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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7
작성일 : 19-10-03 11:59     조회 : 19     추천 : 0     분량 : 2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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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기인지 벌레인지 무엇인가에 물린 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따끔함이 조금씩 더해갔다. 이상하게도 마동의 페니스는 긴 시간 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섹스가 전해주는 쾌감은 통상적으로 인간의 오감에서 느껴지는 쾌감과는 분명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돈을 주웠다거나 상사에게 칭찬을 들었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다거나 옷이나 구두를 선물로 받았거나 하는 쾌감과는 질이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는 구름위에 떠있는 기분이라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황홀하다고 할 것이다. 좋다, 더 좋다, 아주 좋다,라는 말처럼 간단하지만 그 이상의 말은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르고 글을 잘 쓰는 소설가는 그 이상의 전달력이 좋은 말로 글을 쓸지도 모른다. 마동은 섹스가 전해주는 기분을,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지금 이 순간의 섹스를 어떠한 언어나 활자로 제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아찔해지기도 했다. 그건 마치 데드포인트를 기분 좋게 넘어갈 정도의 것이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하는 섹스는 쾌감의 끝에 다다를 수 있는 동적이자 정적의 끝맺음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그 끝에는 무엇인가가 어떠한 형태를 확고하게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형태를 궁극적인 관념이 그 형태를 대신하고 자신을 받아들인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래, 야외에서의 섹스가 아닌가.

  야외에서는 갇힌 공간에서 하는 섹스와는 별개의 흥분과 정념이, 섹스를 하는 마동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아우르고 있었다. 마동은 누군가 지나치면서 볼까봐 조마조마해야 했지만 일단 시작되고 나자 닿을 수 없는 여자,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밤의 중간에서 이루어지는 야외섹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으음, 으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신음소리는 마동을 더욱 흥분시켰다. 작은 틈 속으로 많은 양의 물줄기가 빠져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축축한 그녀의 양손이 딱딱하고 마르고 굳은 마동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마동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조르기도 했고 힘 있게 잡아 주기도 했고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했다.

  “내 몸에서 나온 땀과 비가 당신을 더럽혀요.”

  마동의 몸에서는 땀 냄새와 비 냄새가 섞여서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겼다. 마동은 그 냄새를 후각적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분명 시큼하고 곰삭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거 따위 상관없어요. 전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어요. ‘브로드웨이를 쏴라‘라는 영화를 알아요?”

  마동은 자신이 본 영화들을 섹스를 하면서 머릿속에서 죽 펼쳤다. 근간에 본 영화에 ‘브로드웨이를 쏴라’가 있었다. 그래봤자 이미 일 년 전에 본 영화였다. 우디알렌의 영화이고 극작가의 이야기를 다뤘고 오래된 영화이고 영화로 나오고 뮤지컬로도 재탄생되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우디알렌은 다작하는 감독이죠. 하아, 그가 이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어 낸 건 자신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영화를 쏟아내면 그 중에 하나 얻어 걸리는 영화가 있을게 아닌가,라고 한 말을 ‘브로드웨이를 쏴라’를 보면서 들었던 것 같아요.” 마동은 신음소리를 중간에 섞어 가며 몸을 움직여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 말했다.

  “맞아요, 우디알렌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그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고 했지만 관객을 생각해서 꾸준하게 창조를 해내는 예술가들이 천재에 가까운 사람들이고 생각해요. 저도 우디 알렌과 작업을 해봐서 조금은 알 수 있어요”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우디알렌과 영화를 같이 작업했다는 말에 그녀의 가슴에서 얼굴을 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가 떨어지지만 비에 젖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브로드웨이를 쏴라’에는 지상주의적인 모습이 많이 나와요. 그 중에 후천적으로 상식 결핍증을 보이는 천방지축의 올리버 역에 제니퍼 틸리가 나와요. 실제로 제니퍼 틸리는 연기를 무척이나 잘 하는 배우죠. 하지만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는 연기를 아주 못하는 배우인 올리버로 나와요. 연기를 실지로 잘하는 배우가 연기를 아주 못하는 연기를 하는 거죠. 모순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런 모순이 가득한 곳이에요. 저를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이 순간만큼은 당신을 황폐한 곳에서 격렬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치치에게 총을 맞아 죽지만.” 마동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두 팔로 마동의 등을 끌어안았다. 마동은 그녀의 깊은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 정갈한 손톱으로 마동의 등을 꾹 눌렀다. 마동은 다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을 보기위해 그녀의 몸을 자신의 몸에서 약간 떨어트렸다. 심약하게 벌어진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가 잠깐 잠깐씩 뜨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는 색이 다른 렌즈를 낀 것처럼 이계의 빛을 발했고 그 빛은 마동을 하여금 미스터리한 웜홀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비는 어느 순간 가위로 싹둑 자르듯 끊어졌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의 섹스는 끝날 줄 몰랐다. 공명으로만 들리던 야외의 소리가 서서히 마동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비가 그쳤다는 것을 아는지 풀벌레가 대나무 숲에 숨어서 고개를 내밀어 마동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은밀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동은 풀벌레들의 존재를 인지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마동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지 못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이 기분을 끝내기 싫었다. 거뭇거뭇한 먹구름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달이 환하게 빛을 발하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더욱 요염해졌다. 달빛을 받은 그녀의 피부는 새하얗다 못해 갓 사온 고급스럽고 깨끗한 커피 잔과 같은 피부였다. 빛은 환해졌고 은은하게 그들을 비추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움직임이 조금씩 가열되기 시작하더니 격렬해졌고 마동은 그런 그녀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허리는 마동 자신의 늑골을 움켜쥐는 기분이 들었고 군살은 만져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달빛을 받아 신음소리가 조금 더 크게 대나무 숲에 울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교성과 마동의 신음소리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의 교성에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고 마동의 신음에는 경계와 조바심이 있었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막에 걸러 나오는 찌꺼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공존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교성은 마동의 신음소리를 누르고 대기를 타고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그 소리를 누군가 듣는다고 해도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을 교성이었다. 물론 그건 마동의 생각이었고 편견일 테지만 그렇게 믿어 버렸다.

