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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작가 : 해모
작품등록일 : 2018.12.12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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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가 느꼈을 불안.
내가 느꼈을 두려움.
동시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은 알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해 외로웠던 사랑.

부칠 수 없는 편지인걸 알면서도 뒤늦게 펜을 든 소녀와 초여름의 어느 날, 필시 주소가 잘못된 듯한 편지를 받은 소년. 서로 누구인지도 몰랐기에 주고 받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담긴 편지 속 이야기.

 
《1. 혹 아픈 곳은 없는지》
작성일 : 18-12-12 02:37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6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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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그대에게

 

 혹시 제가 보내는 이 편지가 불편하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괜히 저 혼자 편하자고 보내는 거라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늘 마음 한구석이 뻐근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도 참 어지간히 당신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웃을지 울지조차도 예상이 안돼서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혹 어디 아픈 곳은 없나요? 몸에 열이 많아서 더위를 잘 탄다고 말했던 당신이지만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건강히 계셔주세요. 비록 답장이 오지 않을 걸 알지만 자꾸 질문만 하게 되네요. 그건 여전히 당신을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진작 알 수 있을 때 잔뜩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나중에 당신과 등을 맞대고 비교해볼 날을 기대하며 당신과 저의 키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제 구두뿐만 아니라 당신이 일할 때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소포로 보낼 수 있게 발 사이즈는 어떻게 되는지.

 언젠가 당신을 만나는 날엔 제게 옛날과 같이 팔 벌려 반겨줄지. 웃음기 담긴 그 눈으로 나를 알아봐 줄지.

 미안하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계속해서 입안을 맴도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제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또 한가득 종류별로 담았을 반찬들을 가지고 왔다고 말입니다. 엄마는 3년이 지나도 혼자 사는 딸이 영 걱정인 모양입니다. 덕분엔 저는 혼자 살면서도 끼니를 거를 일이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많은 양은 다 먹지도 못한다고 해도 엄마는 그럼 친구들 불러서 같이 먹으라고 유난입니다. 인스턴트 음식보단 역시 집밥이 건강하지 않겠냐면서.

 

 오늘은 글씨가 엉망이라 괜히 부끄럽고 그럽니다. 새벽까지 뒤풀이를 하고 왔더니 눈도 까무룩 까무룩 감기는 게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교수님이 낸 공연 관람 후 느낀 점을 작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굳게 펜을 잡고 당신에게 말하려 합니다. 저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주 도지곤 하던 스트레스성 위염도 많이 줄어서 괜찮습니다. 워낙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다 보니 위염은 제 평생 고질병인 거 아시잖아요. 하하. 당신도 아픈 곳이 있다면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은 늘 건강하다 못해 힘이 넘친다고 자부하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은 그 말을 믿어보려 합니다. 그럼 부디 몸조리.

 

 2017년 5월 26일.

 사랑을 담아.

 

 From. 수지

 

 

 

 마지막 글자는 색이 바래 종이에 희미하게 새겨졌다. 볼펜 뚜껑을 닫았다가 의문스레 꼭지를 바라보니 어느새 잉크가 다 닳아 군데군데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편지 쓰는데 외에는 다른 용도로 쓰지 않던 볼펜이라 언제 이렇게 많이 썼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따로 볼펜을 사다 뒀던가? 다 쓴 편지를 책상 한 쪽으로 치워두고 연필꽂이나 서랍 곳곳을 훑어봤지만 볼펜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내일 나갈 일도 없는데….”

 

 볼펜 찾는 걸 관두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고개를 젖힌 채 누런 천장을 보다 말고 침침한 눈을 비볐다. 이미 자정은 훌쩍 넘긴지 오래다. 아까 1시에 들어왔으니까 벌써 2시간이나 지났네. 오히려 밤보다 아침이 더 가까운 시간이라 밤이 깊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요즘 갈수록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는 거 같다. 이러니 학교에서도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비몽사몽이지. 책상 옆 침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을 찾았다. 은기의 번호를 찾아 내일 시간 있으면 같이 볼펜을 사러 가자는 문자를 작성하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때마침 은기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아까 뒤풀이할 때 술에 취해 몸도 못 가누던 은기는 동기들 틈에 택시에 태워졌고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헤어졌다.

