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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아삭아삭한 로맨스
작가 : 진소르
작품등록일 : 2018.12.17

가진 건 자존심뿐인 빈털터리 백수 주여울과 빼어난 외모,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서 결국 노동과 결혼한 남자 박하완의 밀고 당기는 갑을관계 로맨스! 가을 한정 홍옥같이 탐스럽고 풍미 있는 그들의 아삭아삭한 로맨스를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7화 준영의 가을_불편함의 시작, 짝사랑이라는 감정.
작성일 : 18-12-22 00:31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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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사장님, 직원 뽑으셨다고요? 벌써요? 누구에요? 몇 살이에요? 여자에요? 남자에요?”

 

 여욱이 하완을 쫓아다니며 질문을 늘어놨다.

 사과를 박스채로 옮기던 하완이 찡그린 얼굴로 여욱에게 엄포를 늘어놨다.

 

 “가서 너도 파이나 옮겨. 귀찮게 굴지 말고!”

 “아.. 넵!”

 

 여욱이 쪼르르 나가 밖에 세워진 트럭에서 사과 한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사장님!”

 

 하완이 반사적으로 뒤돌아봤다.

 

 “예뻐요?”

 

 하완이 뒤를 돌아 무심하게 말했다.

 

 “너보단”

 

 여욱의 입가에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예쁘네~ 기대되게.”

 “설레발은.”

 

 하완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준영은 두 사람의 모습을 못 마땅하게 쳐다봤다.

 새로운 직원이 종일 근무하고, 여자이고, 예쁘다는 사실에 질투가 났다.

 준영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단발보다 짧은 바가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위아래 펑퍼짐한 옷들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주를 들고 닦고 있던 접시를 더 박박 닦았다.

 그리고 하완을 힐끔 봤다.

 계산할 때 빼고는 잘 웃지 않는 하완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은 채, 떠날 줄 몰랐다.

 이 정도면 분명 서로 알고 있는 사이다.

 이미 내정된 누군가를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아삭파이’가 창립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직원인 자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하완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무슨 생각해.”

 

 그런 준영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쑥 여욱이 고개를 들이밀고 말을 걸었다.

 

 “아.. 아무생각도 안 해..”

 

 불쑥 내민 얼굴과 가까워지자 여욱의 뽀송뽀송한 솜털이 보였다.

 뽀사시한 하얀 얼굴과 서툴게 면도 된 입가의 푸른 수염자국이 대조되어 더 눈에 띄었다.

 

 “난 또 질투하나 싶어서..”

 

 여욱이 약을 올렸다.

 준영은 화가 났다.

 

 “야!”

 

 매장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였다.

 차를 마시던 손님들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냉정한 하완의 얼굴이 보였다.

 

 “둘 다 뭐하는 거야?”

 

 하완의 차가운 목소리가 준영의 귓가를 울렸다.

 

 “일에만 집중 해. 딴 짓하지 말고.”

 “네..넵! 죄송합니다!”

 

 당황한 여욱이 고개를 꾸벅 숙여 연신 사과 드렸다.

 준영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했다.

 

 “준영아 미안. 사장님 죄송해요!”

 

 여욱이 상황을 무마하려 애썼다.

 하완은 냉정한 얼굴로 나가버렸다.

 준영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준영의 마음을 눈치 챈 여욱이 양 손가락을 마주보고 굴리며, 준영 앞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

 

 터미널에 밤이 왔다. 입점한 상점들이 하나씩 소등을 할 때마다, 복도는 적막으로 가득 찼다.

 하루종일 네온사인 불빛으로 반짝였던 ‘아삭파이’도 마감을 했다.

 준영이 회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매장에 있던 모든 불을 껐다.

 마지막으로 셔터를 내린 후, 밖으로 나오는 준영의 메마른 얼굴은 한눈에 봐도 피로함이 가득했다.

 

 “뭐야. 벌써 마감했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마감이 끝난 매장을 보고 허탈한 여욱이 말했다.

 

 “응. 그냥 마감했어. 네 가방은 내가 챙겼어.”

 “내 겉옷은?”

 

 여욱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추워보였다.

 

 “아, 맞다! 다시, 문 열게”

 

 준영이 셔터의 자물쇠를 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됐어. 어차피 내일도 오는데, 뭐.”

 

 여욱이 준영에게 다가가 말렸다.

 

 “그래도 춥잖아. 문 열자.”

 

 준영이 자물쇠를 열려고 했다.

 

 “그러지마. 그냥 가자. 귀찮잖아.”

 

 ‘셔터 문을 열 것이냐 말 것이냐’로 두 사람이 옥신각신 했다.

 

 “열자”

 “아, 됐어”

 “문 열자고.”

 

 자물쇠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의 손끝이 스쳤다.

 

 “그냥 가자.”

 

 당황한 준영이 일어섰다.

 

 “그래 가자.”

 

 여욱도 일어섰다.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갔다.

 날씨는 선선했다.

 지하철까지 이동하며, 전과 다르게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두 사람이 지하철 앞에 섰을 때, 여욱이 용기를 냈다.

 

 “아까는 미안..”

 “뭐가?”

