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 다다 다다다다 다다다 다다 다다다다다’, ‘싸그락 싸그락 싸그락……’
예의까지 절대 바라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벌건 대낮도 아닌 이 깊은 밤에 드릴을 돌리며 공사를 하는 사람도 다 있었다.
연어는 드릴 소리와 빗자루 쓰는 소리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를 바드득 갈고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어어어”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퍼퍽’
‘어! 여기가 어디지? 우리 집이 아니네’
한 손가락으로 턱 주위를 질질 긁고는 새벽 이슬에 흠뻑 젖은 축축한 눈꺼풀에 낀 끈적한 딱지들을 엄지와 검지로 걷어내고는 눈살을 바짝 좁히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앞에는 낮에 본 배 철판보다 더 시커먼 장벽이 쳐져 있었다.
장벽너머로 ‘다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 드릴 소리가 요란하게 장벽을 너머 귀청을 짜증나게 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만 해서 드릴 소리가 나는 대로 머리를 살짝 올려 쳐다보았다.
“일어났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지”
분명히 신랑 목소리는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귀에 익은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발끝을 살짝 올려 검은 장벽 위로 쳐다보았다.
“어! 오빠가 여긴 웬일이야?”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 그리고는 빗자루 쓰는 소리가 아닌 책갈피 넘기는 소리가 들려 빼꼼히 쳐다봤다.
“응! 그래! 여기 우리 집이잖아. 너와 나만의 집. 뒤로 돌아! 앞으로 직진! 눈곱은 빼고 오너라”
잠시 눈을 지긋이, 꼭 감고 고개부터 세게 흔들었다.
다시 엄지와 검지로 눈꺼풀을 세게 눌렀다 놨다 하고는 몇 개의 젖은 눈곱도 걷어내고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는 장벽 너머를 다시 쳐다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로 돌아! 앞으로 가! 열 걸음 후 좌로 돌려”
완전히 제식훈련 구령이었다. 한편으로 재미있어 시키는 데로 벌떡 일어났지만 바로 주저 앉고 말았다. 42.195 km을 달리고 온 다리였다.
“오빠! 나! 못 걷겠어”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SOS을 쳤다.
“한 살이라도 많이 걸어둬라. 지금 걷지 않으면 머지 않아 앉지도 못한다”
‘다다다다 다다다 다다다다다다’
‘참! 더러워서. 나이가 들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못 걷게 한 놈이 누군데…’
다리가 후들거려 거의 기듯이 화장실로 들어갔더니 생긴 꼬락서니하고 다르게 깨끗이 정리를 해두었다. 온수도 나와서 시원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나와서 물었다.
“오빠! 샴푸도 비누도 린스도 다 여자용이네. 그리고 왜 저렇게 많아?”
“더러운 회사에서 자기 제품 팔아달라고 해서 쌓아뒀다. 필요하면 너 가져가. 비누도 개떡 같은 걸 줘서 나는 안 쓴다”
어이가 없었다. 방금 쓴 비누가 그럼 개떡이란 말인가?
이면지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궁금했다.
이산가족이던 친구던 연인이던 오랜만에 반갑게 맞이하고 얼싸안고 그렇게 하고 난 뒤 의례히 밟는 절차를 이들은 뛰어넘어 버렸다.
연어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번 출장이 이 사람과 해후하고 회포를 푸는 목적이었는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직 여운이 남았는지 뜬금없는 질문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너 많이 변했더라. 그땐 ‘아아’하면서 이름도 부르더니 지금은 절대로 안 하네. 허허허”
헛웃음 밖에 할 수 있는 대응이 없었다. 그, 그 놈인 이놈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아 버린다.
“어이구! 그래! 신랑하고 잠자리서 절정의 순간에 단 한번도 신랑 이름도, 신랑에게 ‘사랑해’을 못했다. 갑자기 오빠 이름이 튀어 나올 것 같아서. 이 등신아!”
그 말에 볼펜을 쥔 손을 잠시 멈추고 또 사람을 열 받게 하는 소리를 한다.
“오래 전에, 물론 네가 시집가고 난 뒤였어. 나도 남자니 당연히 여자를 만났지. 그때 그 사람이 잠자리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그 순간에.. 허!.... 내 이름이 아니고 다른 이름이 튀어 나오더라. 기분 묘하더라. 너도 혹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어?”
“정말 지저분해. 내가 방금 말했잖아. 오빠 이름이 나올까 두려워 신음만 했지. 그런데 도대체 몇 년하고 잠자리 했어?”
“응! 너한테 배신감 느낀 후로 대리 복수의 희생자가 많아. 너 때문에 벌어진 짓이니 추도는 네가 해야 해. 내 책임은 하나도 없어. 허허”
“더러운 놈!”
“이 쪽으로 와 봐”
그는 의자를 자기 옆에 두고는 제법 그럴싸하게 배를 그려두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 내내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이런 속물이 아닌 점잖은 사람이었다.
“자! 봐봐! 바다 위에 떠있는 배도 침대 위에 배처럼 이리저리 꿀렁꿀렁해. 특히 절정의 순간에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바르르 떨어. 그때는 배가 중심을 못 잡아. 방금 전에 너도 그러더라”
연어 주먹이 이 사람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다.
“아야!”
“이제 그만해. 그래서?”
그의 설명은 이랬다.
배에 실린 수입되는 석유화학제품의 수량을 확인할 때 배가 파도에 실려 조금이라도 꿀렁거리면 수량을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 수입되는 화물의 수량이 3만 톤이라 약 50톤 정도는 실제 수량과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날 바다의 환경에 따라서 500톤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오빠가 한 일이 이런 수량을 확인하는 일을 했다고 했고 지금은 수량 차이가 많이 나면 수입하는 쪽에서 보험 청구를 한다고 했다. 여기 보험은 연어도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의 직업은 손해사정인 이였다.
이 사람이 손해사정인 이란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빠가 어떻게? 시험칠 때마다 내 답안과 똑같았잖아. 그 자격증 시험날도 내 같은 년이 있었어?”
“그럼! 당연하지. 내 머리로 어떻게 땄겠어. 네가 더 잘 알잖아”
이 사람을 처음 만난 그날 이 사람은 빨간 명찰이 달린 군복을 입고 나타났고 이 사람이 돌아간 후 한동안 이 사람은 술 안주였다. 이 사람은 이 동네의 유명한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었다는 소문이었다.
깡패가 무슨 그런 자격증을 딸 수 있단 말인가?
“보여줘! 믿을 수 없어”
예전처럼 거침없었다.
지갑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천원자리 지폐 몇 장과 주민등록증과 그 뒤에 깊숙이 여러 가지 자격증이 꼽혀 있었다. 대충 보고는 건네줬다. 만약에 거짓이면 자신이 더 초라해 질 것만 같았다. 섞어도 준치라고 사랑했던 그 사람이 정말로 그랬으면… 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장님과는 어떻게 알아?”
“응! 네 덕택이었지”
갈수록 의구심 태산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