 

 “여보세요?”

 - 미안. 지금 자?

 “아니 이제 자려고. 넌 자다가 깬 거야? 속은 괜찮고?”

 - 알다시피 숙취가 없는 타입이라 멀쩡. 아까 정신이 없어서 잘 들어갔지? 아, 새벽에 갑자기 이런 거 물으니까 좀 웃긴다.

 “그래 보이더라. 평소엔 빼기만 하면서 웬일로 그렇게 마셨대?”

 

 핸드폰 너머로 자다 깼는지 잠긴 은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여튼 다정한 건 여전하다. 이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까지 한다. 은기와 알게 된지는 3년 전 대학에 들어오면서 친구의 친구를 통해 건너건너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같은 과라서 어울리는 일이 많았고 살가워진 건 1년 정도 된 거 같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시간 참 빠르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빼곡한 글자가 뭉쳐져있는 편지를 내려다봤다. 핸드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댄 채 서랍을 열어 편지지를 넣을 봉투를 찾았다. 서랍 한구석에 겹겹이로 쌓인 소라색 편지봉투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내 흰 편지지를 반으로 접어 넣고 나서 우표를 붙였다.

 

 - 네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어? 뭐라고? 못 들었어.”

 - 아니야. 너무 늦었다고. 이제 주말인데 푹 자.

 “아,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너한테 문자 하려던 참인데 딱 전화가 왔네.”

 

 편지 뒤에다 주소와 이름을 쓰려는데 펜을 다 써버렸단 걸 상기했다. 그 사이에 은기가 뭐라고 말한 거 같은데 다른데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음, 내일 시간 괜찮으면 나랑 볼펜 사러 갈래? 다 써버렸네.”

 - 겨우 볼펜?

 “섭섭하게스리 겨우 볼펜이 뭐냐, 난 이 볼펜이 없으면 제대로 필기도 못한다구."

 

 장난스러운 내 말에 건너편에서 은기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다 일어나 갈라지는 말끝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왠지 이 펜으로 편지를 쓰면 속에 있던 말을 다 쓸 수 있게 된달까. 물론 핑계지만.

 

 '예전에는 잘 몰랐어. 보고 싶은 건지 뭔지.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하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평소랑 똑같다 같은 말이나 썼던 게 후회돼.

 내 평소를 알 수도 없는 사람한테 시종일관 대충대충 말해준 게 너무 미안해.'

 

 은기는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계속 편지를 써오고 있다는걸. 하지만 오래도록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있다는 건 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은기는 대부분의 내 사정을 알고 있다. 항상 내 말을 들어주는 다정한 아이니까 말할 수 있었던 거다. 그렇다 해도 말하지 못한 일 또한 분명 있다. 아마 친구라도 이 의미 없는 짓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 자. 보는 내가 없던 숙취가 생기는 거 같으니까.”

 - 알았다 알았어―. 그놈의 볼펜 사러 가는 대신 밥은 네가 사는 거다.

 “네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달리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달아오른 핸드폰을 책상 위에 두고 편지 모서리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이걸 보낼까 보내지 말까. 이번엔 너무 우울한 말만 쓴 거 같은데. 힐끗 쳐다본 곳에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가 상자 속에 수두룩하니 쌓여있었다. 근 석 달 간의 공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최근에서야 다시 편지를 보내게 됐지만 한동안은 어째선지 보낼 수 없었다. 삼 개월 사이 편지를 부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쓰긴 썼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어려웠다. 저 상자 속 편지에는 오로지 나란 사람이 빼곡히 들어있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 속의 내 얘기가. 그게 너무 무겁게 느껴져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고 비로소 편지는 석 달 만에 보내졌다. 당신이 없어 슬픈 나의 얘기가 아니라 그동안 학교는 어떻게 다녔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엄마와는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오늘은 뭘 먹었고 내일은 어떤 하루를 보낼지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서. 아픈 곳이 있더라도 건강하다 말하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나도 웃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생전 못다 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어서 였을지도 모른다. 편지의 소라색은 그 사람을 닮았다.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의 색감 그 어디쯤. 그래서 단박에 이 편지지를 골랐었다.

