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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11화)
작성일 : 19-10-09 21:50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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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시위대 무리를 헤치고 한 중년의 남자가 김 대위 앞에 나섰다.

  대책위원장이었다. 한 번도 통성명을 한 적도 없었지만 얼굴은 낯이 익었다. 오십은 넘은 것 같았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은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비쩍 마른 체격인데도 어깨가 벌어진 강골이었다. 눈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부드러웠지만 하관이 빨라 매사에 판단이 빠를 것 같았다.

  김 대위는 괜히 어설프게 말을 돌리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시위대에서 지금 우리 병사 둘을 감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병사들을 빨리 부대로 복귀시켜 주십시오. 이건 정말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것을 위원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럼 합법적인 우리들의 집회를 불법으로 감시하는 것은 괜찮은 겁니까? 더군다나 군인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불법 감시한 것이 아닙니다.”

  “김 대위님……. 이거 왜 그러십니까? 지난 번 우리 주민을 폭행한 사건을 그냥 넘어가 줬더니 우리를 핫바지로 아시는 겁니까?”

  위원장의 말에 가시가 있었다. 주위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위 군중들이 김 대위에게 야유를 질렀다. 김 대위는 시위대의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어차피 시간은 양쪽 모두에게 불리하기도 하고 유리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무기가 될 수는 없었다. 눈치 빠른 위원장이 손을 들어 주위를 진정시켰다. 어차피 자기들이 얻어야 할 것은 이미 다 얻은 뒤였다. 과유불급이라지.

  “난 이 부대의 부대장으로 있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 김선호입니다. 내 명예를 걸고 이야기하지만 우리 군은 절대 여러분의 시위를 막을 생각이나, 여러분의 안전을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김 대위는 대책위원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시위대를 둘러 본 다음 말을 이었다. 단호하면서도 차분하게.

  “우리는 명령에 의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입니다. 여러분의 시위를 지켜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대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 결코 여러분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김선호는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시위에 참가한 마을 주민들끼리 나누는 말속에서 시위대와 지도부 간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시위대를 이끄는 것은 대책위원장이었지만 시위에 참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 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소박한 것이었다. 그냥 자기들이 살아 온 이 마을에서 지금처럼 아무 탈 없이 그냥 계속 살수 있다면 부대가 들어오던 뭐가 들어오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 대위의 부대가 처음 마을에 들어 왔을 때에는 전혀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을을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주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대책위원장의 말을 들으면 부대가 들어오게 되면 마을 개발도 어려워지고 땅값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신들이 조상대대로 살아 온 이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선동했다.

  김 대위는 주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번 일로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부대가 이곳으로 이전해 와도 여러분들이 우려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살아 오셨던 그대로 똑같이 살아가실 겁니다.”

  시위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몇몇 시위대가 거짓말 말라며 김 대위를 윽박질렀지만, 이미 김 대위를 위협하던 분위기는 반쯤은 사라졌다. 어두워진 밤하늘에 바람이 잦아들고 흐릿하게 드문드문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분위기가 완전히 산만해졌다. 대책위원장도 주민들의 분위기를 눈치 챘다.

  이제는 적당한 선에서 뒤로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도 알았다. 이미 밤도 늦어져 갔고, 무엇보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군인들을 감금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대책위원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시위와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점들을 역으로 이용하며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습니다. 일단은 김 대위님의 말을 믿기로 하죠. 그러나 어째든 우리를 감시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김 대위님이 사실 확인서를 써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즉시 병사들을 돌려보내겠습니다.”

 

  김 대위는 위원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위대의 분위기가 처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위원장도 눈치 채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김 대위는 위원장의 말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보았다.

  지금은 시위대가 김 대위의 진솔한 말에 반쯤은 솔깃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면 금방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것을 위원장은 말이 아닌 눈빛으로 김 대위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大衆)은 아주 작은 이익에도 쉽게 도의나 정의를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위원장은 많은 시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김 대위가 확인서를 써 주지 못하겠다면 위원장은 아마 시위대의 집단 폭력성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다. 대중들에게 두려움이란 마른 짚단위에 뿌리는 기름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김 대위에게 돌리게 되면 위원장은 병사들을 풀어주지 않아도 되는 형국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더 이상 시간이 김 대위에게 유리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위원장은 그 점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김 대위는 위원장 뒤에 몰려있는 시위대를 둘러보았다.

  김 대위는 위원장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동시에 자기가 덧에 갇혔다는 것도 알았다. 이미 시위대와 협상을 한 마당에 이제는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한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이고, 위원장에게 확인서를 써 주어도 문제가 될 것이다. 위원장은 아주 좋은 꽃놀이패를 잡은 것이다.

  김 대위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모든 것이 자기 손을 떠난 뒤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대위는 깊은 한 숨을 내 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격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격류를 헤치고 빠져 나오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김 대위가 시위대에게 붙잡혔던 병사들을 데리고 부대로 돌아 온 것은 눈썹보다 조금 굵게 남은 반달이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을 때였다.

 

 

  긴 일자형의 국과수 건물은 언제나 우중충해 보였다.

