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는 산속에서 올라 오는 습한 수증기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짠 수증기가 뒤섞여 뿌연 안개를 만든다. 그래서 새벽에는 바다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새벽이 잠시 뒤에 지나가고 나면 눈을 아리게 하는 붉은 태양이 오른다.
그리고 곧 파란 바다가 훤히 보인다.
새벽부터 밤까지 여기에 머물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볼 수 있다. 물안개부터 시작해 바다 위를 검은 수평선으로 만드는 구름과, 그 수평선을 발갛게 색칠하는 태양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일반적인 산과 땅과 바다와 똑 같다. 뭐 그렇게 특별 난 게 없다.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 않다고 투덜거려야 하는 그런 아주 가격이 싼 골프장이다. 그래도 여기를 자주 찾는 건 가격이 싼 것도 있지만 사시사철 변해는 경치가 좋아서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요즘 세상에 골프를 친다고 배부른 놈이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를 찾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있다. 좁고, 바람 세고, 안개 자주 끼고, 춥고. 이런 데서 돈을 버린다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다. 돈이 많으면 미쳤다고 여기 오냐? 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그러면 돌아 올 핀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돈도 없는 놈이 무슨 놈의 골프를 치냐는 비아냥.
오래 전부터 사람에 대한 가치의 잣대는 돈이 중심이었다.
특히 요즘 세상은 더 하다. 예전처럼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시대는 끝났다.
돈 많은 부모를 둔 자녀는 온갖 과외로 명문대로 가는 시대다. 창의력이 아닌 주입의 결과물을 부모는 대만족을 하는 시대다. 자녀도 마찬가지고. 골프를 치면서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후회도 한다. 여기에 오는 돈으로 애들 학원에나 보낼걸.
골프는 돈과 시간이다.
돈 많고 시간 많은 놈이 절대로 잘 칠 수밖에 없다. 그런 줄 뻔히 알고 있는 두 놈이 지금 주제 넘게 골프를 치고 있다. 굳이 핑계를 댄다면 여건에 맞게 치고 있다. 이런 싼 곳에서 즐기고 있다. 이런 곳에서 즐긴다고 해서 꼭 골프만 치는 게 아니다.
“야! 임마! 정신 사납게 뭐해? 너 칠 차례야”
영철이가 이 놈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는 빨리 치라고 재촉을 한다. 이 놈은 이제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까지 찍고 있다.
“야! 경치 좋은데. 올 때마다 새로워. 허허허”
그리고는 사진기와 겸용인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꾹 눌러 넣고, 얼른 공을 치고, 제 할 짓 다하고 영철이 옆으로 바짝 다가 붙어 서는데 영철이가 그 사이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귀찮은 표정을 짓고는 골프보다 자연에 매료돼 있는 수리 기분을 팍 잡치게 하는 말을 한다.
“야! 또 전화 왔단다. 한번 도와줘라.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사람 애간장 타게 해”
수리는 이미 ‘안돼!’을 천명해버렸기 때문에 들은 척 만 척 해버린다. 생각도 아예 다른 쪽으로 돌려 버렸다.
골프를 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나 이 운동을 배부른 놈들의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면 다른 운동 종목과 달리 골프는 도란도란 얘기할 시간이 엄청 많다.
축구나 야구나 농구나 테니스나 어떤 운동에서도 상대방과 신중하던 잡다하던 경기 중에는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대화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신중하게 경기에만 집중한다. 물론 경기 중에 치고 박고 싸울 일이 벌어지면 심판과 관중이란 보는 눈이 있어 거칠게 싸우지는 못한다.
골프도 마찬가지일 때가 자주 있다. 즉! 간혹 거칠게 싸운다는 말이다. 그 놈의 돈과 자존심 때문에 으르렁거리는 치졸한 사람들이 골프를 치는 사람 중에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생명 연장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돈푼 꽤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놈은 아예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상속으로 인한 졸부들은 절대로 같이 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다. 똑 같은 족속끼리에는 우리가 말 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돈의 개념이 다른 족속들이다. 그런 놈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려면 실력보다 돈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잘 치던 못 치던 뒤끝! 뒷담화! 도 각오해야 한다.
인간이면서 개뿔 달렸던 놈으로 전락된다. 그들이 개이기 때문에 유유상종의 배려를 받게 된다. 개뿔도 없는 놈이 골프를 친다는 말을 감수해야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골프란 운동은 채를 잡는 순간부터 동반자는 이겨야 할 상대며 적군이 돼 버린다. 물론 다른 운동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이 동네가 조금 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잠시 털어놓았다. 덧붙이자면, 내기가 격해지면, 즉 타수당 금액이 높아지면, 서로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벌한 분위길 조성할 때도 흔히 있다. 이중엔 오가는 돈이 아닌 구시렁거리는 말이나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경제적 수준으로 비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놈도 있다.
이런 놈과는 골프뿐만이 아니라, 길가다가 우연찮게 마주쳐도 모른 척 해야 할 놈이다.
이런 부류의 족속들과 전혀 다른 부류도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 지는 부류. 굳이 내기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갈망한 타수가 나오지 않으면 동반자 탓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도 여기에 있다.
“야! 오지랖 넓은 소리 그만하고 공에나 집중해! 그리고 공 칠 때는 웬만하면 휴대폰 좀 끄라. 내까지 정신 사납다. 이런 비싼 데서 돈 아깝게 쓸데없는데 신경을 빼앗아 가”
대답을 무슨 깨진 공을 산속으로 집어 던져 버리듯이 퉁명스럽게 툭 던지며 여기서 조인돼 처음 보는 여자 동반자에게도 마땅찮은 눈으로 힐끔 쳐다본다. 어찌 보면 수리가 휴대폰으로 골프장 주변 풍경을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이 두 사람 때문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무슨 심각한 일이 조인된 한 여자에게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을 치다가 중간 중간에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계속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러면 수리는 그 여자가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같이 온 사람 같았으면 벌써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영철이 전화 통화와 모르는 이 한 여자의 전화 통화 때문에 정신이 산만했고 짜증도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