  가만, 풀벌레 소리?

  풀벌레가 사라진지 몇 해 되었다. 현재 이 도시의 강변 조깅코스에 풀벌레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에서 벗어난 일이다. 마동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지방도시라고는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의 거대 메트로폴리탄이다. 어쩌면 땅덩어리만 놓고 본다면 수도권보다 더 거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1950년 당시 대통령의 명으로 이 도시는 세계 최대 수주의 제조업이 들어서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인구는 그 동안 500만을 육박했고 그에 따른 부대시설이 대거 늘어났다.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0년 동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경제성장은 눈에 띌 정도였다. 그 후 10년은 더딘 속도를 보이다가 이후 4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쉼 없이 멈추지도 않고 빠르게 발전에 발전만을 거듭해 왔다. 거대도시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순조로웠고 낙후된 나라와 타 도시는 대한민국의, 마동이 살고 있는 이 도시를 모델로 삼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경제매거진과 미디어는 이 도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각 나라의 도시개발 관계자들은 이 도시의 경제성장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배우러 왔다. 그에 따라 외국인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격하고 과도한 발전은 병패를 자아냈다. 도시는 뼈대부터 시작하여 살과 혈액의 공급이 원활해야 했지만 정부는 이 도시의 뼈대 만 굳건하게 세우는데 치중해왔다.

  30년 전 시청의 도시개발과 과장직책의 한 공무원이 프랑스 네스 강의 기적을 배워야 한다며 시청의 높은 사람들에게 이 도시를 가르는 부리수터 강의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하지만 그 공무원의 보고서는 윗선에 닿지 못하고 누락되었다. 그 공무원은 시장에게 아무리 보고서를 올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시장과 그의 조력자들은 대선의 밑거름을 닦기 위해서 이 도시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눈에 띄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과장이 만든 보고서는 시장에게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그대로 폐기처분 될 뿐이었다. 과장은 다시 보고서를 작성했다. 부리수터 강의 물고기와 강변을 끼고 있는 수풀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 생태계를 돌보지 않으면 나타나는 결과는 무서울 거라는 분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중앙정부에 직접 올렸다. 그 공무원의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 시청의 높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시청에서 퇴사를 맞이했다. 쫓겨난 과장직의 공무원은 보고서를 패널형식과 종이로 활자화시킨 문서로 만들어서 시청의 입구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30년이 지나면 부리수터 강은 심각하게 오염이 되어서 약물방식으로 강물을 희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강에는 물고기들의 기형이 판을 칠 것이다, 물고기들은 혐오스럽게 생겼음은 말할 것도 없고 낚시를 통해 부리수터 강의 물고기를 잡아서 먹은 사람들은 해결방안이 없는 바이러스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다, 자식을 낳으면 그 질병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유전이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너무 이 도시를 경제적인 부분만 보고 발전을 시키는 결과이니 시민들이 나서서 부리수터 강의 오염을 더 이상 지속하게 두면 안 된다, 현재 도시의 경제상태의 발전만을 위해서 각 구에 지어진 모든 건물, 주상복합건물과 가정주택을 비롯한 건물의 하수구가 오수, 오수의 분리가 되지 않고 하나의 배수로로 따라 흐른다, 가정에서 배출하는 배설물과 더러운 찌꺼기까지 모두 하나의 하수배관을 타고 부리수터 강으로 흐르게 되니 큰 일이 일어난다, 30년 후에는 돌이킬 없는 강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부리수터 강의 물고기들, 그 물고기들이 제대로 순환할 수 있게 터전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 들꽃들은 지속적으로 피어날 수 있게 해야 하며 무분별하게 강변의 대지를 파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변의 하구부터 상위까지의 강변대로를 만드는 개발에만 집중하는 큰 프로젝트를 통하여 모든 대지를 파헤치게 되면 들꽃이 사라지고 결국 나비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도 이곳을 떠나게 된다.

