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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작가 : 해모
작품등록일 : 2018.12.12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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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가 느꼈을 불안.
내가 느꼈을 두려움.
동시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은 알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해 외로웠던 사랑.

부칠 수 없는 편지인걸 알면서도 뒤늦게 펜을 든 소녀와 초여름의 어느 날, 필시 주소가 잘못된 듯한 편지를 받은 소년. 서로 누구인지도 몰랐기에 주고 받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담긴 편지 속 이야기.

 
《6. 보고 싶어요, 정말》
작성일 : 18-12-18 00:13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9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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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 : 원래 묘를 옮겨 새로 지내는 장사.

 *[풍장] : 시체를 태우고 남은 뼈를 추려 가루로 만든 것을 바람에 날리는 장사.

 

 

 우리는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깊숙하게 서로를 알아갔다. 무겁고 진중한 상처부터 사사로운 일상까지 낱낱이 공유한 덕분에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 오랜 시간 함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어디를 갔고 아침으로, 점심으로, 저녁으로 어떤 걸 먹었고 무슨 감정으로 있었다는 아주 세세한 것부터 약점이 될지도 모르는 유리알같이 깨지기 쉬운 내면까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동시에 몇 장의 그림과 또 몇 장의 사진이 오고 갔다. 우리는 더 이상 편지를 보고 울지는 않았지만 기뻐하는 법을 깨달았다. 지난날을 되짚어보고 마치 일기장에 써 내려가듯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았다.

 

 9월 말 가을, 편지를 주고받은지 사 개월이 흘렀다.

 

 

 하늘이 정말 높다. 라고 생각한 지 오늘만 해도 자그마치 세 번째였다. 하지만 말마따나 오늘 날씨는 평상시의 서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높고 간간이 구름마저 한가로이 떠도는 청명한 하늘이라서 자꾸만 고개를 위로 올리고 싶어졌다. 맞아,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이랬지. 얼마 전까지 푹푹 찌고 습하던 여름이 소리 소문 없이 물러가고 가을이 왔다. 때때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아까부터 자꾸 신경 쓰이게 어물쩍거리는 잡념도 파랗게 잊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걸로 네 번째,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끼익. 줄줄이 버스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10분 전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지금은 두 손에 보자기에 싸인 묵직한 나무상자를 들고 있다.

 

 “아, 왔다.”

 

 등에 짊어진 배낭과 손에 든 상자 때문에 벌써부터 온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이 버스를 타면 앞으로 몇 시간은 더 걸릴 거다. 버스에 오르자 평일 시간대라 그런지 이 시골 지역에 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나까지 한두 명만이 같이 올라탔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배낭은 바로 옆자리에 두었지만 상자는 품에서 빼지 않았다. 잠시 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문득 생각이 나 배낭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천천히 전원을 켠 핸드폰엔 몇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너 어디야? 공강 아니잖아. 설마 아파?

 -2017.09.30.AM.11:45 은기」

 

 「교양만 빠진 줄 알았는데 아예 학교 안 나왔네. 웬일이야 설마 땡땡이?

 -2017.09.30.PM. 12:48 은기」

 

 「너 없어서 혼자 점심 먹는다 나 완전 아싸야. 걱정되니까 전화 아니 답장이라도 줘.

 -2017.09.30.PM:1:12 은기」

 

 문자 하나를 제외하곤 전부 은기한테서 온 연락이었다. 처음부터 말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하지만 결국엔 쉽게 입이 안 떨어져서 그냥 조용히 갔다 오는 걸로 결정했다. 그래도 은기에겐 약간의 언질을 하긴 했는데 정확히 언제라곤 말하질 않아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이주 전쯤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겹치는 강의 시작 10분 전을 틈타 짧게 얘기했다. 그때 은기는 내 옆자리에 앉아 두꺼운 전공 책에 얼굴을 대고 졸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나…, 한동안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애. 혹시 학교도 며칠 안 나올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 아마 연락도 제때제때 못할 거야.'

 '어 뭐라고? 가? 어딜? 언제?'

 '나중에. …아빠, 만나러.'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에 내가 한 말이 제대로 들렸을 리 의심스럽지만 나는 그냥 그걸로 어물쩍 넘어가버렸다. 나머지 문자 하나는 엄마에게서 와 있었다.

