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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소심한 여자 윤 서희. 어느 날 엄청난 존재와 덜컥 마주치고 말았다. 곧이어 주어지는 기상천외한 미션들. 그리고 꿀처럼 달달한 보상. 답답하게 막혀있던 그녀의 삶이미련 없이 변해간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달콤한 속삭임.
"로맨스 마스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다시 시작된 미션
작성일 : 17-07-23 13:29     조회 : 359     추천 : 0     분량 : 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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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늦은 저녁 시간.

 

 서희가 학교 운동장을 힘차게 걷고 있다.

 

 "후하, 후하."

 

 거친 숨소리와 함께 힘차게 걷는 모양새가 꽤 능숙해 보였다.

 

 "역시! 너무 많이 먹었어."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더 많이 걸어야 했다.

 포장마차 주인 여자 덕분에 서희의 배부름이 오랜만에 한계를 초과했다.

 

 원래 방송 관련 일을 하면서 몸 관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잦은 야근과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을 한다거나 반대로 식욕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덕분에 두툼한 뱃살이 있거나 시체처럼 바짝 마른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서희는 이렇게 걷는 것으로 스트레스와 몸 관리를 동시에 해결했다.

 그녀가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돈이 전혀 들지 않으니까.

 

 게다가 하다 보니 이제는 재미도 붙었다.

 실컷 걷고 나면 어느새 기분이 상쾌해졌다.

 집에 도착해서 씻으면 다른 도움 없이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고된 일을 버텨내는 튼튼한 체력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날씨가 궂은 날은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거기에 늦은 시간에 혼자 걷다 보면 가끔 무서워질 때가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요즘은 동네 구석구석까지 피트니스센터가 들어와 있어서 서희처럼 운동장을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서희는 이렇게 걷는 게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어느새 정리가 되었다.

 

 '혹시, 최 PD님도 지금 운동을 하고 있을까?'

 

 그 역시 꽤 무리를 해서 먹는 듯 보였다.

 아까 본의 아니게 그의 가슴을 만졌을 때 보니 몸이 돌처럼 단단했었다.

 분명 평소에 잘 관리해 온 몸이었다.

 

 서희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의 몸을 상상해버렸다.

 

 '앗! 무슨 짓이야, 윤서희!'

 

 그녀가 서둘러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야한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러자 곧장 그의 음성이 들렸다.

 

 '야한 생각을 했으니 벌을 주도록 하지.'

 

 서희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그는 보이지 않았다.

 

 "휴우, 깜짝 놀랐네."

 

 큰일이다.

 그 사람 생각만 하면 멋대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젠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 지경에 도달했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이럴 땐,

 

 "뛰자!"

 

 이게 정답이다.

 서희가 운동장을 힘껏 질주했다.

 

 잠시 뒤.

 

 한바탕 뛰고 나니 어느새 야한 생각도 사라졌다.

 서희가 챙겨 온 물을 마시며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실 도겸의 친절이 무작정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건 분명 낯선 친절이었다.

 낯선 친절은 늘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지금껏 겪어 보니 그랬다.

 그래서 무작정 모른 척하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런데 참 묘한 인연이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버젓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잃어버린 안경까지 찾아들고 말이다.

 도움이 절실할 때 영웅처럼 그가 나타났다.

 

 '역시, 좋은 분일 거야.'

 

 서희가 어느새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듯 강한 매력을 지닌 남자.

 무심한 듯하지만, 은근히 챙겨주는 자상함.

 소름이 돋을 것처럼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지만, 미소가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할까?'

 

 뜬금없지만 정말 궁금했다.

 그도 사람이니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분명 눈부시게 멋진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멋진 사람과 오랫동안 아름다운 사랑을 할 사람이었다.

 비록 어제 처음 봤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서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곧 운동장 개방 시간도 다 되어갔다.

 교문을 벗어나 골목으로 향하면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탁한 서울 하늘에도 듬성듬성 반짝이는 존재들.

 

 '나의 임은 어디쯤 오고 계실까?'

 

 그렇게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서희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밤하늘의 별빛이 처량하게 반짝였다.

 

 

 ***

 

 

 같은 시각.

 

 도겸이 운동을 마치고 나왔다.

 땀을 빼고 나니 그나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원래 그는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소화가 잘 안 되어 더부룩한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속은 불편했다.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려니 힘들군.'

 

 오늘 자신의 돌발 행동에 스스로도 좀 놀랬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갈 일이었다.

 적어도 평소의 그였다면 말이다.