  본관의 흰색 타일은 이미 색이 바랜지 오래여서 멀리에서 보면 흰색이라기보다 눌어붙은 마요네즈처럼 누리끼리한 색을 띄었다. 일반인들은 이곳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수사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

  멋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커다란 성냥갑 같은 일자형의 건물 형태에서 관공서 특유의 획일적인 분위기가 드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정문에 보초를 서고 있는 의경들을 보고서야 아마도 정부와 관련된 건물인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정문의 대리석 기둥에는 분명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란 명판이 세로로 멋지게 붙어있었다.

  민 반장은 국과수 정문을 들어서면서 재킷의 왼쪽 가슴 부분을 툭툭 쳤다. 정문 보초를 서고 있던 의경이 눈치 빠르게 거수경례를 한다. 대개 사복 경찰들은 왼쪽 상의 안주머니에 경찰수첩을 넣고 다녔다.

  민 반장은 중앙 로비를 가로질러 왼쪽으로 난 복도로 꺾어 걸어갔다. 법의조사과 사무실은 복도의 맨 끄트머리에 있었다. 백색의 복도 벽은 청결한 느낌을 주었지만 밋밋하고 멋없게 느껴지게 해 주었다. 민 반장은 이 건물에 들어서면 항상 불편했다.

  벽면의 색과는 달리 복도의 조명은 낮고 침침했다. 무엇보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소독약 냄새가 싫었다. 이곳의 소독약 냄새는 일반 병원과는 달랐다. 청결함보다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된 시신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상했다. 사건 현장에서 수도 없이 마주치는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일지라도 그래도 따뜻한 인간의 냄새가 나는데, 일단 이곳 국과수의 법의학자들 손에 맡기는 순간 차갑고 죽은 시신의 냄새가 났다.

  30여년의 강력반 경력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도 한데 민 반장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다. 오늘처럼 날이 흐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더 심했다. 아마도 몸에 밴 표백제 냄새는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민 반장은 몸에 묻은 냄새를 털어 버리려는 것처럼 옷을 툭툭 털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막 전화 통화를 끝낸 최박사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사무실에는 최 박사 혼자뿐이었다. 민 반장은 최 박사 책상 옆에 있는 팔걸이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렇게 털어내면 시체 냄새가 가시냐?”

  “뭐……. 그냥 부적 같은 거지 뭐.”

  “사람도 참……. 아! 여기에서 먹고 자는 사람도 있는데.”

  “형! 그게 사람이유……. 시체지.”

  “그래? 그럼 시체가 만든 보고서는 필요 없겠지?”

  최 박사가 서랍에서 보고서 한 부를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민 반장이 얼른 손을 잡았다.

  “에헤 참. 성격하고는……. 사인은 역시 총상에 의한 건가?”

  최 박사가 못 이기는 척 하며 보고서를 민 반장에게 건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마를 관통한 두 발의 총상에 의한 사망이라고 보여 지는데……. 사입공과 사출공의 크기가 별 차이가 없고, 피살자의 이마에 미세한 탄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이마에 대고 쏜 것처럼 근접 거리에서 쏜 것으로 보여.”

  민 반장은 보고서 뒤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을 살펴보았다. 최 박사의 설명대로 정 의장의 이마에 난 총상 자국의 테두리가 깨끗했다.

  “38구경 같진 않은데?”

  “응. 최신 기종에 속하는 베레다92라는 총인데 우선 명중률이 높고, 노킹 블록 배럴 방식이라 사격시 반동이 적고 빠른 연발 사격이 가능하지……. 그리고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탄환에 가는 두 줄의 강선이 보이는데 그것 때문에 파괴력이 더 켜진 것으로 보여. 아마 두 발 째 총에 맞기도 전에 피해자는 사망 했을 거야.”

  이건 중요한 단서였다. 경찰관들이 사용하는 권총은 흔히 38구경이라 부르는 리볼버였다. 베레다92는 주로 군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군대와 연관이 있거나, 적어도 군에서 그 총기 사용이 익숙하다는 의미였다. 총은 다른 무기와 달리 자기 손에 익숙하지 않으면 명중률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민 반장이 손으로 턱을 쓸었다.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지문 조회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별것 없을 것 같아. 이것이 다야. 이렇게 완벽한 경우도 드물 거야.”

  최 박사가 양 손을 벌리며 자신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인이 남긴 종이쪽지에서는?”

  최 박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복사지야. 아마 요 앞 문구에 가면 똑같은 종이를 박스째 살 수 있을 걸? 종이 표면의 광택이 Din 75인 것으로 보아 P사 제품으로 보여……. 별로 수사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참고해 봐.”

  P사라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제지회사였다. 그곳에서 만든 복사용지라면 단서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오늘만 해도 민 반장도 그 용지를 몇 장을 만졌을 것 같았다.

  “사용된 잉크는 솔벤트 계열의 잉크야. 이것도 별 도움이 되질 않을 거야.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많이 쓰는 잉크 용제야.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

  “그럼 내가 알아야 할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거야?”

  “글쎄, 지금으로서는……. 베레다92에서 발사 된 두 발의 총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복사지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잉크로, 평범한 레이저 프린터기로 출력한 종이쪽지……. 뭐가 또 있지?”

  “지금으로서는? 그럼 나중에는 뭔가 줄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노코멘트.”

  더 이상 최 박사에게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너무 단서가 빈약했다. 경찰서로 돌아 온 민 반장은 최 박사에게서 받아 온 검시보고서를 김 순경에게 건넸다. 보고서는 여러 부를 복사해서 강력반 형사들이 보겠지만 별로 수사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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