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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삭아삭한 로맨스
작가 : 진소르
작품등록일 : 2018.12.17

가진 건 자존심뿐인 빈털터리 백수 주여울과 빼어난 외모,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서 결국 노동과 결혼한 남자 박하완의 밀고 당기는 갑을관계 로맨스! 가을 한정 홍옥같이 탐스럽고 풍미 있는 그들의 아삭아삭한 로맨스를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21화 봄이 올까요?
작성일 : 18-12-31 00:15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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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숨쉬기 장인이 재주껏 힘주어 부른 듯한 호른의 소리가 담긴 재즈 풍 음악이 매장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영씨. 오늘 알바 면접 보는 날 맞죠?”

 

 테이블 위에 커피를 올려두고 여유 있게 매출실적보고서를 넘기던 여울이 소영에게 물었다.

 

 “네~”

 

 행주로 테이블을 닦던 소영은 토실토실한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은 것 같은 통통한 얼굴이 매력적인 직원이었다.

 소영을 처음 본 사람은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나이를 추정했지만 사실 29살로 여울보다 언니이자, 두 살 배기 아기가 있는 애 엄마였다.

 

 “알바 이력서 제가 추려서 테이블 위에 매출실적 보고서랑 같이 올려놨어요.”

 

 소영의 똑 부러진 일처리에 여울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소영씨! 완벽해요!”

 

 매출 실적보고서를 한쪽으로 미뤄놓고, 알바 이력서를 넘기던 여울의 표정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바뀌었다.

 

 “어? 애.. 설마..”

 

 18살 서운고등학교 2학년, ‘장세원’ 이었다.

 

 “헐.. 뭐야 애?”

 

 여울은 알바 이력서를 황급히 닫았다.

 

 “설마 여기서 알바 할라고? 안 돼. 절대 안 돼! 미성년자는 안 받아!”

 

 여울의 호통에 소영은 깜짝 놀랐다.

 

 “점장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흥분하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울을 바라보는 소영이었다.

 

 ***

 

 검정색 롤스로이드 신형 한 대가 한강 다리 위를 느릿느릿 달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쿵쾅 거리는 클럽음악이 오디오를 꽉 채웠다.

 음악에 리듬을 맡긴 마루의 몸이 박자에 맞춰 건들거렸다.

 

 “캬- 교통체증 보소. 어느 세월에 가냐?”

 

 오디오를 꽉 채우던 클럽음악이 멈추고, ‘전화 왔음.’을 알리는 수신음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이어폰을 낀 마루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울~이~니?”

 “너 어디야?”

 “나 한강다리.”

 “아삭파이 3시에 온다며?”

 

 여울의 목소리에는 약간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럴라 했는데, 일정이 밀려서 그렇게 됐어. 내가 퇴근시간에 맞춰서 가면 더 좋지 않아?”

 “음.. 글쎄?”

 

 여울은 전혀 모르겠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오늘 네 생일이잖아. 끝나고 밥이나 먹자.”

 

 수화기 건너, 상대방이 고민하는 것 같은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그래. 뭐 만날 사람도 없고.”

 “곧 갈께!”

 “응!”

 

 전화가 끊어지고, 다시 클럽음악이 차안을 빵빵 울려댔다.

 이어폰을 뺀 마루는 연신 “YES! YES!”를 외쳐대며 신나했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자, 검정색 롤스로이드는 미끄러지듯이 도로를 빠져나갔다.

 

 ***

 

 아삭파이 구석 테이블에서 이력서를 보며 볼펜을 까딱 거리는 여울은 한숨을 쉬었다.

 여울 앞에는 교복을 입은 세원이 다리를 꼬고 건방진 자세로 앉아 있었다.

 

 “면접 보는 것 치고는 자세가 상당히 불량하다.”

 “아, 그래요? 그럼 고칠게요.”

 

 꼬았던 다리를 푼 세원은 두 다리를 붙이고, 양 손으로 무릎을 감싼 채 매우 공손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덧붙여서 무뚝뚝한 표정도 스마일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인상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하면 저 뽑아주실 건가요?”

 

 호기심이 발동한 여울은 무의식적으로 세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 왜 알바를 하고 싶은 거니?”

 “저요? 돈 벌려고요.”

 “그니까. 왜 돈을 벌려고 해? 너 부잣집아들이잖아.”

 “저요?”

 “응! 너!”

 

 여울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집 망했어요.”

 

 세원은 무서울 정도로 담담하게 말했다.

 

 “뭐?”

 “그리고 누가 우리 집 부잣집이래요?”

 “응?”

 

 그러고 보니 아무도 세원이 부잣집 아들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아.. 그러게.. 왜 나 착각했지?”

 “하완형 집하고 우리 집은 완전 다른데?”

 

 맞다. 하완 집을 갔을 때, 기가 죽어, 그때 봤던 하완의 이모 아들인 세원이네 집도 당연히 부자일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채까지 끌어 쓰시면서 회사 운영하시는 바람에 완전 망했어요. 저 이제 일해야 해요.”

 “아..”

 

 괜한 오해를 한 게 너무 미안해서 그다음 말이 안 나왔다.

 할 말이 없어진 여울은 찬찬히 세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봤다.