  쫓겨난 공무원은 이러한 보고서를 시청 앞과 국 구청 앞에서 일반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일인시위를 했다. 그는 또 시청 앞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각 구청의 앞과 현대백화점 앞, 만남의 광장을 비롯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시위를 했다. 남자는 먼 훗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강이 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했다.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했고 신념이라고 느꼈다. 그것이 시청의 환경과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자신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시청에서 쫓겨나고 벌이도 없이 집에서 보고서만 준비해서 그것을 알리는데 모든 시간을 소비했다. 결국 참을 수 없었던 아내와 어린 아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남자 역시 어느 날 조용히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일인시위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한 남자가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한 것조차 알지 못했다.

  시청이나 구청 앞의 상가사람들은 늘 보이던 시위자가 보이지 않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남자가 나타나지 않은 지 24시간 후에는 남자의 존재를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는 빠르게 성장하는 이 도시의 개발에 꾸준하게 투자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지원형식이 아니라 이 도시의 늘어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여 도시의 조경 사업을 펼치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발전해가는 도시를 떠나지 못했고 그것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빠른 발전의 결과, 강물은 오염되어서 수많은 어종이 강을 떠났고 제비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꿀벌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강변 숲에 살던 너구리들은 터전을 잃어 버렸다. 시청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과 문화라는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강변의 조깅코스는 유려하고 미려하게 보였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과 조경이 좋은 시설물이 들어섰다. 곳곳에 헬스클럽에서 할 수 있는 양질의 근력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운동할 수 있는 플레이스를 간격을 두고 만들었다. 대나무공원에는 너구리도 방사했다. 강줄기는 오랫동안 기름과 검은 하수구의 잔해물로 뒤덮여있었지만 시의 3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금은 낚시를 하는 인구가 늘어나서 낚시터를 지정하여 그곳에서는 마음껏 고기를 낚을 수 있게 해주었다. 궁극적으로 거대한 대도시에 인공자연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실체를 잃어버렸고 허울뿐인 자연을 그곳에 옮겨 놓은 꼴이었다. 부리수터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전부 먹을 수 없는 기형의 몸을 가진 물고기였고 대부분 외래 어종이었다. 토종 물고기는 이미 변이한 괴상한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강에 외래어종을 살육하기 위해 뿌린 약품에 외래어종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남아있던 토종어종만 형태변이의 심각성을 보였다가 토종어종을 먹어치운 외래어종도 바이러스를 잔뜩 지닌 물고기들로 변이하기 시작했다. 대나무 숲에 방사한 너구리는 일이년 만에 전부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대나무처럼 사시사철 튼튼한 나무들마저 색이 바래져 죽어갔다. 심어놓은 꽃들은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고 봄에도 나비가 일지 않았다. 수순처럼 강변의 풀벌레가 자취를 감추었다.

  마동은 몇 년 동안 조깅을 하면서 풀벌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봄이 와도 제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여름에 개구리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몇 해 전 누군가 사무실에서 마동에게 요즘 여치나 귀뚜라미 소리 들어본 적 있어?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마 시답잖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 질문을 했다는 것은 기억이 났다. 기억이라는 것이 마동이 만들어낸 왜곡이 가득할지 몰랐지만 그 왜곡 속에 풀벌레들은 이미 부재적 존재였다. 누구도 풀벌레가 없다고 하여, 풀벌레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하여 슬퍼하거나 애달파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를 야외에서 끌어안고 있는 이 순간, 풀벌레 소리가 정오의 매미소리처럼 오케스트라를 이루었다.

  이 여자는 누구안가.

 

  [1일째 저녁]

  해가 그 힘을 잃어가려고 서쪽의 산 너머에 걸려있지만 여름의 태양은 쉬이 그 강렬함이 꺼지지 않았다. 여름은 진정한 태양의 계절이다. 끝나지 않는 축구 경기가 없는 것처럼 어김없이 깊은 밤은 다가오고 태양은 하루를 달에게 반납하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축구경기가 계속 열리는 것처럼 미치도록 뜨거운 열기가 밤새 계속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낮 동안 태양의 열을 듬뿍 받은 대지는 식어들 줄 모르고 새벽까지 열기를 지닌 채 사람들을 대했다. 사우나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후텁지근한 기운을 여름이 끝나는 길목까지 대지는 뱉어냈다. 레인시즌이 막을 내리면 몇 날 며칠은 뜨겁고 무더운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마동은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의 야간조깅을 즐겼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조깅을 과감히 포기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칼국수나 우동을 끓여서 칼스버그 한잔과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회사에서 들고 온 리모델링 시추에이션 프로그램 작업을 도안하려고 했다. 가끔 먹는 우동의 맛은 언제나 마동을 위로해 주는 맛이었다. 하지만 마동은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입맛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무엇을 먹던지 사하라의 모래 알갱이를 씹는 맛이 날 게 뻔했다. 오늘 아침에 던킨도넛에서 먹은 머핀 반쪽과 커피 몇 모금, 그리고 점심시간에 우울한 만두가게에서 만두 몇 개를 집어 먹었을 뿐이었다. 만두를 먹고 물과 함께 먹은 약을 삼키고 지금껏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집으로 온 것이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동은 의무적으로 무엇인가 입으로 넣어야 할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바로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지속적인 공명과 함께 눈을 감으면 꿈처럼 무서운 장면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검은 연기를 내며 불이 붙어서 타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불이 붙어서 말려 타들어가는 얇은 여름옷과 다리와 가슴에 불이 옮겨 붙어 살을 태워버리자 사람들은 마치 악마에게 강간을 당하는 듯 몸을 비틀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에 옮겨 붙은 화마는 뼈를 남기고 손가락을 태웠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을음으로 바닥에 닿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절규를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재로 변했다. 죽어가면서 사람들의 눈은 마동을 쳐다보았다. 무서웠다. 겁이 났다. 눈동자가 끓는 물속에서 녹아 없어지듯 거품을 내다가 퍽, 하며 눈동자의 형체가 터져버렸다.

