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행복한 매일이 이어지는 가운데, 바이안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원하던 가정을 이뤄 업무의 지옥의 나날이라 하더라도 불만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누워서 꾸물거리는 것이 엄청 부러웠다.
자신은 단 한번도 갓난아기를 안아 본적이 없고, 뒤집었을 때의 놀람과 첫 일어서기를 했을 때의 감격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리나와 에이든이 아기 때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 속이 쓰렸다.
겨우 가진 가족인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또 아이를 가져 보려 해도, 세이나의 건강이 예전만 못해 함부로 도전할 수도 없었고, 게다가 아직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보다 부부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었기에 둘만의 시간도 거의 가지지 못하는 추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진 바이안은 위대한 작전을 펼치기로 마음을 먹고 집무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가 도착한 곳, 베벨궁이 있었던 자리는 능력을 신경 쓰지 않고 놀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되어있었다.
색색으로 예쁘게 칠해져 있는 예전에 벽돌이었을 물건들은 아이들의 블록 장난감이 되어 현재 열심히 그 쓰임새를 아이들의 손에 의해 펼치고 있었다.
“아빠마마”
“아니야. 아바마마라고 해야대.”
에이든이 리나의 말을 진지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쳐준 뒤에 바이안에게 손을 붕붕 흔들었다.
바이안은 아이들을 한차례 안아주고 볼에 쪽쪽 뽀뽀를 해 준 뒤에 자연스럽게 놀이에 합류했다.
한참을 아이들의 텐션을 높여주며 타이밍을 재던 중, 실컷 놀았다는 표정을 캐치하자마자 아이들을 불러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꺼냈다.
“리나와 에이든한테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니?”
“동생?”
“그거 맛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표정에 동생이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막 태어난 아기들은 엄~청 예쁘고 귀엽지.”
“에바고모네 아기처럼?”
딱 한번 본적이 있는 아기를 떠올리며 반기는 표정에 희망이 보인다.
“아가 볼 만지고 싶어.”
“나. 나는 아가 안아보고 싶어.”
서로 손을 번쩍 들면서 아가가 필요한 이유를 열심히 꺼내는 아이들을 꾸악 끌어 안아주었다.
“엄마가 동생을 낳게 해주려면 우리 아들딸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단다.”
비장감이 서린 표정에 에이든과 리나는 크게 침을 삼켰다.
“엄마가 몸이 약한 거 알지?”
“웅.”
얼굴이 목에서 떨어져 내릴 정도로 거세게 움직이는 리나의 끄덕임에 에이든이 정말로 떨어질 것 같아 이마를 잡아 멈추게 했다.
“우선 첫째로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매일 산책하는 것, 그리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잔뜩 먹게 하는 것.”
고사리 같은 양 손을 꼬옥 주먹을 쥐어 보이며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보인다.
“그리고, 둘째는 에이든과 리나가 힘들 수도 있어.”
“안 힘들어. 동생 동생.”
“할 쑤 있다.”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를 보이기 위해서인지 서로 경쟁을 하듯 치열하게 팔을 휘적여댔다.
“엄마가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한동안 떨어져서 자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자신감이 넘치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눈썹이 추욱 쳐져 조금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같이 못자?”
떨어져서 코 자야하는지 이유는 몰라도 동생은 가지고 싶고, 하지만 떨어져서 코 자기는 싫어 기운이 떨어졌다.
“아가별님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람이 많으면 내려오지 못해서 그래. 아가별님이 내려올 때까지만 참고 코오 자면 다시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잘 수 있어.”
아가별님을 상상하면서 의지를 다지고 열의를 태워 손가락 약속까지 하면서 바이안의 꼬임에 쉽게 승낙했다.
이 후 셋의 첫 동맹으로 한동안은 세이나의 건강 지킴이로 산책과 온갖 귀한 음식들이나 약들을 틈틈이 세이나에게 조공하기 시작했고, 싫다고 해도 온갖 애교와 억지가 섞인 협박으로 살을 찌우고 근육을 늘려 체력을 만들었다.
조금씩 결과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셋은 각자 한 단어를 강하게 생각하며 다시금 열의를 불태웠다.
‘셋째.’
‘동생.’
‘아기.’
황태후와 할아버지들이 기거하는 궁은 본궁과 매우 가까워 찾아가기가 쉬웠다.
에이든과 리나는 할마마마의 궁에 놀러가 방안가득 채워진 디저트들에 손이 끈적이고, 입 주변에 크림 범벅이라 해도 멈추지 않고 빵빵하게 입안에 우겨 넣었다.
“많이 있으니까 꼭꼭 씹어 먹으렴. 아유~ 먹는 것도 어쩜 이리 복스럽게 먹는지.”