 

 “아….”

 

 이제 남의 집이 돼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미련스레 원래 주소로 보냈던 첫 번째 편지가 반송되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 받았음을 의미한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

 

 

 지민 ver.

 

 

 “이제 내 그림은 누가 봐주냐고….”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시무룩하니 고개를 떨궜다. 손에 힘을 풀자 덩달아 툭 떨어진 4B연필이 발치를 데구루루 굴러간다. 줍는 것도 번거로워 그냥 가만히 마루에 앉아있었다. 이제 연필은 돌계단 아래까지 굴러내려갔다. 그 모습을 눈을 빛내며 따라가던 강아지가 왕 연필을 물었다.

 

 “야! 그거 먹는 거 아니라니까? 너 먹을 거 사줬잖아, 그거 먹어.”

 

 얜 아까부터 내 연필에 집착이더라. 장난감까지 사줄 여윳돈은 없다고 어?

 마당 한구석에 읍내까지 나가서 사 왔던 개 사료가 자리 잡았다. 이제 한낮에는 땀이 삐질 흐르는 날씨라서 사료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자니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 주인이 있다면 온 동네방네 강아지를 찾는다는 소문이 났을 텐데 영 조용한 걸 보니 그냥 떠돌이 개였던 거 같다. 어쩌겠어. 내가 거두는 수밖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또 꼬리를 말면서도 하던 짓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그리던 그림이 그려져있는 노트를 살폈다. 희미한 선이 제각기 이어져 바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할매가 그립다. 그림 하나는 내 새끼가 단연 최고라며 칭찬하던 할머니는 한 달 전에 제 덩치만 한 솥을 옮기다 허리디스크가 도져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러게 이런 무거운 거 들 때는 나 시키라니까….'

 '우리 귀한 손주한테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시키누? 할미는 개안타 것보다 혼자 두고 갈라니 이 할미 맘이 편치가 않다.'

 '내가 애야? 아예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뒤면 올 거잖아. 걱정 마.'

 

 이런 시골에선 큰 수술 같은 건 엄두도 못 내니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만 매일 같이 붙어있던 할머니가 없으니 허전하긴 하다. 어차피 한 달 뒤에나 다시 돌아온 다곤 했지만 치료가 길어지면 나 혼자 있는 시간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생활비는 바쁜 부모님이 항상 양육비랍시고 보내주는 돈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학교나 꼬박꼬박 나가 이것아. 또 저번처럼 땡까지 말고!'

 

 강아지도 있고 일부러 집에 있었는데 내일은 학교를 가긴 가야겠다. 집이나 학교나 어찌나 지루한지.

 마저 그리던 그림을 그리려는데 녹슨 파란 대문 너머로 우편이오! 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와 놀란 고개를 들었다.

 

 “웬 편지?”

 

 황급히 슬리퍼를 구겨 신고 대문으로 달려갔다. 대문 밖 골목에 오토바이가 세워져있고 커다란 가방을 든 집배원이 손에 우편물 뭉텅이를 들고 서있었다.

 

 “한종철 씨 본인 맞으세요?”

 “어…, 아뇨 본인은 아닌데….”

 “그럼 여기 성함만 써주시면 됩니다.”

 

 일반 고지서나 안내문 같은 경우는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길래 다 그런 줄 알았더니 일반 편지 같은 경우에는 직접 본인이 받아야 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낯익은 소라색 편지를 건넨 집배원이 전자기기에 이름을 써달라며 펜을 불쑥 내밀길래 얼떨결에 펜을 받아들었다. 저번에는 바닷가에 산책을 나간 틈에 우편이 왔었나 보다.