  마동은 몸을 떨었다. 시시때때로 이러한 환상이 보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나타났다가 없어지곤 했다. 마동은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약을 먹어서 괜찮아졌지만 공명과 함께 무서운 환상은 마동을 사무실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원해가 괄태충의 등껍질처럼 마동의 옆에서 오늘저녁부터 같이 조깅을 할 요량이었지만 마동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먼지 퇴근을 했다. 마동은 태양의 열기가 조금 누그러졌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오니 우동이나 칼국수 같은 면식이 떠올랐다. 집으로 오는 동안 힘이 더 빠져서 칼국수 재료를 구입하지 못하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할 수 없이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으려다가 근처의 배달음식은 레토르트식품을 그냥 데워서 배달해준다는 것을 알기에 대형마트에서 간단하게 조리를 해 먹을 수 있게 재료를 직접 구입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집을 나섰다. 몸이 무거웠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밖은 생생하게 밝고 뜨거웠다. 저녁 8시정도가 되어야 여름의 해는 그 의미가 사라진다. 마동은 진정 따뜻한 우동이 먹고 싶었다. 마트에서 탱글탱글한 면을 판매하는 부스로 가서 직접 만든 생면으로 된 우동 면을 구입했다. 두 묶음을 바구니에 담았다. 채소코너에서 쑥갓과 신선한 채소 몇 종류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재료를 선별해서 바구니에 담은 마동의 움직임에 망설임이나 고민은 없다. 다년간 혼자서 생활하며 습득해온 방법으로 몸은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있었다. 이것저것 비교하며 고민하는 모습은 마동에게 제외되어 있었고 동선도 항상 비슷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부스는 육류를 판매하는 코너, 그 중에서도 소고기를 세일 할 때이다. 모여든 사람들은 좀 더 근내지방이 많이 낀 소고기를 장바구니에 저렴하게 담는 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부드러운 고기가 신선하다는 육류가 균형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동은 육류코너를 지나쳤다. 오늘은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마트에서 장을 봐야한다. 감기기운 때문에 몸이 무거웠으며 귀안으로 산만한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주위의 안 좋은 냄새가 자꾸 올라왔다. 사람이 자아내는 숨 냄새, 움직일 때마다 살과 살이 접히는 부분에서 나는 체취, 두피에서 나는 머리 냄새, 음식 찌꺼기가 입 안에서 세균화 되어서 나는 비린 냄새 그리고 이 모든 냄새를 덮기 위해 뿌린 향수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더욱 어지러웠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 마동은 육류코너를 피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잘 보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마트 안을 이동했다. 마동의 머릿속에는 마트에 들어가기 직전에 구입품목의 리스트 정리가 끝난 상태이고, 구입하고자 하는 물품이 다 팔려나갔을 때는 제 2품목까지 입력된 상태였다. 만약 구입하려는 물품이 없다면 곤란하고 난처했다. 미리 대처물품을 생각해놓지 않으면 아무 것이나 집어 오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후회가 되고 돈을 낭비하게 되는 꼴이 된다. 마트에서 마동의 손놀림은 물건을 고르는데 망설임이 없고 정확하게 손을 뻗는다. 우동을 끓이면서 샤브샤브처럼 온갖 채소를 집어넣으면 국물 맛이 시원하다. 식재료가 지니고 있는 맛을 전부 느낄 수 있는 국물을 맛 볼 수 있다.

  마동은 그 맛을 잘 알고 있다.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에 꽤 맛있게 먹어본 음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잘 먹지 않는 육류처럼 국물이 많은 음식도 마동은 잘 먹지 않았다. 가끔 생각이 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 같은 날이다. 따뜻한 국물을 양껏 들이키고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회사에서 들고 온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동은 장을 다보고 마트를 나서면서 오늘은 우동샤브샤브에 육류를 좀 넣어서 먹어볼까하는 생각에 순간 사로잡혔다. 고기의 날 것의 맛이 떠올랐다. 마동은 육류코너에 잠깐 들렀다가 마지막세일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했다. 날고기에 대한 강한 끌림은 어제 밤의 끌림과 흡사한 욕망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른번개가 조명을 켜듯 번쩍 거렸다. 어제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있을 때 여러 번의 마른번개가 비가 그친 후 번쩍거렸다.