황태후는 아이들의 간식들이 줄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시녀들은 그녀의 명에 의해 계속해서 테이블에 빈 접시가 없도록 했다.
“황태후마마 황후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한참동안 잘 먹는 아이들을 감상하고 있는 와중에 들려온 세이나의 등장소식은 셋을 긴장시키기엔 충분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세이나는 눈에 쌍심지를 키운 채로 음산한 목소리로 아이들과 디저트의 사이를 갈랐다.
“엄마. 단 음식을 이렇게 많이 먹이시면 어떻게 해요.”
“너무 맛있게 먹잖니.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는 것만큼 나쁜 건 없어.”
황태후궁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풍기는 버터 향과 단내에 이 사단이 났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잖아요. 아주 예전에는 많이 먹으면 좋지 못하다고 말씀 하시던 분이셨는데, 지금은 완전...”
황태후는 뜨끔했지만, 철면을 깔고 당당히 외쳤다.
“자식과 손주는 달라.”
“......”
뿡하고 나 지금 토라졌음을 풍풍 풍기는 황태후에 할 말을 잊고 있을 때, 엄마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둘은 지금이었으면 엄마의 딱콩을 받았을 텐데 엄마의 품에 안긴 막냇동생 덕분에 화를 면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타이밍을 살살 재다가 아가를 황태후의 품에 안기는 그 타이밍에 때는 이때다 하며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 날아가 버렸다.
“아이고 두통이야..”
흐릿한 세이나의 눈에는 자세히 비치지는 않았지만, 둘이 창문에 발을 디뎠을 때, 아가를 향해서 엄지를 척 올리며 역시 우리 동생. 최고의 방어전이었다며 칭찬을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이나의 마수에서 벗어난 둘은 이번에는 증조할아버지들이 있는 궁으로 달려가 제 2차 디저트대전을 일으켰고, 할아버지들의 우쭈쭈에 힘을 입어 뱃속에 채우고 빼고 또 채워댔다.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둘은 세이나가 그것 보라며 몰아서 혼을 냈다.
“계속 그렇게 단것만 먹으면 밥을 못 먹잖니. 엄마 몰래 자기 전에 먹는 것 모를 줄 알았어? 먹고 나서 이도 안 닦으면 이가 빨리 썩어서 그 좋아하는 간식 못 먹게 된다.”
입주댕이를 댓발 내밀고 아기오리가 된 둘은 엄마의 잔소리와 협박이 불만스럽다.
인생 5년차인 둘에게 단 간식은 천상에 내려온 음식일 정도였으니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음식을 먹어 본 적도 없었으며, 물론 다른 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의식도 하지 못했지만, 매일이 단조로운 식단뿐이었고, 아빠를 만나러 오지에서 나와 마을부터 도시까지 가면서 단 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리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앞에서는 반성하는 척 있다가, 뒤 돌아서서는 절대로 반성하지 않은 둘은 밤에 몰래 먹었던 간식도 끊겨, 몰래 주방을 털어 한참을 입안에 채우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냠냠냐.. 읏!”
잘만 먹고 있던 리나는 순간적으로 이가 찌릿하고 시리면서 이의 뿌리부터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양손으로 아픈 쪽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리나의 이상 행동에 움찔했던 에이든이 손가락질 하면서 우캬캬 비웃더니, 나는 멀쩡하지롱 놀리며 꿀이 잔뜩 발라진 파이를 보란 듯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
그리고 에이든도 리나와 함께 바닥을 구르며 온 몸으로 주방을 청소했다.
멈추지 않고 욱신거리는 치아의 통증에 잠을 설치고 퀭해진 둘이 부모님한테 들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간식은커녕, 눈앞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구멍 난 치아에 끼워진 솜만 앙하고 물고 눈물을 삼켰다.
신세력 9년의 어느 여름날.
증조할아버지 손을 잡고 연병장에 구경을 갔었던 에이든이 한참 정무를 보고 있는 회의장의 앞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빠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이 열리고 대소신료들이 문 앞에 서있는 에이든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면서 물러났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재상인 고모부와 카시어스공작삼촌만이 남아 있었고, 에이든은 그들 앞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가장 멋진 거죠?”
“그렇겠지.”
잔뜩 흥분해 상기된 두 뺨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그럼 그럼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예요? 다들 아바마마가 최강이라던데, 그럼 내가 아바마마를 이기면 내가 가장 멋진 거죠? 그죠?”
호승심은 또 언제 배웠는지 황제인 바이안을 향해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자신도 세이나가 멋지다는 말로 강해지는 것에 목을 맸었던 과거가 떠올라 저절로 인자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한테 사랑 받는 거 아니겠느냐.”
그 말에 확실히 납득한 에이든은 선언하듯 외쳤다.