 

 “저기, 저번에도 한종철이란 이름 앞으로 왔었는데 여긴 그런 사람 없거든요. 아무래도 잘못 온 거 같은데요.”

 “네? 주소는 분명 여기가 맞는데…. 주변에 가까운 집도 없어서 헷갈릴만한 번지도 아니고요.”

 

 확실히 읍내와는 거리가 좀 떨어진 집이라 주변에 가까운 집도 10분 거리였다. 시골이 그렇지 뭐. 집배원이 하도 난감한 표정을 짓길래 하는 수 없이 일단 편지를 받았다. 집배원은 자리를 뜨기 전에 가족분에게 한번 물어보라는 말을 전했고 오토바이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래 귀찮을 법도 하겠다. 나중에 할머니한테 물어봐야겠네.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나 했는데 설마 진짜 또 올 줄은 몰랐다. 다음에 또 편지하겠단 말이 살짝 신경 쓰이긴 했지만 분명 주소를 잘못 쓴 거라 여겼기 때문에 두 번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라색 편지는 저번과 똑같다. 그 이후로 꼬박 3주가 지난 참이다. 자그마한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를 뒤집자 역시 받는 이에 한 종철이란 이름과 보내는 이에 한 수지라는 이름이 자필로 적혀있다. 주인도 아닌데 뜯어보자니 실례 같고 주인도 없는데 그냥 버리자니 이상하게 양심에 찔리고. 어떻게 할지 마당 가운데 서서 끙끙 5분째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래 뭐, 별말 적히지도 않았던데.”

 

 역시나 묘한 설렘과 호기심을 억누를 순 없었다. 파락. 마루에 걸터앉아 편지를 눈으로 읽었다. 이걸로 두 번째 편지지만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이걸 쓴 사람은 예술대를 진학 중인 여대생이고 은기라는 애인인지 친구인지 모를 사람이랑 친하고 스트레스를 곧잘 받는 소심한 성격이란 것 정도.

 

 “이거 받는 사람, 보통 남자는 아닌 거 같다. 그치?”

 

 그리고, 이 편지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보아도 후회와 미련 투성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태연하게 하루 일상을 고하고 있지만 쓴 사람의 그리운 속내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었다. 별말이, 아닌 게 아니구나.

 아직도 내 연필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씨름하는 강아지에게 넌지시 말을 던졌다. 마루 밑에 넣어뒀던 갈색 종이 상자를 꺼내 방금 받은 편지를 넣어두었다. 상자 속엔 저번에 받은 똑같은 편지가 이미 들어있다. 상자를 도로 마루 밑에 집어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나비 무늬의 나전칠기 서랍 위에 놓인 집 전화기의 수화기를 귀에 대고 꾹꾹 번호를 눌렀다. 웅 하고 울리던 잡음이 금세 뚜르르 하는 일정한 컬러링으로 바뀐다. 달칵. 이윽고 친숙한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할매! 치료는, 잘 받고 있어?”

 - 어이구 내 새끼. 할미 걱정은 인자 됐다 밥은? 냉장고에 나물 상하기 전에 먹었제?

 “그렇게 많이 해두고 갔는데 혼자 어떻게 다 먹어.”

 

 할머니의 반가운 목소리를 듣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할매 호들갑은 알아줘야 해. 냉장고 보니까 무슨 나물로 잔치할 기세로 만들어 두셨더라. 사실 안부도 안부지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다.

 

 “…나한테 말 안 해준 거 있지?”

 

 두 번째도 같은 편지가 오자 알 수 있었다. 이건 실수로 주소를 잘못 썼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첫 번째 편지엔 마치 예전에도 여기로 편지를 보냈었다는 말투로 쓰여있었으니까. 그게 두 번이나 이곳으로 도착하고서야 확실해졌다.

 

 “한종철이라고, 아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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