 

 그런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가 크게 다치는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안경을 손에 든 채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놈.

 

 한낱 그 여자가 뭐라고.

 잃어버린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던 게 전부였다.

 사례를 받지 않고 도망치는 바람에 번거롭기까지 했다.

 그냥 적당히 챙겨주고 잊으면 그뿐.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인연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화장실 앞.

 서둘러 문 앞에 던져주고 가려 했다.

 그 순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상대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듯 연신 손을 휘저어댔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불안해 보이는 걸음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그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대뜸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설마 날 벽으로 착각하는 건가.

 

 인기척을 내자 놀란 그녀가 뒤로 넘어지려 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감쌌다.

 손에 닿은 그녀의 체온이 따뜻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체온이군.

 

 불현듯 알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대로 있어 싶었다.

 그래서 품 안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뿌리치지 않았다.

 

 품에 들어오자 따뜻한 기운과 함께 은은한 비누 향이 풍겼다.

 그녀의 향기였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곧이어 더 강한 욕구가 피어올랐다.

 

 좀 더 같이 있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었다.

 마침 적당한 방법도 떠올랐다.

 

 '저녁을 사는 게 좋겠군.'

 

 순진한 그녀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그물을 던졌다.

 힘차게 펄떡이며 그녀가 사로잡혔다.

 

 '달리는 포차 분식'

 

 어처구니없는 장소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욕심나는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생각보다 밝은 여자였다.

 배시시 웃는 얼굴도 제법 귀여웠다.

 

 큰 의미도 없는 화분인데 무척 아끼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제법 좋은 시간을 보낸 뒤 그녀와 헤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딘가 답답했다.

 

 밀가루 음식 때문인가.

 

 소화제도 소용없었다.

 후련해야 하는데. 원하는 대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탐스럽게 발그레한 얼굴이.

 사슴처럼 커다란 눈동자가.

 당황하던 숨결까지도.

 

 갑자기 가슴이 뭉글뭉글하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 보세요. 저도 최 PD님이랑 같은 거예요. 신기하죠?'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도겸이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일이 있다.

 지금껏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

 이 휴대폰은 그것을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누구도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동정의 마음이든, 지루한 일상에 대한 투정이었든 상관없다.

 어차피 다시 마주할 일도, 그럴 이유도 없으니.

 

 일탈은 여기까지다.

 

 원하는 대로 했으니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어느새 굳은 표정의 도겸이 걸음을 옮겼다.

 마치 이것으로 끝이라는 듯 그의 발걸음이 거침없었다.

 

 달빛이 시린 밤이었다.

 

 

 ***

 

 

 상쾌한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난 서희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인님. 이 옷이 예뻐, 아니면 이 옷이 예뻐?"

 

 서희가 별거 없는 옷장에서 두 벌의 티셔츠를 꺼내 들더니 창가에 놓아둔 식물을 향해 물었다.

 물론 식물 따위가 대답할 리가,

 

 "이거? 우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리 뭔가 통하나 봐. 하하하."

 

 …….

 그녀에게는 대답이 들렸나 보다.

 아무튼.

 

 서둘러 옷을 챙겨 입은 그녀가 갑자기 화장대를 힐끔거렸다.

 말이 화장대였지, 그냥 서랍장 위에 놓인 화장품 몇 개가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처음 일 시작할 때 마리아 여사가 사준 것들이었다.

 화장할 일도 없으니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화장을 할지 말지 고민 중인 것 같았다.

 

 '이제 다시 볼일도 없는데 화장은 무슨.'

 

 서희가 시큰둥한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녀가 화장대를 쳐다보았다.

 

 '아니, 뭐. 꼭 남한테 잘 보이려고 화장하나. 기분 전환도 하고, 또, …….'

 

 마땅히 떠오르는 이유가 더 없었다.

 갑자기 궁색해진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기분 전환은 무슨. 화장 안 한 지도 너무 오래돼서 하면 더 이상할 거야. 그만두고 얼른 출근이나 하자."

 

 그녀가 마침내 화장대 앞에서 어슬렁대는 걸 포기하는 듯했다.

 그렇게 가방 안에 휴대폰을 챙겨 넣고 현관문 앞에 선 순간.

 

 어느새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화장대로 향해 있었다.

 

 아직 미련이 남은 듯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러다가 오늘 지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였다.

 

 [딩동]

 [알려 드립니다]

 

 앗, 이것은?!

 

 회색 고양이, 길동이의 목소리였다.

 서희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당신에게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마…….

 

 불길한 서희의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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