 

 「정말 같이 안 가도 되겠어? 지금이라도 엄마가 갈까? 혼자 보내자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2017.09.30.PM.12:27 엄마♥」

 

 나는 혹여 상자가 떨어질까 자세를 고쳐 잡고 엄마에게 괜찮다는 답장을 입력했다. 기어이 혼자서 괜찮다고 엄마를 떼어놓고 왔다. 납골당에서 아빠의 유골함을 꺼내는 내내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던 엄마는 내가 나무상자를 보자기에 싸는 순간에도, 배낭을 메고 상자를 품에 안고 납골당을 나가던 순간에도 편히 있지 못했다.

 

 '엄마는 가게 나가야지. 문 닫으면 오늘 손님들 다 헛걸음하는 건데 그래야 되겠어? 나 혼자여도 괜찮아. 여기 아빠도 같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루 장사 안 하는 거야 무슨 탈이라고…. 그렇게 먼 곳에 두면 네 아빠 자주 못 볼 텐데 괜찮아?'

 '내 욕심 때문에 여기 있었잖아.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던 바단데 지금도 너무 늦었지.'

 

 예전에 절대 풍장 하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야 엄마. 아빠도 이해하실 거야.'

 

 그럼 아빠가, 아니 엄마랑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냐며.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니냐며 아직은 완전히 바다에 보낼 수 없다고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의 나는 풍장까진 아니더라도 이장을 결심했더랬다. 납골당을 옮기기로 한 거다. 나조차도 모를 변화의 바람이 속에서 일고 있었다. 나는 지금 아빠가 살던 곳으로 가고 있다. 아빠의 유골함이 담긴 나무상자를 안고 며칠 서울에서 떠나있는 동안 지낼 짐을 등에 메고서 홀로 먼 길에 올랐다. 때마침 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는지 손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오늘인가 보네. 아버지 잘 모셔다드리고 와. 내 안부도 꼭 전해드리고.

 -2017.09.30.PM.3:11 은기」

 

 역시, 얘 눈치 하나는 알아준다니까. 전에 같이 납골당에 갔던 일도 있고 내 설명 부족한 말을 듣고도 눈치껏 알아챈 녀석이다.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응, 갔다 올게. 오래 걸릴지도 몰라. 고마워. 버스가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가을의 높은 하늘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빠, 이제 아빠가 살던 시골로 가요.”

 

 덜커덩 거리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품에 안은 아빠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얘기해 주었다. 오늘은 하늘이 참 높죠?

 

 

 ***

 

 

 이번 일로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작은 마을 근처에 납골당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납골당은 다행히 바닷가 근처에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는 이미 준비를 마쳤겠지만 나는 좀 더 느긋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좀 있으면 아빠가 지내던 마을로 들어가요. 지민 씨가 종종 말해주던 읍내가 여기 같아요.”

 

 글과 그림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듣고 보았던 시골 읍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슬슬 저녁에 가까워질 시간이라 상인과 학생들로 분주한 저녁거리의 읍내였다. 무거운 나무 상자를 품에 안고서 읍내를 지나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 벽면에 붙은 바랜 노선표는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양손에 짐을 잔뜩 든 할머니가 뒤따라 버스에 올랐다. 나는 멍하니 있다 재빨리 자리에 나무 상자를 내려두고 할머니의 짐을 좌석 근처로 옮겨드렸다.

 

 “고마워이, 처자.”

 “에이, 아니에요. 어디까지 가세요? 내릴 때도 도와드릴게요.”

 “괜찮어. 요기 두 정거장 뒤에 바로 내려―”

 

 나는 살포시 미소가 지어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동시에 지민 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이런 상황과 풍경이 일상이라던 그의 말이. 그가 말했던 대로 버스를 탄지 40분쯤이 되어서야 바닷가를 끼고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정거장 곳곳에 가을에 핀 코스모스가 살랑거리는 들판과 옹기종기 모인 파란 지붕과 하얀 벽이 주를 이루는 집들이 보였다. 거기서 10분을 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 사이에 지민 씨가 사는 집이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끼익. 푸쉬쉬. 뒷문이 닫히고 내 뒤로 버스가 떠났다.

 

 5분을 조금 더 걷자 아주 작은 납골당이 나타났다. 아직은 파란 은행나무가 줄지은 좁은 도로 옆에 최근에 새로 칠을 했는지 누런 벽면 위로 칠해진 흰 페인트가 인상적인 납골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아빠를 안치할 칸 아래 조심스레 나무 상자를 내려놓고 보자기를 풀었다. 흔히 그렇듯 주변은 납골당과 꽃, 명패, 사진들로 채워진 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그 가운데 깨끗이 정리된 빈칸이 아빠의 자리다. 전화상으로 혼자 이장하겠다고 연락을 해두어서 내부는 조용하기만 했다.

 

 “당분간은 아빠 만나러 여기로 올 거예요. 진짜 당분간만,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요.”

