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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소심한 여자 윤 서희. 어느 날 엄청난 존재와 덜컥 마주치고 말았다. 곧이어 주어지는 기상천외한 미션들. 그리고 꿀처럼 달달한 보상. 답답하게 막혀있던 그녀의 삶이미련 없이 변해간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달콤한 속삭임.
"로맨스 마스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용기가 필요해
작성일 : 17-07-20 17:31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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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악!'

 

 "웁!"

 

 난데없는 물세례에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물세례를 퍼부은 장본인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어머, 깜짝이야!"

 

 잠시 뒤.

 

 물을 뚝뚝 떨구며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서희를 향해 가해 여성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어머, 어머! 어쩌면 좋아! 어떡해, 어떡해!"

 

 식당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어쩔 줄 몰라하자 서희가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쓱 닦아내며 말했다.

 

 "괘, 괜찮아요……."

 

 잠시 잊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방심한 틈에 날벼락이 떨어질 줄이야!

 이것으로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꿈속에서의 일들과 황당한 미션.

 

 이것은 모두 실제였다.

 

 서희가 비로소 실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처한 얼굴의 여종업원이 그런 서희를 힐끔거리더니 은근슬쩍 책임을 떠넘기려 들었다.

 

 "아휴, 왜 거기서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중년의 여성이 불쑥 다가와 여종업원의 얘기를 가로막았다.

 

 "빨리 가서 수건 가져오세요."

 

 그러자 화들짝 놀란 여종업원이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제야 서희가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

 눈에 익은 간판이 보였다.

 

 '정을 담은 정원.'

 

 서희도 익숙한 곳이었다.

 회사 근처이다 보니 오가며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가든 형식의 큰 한식당인데 가격이 상당해서 주로 인근 회사의 중역급 인물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중년 여성의 행동으로 보아 그녀는 이곳 관계자인 듯 보였다.

 그녀가 서희를 향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아, 네. 괜찮아요……."

 

 서희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때마침 서희의 이마로 굵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걸 본 여자가 금세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이곳 '정을 담은 정원'의 주인이었다.

 마침 통화를 하러 밖에 나왔다가 자신의 가게 여종업원이 지나가는 여자를 향해 물을 끼얹는 걸 목격한 것이다.

 

 여종업원은 어차피 버릴 물로 마당의 먼지를 없앨 요령이었겠지만.

 물세례를 받은 여자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우연한 사고였지만 분명 책임 있는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곧이어 여종업원이 수건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수건을 받아든 여주인이 직접 닦아주려 하자 서희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괘, 괜찮아요. 제가 닦을게요……."

 

 서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수건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충대충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여주인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

 부끄러웠는지 하얗던 얼굴이 그만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 연희가 딱 저 나이쯤 되었겠구나.'

 

 서희를 바라보는 여주인의 눈빛이 아련하게 흔들렸다.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인데 이 아이는 자꾸 괜찮다며 웃고 만다.

 그 모습이 어쩐지 측은해 보였다.

 마치 깊은 상처를 꼭꼭 감추고 있는 아이 같았다.

 

 "저, 여기……."

 

 어느새 물기를 다 닦은 것인지 서희가 여종업원에게 수건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아직도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옷은 아예 흠뻑 젖은 상태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주인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저희 직원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 죄송합니다."

 

 여주인이 고개를 숙이자 엉거주춤 서 있던 여종업원도 그제야 사과를 했다.

 그러자 서희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도 잘한 거 없는데요, 뭐. 잘 보고 다녔어야 했는데……. 저분 잘못 아니에요."

 

 이런 와중에도 잘못을 저지른 여종업원을 염려하는 서희의 모습이 여주인의 눈에는 참 어여쁘게 보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흔치 않은 아이였다.

 

 여주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급한 대로 옷부터 갈아입으시는 게 어떨까요? 물론 옷은 저희 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젖은 옷은 최대한 신속하게 세탁해서 가져올 수 있도록 할게요."

 

 "네?!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서희가 거듭 사양하고 나섰다.

 이를 지켜보던 여종업원도 급기야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렇게 젖은 옷을 입고 어떻게 갈려고……."

 

 "괜찮아요. 회사가 이 근처인데 휴게실에 남는 옷이 있어요. 금방 가서 갈아입으면 돼요."

 

 서희가 일부러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서희의 고집을 꺾을 순 없겠다 싶어진 여주인이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럼 세탁비라도 받아주세요."

 

 순간 익숙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서희였다.

 

 '사례하겠습니다.'

 

 맞다, 휴대폰 분실남!

 

 그렇다. 지금 이 상황은 그를 만났을 때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러자 얼떨결에 사례를 받고 치렀던 곤혹스러운 일들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서희가 몸서리를 치며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요. 저,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 빨려고 했었는 걸요. 그럼, 제가 일 때문에 바빠서……. 수고하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희가 멀찍이 달아나버렸다.

 

 "아니, 갑자기 왜 저런데?!"

 

 황당하다는 듯 여종업원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옆에 서 있는 여주인의 표정은 좀 달랐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한데 뒤섞인, 애처로운 얼굴이었다.

 

 

 ***

 

 

 엘리베이터 앞.

 

 진하게 화장을 한 여직원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곁에 서 있는 도겸 때문이었다.

 

 그저 우연히 같이 서 있게 된 것뿐인데.

