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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삭아삭한 로맨스
작가 : 진소르
작품등록일 : 2018.12.17

가진 건 자존심뿐인 빈털터리 백수 주여울과 빼어난 외모,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서 결국 노동과 결혼한 남자 박하완의 밀고 당기는 갑을관계 로맨스! 가을 한정 홍옥같이 탐스럽고 풍미 있는 그들의 아삭아삭한 로맨스를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8화 여울의 가을_새로운 시작과 일상들.
작성일 : 18-12-23 00:16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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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울이 첫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주여울입니다. 26살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여욱과 준영이 눈을 뻐끔 거렸다.

 흠- 하고 하완이 헛기침을 했다.

 

 “인수인계는 준영이가 해주면 되겠다.”

 

 준영의 눈썹이 흔들렸다. 티 나지 않게 여울의 외모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높게 땋아 올린 머리와 앙증맞게 흘러내린 귀밑머리, 조그마한 얼굴과 분홍빛 도는 뺨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했다.

 체구도 자그마해서 허리 앞치마가 상징인 유니폼이 제법 잘 어울렸다.

 

 “예쁘시네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여욱이 준영을 쳐다봤다.

 

 ‘의식하고 있는 건가?’

 

 하완이 두툼한 책자를 여울에게 건넸다.

 

 “레시피에요. 보고 외워요.”

 “네.”

 “나이는 여울씨가 많아도 준영이가 ‘아삭파이’창립 멤버고, 가장 오래 일했으니까 준영이 말 잘듣고요.”

 “네.”

 

 하완은 무심하게 말했지만, 준영에게 여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준영은 남들에게 무심한 하완이 여울을 유독 챙기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랑 커피부터 만드시죠.”

 

 준영이 여울에게 차갑게 말했다.

 여울은 싸늘한 준영의 태도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아서 불편해서 그럴까?’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하완이 말하지 않았지만 여울과 여욱은 남매였다.

 

 “여욱이도 가서 일하고.”

 “네.”

 

 하완은 여울을 면접 볼 때, 여욱이 동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여울, 주여욱’ 이름만 봐도 남매사이였지만, 외모가 썩 닮진 않아서 모를 수도 있는 사실이었다.

 여울이 속이지 않고 하완에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사과박스 나르는 거 힘들 텐데, 나랑 같이 할까?”

 “네?”

 

 여욱이 귀를 의심했다. 원래 같이 하던 일인데, 갑자기 왜 배려하는 것처럼 하완이 말투를 바꾸는지 이해가 안 갔다.

 

 “원래 같이 하던 거 아니에요?”

 “...”

 “도와주시면 저야 좋죠.”

 

 여욱과 하완이 상자를 나르러 갔다.

 여울과 준영만 남았다. 여울이 준영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잘 지낼 수 있겠지?’

 

 ***

 

 회의실 안에서 10명정도 되는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자, 마루유통 사장 아들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마루가 숨 막히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마루는 괜스레 넥타이를 당겼다. 컥- 덕분에 목이 조여, 헛기침이 나왔다.

 

 “그래요. 조마루 신입 할말이 뭔가요?”

 “네?”

 

 할 말이 있어서 넥타이를 당긴 것은 아니건만, 선임들의 눈빛이 기대에 차 있었다.

 

 “지역 브랜드로 시작해서 서울까지 유명해진 아삭 파이를 체인화 시키는 것에 매우 찬성합니다. 물론 이게 대표님 안건이라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루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마루의 뻔한 의견에 모두 실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뿐만 아니라 아삭파이는 온라인에서도 성공해 현재 코코아몰에서 없어서 못 팔정도로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그럼 언제부터 체인화를 시킬 예정인가요?”

 

 팀장이 마루의 말을 자르고 안건을 넘겼다.

 

 “내일 아삭파이 대표를 만나기로 했습니다만. 제가 본사 투자처를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투자설명에 대한 간단한 미팅은 조마루 신입이 출장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네? 제가요?”

 

 마루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놀랬다.

 

 “왜 못하겠어?”

 

 사수의 냉철한 눈빛에 마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니요.. 저 같은 초짜가.. 아니 신입이.. 가도 될는지.”

 “계약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 설명만 하는데 못할 건 또 뭐있어? 자료 줄테니, 오늘 내로 피피티 만들어서 내일 출장 갔다 와.”

 “네..”

 

 마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조마루 신입은 사장님을 닮았을 테니, 뭐든 잘 해낼 거에요.”

 

 팀장님이 칭찬인지, 부담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말을 하셨다.

 

 ‘이럴 때만 사장 아들이지.’

 

 왠지 억울했다.