 

 잠시 후 손바닥보다 조금 큰 유리문 안으로 다시 아빠의 사진이 들어갔다. 그 너머로 내 얼굴이 비친다. 아빠에게 다 보여줄 수 없어 억지로 슬픔을 감추고 미소 짓는 내가 비친다. 아까 읍내에서 산 다발이라고 하기엔 심히 조그마한 꽃묶음을 유리문에다 붙였다. 나와 엄마의 사진은 물론 지민 씨가 그려줬던 바다 그림까지 챙겨와 같이 넣었다. 원래 안치했던 납골당에 비하면 아주 소박하고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비로소 마음이 한시름 놓이는 걸 느꼈다. 이제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피부로 느낀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왜 항상 이렇게 모자란 것만 같을까.

 

 “그래도 나, 노력하고 있어요. 진짜로.”

 

 그렇게 모든 이장이 끝나고서도 나는 아빠의 앞에 오래도록 머물러있었다. 그러다 뛰쳐나오다시피 납골당 밖으로 나갔다. 올 때는 몰랐는데 저 멀리 파란 바다가 보였다. 분명 가까운 건 아닌데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기분이었다. 잠시 납골당을 뒤돌아보았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걸었다. 서서히 걸음이 빨라지고 나는 별안간 뛰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코스모스가 핀 들판을 지나 큰 길을 가로질러 골목을 지나갔다. 그러자 내 눈앞에 있었다. 그것이. 바다가. 납작한 모래사장 너머 가을의 높은 주황빛 하늘을 끼고 반짝반짝 표면을 빛내는 푸르른 바다가.

 

 “이건….”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 어떤 말과 글로도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그나마 비슷하게 느꼈던 거라고는 지민 씨가 이 바다를 그린 그림 밖에 없었다. 습기 가득한 바람이 눈, 코, 입 그리고 이마와 머리칼을 연신 쓸고 지나갔다. 짭짤한 바다 특유의 소금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나는 조심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치 오랜 심호흡을 하듯 천천히 고르게. 여기구나. 여기가. 그대들이 사랑한 바다구나.

 

 “보고 싶었어요, …정말.”

 

 한숨 같은 숨을 내쉬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당신을, 당신이 사랑했던 바다를, 그리고 그런 바다를 항상 보고 있을 그 사람….

 사박. 그 순간 모래사장을 밟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이는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주르륵 고였던 눈물이 흘렀다.

 

 

 ***

 

 

 지민 ver.

 

 

 “나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쟤 요즘 왜 저래…?”

 “뭘 새삼스레.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우쭈쭈. 우리 솜이 이리 온―”

 

 교복 치마를 입고서 마루에 대자로 누워있던 안승연이 나름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 묻자 마루 아래에 들어간 솜이를 소시지로 유인하는데 열중하던 정호원이 별 시답잖은 소리로 대답하는 영양가 없는 대화가 한창 기분 좋던 내 귀를 긁어댔다. 나는 최근에 새로 산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며 A4용지에다 저들이 하는 양들을 그리고 있었는데 마음 같아선 그냥 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열댓 번 느끼는 중이었다.

 

 “다~ 들린다. 니들 자기소개는 대학 입시에서나 하지?”

 

 눈은 종이에다 고정을 한 채 한숨을 섞어 말했다. 아니 안승연 쟤는 여자가(생물학적) 아무리 우리가 편해도 그렇지 자기가 치마를 입었다는 자각이 없는가 보다. 그리고 누가 자기 솜이라는 거야. 내 솜이지. 아니 수지 씨와 나의 솜이라고 하는 게 훨 맞는 말이지.

 

 “아니 쟤 진짜 이상하잖아. 가만히 있다가도 실실 웃질 않나. 그려달라고 할 땐 죽어도 안 그려주더니 갑자기 나서서 그림을 그려준다지 않나. 맞다, 나 저번에 쟤가 무슨 편지 같은 거 끼고 은근하게 웃는 거 봤다?”

 

 마루에 뻗어 맑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던 안승연이 갑자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에 그림에 삐끗 잘못 선을 그어버려 짜증이 올라왔다. 이걸 수지 씨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제 짜증이 담긴 게 느껴지세요? 뭐 이렇게 얘기할까.

 

 “아, 그냥 누구 주려고 그리는 거야. 별게 다 이상하네.”

 “누구? 누군데? 여자?”

 “지민 씨는 요즘 수능이고 뭐고 연애하느라 바쁘다네요~”

 “그런 거 아니라고 좀.”

