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누구나 한두 개 정도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그 것이 겉으로 드러나 타인에게 상당한 피해 주던 주지 않았던, 본인만 아는 부끄러운 과거. 해숙도 사람이기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 그 과거는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 또한 본인만의 생각이었다.
과거를 다시 들춰냈다. 이런 과거를 들먹거릴 때 마다 비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좋을 땐 이런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던 나쁠 때 꼭 이런 말을 약방의 감초처럼 꼬집어 냈다. 한동안 어찌 조용했다. 신혼 초에도 밖에서 화가 나서 들어오면 아주 가끔 이런 욕을 했고 그러다가 잊을 만하면 또 이런 욕을 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신랑의 의식 속에서는 은희 오빠와 자신, 해숙과의 사이를 의심하는 뭔가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이런 욕을 들었을 땐 굉장히 놀랬다. 학창시절 때 학교에서는 단 한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교사가 되고 난 뒤에 학교에서도 물론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런 말은 결혼하고 간혹 듣는, 욕이 아닌 일상적인 언어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신랑이 그런 말에 대해 해명을 했다. 자기들이 일하는 세계에서는 일상적인 말이라고 했다. 그렇게 화만 냈지 물건을 부순다던가 폭력을 쓴다던가 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그는 사과를 했다. 그가 일을 하는 곳에서는 그런 욕은 흔한 말에 불과하며 위험한 공사 현장이라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일상으로 돌아갔다.
해숙은 그렇게 적응을 했고 신랑의 바깥 생활과 같은 사고의 범주에 길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욕지거리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손주들 앞에서도 씹할 뒤에 년이 붙어질 게 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젠 말씀을 가려서 하세요. 당신이 화가 난다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퍼붓고 다음 날 용서를 구할 나이는 아니잖아요. 조금 있으면 애들 시집 장가가고 손주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을 할거예요. 그 욕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잖아요”
임정훈은 당황해 하고 있었다. 한번도 이런 식의 반박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 전에 보지 못했던 눈매. 노려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해숙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해숙도 남편이 이런 식으로 당황하고도 갈등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과 반대로 또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고는 뒤로 휙 돌아서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을 졸졸 따라 다닌 게 부끄럽지도 않아?”
비겁하다는 것. 그거 말고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렀다고 비겁하다는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했어요! 치졸하게 제 뒤를 캐고 다녔어요? 당신 그 것 밖에 안 되는 위인이었어요?”
“그래! 배운 게 없어 그랬다. 당신처럼 똑똑한 년들은 그렇다고 해서 깨봤다”
“똑똑한 년들은 어떻길래?”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눈알을 부라리고 달려 들은 게 임정훈을 더 분노하게 했고 입에서 더 치사한 말을 나오게 했다. 그리고 곧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렸다.
“나이 들면 동기 회에서 바람이 더 난다고 하더니 당신은 졸졸 따라 다니다가 내몰래, 뒤 늦게 바람이라도 났던 모양이지. 어릴 때는 공부도 잘 하고 대단한 놈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빈둥대고 노는 놈이라 걷어찼던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는 별 다른 이유가 없잖아. 계속 만나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피해도 보지 않았고 당신도 너그럽게 용서를 해 줬을 건데”
그냥 쳐다 보는 것 외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저급한 삼류 소설을 읽고 왔다는 생각이 잠시 들다가 ‘아차’도 떠올랐다.
‘저런 무식한 놈이 삼류 소설이라도 읽었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삼류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선악 정도는 구분해 있었을 것 이다. 아니면 책 자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기심 나는 부분만 읽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은 잠시였고 그가 사는 세상과 자기가 사는 세상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랑의 껍데기는 어딜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남성석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가 모두들 부러워하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돈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 딱 하나 없는 것은 지금 같은 행태였다. 이런 사람들을 학부모를 통해 자주 체험을 했다. 물론 그들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 그들은 항상 나서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품위가 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몇 마디 나눈 후에는 그 사람들의 본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니다. 파악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드러내 주었다. 그때마다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부정은 오히려 긍정으로, 그 학부모들이 그렇게 받아드리듯이 이 사람도 받아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고개를 돌려 애들 방으로 갔다. 그때 뒤에서 또 몸서리를 칠 정도의 모욕적인 말이 귀를 어지럽게 했다. 그는 계속 무슨 말이던 하고 싶든 것 같았다. 그래야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듣고 왔는지 모르지만 이건 혼자서 상상하고 결론을 내린 말임이 분명하지만 자기가 그 오빠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명확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은 부부가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때 팬티라도 벗어주고 매달렸어야지. 그 놈이 여자를 좋아한다던데.
이게 아내에게 할 말인가? 이 사람이 일하는 세계가 거칠다곤 하지만 이렇게 앞뒤 구분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건 오히려 그 세계 사람들을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들부들 떨렸다. 완력으로 이 사람을 절대 제압할 수 없다는 걸 모를 만큼 해숙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말에 대한 대응은 반드시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숙의 손 바닥이 그의 귀사대기로 향했다. 그리고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신랑이 아닌 해숙이가 나뒹굴다 기절을 해 버렸다. 해숙이 손이 신랑 뺨에 가기 전에 신랑 손이 먼저 해숙이 귀사대기를 강타했다. 건설현장에서부터 잔뼈가 굵은 그의 손. 해숙이가 숨이 멎지 않을 걸 확인하고는 그는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위조로 시작한 삶에서 겪었던 고통이 가져온 자기 증오의 은폐와 감춰둔 본성을 한꺼번에 해숙이 탓으로 폭발시키고는 그는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