 

 준영이 모른 척을 했다.

 

 “너 놀린 거. 그럼 안 되는데..내가 못됐다.”

 

 준영은 여욱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얼굴이었다.

 

 “근데, 너 놀리는 게 재밌는 걸 어떡하냐?”

 “뭐?!”

 

 여욱이 배시시 웃었다.

 개 버릇 제 못준다고, 사과하면서도 준영을 놀리는 여욱의 못된 버릇이 준영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준영이 여욱을 째려봤다.

 여욱이 준영의 날선 눈빛에 움찔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본심을 말했다.

 

 “혹시 사장 좋아해?”

 “내가?”

 

 준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다시 물을게. 박하완 좋아해?”

 “야!”

 

 준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힘껏 여욱을 때렸다.

 

 “아! 아파!”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하철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기 전, 준영이 여욱에게 삿대질을 하며 경고했다.

 

 “야, 혼자 착각 하지마. 나 박하완 안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준영이 지하철을 타고 가버렸다.

 여욱이 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럼 말고!”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환한 마을로 들어서자, 준영은 색깔이 알록달록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마다 반짝이는 전구들이 가로등 위에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무지개 색 계단을 올라가는 준영의 낭창낭창한 발걸음이 동화 속 주인공처럼 귀여웠다.

 

 “다녀왔습니다.”

 “응.”

 

 엄마의 대답을 대충 듣고, 1층 집 다락으로 올라갔다.

 아직 추워지기 전의 다락방은 준영의 아늑한 놀이터였다.

 어두운 다락에 전등을 켰다.

 벽장 속에 있는 책들, 아기자기한 인형들, 옹기종기 모인 향초들이 준영의 취향과 작은 역사를 반영했다.

 준영이 노트북을 펼치며, 손을 비볐다.

 

 -하완바라기님이 접속하셨습니다.

 -호두마루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새 길드가 형성되었습니다.

 -호두마루님과 연합하여 새로운 전투가 시작됩니다.

 

 “후후.. 시작해볼까?”

 

 준영의 눈에 비장함이 서렸다.

 호두마루님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황무지 같은 사막에서 길을 찾고, 폐가에서 습격하는 좀비들도 막아내고, 전쟁의 현장에서 사정없이 총을 쏴대는 용병들의 공격도 막아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생명이 연장됩니다.

 -길드가 한 단계 승급됩니다.

 

 “대박..! 호두마루님은 정말 못하는 게 없으시군요!”

 

 준영의 타자가 빨라졌다.

 

 “아닙니다. 하완 바라기님이야 말로 최고의 용병이십니다. 이런 순발력과 민첩함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닌데.. 게임 초창기 때부터 활약 하셨나 봐요. 적을 죽일 때, 의외의 장소에 있는 용병도 세심하게 다 보시던데.. 혹시 여자이신가요?”

 

 멈칫, 준영이 타자기에서 손을 땠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네.. 여자에요.”

 

 고민 끝에 대답했다.

 

 “부담스러우셨다면 죄송해요. 그냥 하완바리기라는 닉네임이 특이해서.”

 

 준영이 작게 웃었다.

 모니터 뒤편의 유저는 왠지 귀여운 중학생 내지 초등학생일 것 같았다.

 여자이냐고 물어본걸 보면 성별은 남자일 것 같았다.

 놀려주고 싶었다.

 

 “하완바라기의 하완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모니터 뒤편의 유저가 얼마나 놀랐을까? 상상만 해도 신났다.

 정말 놀랬는지 한동안 대답도 없었다.

 

 -호두마루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뭐야?”

 

 호두마루가 갑자기 퇴장해버렸다.

 황당한 준영이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시 봐도 퇴장이었다.

 

 “뭐야 왜 퇴장해?”

 

 퇴장할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애 나 좋아해? 얼굴한번 안 봤는데? 거절당해서 상심한 건가?”

 

 순간적으로 상심했을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정도 되는 남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준영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

 

 바닥을 때굴때굴 굴렀다.

 

 “하필 짝사랑을 받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받다니!”

 

 ***

 

 마루가 손바닥으로 컴퓨터 데스크탑을 한 대 쳤다.

 

 “뭐야? 왜 안돼?”

 

 오래쓰긴 했지만, 게임 몇 번 했다고 컴퓨터가 꺼지다니.. 어이가 없었다.

 

 “이럴 거면 노트북으로 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나저나 갑작스러운 하완바라기님의 고백에 퇴장하는 건 역시 타이밍이 안 좋았다.

 다음에 길드에서 하완바라기님을 만났을 때, 뭐라고 변명할까?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변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인사하면 되겠지 뭐..”

 

 그런데, 갑자기 여울이 생각났다.

 

 “오빠 샴푸 어딨어?”

 

 이 목소리를 여울이 분명 들었을 것 같았다.

 못 들었을 리 없다. 목소리가 들린 후, 여울은 얼마 되지 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여울에게는 아직 해명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울이 계속 오해를 하게끔 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샴푸는 그 샴푸가 아니라고!’ 외치고만 싶은 마루였다.

 하.. 한숨과 함께 밤만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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