 

 반짝 눈을 빛내는 안승연과 내내 시큰둥하다가 기어코 이상한 말을 주절거리는 정호원이었다. 종이 너머로 살짝 녀석을 째려봤는데 얼레, 시선을 느낀 게 분명한데 싹 무시해버린다. 아오 저게. 정호원이 저러는 건 다 내가 수지 씨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걸 한 달 전쯤에 녀석한테 들켜버린 탓이었다. 아마 그때도 빨리 편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학교로 들고 와버렸다가 제일 알리고 싶지 않던 녀석에게 딱 들켜버렸다지. 그때도 어찌나 득달같이 달려드는지. 대충 얼버무리느라 진땀을 뺐더랬다. 일부러 전부 다 얘기하지 않았다. 별로,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다. 벌써 사 개월인가. 사일 전에 편지를 보냈지만 오늘도 역시 우편함이 썰렁할 터다. 그러니까 며칠 전 수지 씨 편지에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일주일 안으로 지민 씨가 사는 동네, 그러니까 아빠 고향으로 내려가요. 거기 바닷가 주변에 작은 납골당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이장, 하려고요.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편지 못 할 거 같아서요. 아…,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말을 하는 본인도 긴장을 했다는 게 필체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평소보다 굳은 말투, 굵게 찍힌 마침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심했을 문장 등이 그랬다. 힘들게 한 결심이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땐 그림도 사진도 보내지 않고 오로지 글만 써서 답장을 부쳤었다.

 

 「힘들게 결심한 거라는 거 알아요. 아버지가 기뻐하시겠어요! 그럼 우리 잘~ 하면 만날 수도 있는 거네요? 그랬으면 좋겠다. 엇 방금 건 긴장 풀라는 농담이었어요.」

 

 당분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수지 씨한테 무지 중요한 일이니까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편지를 받자마자 한동안 연락할 수 없겠다는 아쉬움보다 잘 됐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진짜 잘 됐으면 좋겠어요. 나에게도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순순하게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있구나, 그런 사람. 수지 씨가 보냈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 속 깊은 수렁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먼저 편지 해줘도 돼요. 물론 당분간 답장은 못 하겠지만 집에 돌아갔을 때 지민 씨의 편지가 도착해있다면 엄청 기쁠 거 같아요. 잘 다녀왔냐며 반겨주는 느낌, 뭔지 알아요?」

 

 “야! 윤지민! 전화 온다고!”

 “어, 어…?”

 

 그 순간 멍한 정신을 꿰뚫는 정호원의 소리침에 화드득 정신을 차렸다. 그새 멍을 때렸나 보다. 녀석의 말대로 안방에서부터 집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오래된 집 전화는 울려도 울리는 것 같지 않게 소리가 시원찮다. 할매인가. 종이와 펜을 마루에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전칠기 서랍 위에 놓인 전화기를 달칵 받아들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할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인사말도 역시나 저녁은 챙겨 먹었냐는 안부부터 물었다.

 

 “나 애들이랑 있어. 그건 그렇고 할매 웬일이야?”

 - 별 건 아니고 인제 아픈 거 다 나아서 내일이나 모레나 돼서 내려간다꼬.

 “진짜? 이제 괜찮아? 의사가 퇴원해도 된대?”

 - 퇴원은 진작에 했버렸제. 저번 달부터는 아들 집에서 요양했다. 계속 여기 있을 순 없고 집에 갈 때도 됐다이가.

 “어어, 할매 빨리 와. 조심해서 내려오고 응?”

 

 아무래도 할머니가 고령이다 보니 단순 허리디스크라도 재발한 것도 있고 꽤 오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나는 처음엔 길어봐야 한 달쯤 혼자 지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사 개월이 지나버렸다. 시간 참 쏜살같다. 할머니가 말을 잇는 사이 나는 수화기를 고쳐잡고 전화선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음성에 묻어있던 반가움이 수그러들며 사뭇 조심스러운 걱정이 담기기 시작한 건 반대편에서도 전화를 고쳐드는지 짦은 침묵 속에 잡음이 섞여 들었을 때부터였다.

 

 - 애미 애비 차로 내려갈끼라.

 

 왜 미처 생각지 못 했을까. 할머니가 서울로 갈 때는 병원에서 급하게 올라가느라 부모님을 뵐 경우가 없었을 뿐이지 건강이 호전된 지금 당연히 옆에서 간병하던 부모님이 할머니를 모셔올 거란 걸.

 

 “아, 그래?”

 

 할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전화선을 꼬아대던 동작이 뚝 멈췄다. 어디랄 것도 없는 시선이 이리저리 헤매다 나전칠기의 화려한 은박 나비 문양에 안착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던 나전칠기는 아직도 그 빛이 생생했다.