  마동은 아직도 어제의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마동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벤치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 이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는 온데간데없었고 마동 혼자만 벤치에 어설픈 자세로 누워있었다. 아랫도리에 동통이 있는 걸로 보아서는 분명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와 벤치에서 교접을 이루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동은 그저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동통을 제외하고는 그 교접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감각적으로 기억이 자꾸 후퇴해갔다. 마트에서 집으로 오면서 내내 그 생각에 사로 잡혔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마동이 살고 있는 집은 15평의 1LDK의 독신자 아파트다. 방이 따로 있고 거실과 조리대가 있는 키친이 전부 하나씩은 독신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마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혼자 살면서 욕조에서 목욕 후 욕조에 낀 때를 제거하는 청소가 귀찮아서 욕조가 없고 샤워만 할 수 있는 구조의 집을 선택했다. 비교적 좁은 욕실인 대신 조리대가 크고 작은 홈 바가 들어서있는 키친의 공간에 더 마음에 들었었다. 계약을 할 때 마동은 잠시 욕조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 집으로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오늘같이 파괴적인 피곤과 감기와 무엇인지 모를 얄궂은 상념에 휩싸인 날에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 없이 물이 코의 끝선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 행복일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고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든, 올바른 선택을 하든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올바르지 않다고 할지라도 본인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누굴 탓 할 수는 없다. 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에는 마동이 사는 집보다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욕조가 딸린 다른 집의 구조를 생각하며 마동은 샤워기의 물줄기를 몸으로 받았다. 몸살기운이 아침보다 더해지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돗물의 냄새가 이렇게 역하게 났단 말인가.

  머리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수돗물에서 화학약품냄새가 심하게 났다. 마동은 샤워기의 주둥이를 돌리고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몸을 비켰다. 샤워기입구를 들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쏟아지던 물줄기가 이내 똑똑 물방울로 변했다. 샤워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샤워기의 입구부분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샤워기는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지만 아직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했다. 샤워기가 오래되어서 풍기는 냄새는 아니었다.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가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인상을 찌푸렸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을 정수기에 거를 필요 없이 마셔도 될 만큼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기관이나 집에서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단지 수돗물이 이동하는 수도관의 마모여부나 세월의 흐름이 관을 통과하는 수돗물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만 관리를 하지 수도관은 관할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도국이면 수도에 관련된 건 모두 관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위생에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다니.

  마동은 순간 불쾌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그것이 아니라면 수도관 때문에 물이 점점 더러워져 약품을 이렇게 많이 넣은 걸까.

  가뭄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산성이 강해서 점점 약품을 많이 넣어야 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렇게 역할정도로 화학약품냄새가 많이 나는 수돗물을 가정에 보낸다는 것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동은 다시 샤워기를 틀어서 코를 막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칠을 하고 비누타월로 온몸 구석구석 씻어냈다. 발가락 사이도 비누칠을 진지하게 했고 배꼽도 진지하게 씻어냈다. 귀 안도 씻어냈고 겨드랑이와 무릎안쪽도 진지하게 비누칠을 했다. 비누칠이 끝나고 숨을 참으며 약품냄새가 심한 수돗물로 헹궈 냈다. 마동은 샤워를 하면서 페니스를 쳐다보았다. 격동의 밤을 보낸 것을 아는지 페니스는 축 늘어져 있었다. 페니스를 보니 어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숨 막히는 가슴골과 다정하지 않은, 그렇지만 부드럽고 냉랭한 긴 손가락과 투명한 손톱, 미스터리한 눈빛의 눈동자를 지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을 생각하니 페니스가 또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던 감각은 가물가물했다. 마동은 머리를 흔들며 샤워에 집중했다. 페니스는 그렇게 쉽게 물먹은 스펀지처럼 되지 않았다. 발기를 하니 어제 벤치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 사정을 한 뒤 느꼈었던 동통이 페니스에서 느껴졌다. 샤워를 끝내고 몸에 베이비오일을 침착하게 구석구석 발랐다. 인간이 만들어 낸 발명품 중에 굉장한 물품들이 여럿 있겠지만 마동은 그 중에 베이비오일을 순위에 넣었다. 사시사철 베이비오일을 가지고 다니며 샤워 후에는 몸에 꾸준하게 발랐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후에도(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째다) 집에서 샤워를 한 후에도 여름의 한낮에 태양 밑에서 조깅을 할 때에도 그리고 밤에 강변을 달릴 때에도(달리기 전에 한차례 오일을 바르고 달렸다) 노출이 된 피부에 발랐다. 쉬는 날, 낮 동안 몸이 자외선에 드러나는 부분에는 어김없이 베이비오일을 바르고 달렸다. 당연하다는 듯 해변에서 선탠을 할 때에도 마동은 베이비오일을 발랐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의 여름에 해변에서 베이비오일을 잔뜩 바르고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삼십분만 태양에 노출을 시켜도 몸의 빛깔이 캐러멜 색과 비슷하게 보기 좋은 구릿빛으로 변한다. 쉬는 날 여름의 태양이 있는 낮에 해변에 누워서 몸을 태우는 일은 그 어떤 여유보다 즐거운 일이다. 타인이 보면 아무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일에 마동에게는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오일을 발라가며 몸을 제대로 태운다면 여름날의 평소에는 에어컨바람이 없이도 더위를 심하게 타지 않고 잘 견디며 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름에 더위를 피하려고만 하고 시원한 음료만 찾는다. 그래봐야 더 더울 뿐이다. 베이비오일은 몸을 알맞게 태우는 것에 시간대비 효과가 좋았다. 마동은 그 발견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마동은 고등학교 때 어딘가에서 누군가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구타를 당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병원에 입원 후 깨어났을 때 여러 가지의 기억이 사라졌고 훼손이 되었다. 압제에 의해서 삽으로 구덩이를 파내듯 부분적인 부재라는 기억의 구덩이가 있었다. 그 후, 비교적 마르고 희멀건 자신의 신체가 싫었다. 그런 육체를 지니고 있어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기분이 들어 억울했다. 마르고 희멀건 자신의 육체는 뚱뚱하고 까무잡잡한 몸에 비해 나약해 보였으며 뚱뚱하고 희멀건 몸에 비해서도 못나보였다.

