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가을에 피를 또 토한다. 담임 선생님이 아버님을 모셔 오라고 해 의논을 하고 그때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폐결핵이란 진단을 받고 혹시 라는 기대를 가지고 다른 병원에 갔다. 오진이었다. 폐렴이라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에서 수많은 폐렴 상처가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다. 태어나고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랑방은 골초인 아버님과 공동 침실이었고 공부방이었고 간접 흡연실이었다. 툭하면 폐렴이 재발해 학력고사 시험치는 날도 답안지에 피를 토할 정도였으니 그의 집에 공부와 관련 된 상이 없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고등학교에서 병원까지 도보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다. 병원에 가려면 오후 2시에는 학교에서 나와야 했다. 주사를 맞고 나면 정규 수업은 끝나고 자율 학습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학교로 돌아갔지만 점점 옆길로 새기 시작해 하루 두 편 하는 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하루 두 편 하는 영화에 꼭 나오는 한편은 애로영화나 액션영화였다. 사실상 액션영화가 제일 재미있고 시간 보내기는 최고였지만 그보다는 애로영화에 관심이 더 많아 영화관을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애로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사랑을 경험하기에는 어린 나이라 여자는 포기하고 찾은 곳은 액션배우와 같이 날수 있는 합기도 도장이었다. 그러다가 도장에서 만난 또래들과 친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조직 폭력배 행동 대원인 걸 알게 된다.

　호기심 많은 나이에 그들과 어울려 어깨 힘 꽤나 주고 으스대고 싶어 친구들 꽁무니를 따라 그들의 아지트인 TS(Total supper man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건설에 종종 놀려갔다가 거기서 세 살 많은 외사촌 형님인 건호에게 딱 걸린다.

　그 자리에서 이름이며 머리 꼭대기 명칭인 정수리를 쥐어 박힌다. 그런데 건호 주먹이 장난이 아니었다. 벌건 대낮인데도 초롱초롱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눈 앞으로 데려 올 정도로 주먹은 강철이었다. 그때 건호는 두 번 다시 쌈질하는 곳에 못 오게 하고선 주먹이 필요할 때마다 불렀다. 한입으로 두말을 해버린 형님은 상호가 TS건설이듯이 실제로 건설업을 하면서 사장 겸 부 두목이었고 수리 집안의 7촌인 정보수라는 아재가 회장이었다.

　아재도 처음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지만 거기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직종이라 젊은 친구들이 입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려 수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점점 변해가는 세상이라 잡으러 다닐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재도 형님도 인력이 필요하면 수리를 불렀다. 그래도 피붙이라고 위험한 현장에 자주는 보내지 않았다.

　주로 장부 정리할 때만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TS 건설에 놀러 가고 형님, 동생, 친구들 경조사에는 꼭꼭 참석을 하지만 사무실에서만 하는 장부 정리만 하지 현장에는 건설현장뿐 아니라 주먹을 쓰는 현장에도 예전처럼 동원되지 않았다.

　꿈은 노력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 걸 알게 되고, 글로써 인정을 받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길가를 아름답게 수 놓은 야생화에도 적자생존이 있듯이, 그 야생화가 건실하게 자라는 기반이 된 수풀 속에도 약육강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물며 비슷한 얼굴은 있지만 복사한 것처럼 똑 같은 인간이 없는 군상 속에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있다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그때 그들의 전쟁터에서 용병이 되었다. 그렇게 이권싸움에 행동대원이 아닌 용병으로 동원됐다가 생활 지도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눈으로 비슷한 청년들 속에서 수리를 족집게로 꼭 집었다. 그때 퇴학의 기로에 섰지만 병과 친척과 등등의 핑계를 둘러대다가 글재주를 인정 받게 되어 퇴학을 면한다.

　그때 구구절절 늘여 놓은 글들은 폐렴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 주사를 맞고 나면 수업은 끝나서 더 이상 들을 수업이 없었다. 체육대학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으면서 체대에 가기 위해 합기도를 배우면서도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며 적당히 둘러댔다. 거기서 이종사촌 형님을 만나 딱 한번 호기심에 따라 갔다. 이렇게 변명을 늘여놓을 때 선생님은 반성문을 하루 3장씩 그것도 5천자 이상을 써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제출하라고 했다. 그때 또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과 똑같이 선생님이 한달 내내 제출한 반성문을 한달 내내 꼼꼼히 살펴 보셨던 모양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재주가 있다는 인정이란 걸 받게 된다.

　선생님께서 그때 “너! 글 재주 좋은데 체육대학을 가지 말고 문학계열로 가라”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정작 선택한 학과는 취업을 위한 컴퓨터공학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이것저것 꿈만 많았지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르는 변명이고 핑계며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숨을 한번 몰아 쉬고는 씁쓸히 소파에서 일어나 일정을 다시 확인하고는 집으로 갔다.

　“사무실에서 밤새웠어?”

　대문 앞에서 마주친 어머니가 안쓰럽게 보면서 수리 손등을 만지고 있다. 손에서 전해오는 따스한 열기에 수리는 당장이라도 어머니 다리를 베게 삼아 누울듯한 몸짓으로 기대 어머니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묻는다.

　“응! 어디 가?”

　“고구마 모종 심으러. 얼른 가서 눈 좀 붙여”

　서글프다고 해야 할 까? 안쓰러운 미소만 나오고 있다. 수리에게는 어머니지만 동년배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일모래면 환갑인 할머니다. 몇 포대인지 세어볼 필요가 없다. 동산 골에 있는 밭이 아무리 작다 손치더라도 대충 스무 고랑에 길이가 오십 미터는 된다. 대충 일 미터 간격으로 모종을 심어도 천 개다. 어머니 너무 욕심이 과했다.