 

 “데려다 주기만 한대?”

 - 시간 내서 가는 기라 저녁에 왔다가 새벽 아침에 올라간단다.

 “진짜? 이번엔 바로 가는 거 아니야?”

 - 오야. 와 좋나?

 “당연히 좋지! 엄청 오랜만이잖아.”

 

 내 들뜬 목소리를 듣자 걱정이 사그라든 모양이다. 덩달아 할머니의 음성도 밝아진 걸 보니. 서랍 위 구석에 놓여있던 탁상 거울에 들뜬 내 얼굴이 비쳤다. 이번에도 늘 그랬듯이 얼굴만 비추고 바로 가겠지 싶어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시무룩해있던 얼굴이 눈에 띌 만큼 활짝 폈다. 명절에야 겨우 보는 부모님인데 안 기쁠 수가 없다.

 

 “조심해서 와.”

 

 전화를 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갔다.

 

 “할머니셔?”

 

 아까 그 자세 그대로 하릴없이 놀고 있던 애들이 방에서 나온 내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마루 끝에 서서 지붕 위로 펼쳐진 노란 하늘에 눈짓을 보냈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구나.

 

 “얘들아,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냐? 역시 가을은 가을이야.”

 “봐봐, 내가 쟤 이상하다고 했잖아.”

 

 들뜨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마루에 서있다가 뒤에서 쑥덕거리는 애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대문 밖으로 몰아냈다.

 

 “나도 나지만 너네도 참, 수험생 맞냐? 이제 좀 가라 가.”

 

 억지로 밀어내는 중에도 안승연은 댓발 튀어나온 입으로 연신 구시렁거렸고 정호원은 마지막까지 솜이에게 절절한 인사를 보내고서야 돌아갔다. 그제야 조용해진 집에 한숨을 쉬고 씩 웃음 지었다. 그러다 퍼뜩 중요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황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 편지와 펜을 챙겼다. 이 기분이 가시기 전에 편지를 써야겠다.

 

 “아까 그 바보 놈이 준 소시지 많이 먹어서 배부르지? 밥은 갔다 와서 챙겨줄게―”

 

 마당으로 내려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솜이에게 그리 말하고 곧바로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바싹 마른 모래를 밟아가다가 점점 물기를 머금은 눅눅한 모래알이 신발 밑창에 묻기 시작했다. 바다와 가까워진 그때, 누군가 그곳에 있었다. 해가 저무는 노란 하늘과 희게 반짝이는 바다의 수평선 사이에서 청바지를 입고 어깨너비에서 넘실대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젊은 여자가 바다를 보고 서있었다. 여긴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나는 잠시 사고 회로가 정지된 것 마냥 걸음이 느슨해졌다. 동네에선 못 보던 사람인데…? 애초에 우리 집은 읍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주변에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없다. 손에 꾹 쥔 편지지와 이마를 덮은 앞머리가 바람에 팔락였다. 그 순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던 문장과 얼마 전에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다던 문장이 적힌 수지 씨의 편지가 떠오른 건 순전히 내가 이곳에 편지를 쓰러 왔기 때문일까. 혹시. 정말 혹시나. 이윽고 내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만 편지지를 놓치고 말았다.

 

 “…수지 씨?”

 

 바람에 날려 하늘 높이 붕 뜬 편지지는 나와 그녀 사이를 비집고 날아갔다. 오늘, 무슨 날인가.

 

 “지민…씨?”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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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미안하다는 말 대신》 2018 / 12 / 25 239 0 7841   
10 《9. 언젠가 만날 그날을 그리며》 2018 / 12 / 22 245 0 9244   
9 《8. 당신만이 잊혀질까 두렵지만》 2018 / 12 / 22 255 0 10358   
8 《7. 변함없는 세상 속에》 2018 / 12 / 20 226 0 9101   
7 《6. 보고 싶어요, 정말》 2018 / 12 / 18 249 0 9470   
6 《5. 흐르는 계절을 느낍니다》 2018 / 12 / 16 239 0 10882   
5 《4. 그대 없는 이곳에서》 2018 / 12 / 15 255 0 7164   
4 《3.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엔》 2018 / 12 / 14 255 0 7331   
3 《2. 저는 괜찮습니다》 2018 / 12 / 13 236 0 4623   
2 《1. 혹 아픈 곳은 없는지》 2018 / 12 / 12 259 0 6872   
1 《프롤로그. 잘 지내나요?》 2018 / 12 / 12 432 0 3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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