  목표는, 에밀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라이스 남작의 말하는 싸가지를 보고 그를 둘러싼 소문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는 것.

 

  “음. 그대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저라면 매질을 해주었겠죠. 어떤 여자들은 그래야 말을 듣는답니다.”

 

  에밀리는 ‘아시잖아요?’ 하는 얼굴로 생긋 웃었다. ‘신사’들은 ‘우리끼리 통하는 농담’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미끼를 던졌고,

 

  “이런… 사상이 꽤 험하구나?”

 

  프라이스 남작은 물지 않았다. 이것 봐라?

 

  “동의하지 않으시는군요?”

  “매질을 해서 고쳐질 버릇이면 말로 타일러도 고쳐질 테니.”

  “타이르는 말은 불필요한 정성을 요하지 않던가요?”

  “그만한 정성이 내게 부족해 보여?”

  “그럴 리가요! 다만 남작님의 귀한 시간을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하녀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에밀리는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린 뒤 프라이스 남작의 표정을 흘끗 살폈다. 딱히 기분이 나빴다든지, 의심스럽다든지, 그런 종류의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냐.”

 

  거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애들이 그렇게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그대도 언젠가는 깨닫길 바라.”

 

  에밀리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역시 미천한 제 머리로는 고견을 따라잡기 힘들군요.”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에밀리는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녹스가 기다리고 있는 홀로 되돌아 나왔다. ‘얘기 다 들었죠?’ 하는 투로 눈짓하자 녹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이스 남작은 연회복의 디테일까지 모두 정한 뒤 오터 테일러샵을 나섰다. 선수금을 받아 얼굴이 해사하게 핀 벤자민은 남작을 문간까지 배웅했다. 사고라도 칠 것 같던 에밀리도 별 말 없이 웃고 있고,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이 평탄하게 흘러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와작! 하는 소리가 에밀리의 구둣발 아래서 들려오기 전까진.

 

  “어, 그, 그거….”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는 벤자민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한 데 모였다. 자그마한 보석이 바닥 위에 떨어져 빛나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던 프라이스 남작은 문득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보였다. 손잡이 장식 부분이 허전했다.

 

  “이런, 제 주책맞은 발이 남작님의 보석을!”

 

  한 박자 늦게 호들갑 떠는 이는 에밀리였다. 그걸 보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녹스는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보석을 훔쳐 바닥에 떨어뜨려놓은 범인이, 바로 그녀라는 걸.

 

  녹스는 이마를 짚었다. 에밀리는 그런 녹스만 볼 수 있게 어깨를 으쓱했다. 말은 누군들 못해? 행동을 살펴야죠.

 

  “이게, 아니, 스크래치가, 어쩌다, 여, 여기….”

 

  확실한 건, 이건 120렐짜리 코트보다 비싸다.

 

  벤자민이 얼빠져서 말도 못 잇는 동안 에밀리는 손수건으로 보석을 감싸 프라이스 남작에게 건넸다. 남작은 보석을 집어 들었다. 그는 보석을 빤히 보았고, 에밀리는 그런 그를 빤히 보았다. 둘 중 누구의 시선이 더 집요한지 분간이 안 갈 때쯤…

 

  프라이스 남작은 어쩐지 천진하기까지 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실수할 수 있지.”

  “요, 용서하시는 건가요?”

  “마침 새 거 지르려고 했거든.”

  “…….”

 

  왠지 그의 관대함은 인간 본연의 품성에서 비롯되기보단 금전적 여유를 통해 빚어진 것 같았지만, 이것으로 에밀리와 녹스의 인사 검증은 마무리 되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결심했다. 이 쓸데없이 무던한 남자를 반드시 비비안에게 끌고 가기로.

 

 

 
작가의 말
 

 1) 급하게 지어버린 제목에 대한 고찰... 앞으로의 전개 방향과 작품 제목이 그다지 맞지 않을 것 같아 변경을 고려 중입니다ㅠ.ㅠ 13화가 다 되도록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했어요...

 2) 아! 1에닝은 1,000원입니다. 120렐은 1,200만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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