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누군가가 수리 어깨에 손을 얹고는 잡아 당겼다. 그 사람도 일하면서 만난 부두 근무자인 형님이었다.
“수리야! 너나 나나 조심하자. 저 친구처럼 허무하게 떠나지 않으려면”
“누군데?”
그 이름을 듣고 수리는 바로 죄책감이 몰려 왔다. 그리고는 자기 입과 가슴을 계속 두드렸다.
“이 놈의 주둥이! 이 놈의 주둥이”
그 날 넋이 나가 주저 앉은 형수를 감싸 안아 주지도 못하고 도망치듯이 일을 마치고 몇 달 동안 죄책감을 품고 지냈다.
그리고는 수리도 그 세계를 떠났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은 슬프면 운다. 수리는 어릴 때 소와 개가 우는 걸 직접 봤다. 지금 말하는 운다는 건 맞아서 아파 우는 게 아니다. 죽임을 앞둔 소와 개를 말한다. 집에서 키우던 소와 개가 도살장으로 가던 날 차에 실린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그 차 속에 있을 때가 아닌 마당에 있을 때는 아프면 아프다고 좋으면 좋다고 그에 맞는 표현을 했다.
그러나 그 차 속에서는 아무런 표현 없이, 무표정하게 눈물만 흘렸다. 그런데 수리는 그 세계를 떠나는 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터줏대감의 권력을 밀어주는 이 나라의 세금을 뜯어 먹는 패거리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속이 후련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막막했다. 작은 족쇄는 풀었지만 큰 족쇄를 채우느라 스스로 저지른 대가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세무서에 상납할 족쇄만 더 채우고 더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면서, 막막한 가슴을 두드리며 단지 그 작은 세계만 떠났다.
요즘 수리는 뉴스를 보면서 이 나라를 비웃고 씁쓸해 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자구제, 최소임금인상, 이 말이 나왔을 때마다 수리는 가슴을 친다. 그리고 비웃었다. 예상한대로, 예견한대로 결과가 나오고 있어 이번에는 비웃지는 못하고 그저 가슴만 아프다는 걸 느낀다. 이유는 수리도 대학생인 딸 둘과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어서 이 녀석들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이다. 일자리가 많으면 당연히 좋다.
그런데 수리가 일했던 거기도 충분히 일자리 창출에 한 몫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는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철옹성이었다. 감정과 검량이라는 자격증 각각 6개가 있는, 말하자면 자격증 가진 사람이 12명이 있어야 창업을 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직종이었다.
이런 족쇄를 채워놓고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자구제! 우습지 않은가?
이런 악조건에 일하는 사람들이 여기 자격증을 따르면 영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지금 이 글들은 이 업종을 알리기 위한 글도, 정부를 비난하는 글도 아니다. 단지 지금부터 소설을 엮어가려고 하다 보니 독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 중심이 돼 이야기를 엮어가는 건 절대로 아니다.
수리는 지금! 그 세계를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동생 신랑인 영철과 골프를 치러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해 놓고는 골프를 치러간다. 어불성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잠시만 편견을 고치면 이런 말도 되지도 않은 얘기를 이해할 수 있다.
가만히, 조용히 자신을 돌이켜 보면 된다.
‘나는 헛된 돈을 쓰지 않았나?’라고 자문하면 된다.
노랗게 탈색해버린 잔디위로 거무스레한 낙엽이 산비탈에서 날려 내려와 나뒹굴고 있다. 발아래서 가끔씩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려준 낙엽 하나를 손에 쥔 수리가 그걸 잠시 동안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고는 멀뚱히 쳐다 본다. 낙엽이라고 하면 보통들 축 늘어져 널브러진, 탄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생명을 지탱해줄 뿌리를 잃은, 연줄을 잃은, 생명을 잃은, 잎사귀에 불과한데, 이 낙엽은 이 앞에 나열한 어느 하나에 매달리고 싶어하는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임종 직전에 삶을 더 누리고 싶어하는 마지막 발버둥 같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살짝 끼어진 이 낙엽 아래로 손바닥이 보였다. 손바닥에 온통 그려진 작은 실선인 손금과 낙엽에 보이는 작은 실선들은 거의 흡사했다. 또 하나는 낙엽 속의 작은 실선들과 산비탈에 보이는 나무들의 가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속에 있는 뿌리에서 갓 올라온 가지가 지주대가 되었고, 그 가지를 시발점으로 양 갈래에서 서너 갈래로, 또 서너 갈래로 번져나가듯이, 낙엽도 그랬다.
낙엽은 단지 그 갈래 한군데서, 끈이 떨어져 나왔을 뿐이지 그 나무의 형태인 여러 갈래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이런 형태는 인간의 발바닥과 손바닥에서 볼 수 있는 잔 주름과 똑 같다는 생각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손금과 자세히 비교를 해 보았다. 똑 같았다. 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의 흔적을 남겼다고나 할까? 군데군데 상처도 보였다.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낙엽은 고달픈 생의 마지막을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낙엽은 인간이 삶을 마감하고 떠나듯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정말로 마지막인 이 길에까지 막고 싶지 않아서, 아무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가던 그 길을 편안히 가라고, 검지 손가락으로 툭 튕겨 낙엽이 흩날리고 싶어 했던 자리로 날려준다. 낙엽이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갈 것 같더니 생각보다 그리 멀리 날아 가지 못하고 또 노란 잔디 위에서 나뒹굴고 있다. 얼른 쫓아가 그 낙엽을 발로 아주 살짝, 툭 걷어차, 가는 그 길로 편히 가라고 힘을 실어주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그렇게 멀리 가지 않고 또 노란 잔디 위에 나뒹굴기만 했다. 더 이상 찰 수는 없었다. 발길에 걷어 차여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만 더 주고 보낼 것 같아서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
선글라스를 잠시 벗고는 서쪽 하늘을 멍하게 쳐다 본다. 서산에 걸린 석양이 눈을 부시게 한다. 바로 선글라스를 제 자리인 눈 앞에 갖다가 걸쳐 놓는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쉰다. 잎사귀도 태양도 제 구실을 다하고 떠나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로 제 구실을 다하던, 다하지 못하던, 기한이 끝나면 모두 떠나야 한다는 서글픈 생각이 밀려왔다.
“뭐해? 빨리 안 치고. 또 무슨 청승을 떨고 있어! 빨리 쳐. 해 떨어진다”
여기는 산중턱도 아닌 산꼭대기에 있는 골프장이다. 동쪽으로는 바다가 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