  마동은 베이비오일을 바르고 팬티를 입고 욕실을 나왔다. 에어컨을 26도로 맞춰놓고 선풍기를 틀어 놓으니 시원했다. 냉랭하고 차가운 에어컨의 느낌이 아니라 초가을 속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바짝 말린 다음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우동 생면을 끓고 있는 냄비 안에 넣었다. 도마 위에서는 깨끗하게 씻긴 채소들이 ‘날 잘라 달란 말이야’라며 널브러져있었고 마동은 칼질을 하려했다. 도마 위의 채소를 칼로 써는 순간, 서걱서걱 하는 소리가 듣기 싫은 소리만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서. 걱. 서. 걱.

  귀에 증폭트랜스미션을 달아 놓은 것처럼 채소를 써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몹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치아를 벽돌에 갈아대는 소리만큼 듣기 싫었다. 마치 소머즈가 된 기분이었다.

  소머즈가 된다면 듣기 싫은 소리도 이렇게 크게 들리니 스트레스가 심했겠군.

  얇은 쑥갓을 썰어도 그 소리가 바로 확성기에서 빠져나온 소리처럼 귓전에서 들렸다. 채소를 썰었던 오른손에 들린 칼을 왼손으로 옮긴 다음 오른손 검지의 끝으로 귀안을 고집스럽게 후볐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팔팔 끓고 있는 우동에 쑥갓과 채소들을 넣은 다음 냄비 채 들고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 안에 썰어놓고 매일 먹는 생양파가 담겨있는 락앤락 통을 꺼냈다. 마트에서 3캔을 사들고 온 칼스버그도 한 캔 꺼냈다. 이제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는 안도감에 마동의 표정은 안정돼 보였다.

  자 이제.

  식사를 하려는데 잠시 동안 자신의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있다면 지금 자신의 마음이 조금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어제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 올렸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동의 페니스는 자동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들어서 바라보았다.

  이 손으로 그녀를 만졌는데.

  손끝으로 전해지던 어제의 감각적 기억은 사라져갔다. 촉감은 기억에서 제일 빨리 떨어져 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사운드 독에 연결 한 다음 음악을 틀었다. 벵엔올룹슨의 스피커는 거실의 공간을 풍부한 음량으로 채웠다. 노래는 ‘거울잠’이라는 무명가수의 ‘세상의 끝’이라는 노래였다.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가 사라진 가수와 노래다. 인기가 없었다. 요즘 인터넷으로도 검색이 되지 않는 노래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행방을 모르는 가수가 되었다. 이 그룹은 강한음악을 하는 록밴드 형식의 가수였는데 이 노래 하나만은 잔잔히 흐르는 록발라드로 불렀다.

  ‘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은 끝나버렸어’라는 후렴구가 계속 반복이 된다. 내용은 잘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세상의 끝’이라는 노래를 영어로 된 음반으로 발표를 하고 활동을 했다. 내용이 꽤 초현실적이고 노래코드진행방식도 일반 노래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들은 오래전에 미국진출을 앞두고 실험적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틀즈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벌써 4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동은 이 노래에게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동도 알 수 없지만 이 노래를 늘 듣고 있다.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려 하네

  으깨진 새들의 날개와 신경질적인 여자들의 분노

  삶을 팽배히 지배하는 목 없는 자들의 소리 없는 비명

  나는 죽음이 느껴져 죽음이 느껴져

  움푹 들어간 네 눈이 보여

  그들은 전부 이곳을 삼켜버릴 거야

  헤테로피아를 만들고 싶어

  이곳은 사라지겠지 사라지겠지

  세상의 끝에 가면 우리는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라는 노래가 가사가 죽 흘러나오고 허밍부분이 나온다. 노래를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다. 마동은 어쩐 일인지 여름에 이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겨울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 여름에 많이 듣는 노래다.

