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악!”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조그만 방 안에서 울려퍼졌다. 분명 연화 자신의 목이 아프고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인데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청각장애인이라도 되는 걸까?
“아직 멀었어요~”
간호사는 멈출 줄 모르는 듯, 끝없이 그녀를 내리쳤다. 우득, 쾅, 뚜두둑. 괴상한 파열음들이 비명과 섞이며 섬뜩한 화음을 냈다. 원하지 않아도 목이 쉴 만큼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고통은 몇 번이 지나도 익숙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흐으윽...으윽...”
목에서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없었고,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맞은 곳의 감각은 마치 뼈가 수십 조각으로 부서진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아예 통각 외의 모든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전과 달리 아무런 저항도 못 한다는 것이 미칠 것 같았다. 어차피 이제는 반항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지만.
‘도대체 왜 나한테...하필이면 나한테...’
그녀가 수없이 되뇌였다. 고작 몇 주 전에 사이코 연쇄살인범에게 죽을 뻔 했는데, 이번에는 그 살인마를 미치도록 동경하는 간호사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죽을 운명이라니. 그녀는, 그녀는 아직 죽기 싫은데. 그 빌어먹을 초능력자에게 살해당한 이후 이게 도대체 몇 번째 생명의 위기인가?
“아쉽지만 더는 시간이 없네요...이만 죽어주세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절대로 그 냄새나는 아저씨처럼 이리저리 도망가지 않아요! 확실하게 모두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릴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연화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아프고 무섭고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는데 왜 이렇게 정신은 멀쩡한 것일까. 차라리 기절해 버리거나 쇼크로 죽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미칠 것 같은데, 미치질 않다니. 하하, 진짜 돌겠네.’
간호사는 피가 살짝 묻은 빠루를 내려놓고 칼을 꺼내들었다. 누가 진철원에게 미친 살인마 아니랄까봐, 똑같이 식칼로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나요~”
“하하...경...찰들 올 텐데...빨리 죽여야 되지 않아요?”
연화가 허탈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제발 누군가가 쳐들어오길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오늘은 지난 번과 다르게 아무도 부르지 않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그래도오오오...뭔가 형사님이 멋있는 말 해주면 좋잖아요? 겸사겸사 형사님도 영웅대접 받는 거죠! 물론 뭐...죽은 다음이긴 하지만.”
‘멋있는 말이라...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얼른~”
간호사가 재촉했다. 상황에 너무나도 맞지 않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누가 들으면 간호사의 애인을 부르는 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귀여운 목소리였다.
“그래 뭐, 해 드리죠.”
간호사가 기대에 가득 찬 눈을 반짝이며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뭐 입이라도 조금 털어야 덜 한스럽지 않을까. 남들이 보면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자조감이지만, 어차피 죽으려고 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다, 이미 죽어도 봤으니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연화는 남은 힘을 쥐어짜 입꼬리를 올려 조소를 지었다.
“엿 먹어.”
그러며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의 중지를 들어올렸다.
간호사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처음으로 이 여자는 광기어린 웃음 대신 분노를 표출했다. 연화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에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진철원 그 자식이 시간을 돌리면, 나도 살아나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칼이 그녀의 가슴을 향해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꼼짝 마!”
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며 누군가 고함쳤다. 연화의 눈이 번쩍 뜨였고, 그녀의 눈 앞에는 한정화, 진채환, 그리고 팀장 김성호가 땀이 젖은 채 서 있었다. 그녀를 구하러 온 것이다!
간신히 울음을 멈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마침내 도움이 온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고통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했던 것이, 지금 현실이 되었다. 아까의 절망감과 상응하는 기쁨이 벅차올랐다.
“미친, 그거 안...!”
채환이 달려들어 간호사를 밀쳐냈지만 간호사는 실실 웃었다. 어째설까? 그녀가 고대한 ‘생존자 죽이기’ 가 방금 실패했는데. 그저 고문한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일까?
“아...”
연화가 고개를 살짝 올리자 그제야 왼쪽 가슴에 아픔이 느껴졌다. 극도의 공포감 때문인지 아니면 상처 때문인지 숨이 미치도록 가빠왔다.
붉게 물든 옷에 불쑥 튀어나온 손잡이 하나.
그녀의 사인이 될 그것.
칼이었다.
“아...아아...!”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신은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 그 지옥같은 고문을 견뎌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버텼건만, 이렇게 무참하게 그녀의 희망을 짓밟다니. 비가 오던 그 날도, 처음 진철원에게 죽었던 그 날도, 처음 장례식장에 갔던 날도, 오늘도, 신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자, 잠깐...! 비켜 주세요!”
흐려지는 시야는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소리치며 뛰쳐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누군가가 보면 축복이지만, 연화에게는 최악으로 저주스러운 마지막이었다.
뛰어들어온 남자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죽기 직전이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방금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
그렇게 말을 흐린 저음의 목소리.
항상 비슷한, 어두운 색깔의 코트와 그녀가 직접 만들어준 목도리.
잘 어울리는 금속테 안경.
평소에는 예리하지만 지금은 왜인지 텅 비어버린 눈.
김이 나오는, 반쯤 벌린 입.
그 사람이다.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인간.
그녀의 세상의 절반.
그녀의 연인.
마주치는 눈은 공포에 질렸다. 자신의 눈은 지금 어떨까?
‘현우야, 살려줘.’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시 한번 나락으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