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부풀러 오른 뺨을 아무리 화장으로 가려도 가려지지가 않았다. 병과를 내고 싶었지만 오늘은 시험 감독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학생과 동료들의 시선을 피해 교무실로 들어갔다. 시험 감독을 하는 내내 시선은 학생들에게 가 있었지만 교실은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지? 지금까지 나란 존재는 무엇이었지? 자문만 했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빼곡히 답을 적고 있었다. 물론 오답도 나올 수 있다. 그 오답에 대해 내가 질책을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교무실로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윤선생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계십니까?”
처음엔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살짝 어깨를 치며 한번 더 들려 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무의식 중에 벌써 얼굴을 가리는 버릇이 생기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 전근을 온 영어선생님인 김인걸이었다. 가끔씩 싱거운 소리로 동료들을 웃기게 하는 선생님이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응대를 해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얼른 자기자리로 가주길 기다리며 가렸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힐끔 다시 쳐다보는 시선이 무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꼭 이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을 하루 종일 피해야 했다. 이런 날들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꽤 오랜 시간이 아닌 세월이 지나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선생님인 김인걸선생님과 친해지게 되었지만 이날을 계기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 땀이 진득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날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후배네”
총 동창회 가을 행사에 대한 문자를 받고 쳐다 보는 중이었다. 금방이라도 전쟁터에서 죽을 것만 같던 그날이 지나 간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사이 변한 게 있다면 신랑의 외도가 아닌 외박과 무언실행이었다. 그리고 초췌할 정도로 바싹 말라버린 해숙의 몸이었다.
“예? 이 학교 나왔어요?”
“예! 저는 27회. 선생님은요?”
일어서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몇 회인지를 듣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잊혀졌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듯이 해숙은 의자에 맥없이 주저 앉고 말았다.
“어? 선생님 왜 이러세요?”
“아뇨! 잠깐만요”
호흡을 가다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문득 그 사람 이름이 떠올랐다. 물론 수리가 먼저였지만 그 이름은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으려고 강제적으로 뇌 속에서 삭제해 버렸다.
“창훈이라는 사람을 잘 아시겠네요?”
이 질문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린 사람처럼 보였다.
“당연하지. 내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데. 한 달에 서너 번은 만나! 그런데 어떻게?”
어지러웠다. 배신감도 들었다. 그보다 이 사람들이 자신을 모르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모두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했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항상 패거리를 이뤘다고 들었다. 그런 놈들이 그 당시에 신랑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 사람은 은희 오빠였고 자신이 교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부탁할 때도 알고 있었다. 어느 학교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 지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궁금했을 것이다.
신랑처럼 엉터리 뒷조사로 자신을 은희 오빠와 불륜의 사이로 매도하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게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꿰뚫어볼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었다는 생각밖에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이놈에게 농락당했다. 그 동안 친절하게 대해줬던 것도, 속속들이 전부 알면서도 파렴치하게 한 가식적인 위로로 밖에 여겨 지지 않았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어떻게 그렇게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아 밖으로 뛰어 나갔다. 들어오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해야 했다. 혼자 펑펑 울 자리는 아무데도 없었고 너무 멀었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펑펑 울었다. 창피했다. 지금부터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막막했다.
이런 망신을 가져다 주게 한 원인 제공자인 신랑이 다시 집에 들어와도 이런 하소연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자업자득이라는 비아냥이나 또 그것밖에 안돼! 란 말만 들을 게 불을 보듯이 뻔하다. 그렇다고 은희에게 이 말을 할 수도 없다. 지난 번에 신랑에게 뺨을 맞았을 때보다 더 이상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정신을 감싸버렸다. 그때는 자신이 먼저 신랑의 귀사배기를 때리려고 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변명은 어디 가서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뭔가?
잔잔한 망망대해에, 파도도 너울도 없는 바다 한복판에서 혼자 난리구석을 떠는 작은 나룻배에 탄 기분. 변기통이 나룻배 같았다. 아니 자신이 망망대해에 표류된 나룻배 같았다.
수학 문제 같으면, 방정식 같으면, 얽혀버린 머리 속을 단숨에 깨끗이 정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깨진다는 말을 처음 실감하는 것 같았다. 귀에서 윙윙대는 소리도 들렸다.
단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신나게 춤을 춘 광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관객이 떠난 무대를 나가는 기진맥진한 광대를 누군가가 불렀다.
“윤선생!”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이 금방이라도 얼싸 안을 것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쫓아오느라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가 무릎을 한대 걷어차고 싶었지만 그를 기력도 없었다. 차라리 툭 튀어나온 배를 주먹으로 한대 갈기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만약에 그렇게 하면 남자들은 전혀 반대의 뜻으로 받아 들일 수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가볍게 목례 정도만 해주고 가던 길을 돌아서 걸었다.
“어이! 후배! 호프 한잔하고 가지?”
벌써 반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후배라고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인사한 적이 합쳐야 열 손가락 안이다.
얼마 후면 손주를 볼 나이에 ‘어이’ 씁쓸히 코웃음을 치고는 못 들은 척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도 서둘러 뒤따라왔다. 또 헛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