　혼자서 일 미터 간격으로 과연 몇 모종을 심을 수 있을까? 이 의문보다 울러 매고 갈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걸 시장에서 집에까지 매고 온 것만으로도 기절초풍하게 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가지게 해, 포대 안을 보면서 피씩 웃으며 싱겁게 말한다.

　“이걸 울러 매고 오셨어? 대단하셔! 아직 살아있어. 시집가도 되겠어.”

　“에이 싱거운 놈! 나를 뭐로 보고! 네 놈을 내 배 속에 다시 집어넣고 수리할 힘도 있어! 이놈아!”

　“음! 그래서 수리라고 이름 지었군! 솔직히 저도 다시 수리 받고 싶었는데 잘 됐네. 다시 엄마 배속에 들어 가야겠군! 허허허! 그런데 우리 고구마는 다 버렸어? 모종으로 써도 되는 데 아깝네”

　“이놈아! 네가 맛없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 다 줘서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 난린데 어떻게 네 놈 입에만 맛이 없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제가 언제 고구마 좋다고 한적이 있었나? 이때만 되면 의례히 심는 줄 알고 심기만 했지.”

　모자간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싱거운 농담을 팔씨름 하듯이 한다. 이들의 대화를 두고 철없는 모자간이라고도 하고, 버릇없는 아들이라고들 하고, 어떻게 대화에 끼어들지 몰라서 당황하는 사람도 있고, 간혹 소외감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가까운 친인척들은 이들의 대화에 서서히 빨려 들어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돼 있었다.

　고구마 밭이 있는 동산 골에 도착할 때까지 모자간에 말 한마디도 없다. 치열하게 벌인 싱거운 말 싸움 효과로 기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밭까지 리어카를 끌고 가면 20분도 더 걸리지만 차로는 2분 이내여서 말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얼마 전에 모종 심을 준비를 다 해놔서 모종을 심고 물 뿌리고 비닐만 덮으면 되도록 준비를 해둬서 두 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이놈아! 제대로 심은 건 맞나?”

　어머니가 꼼꼼히 살필 틈도 주지 않고 백 미터 달리기 하듯이 비닐을 들어 뛰면서 덮어 버리고 물을 뿌리고 손을 털털 털면서 싱거운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다.

　“잘 먹지도 안 하는 데 뭐 하려고 정성 드려 심어. 대충 우리 먹을 것만 몇 개 나오면 되지 뭐.”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꼼꼼히 살피는 사이 수리는 도랑 건너편 집 앞에 논을 보면서 연신 사진을 찍고는 사진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메모지를 꺼내, 도랑 둑에 나비 날개 같이 팔랑거리며 우거져 있는 들국화와 하얗고 노란 민들레 꽃들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그때 어머니가 늘 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아름다운 꽃이라 적어. 자연을 어떻게 표현해”라고 말을 한다. 그때 수리 목에서 나온 ‘음~~’하는 신음소리가 어머니 귀에까지 갔다. 안쓰럽게 쳐다본다.

　“엄마! 차라리 그림을 다시 그려볼까? 자연 하나 제대로 글로 표현 못하는 거 보니 나는 글에는 재주가 없는가 봐.”

　“노래를 생각해봐. 세상 모든 생각을 함축해 가사와 곡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지. 종이 한 장에 풍경에서 본 감정과 생각을 함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생각 속에는 주관을 토대로 시대에 맞는 문화와 사상도 표현해야 하잖아. 그냥 붓 칠만 한다고 그림이 아니듯이 글도 그렀잖아. 아무리 좋은 글도 사람에 따라서 버려도 될 한 장의 넋두리나 화풀이밖에 안될 수도 있지. 여기까지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이고 엄마인 나의 생각은 네 생각을 담은 글을 쓰라고 하고 싶구나. 보이는 그대로. 대중의 눈치를 보지 말고. 안 보면 어때! 글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스리기 위해 쓰는 거라고 이 어미는 생각한다.”

　빙긋이 웃으며 쳐다보는 어머니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 수리는 고개를 떨군다. 수리가 쓰는 글은 하소연이다. 이 업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받고 싶어 쓰고 있다. 사회적 강자의 생존을 위한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는 정부를 욕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실업자 구제, 특히 청년실업자를 위한답시고 피를 토하고 있지만 정작 정책에 위배되는 수리 직종의 악법에는 외면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소외계층으로 관심밖에 있다. 그런데도 유망 업종이라고 떠들어 댄다.

　“무슨 걱정 있어? 왜?”

　“아니! 들국화도 민들레도 쑥도 이름 모르는 들꽃들도 아무데서나 저렇게 예쁘게 자라는 걸 보니 부러워서.”

　“우리나라니 잘 자라지. 저기 시베리아 벌판에 가져다 놔봐라. 잘 자라겠어.”

　그랬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잘 자라는 이 나라는 어머니가 옆에 없다면 시베리아 벌판이나 마찬가지다. 씁쓸하기 그지 없지만 내색은 할 수 없다. 그저 씩씩한 척 웃으며 싱겁게 너스레를 떨면서 국민의 피나 빨아먹는 국회의원처럼 입 돌아 갈 가식적인 웃음을 내려고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짓이라 미소는 씁쓸히, 말은 싱겁게 나온다.

　“고생했습니다. 우리 어머님 동무! 가실까요? 허허허!”

　너무 오랫동안 구질구질한 상념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이 어머니가 뒷정리를 하느라 허리가 아픈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깜짝 놀란 수리가 쫓아가 부축하자 빙긋이 웃기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수리는 깊은 고뇌도 아닌 잡념에 빠져 있다가 큰일 날 뻔 했다는 자책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