  [자동차가 출발한다.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출발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로 자동차는 나가고 있다. 양옆으로 보이는 인도에는 수북이 쌓인 낙엽이 보이고 가로등은 말라버린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보인다. 날은 시리도록 흐리고 잿빛의 하늘은 사람들의 등에 내려앉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자동차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도로에 멈췄다. 이곳은 한국의 모습이 아니다. 예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집들이 죽 늘어선 도로에 자동차들은 썩 보이지 않고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는 자동차는 아주 오래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자동차들이었다. 사람들이 인도를 지나쳤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바닥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그런 나라나 그 나라의 한 도시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 가봤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뿐이다. 자동차는 계속 천천히 도로 위를 가고 있다. 급진적인 반전도 없고 자동차라고 느낄 만큼 빠르게 나가지도 않는다. 자동차 앞으로 누군가 뛰어 들어오지도 않는다]

  마동은 예전에 ‘거울잠’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공허함을 심하게 느꼈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지만 여름에 느끼는 공허함도 나쁘지 않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마동은 냉장고에서 꺼낸 양파가 들어있는 통을 열었다. 엄청난 양파냄새의 역함이 코 속으로 들어왔다. 양파 물에 목욕하고 양파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냄새는 심했다. 어찌나 양파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는지 마동은 재빨리 통의 뚜껑을 닫았다. 마동은 양파를 거의 매일 먹어왔다. 생 양파를 잘 썰어놓고 조금씩 씹어 먹는데 지금은 양파냄새 때문에 양파를 집어 들지도 못했다. 양파 통 뚜껑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시원하게 목으로 잘 넘어갔다. 양파를 포기하고 우동을 한 젓가락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뱉어냈다. 우동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을 뿐더러 삼킬 수도 없었다. 마동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끈한 우동국물은 언제나 좋아,라며 후루룩 마셨던 국물도 삼킬 수 없었다. 우동국물의 맛이 이전에 마셨던 맛이 나지 않고 뜨겁기만 한 썩은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으면 덜 이상하겠지만 죽은 지 오래된 생물을 우려낸 물의 맛 같았다.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 저녁에 우동을 직접 끓여 먹었다. 우동의 국물과 굵고 졸깃하고 탱탱한 면발의 식감을 아주 좋아했다. 자주 먹지 않아서 더욱 그 맛을 즐겼다.

  우동 면을 잘못 산 것일까.

  하지만 늘 구입해오던 식재료는 맛있게 먹었던 예전과 동일했다. 오늘 구입해온 우동사리도 늘 구입하던 면이었다. 다만 마트는 높아지는 물가 때문에 가격은 몇 백 원씩 꾸준하게 올랐으며 우동을 만드는 재료는 국내에서 국외로 옮겨갔지만 그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고 마동은 줄곧 그 식재료를 구입해와서 집에서 끓여 먹었다. 마트에는 그로서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것들은 종류별로 가지런하게 죽 서서 손을 내밀어 구입하려는 인간들을 유혹했다. 마동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마트 안에서 움직인 동선과 선택한 물품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그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고르기란 어쩌면 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주관적인 성향으로 그 중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하고 계산 후 마트를 흡족하게 빠져나온다. 그건 어떤 면에서 보면 놀랄만한 현상이다.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늘 선택하지만 제대로 나는 선택한 것일까.

  마동은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던졌다. 마트라는 거대회사에서 음식에 장난을 치는 것일까. 하지만 자신의 이런 의문이 어딘가 겉돌고 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고 그 잘못은 내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트니, 수도국이니, 그런 곳을 불온한 대상으로 여기려 해도 그들은 이전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마동이 걸린 감기 때문에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감기가 지독하게 들어버린 것이다. 어딘가 삐거덕거리게 된 것은 마동 자신이다.

  나는 나의 잘못을 나의 밖에서 찾으려 하고 있어.