 만약 내일 투자설명을 잘못해서 계약 가기 전에 엎어지기라도 하면 사수의 일을 망친 직원으로 모두 떠안을 판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내보였다.

 

 “역시 조마루 신입. 사장님 아들다워!”

 

 팀장이 박수를 치자, 회의실에 있던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따라 쳤다.

 마루는 웃고 있었지만 사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가 할 일을 왜 나한테 시키냐고!’

 

 할 수만 있다면 외치고 싶었다.

 

 ***

 터미널 안, 카페 아삭파이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밀려드는 주문에도 여울은 매번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애플파이 두 개요.”

 “네. 결제, 카드로 하시겠어요?”

 “네.”

 “진동 벨 드릴게요.”

 

 여울은 ‘아삭파이’에 금방 적응했다.

 

 “아삭파이는 뭐가 맛있어요?”

 “보통 시그니처 애플파이 많이 주문하시는데, 최근 할로윈 시즌 맞이해서 호박파이도 잘 나가요. 단호박을 베이스로 하고, 꿀이 들어가 있어서 설탕맛보다 달짝지근한 맛이 나요.”

 “그럼 호박파이로 두 개 주세요.”

 

 메뉴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작업장에 주문한 파이가 좀 늦어지는 것 같은데..”

 “제가 만들어볼까요?”

 “여울씨 가요?”

 “네. 어제 집에서 쉴 때, 레시피보고 만들어봤어요.”

 “오~ 제법인데요?”

 

 가끔 물량이 부족하면 주방에 들어가서 파이도 직접 만들었다.

 하완은 일도 잘하고 노력하는 여울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여울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준영은 하완이 그럴수록 씁쓸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준영이 받던 하완의 신임이 여울에게 옮겨지는 게 한눈에 보였다.

 준영은 하완이 싫은 건지, 여울이 싫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쨍그랑- 주방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준영이 주방에 들어갔을 때, 산더미처럼 쌓인 머그컵들이 눈에 보였다.

 여울이 당황한 눈치였다.

 

 “죄송해요. 제가 설거지하다가 머그컵 하나를 깼어요.”

 

 ‘괜찮아요?’라는 말이 먼저 나갈 줄 알았지만 준영의 입에서 나온건 의외의 말이었다.

 

 “뭐하는 거에요?”

 “네?”

 “뭐 하길래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하고 머그컵을 깨요?”

 

 말이 뱉어진 후에는 준영도 놀라고, 여울도 놀랬다.

 앞에 그림자가 져서 서서히 뒤돌아봤을 때는 하완이 실망한 얼굴로 준영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많이 안 다쳤어요?”

 

 하완은 준영을 지나쳐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준영은 버려진 기분이었다.

 

 “안 다쳤어요. 그것보다 제가 머그컵을 깨서.. 제 월급에서 머그컵 값 빼세요.”

 “고무장갑 벗어 봐요.”

 

 하완은 여울의 말을 듣지 않고, 여울의 손부터 확인했다.

 손은 멀쩡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요.”

 

 더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참은 것 같은 두 마디였다.

 그리고 다음날, 여울은 ‘아삭파이’ 승강장점에서 애플파이를 뒤집고 있었다.

 애플파이 냄새가 승강장에 진동을 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 있는 건지..”

 

 승강장 점에서 애플파이를 뒤집다 보면 불과 한, 두달 전에 트렁크가 터졌던 생각도 나고, 그때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하완이라는 것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여욱이 경고했듯이, 파이를 사가는 사람밖에 마주할 일이 없어 매우 심심하다는 것이 힘들었다.

 고객이 말을 걸어주기 전까지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한다면야 할 수 있지만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면 미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잘하고 있어요?”

 

 가끔 하완이 찾아와 말을 걸어주었다.

 

 “네.”

 “매출은 좀 올랐어요?”

 “똑같은데요?”

 “매출을 올려야죠.”

 “네.”

 

 그렇다고 별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완은 여울이 일을 잘하나 못하나 궁금해서 와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는 몰랐던 건데 여울에게 말을 걸 때, 가끔 허공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그러니까 여울이 하완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누나 일 잘하고 있어?”

 

 여욱이도 가끔 왔다.

 하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은 말만 하고 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욱은 준영의 근황을 알려주고 갔다.

 여울이 승강장점에서 혼자 일하게 된 후, 혹시 어려운 고객을 만났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봐 걱정이 된다면서 준영이 여울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갔다.

 첫 만남을 가졌을 때, 여울은 준영이 싫지 않았다.

 다만 준영의 싸늘한 표정이 무서 웠을 뿐이다.

 여울도 가끔 준영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다.

 그래봤자, 여울이 승강장 점으로 온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여울은 파이를 뒤집고 완판을 시키는 일상에 차츰 적응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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