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그 앞에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집 사람 말로는 숨을 못 쉬겠다며 가슴을 두드려서 쓰러지길래 119를 불렀다고 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지긋이 감고 그때를 들으면서, 그때도 떠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 싱겁게 농담을 곁들여 둘만의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애를 쓴다.
“그걸 내보고 믿어 라고? 호프 집에 간 건 네가 만들어 낸 말이고 문병 온 사람은 내 눈과 귀로 확인을 못했으니 그건 믿을 수 없는 말이고, 내가 소갈머리가 좁은 게 아니고 그때 섭섭하다는 말이다. 너라면 섭섭하지 않겠어? 한 놈도 안 온건 확실해. 너도 안 왔어! 그건 내가 분명히 기억한다. 어찌 보면 아무도 안 온 게 천만다행일 수도 있었지. 산 사람 앞에 두고 질질 우는 꼴을 안 본건 내한테 행운이지. 그때 내 옆에는 내처럼 의식이 없이 입원해 있다가 저승으로 간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가족 중에 한 명이 병문안 와서 울고불고 하더라. ‘아이고 어쩌나!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이렇게….’ 그렇게 눈물을 흘리길래 내가 벌떡 일어나 야단을 쳤다. 아무리 의식이 없어도 모두 다 알아 듣는다고….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죽은 사람처럼 경망스럽게 울지 마라고 했다. 그건 산사람에게 오히려 빨리 죽으라는 말과도 같다고 했다.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싹둑 잘라버리는 말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아는 분께서 돌아가셨는데 살아 있을 때 병문안 갔다가 그 분을 차마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돌아왔어야 했다. 세상 떠나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앞에서 거짓말, 가식적인 표정, 어떠한 희망의 말도 할 자신이 없더라”
그 날을 떠올랐지 잠시 말을 멈추고 살짝 눈 언저리를 닦았다. 영철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숙연한 자세로 아무 말없이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수리가 한숨을 깊이 내쉬며 다시 그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할 짓이 아니더라. 내가 입원해 있을 때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을 워낙 많이 봐서 병실 앞에서부터 벌써 눈물이 나는 데 어떻게 내가 들어 갈 수가 있었겠어. 병실에 자리가 비면 그 옆에 있는 장례 식장이 북적거렸어. 그러면 그 사람 침대에 붙은 이름이 거기 빈소 앞에 가서 붙어 있는 걸 내 눈으로 봤는데 내가 어떻게 병실로 들어 갈 수 있었겠어. 거기가 장례식장이 아니고 병실인데 그 사람을 얼굴을 떠올리니까 영전 사진으로 떠오르더라. 왜냐하면 그 분도 망인이 된 그 사람들과 같은 병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 사람의 멀지 않은 장래를 뻔히 알면서 마주 본다는 건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잔인한 형벌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을 떠나 보내고 많이 후회했다. 그 분의 마지막 손! 살아있는 그 따듯한 손도 잡아 보지 못하고 떠나 보내고는 내가 밉더라. 그때 그분 앞에서 눈물을 흘렸었더라도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내 눈물에서 받은 절망이란 상처도 같이 그때 그 죽음과 함께 가져 가겠지만 나에겐 병문안 가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의 상처로 남더라. 그래서 요즘은 상가보다 누가 아프다면 병문안을 더 많이 간다. 그건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짓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살아서 그 분의 손 한번 잡아 주지 못한 게 두고, 두고 내 가슴 속에서 죄로 남아서, 힘들고 아플 때 손 잡아 주는 사람이 진정한 벗이지 죽거나 망하고 난 뒤 안타까워하는 말을 하는 놈들은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너무 숙연한 말을 해서 그런지 차 안은 조용했다. 한번 터진 입은 멈출 줄을 모르고 다시 시작했다. 그때와 그 이전의 병으로 바뀐 수리의 지금 인생은 병을 얻기 전과 지금은 천국과 지옥이란 사실은 영철도 인정하기 때문에 가만히 들어준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잘 알기 때문에 이해를 더 할 수가 있었고 엄숙해지기도 했다.
“우리 주위에 위선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할 때 너도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그때 기억상실증에 걸려 나왔잖아. 퇴원하는 그날! 네가 나를 태워 오는 그날! 초록인 야산이 너무 좋았다. 처음 보는 새 세상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때 나의 지능지수는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수준이었는데 내가 빨리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던 빚쟁이 도움이었다고 본다. 나의 현실을 일깨워준 그들이 고맙더라. 은행이나 세무서나 국민건강보험공단보다 그들이 먼저 찾아와 돈을 빌려줬으니 잊지 마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빨리 회복된 것 같아. 돈을 빌린 기억은 둘째치고 돈이 뭔지도 모르는 놈에게 돈이란 말이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하나의 행운이었겠지. 떼먹은 돈 받으려고 저승까지 따라갈 수고를 덜어줬으니 얼마나 큰 행운이었겠어. 허허! 정신이 조금 돌아 온 후에 돈을 빌려 줬다고 해서 통장을 아무리 뒤져도 그들이 이체한 내역은 없더라. 그래서 마누라하고 은행에 갔다. 혹시나 내 이름으로 된 다른 통장이 있는가 해서 갔는데 없더라. 그래서 현금으로 줬나 해서 장부에도 내 메모장에도 없었어. 그런데 그들이, 그래도 친구인데 나에게 사기를 쳤겠어? 죽다가 살아온 놈에게. 그런 생각은 절대로 않고 갚아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 그런데 그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아직 갚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왜 하필이면 그때냐는 거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만큼 그 놈이 돈이 절실했냐? 그것도 자기 마누라와 너도 아는 친구 앞에서. 그때 이런 말을 하더라. 그 돈 갚으면 그 돈으로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3박 4일로 골프를 치려 간다고 하더라.”
그때의 치욕이 떠올랐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수리가 그런 망신을 당하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걸 영철은 잘 알고 있고, 또 그때 이놈의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분노하고 이었다. 돈 때문에 이놈은 비굴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이 누군지도 영철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놈의 성격으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어디던 나서기 좋아하지만 책임 질 짓을 하지 않기 위해 뒤에서 바람이나 넣는 바람잡이로 알고 있다. 단지 모르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치가 떨리는 동안 사연은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