  잠이 들어 버리고 나면 꿈속에서 마동 자신이 눈을 뜨고 보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마동의 몸을 종이처럼 구깃구깃 접어서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마동은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어젯밤부터 모든 것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때 아닌 치누크가 불어왔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인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잠깐 피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동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기이하게도 원래 그 맛으로 목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맥주는 맛을 잃지 않고 본연의 맛 그대로를 지니고 체내로 흡수되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마동은 다시 양파의 통을 열어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입을 벌리고 곧바로 뱉어 버렸다. 사해에서 살아가는 눈이 하나달린 해저생물의 비늘을 씹어 먹는 맛이 났다. 양파 통 뚜껑을 재빨리 닫았다. 입안에서 저주스런 불길한 맛이 치아에 퍼지고 혀를 통해서 뇌에 전이되는 것 같았다. 마동은 입을 헹구고 남은 맥주를 콸콸 입안으로 다 털어 넣었다. 욕이 나왔다. 조금 큰 소리로 “씹할”라고 욕을 하니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눈물은 굵은 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몸이 비정상적일 때에도 이렇게 입맛이 이상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어디서 시작된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마동 자신도 놀랐다. 눈물을 흘릴만한 감정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보란 듯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마동의 곁을 죽음으로 떠나버린 사람 앞에서도 울지 않았고 여자와의 헤어짐에서도 울지 않았다. 입사초기 뇌파채취의 훈련 끝에 투입된 실무에서 실패를 맛보았을 때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흐르는 눈물은 어째서 의지와 생각과는 무관하게 눈에서 나오는 것일까.

  눈물이 흐르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우동을 물에 씻어 물기를 짜 낸 다음 아파트 밑의 음식쓰레기통에 버리고 올라왔다. 요즘은 쓰레기통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해야만 한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간다. 이런 세상 속에서 때때로 인생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오늘하루 동안 자신의 의지라고는 썩어빠진 나뭇가지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기이한 여자,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비를 맞으며 대나무 숲의 벤치에서 교접을 한 탓이다. 그것밖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야외에서 처음만난 여자와 섹스를 즐기고 그 천형으로 호된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이유를 붙이자면 그런 것이다. 감기몸살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바이러스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여름의 감기는.

  마동은 몸살을 떨쳐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살 때문에 눈물 따위를 흘릴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 것처럼 하면 된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니 처지를 생각하며 우울하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비스바와 심보르스키가 자신의 시에서 ‘단 한 번의 같은 밤은 없다’라고 한 것처럼 매일 이어지는 밤이지만 같은 밤은 없다고 마동 역시 느끼고 있었다.

  매일 같은 곳을 달리며 같은 시간동안 조깅을 했지만 스쳐가는 사람들과 날씨와 기후에 따라서 매일매일 다르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내면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서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로 흘러가는구나.

  매일 지나치는 다른 얼굴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서는 하나의 공통된 고독이 느껴졌다. 고독에는 약간의 색이 달라서 지니고 있는 시간에 따라 농도가 달랐다. 고독의 그 사람의 얼굴과 닮았다. 고독은 그들의 몸 안에서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어느 날 부터는 사람을 아예 변화시켜 버리기도 했다. 밤은 매일 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 마동은 캔 맥주를 들고 거실의 끝으로 갔다. 베란다를 통해 밖을 보니 이제 어둑어둑해져갔다. 마동은 소피아 로렌처럼 견고한 관능을 지니고 있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다시 떠올렸다. 그 순간 빛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누구의 얼굴과 오버랩 되었다. 어쩐지 마동은 이제 그녀를 떠올리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페니스의 반응.

  괜찮아, 집인데 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굉장한 관능을 몸에 지닌 채 어째서 나에게 다가왔을까.

  그 관능은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관능이었다. 견고한 관능 속에는 침범할 수 없는 배려가 불분명하지만 서려 있었고 그 배려라고 불리는 관념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자신의 그 관능으로 마동을 이끌었다. 마동은 길에서 만난 낯선 여자가 가져다 준 섹스의 기이한 흥분을 계속 만끽했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말하는 이교도일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길거리 창녀는 더더욱 아니다. 돈이라든가 물품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는 마동이 생각하는 현실적 존재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이다.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다수에 속하는 타입이 아니라 소수에 속하는 타입이었고 소수라고 하는 부분은 성가신 일을 떠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소수에 자신을 던졌다는 것이다. 마동은 소수에 속한 그녀가 하는 일이나 사상을 간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어떠한 소수에 속하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녀 자체로 나에게 다가왔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베란다에 서서 보니 아파트 단지 내에서 뛰어놀던 개구쟁이 아이들의 미운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있는 단지에서 놀지 않고 조용한 독신자 구역으로 들어와서 왕왕 놀곤 했다. 해가 모습을 숨기니 세상 곳곳에서 인공조명을 하나둘씩 밝히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운전자들은 미등과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거실의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도심지 중심의 네온에도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저녁은 언제나 그렇듯이 낮에는 병든 닭처럼 고개가 밑으로 까닥까닥 거릴 정도로 피곤을 거듭하지만 밤이 되면 비정상적이게 인간으로 하여금 활동성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바라는 여름밤이 있다. 그리고 여름밤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여름밤적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비현실적인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탁한 어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세계가 자생적인 비현실이다. 마동 역시 낮 동안의 감기기운 때문에 허덕였지만 약을 먹은 덕분인지 감기기운이 사라진 듯했다. 밤이 세상에 도래하니 피곤과 무기력증은 거실밑바닥의 소파가 밟아 버렸다. 몸살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이 비현실적으로 상쾌했다. 몸살을 이겨낸 것이다.

  회심의 미소.

  아아, 회사의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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