 처음 봤을 때, 식사 자리를 피해 도망친 철없는 고등학생이었던 세원의 모습과는 달랐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축구하다가 검게 탄 듯한 얼굴에는 정말로 자기를 뽑아줬으면 하는 약간의 간절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세원이 여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원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갔다.

 

 “저 뽑으시면 후회 안 하실 걸요?”

 “응?”

 “옆을 봐요.”

 

 여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페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들의 시선이 온통 세원에게 가 있었다.

 끼리끼리 무리지어 있는 여자들이 세원을 보고 하나같이 쑥덕거렸다.

 쑥덕거리는 여자들의 얼굴에는 세원을 향한 호감 내지, 관심이 서려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옆구리에 핸드백 하나씩 맨 대학생들, 심지어 직장인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자들까지...

 

 “이제 나 뽑아야 하는 이유 알겠죠?”

 

 여울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세원이 편하게 의자 뒤로 몸을 뻗으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흠...”

 

 여울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과연 하완의 사촌 동생을 하완의 허락 없이 알바로 뽑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 여울의 마음을 세원이 읽었나보다.

 

 “정 어려우면 하완 형한테 물어봐요.”

 “뭐?”

 “아니. 여기 사장인 하완 형한테 물어보면 되죠. 뭘 고민해요.”

 

 세원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긴 했다.

 

 “저도 여기 하완 형이 하는 가게라서 면접 보러 온 거지. 아니었으면 안 왔어요. 혈연, 지연, 인맥 중 인맥 좀 써보겠다고 왔는데, 이렇게 홀대 할 꺼에요? 그것도 사장 사촌 동생을?”

 

 배짱 좋게 우기는 세원을 여울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미간에 주름이 생긴 여울은 고민이 됐다.

 과연 하완은 세원을 알바로 쓰라고 할까?

 서울로 올라오면서 하완과 통화를 안 한지는 꽤 오래였다.

 서울 지점은 거의 마루를 통해서만 이벤트나 신상품 프로모션 등 사업을 진행해 왔다.

 여울의 시선이 자연스레 핸드폰에 갔다.

 

 ‘이건 다른 일도 아니고 직원 뽑는 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조언이 필요하다는 핑계대고 한번 연락 해볼까?’

 

 손이 핸드폰으로 가면서도 갑자기 두려워져 멈췄다.

 차가운 도시남자이자, 철벽남인 박하완이 거대한 산으로 변신 해, 여울 앞에 서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다.

 

 ***

 

 퇴근 한 여울을 맞이한 건 롤스로이드를 끌고 온 마루였다.

 선글라스를 쓴 마루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차에서 내렸다.

 얇은 코트자락을 양손으로 휘날리며 내리는 마루의 폼에서는 허세가 넘쳤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벗는 마루의 모습이란 참..

 

 “하이!”

 

 쯧쯧.. 혀를 끌끌 차게 만들었다.

 분명 작년엔 엄청 어른으로 보였건만..

 사회생활 초년생의 고비가 지나가자마자, 여울이 알던 그 마루로 돌아왔다.

 

 “뭐야. 그 차는? 설마 너 차 바꿨어?”

 

 여울의 물음에 마루가 백미러에 팔을 걸친 채, 간지 나는 포즈를 취한 후, 여울에게 말했다.

 

 “바꾸긴. 우리 아버지 차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울은 마루를 쳐다봤다.

 

 “네 차 놔두고. 아버지 차는 왜?”

 “아버지가 롤스로이드로 갈아 타셨길래. 좀 뺏어 타려고. 아버지 차가 롤스로이드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앞으로 그거 타고 다녀?”

 “아니.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타고 왔어.”

 “특별한 날?”

 

 여울의 고개가 45도 각도로 기울어졌다.

 

 “네 생일”

 

 마루의 말에 여울은 온 몸이 오글거렸다.

 “말 만해. 네가 가고 싶은데 모두 가줄게.”

 “나 참...”

 

 마루의 허세에 여울은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마루를 등진 여울의 걸음이 빨라졌다.

 

 “어디가?!”

 

 여울이 도망가자, 마루가 쫓아와 여울의 팔을 잡았다.

 

 “나랑 놀아 야지.”

 

 마루에게서 팔을 뺀 여울이 오한이 서린 듯 온 몸을 부르르 떤 후, 장난 스레 말했다.

 

 “넌 여자 친구 없냐?”

 

 마루의 입이 뾰로퉁 하게 나왔다.

 

 “전 여친 한테 상처를 너무 받아서 그 다음에 연애가 안 되더라.”

 

 조금 찔린 여울이 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마루는 그런 여울을 귀엽다는 듯이 보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대신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구를 얻었지. 그러니까 얼른 가자.”

 

 슥- 여울이 방심한 사이 손을 잡은 마루였다.

 여울은 화들짝 놀라며 마루에게서 손을 뺐다.

 

 “이거 놔! 너랑 나랑 선을 확실히 해야 해. 우린 친구사이야.”

 “알아. 친구사이. 친구끼린 가끔 손도 잡을 수 있어. 내가 뭐 다른 거했냐?”

 

 피하면 피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마루였다.

 여울은 마루에게 롤스로이드 차로 손을 잡힌 채 끌려가면서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이제 마루는 정말 편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마루의 말대로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하지만 두근거리지는 않는.

 여울은 그 순간에도 하완이 보고 싶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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