 그녀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인연이라 믿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여직원이 도겸을 힐끔거렸다.

 날렵한 그의 턱선을 따라 붉은 입술이 눈에 띄었다.

 

 아, 미치겠네.

 

 그가 뿜어내는 섹시한 매력에 그녀의 몸이 비틀거렸다.

 

 이대로 이 남자의 품으로 쓰러지고 싶어.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여직원이 냉큼 올라타더니 '열림' 버튼을 누르며 도겸을 바라보았다.

 좁은 공간에 그와 단둘이 있게 될 상상을 하자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하지만 도겸의 얼굴은 처음과 다름없이 그저 무심할 뿐.

 

 그렇게 흡사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서 있던 그가 엘리베이터에 막 올라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다급하게 발길을 돌리더니 어디론가 휙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혼자 남겨진 여직원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었다.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보였다.

 

 한편.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서 멀어진 도겸이 건물 기둥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곧이어 살며시 고개를 내민 채 어딘가를 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이제 막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서희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저 여자?'

 

 도겸이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훑었다.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인지 그녀의 손에는 커피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런데 어째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꼴은 또 왜 저 모양인 거지?'

 

 오다가 태풍이라도 만난 것인지 그녀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부르르 떨어대는 꼴이 영 안쓰러웠다.

 

 '딱 물벼락을 맞은 생쥐 꼴이군.'

 

 젖은 몸으로 커피를 든 채 헐레벌떡 뛰어가는 서희를 보며 도겸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매우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근데 내가 왜 숨는 거지?!'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숨고 말았다.

 뒤늦게 불쾌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치 짝사랑 상대를 몰래 훔쳐보는 연애 풋내기처럼 느껴졌다.

 

 이런!

 

 인생 최대의 굴욕적인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도겸이 얼른 자세를 바로 잡았다.

 

 태연하게 기둥에서 걸어 나오는 도겸.

 

 하지만 그의 속은 알 수 없는 불편함으로 부글거렸다.

 

 역시, 거슬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서희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자기가 멋대로 숨어 놓고서.

 

 괜히 엉뚱한 곳으로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그였다.

 

 

 ***

 

 

 젖은 옷을 입은 채 서희가 5층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는 것보다 커피가 우선이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화하고 있던 노연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오빠,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할게."

 

 서희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카드와 커피를 건넸다.

 

 "여기……."

 

 노연이 낚아채듯 받아들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 그 꼴은 또 뭐고?"

 

 "네?! 아, 그게. 일이 좀 있었……."

 

 서희가 막 얘기하려는데 노연의 호들갑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마, 커피에도 뭐 쏟은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그 전에 생긴 일이라……."

 

 "아니면 됐고."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노연이 냉큼 올라타며 말했다.

 

 "나 먼저 올라갈게. 사람들이 기다려서."

 

 "아, 네……."

 

 "아 참! 지원실에 사람 없어서 검사 못 받았어. 자기가 좀 알아서 해. 먼저 간다."

 

 서둘러 엘리베이터 문을 닫히고 노연이 사라졌다.

 멀뚱히 서 있던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서희는 지원실 여직원으로부터 또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

 

 

 휴게실 문이 열리고 서희가 들어섰다.

 어느새 그녀의 옷은 물기가 제법 말라 있었다.

 사물함을 열자 어제 벗어 놓았던 옷이 보였다.

 

 "이걸 다시 입게 될 줄은 몰랐네. 하하하……."

 

 서희가 허탈하게 웃으며 옷을 꺼내 들었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면서 가연이 나타났다.

 

 "어머, 정말 홀딱 젖었네?"

 

 서희가 흠칫 놀라며 돌아봤다.

 노연에게 금세 얘기를 듣고 오는 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가연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서희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서희의 곁으로 가연이 바짝 다가섰다.

 

 "있잖아."

 

 앗! 저 표정은?!

 

 가연이 귀찮은 일을 떠넘길 때마다 짓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역시나 그녀의 입에서 곧장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우리 자기 생일 파티 준비 때문에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 알지? 스트레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그녀가 들고 있던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뭔가가 빼곡히 적힌 메모지와 USB였다.

 

 "여기 적어 둔 대로 자료 좀 준비해 줘. 내일 꼭 필요한 거니깐 늦더라도 오늘 중에 끝내줘야 해. 알겠지?"

 

 그녀가 손에 든 것을 서희에게 내밀며 말했다.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서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옷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힘든 하루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딩동]

 [알려 드립니다]

 

 때마침 길동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란 서희가 순간 움찔했다.

 곧이어 그녀의 머릿속에서 귀에 익은 말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당신에게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이 상황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십시오]

 

 역시!

 

 어설픈 그녀의 예감이 적중했다.

 이제는 뒤에 이어질 말들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미션은 강제력이 발동되어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 미션은 실패 시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꿈속에서 길동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특수한 상황에 맞춰 미션이 발동될 겁니다. 그럼 당신은 그 미션을 수행하고 성공 여부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겁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거나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 어김없이 미션이 등장했다.

 어쩌면 길동이가 말한 특수한 상황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확실하진 않지만 무언가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서희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가연의 부탁을 거절해야만 한다.

 아니, 거절하고 싶다.

 이제 더이상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하기 싫다.

 

 서희가 입술을 앙다물며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요!"

 

 "응?!"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마침내 서희가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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