“나 강해질래. 그래서 아바마마를 이기고 내가 최강 할래.”
“호~”
두 부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고 있는 론과 케리프는 바이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면서 눈빛이 순간 번뜩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이기고 최강이 되겠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소리더냐.”
“뭔데? 뭔데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에이든의 앞에서 팔을 한 번 휘저어 주었다.
그러자 쿠왕하며 넓은 회의장의 한쪽 벽면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최강인 이 몸이 황제이니, 이 나를 이긴다는 것은 에이든 네가 황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황제라는 자리가 최강이 되겠구나.”
“오오오!”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서 좋군.”
아이들이 셋이니 어느 정도 자랐을 때 후계의 문제를 고민하려 했지만, 먼저 관심을 보이면 고민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결 편해졌다.
“일단 황태자부터 시작하거라. 도전은 계속 받아 줄 테니 어디 한 번 나를 넘어 보아라.”
론과 케리프가 에이든의 황태자 책봉의 증인이 되었고, 케리프는 벽이 사라진 저 곳에 들이 부을 예산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기양양 자신만만 의지충만한 에이든은 오래지 않아 후회라는 감정을 배웠다.
“최강에 공부도 포함 되는 거였어?”
“황태자전하께옵서는 미래의 황제폐하가 되실 터이니 지금부터 지식과 교양을 쌓지 않으시면 안 되십니다.”
담당 선생으로 온 귀족의 엄한 말에 두꺼운 책에 빽빽하게 써진 기초경제학 글귀들과 그 옆에는 군주의 자세등등이 에이든에게 어서와 이런 곳 처음이지?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최강은 무력뿐만이 아닙니다. 지식도 겸비해야하며, 그 두개가 균형이 맞아야 최강이 되시는 것입니다.”
에이든의 수준에 맞춘 설득에 눈물을 머금고 반나절 동안 책만 읽어댔고, 리나는 내일이 아니라면서 증조할아범의 손을 잡고 모험가 출신인 전쟁영웅들과 만나서 그들의 모험이야기를 들으며 놀았다.
방에 나 있는 작은 테라스에 서로 나란히 앉아 밤바람을 쐬며 문득 에이든이 글자의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는 것을 떠올렸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것은 깨우치든 이겨내든 후회하든 모든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어 말릴 생각은 없지만, 왜인지 남편인 바이안의 간계가 섞여 있어 보였다.
“남편아. 우리 아들 황태자 시킨 거 다른 이유 있지? 불어. 뭐야.”
세이나의 추궁에 오히려 똑똑한 자신의 계략에 당당히 어깨와 허리를 폈다.
“본인이 먼저 하겠다잖아. 단지 나는 아들의 꿈을 지지해줬을 뿐이지.”
멋진 아빠란 이런 아빠이지 않을까라며 칭찬을 갈구했지만, 진짜 속내를 밝히라며 괴롭히는 통에 항복을 선언했다.
“아이가 황태자가 되고 성인이 되면, 바로 황제자리 물려주고, 아직 하지 못했던 신혼여행 하러 떠나려고 그러지.”
한마디로 일찍 키워 빨리 물려준 뒤에 자유를 찾아 팔랑팔랑 놀겠다는 소리였다.
정말 바이안 같은 생각이면서도 은근 밉상이고, 밉상이면서도 그 생각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사라질 세가 없어 좋다.
이제는 세이나까지 합세하여 뒤 늦은 신혼여행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꼼꼼이 정리했고, 에이든이 무사히 성인이 되고, 20살을 채웠을 때, 제위식에 화려한 황관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에이든이 황관을 쓰자마자 위엄 있게 입고 있던 의복을 그 자리에서 벗어던진 엄마와 아빠는 구석에 숨겨두었던 커다란 짐 가방을 꺼내어 등에 짊어지고 세이나를 안아들더니 수고해라라는 한마디만을 아들에게 남긴 채로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관료들과 귀족들이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에이든은 이러려고 황제 시켰냐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리나는 배를 잡고 크게 웃으면서 네가 황제 해준 덕분에 편해서 좋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모험가 증표는 또 언제 받았는지, 놀리듯 보여준 후에 다른 쪽 구석에서 짐 가방을 꺼내 어깨에 둘러메고 창문을 훌쩍 뛰어내려 사라졌다.
“......”
“오라버니. 아니, 폐하?”
말을 잊은 에이든에게 조용히 다가와 세이나에게 물려받은 흑요석처럼 찰랑이는 검은 머리칼이 흔들리며 그를 부른다.
에이든은 자신을 부르는 동생에 너밖에 없다며 애절하게 보고 있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내 친구가 숲에 가서 아내 얻어 오고 싶대. 그래서 나도 같이 갔다 올게. 아, 황제 축하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창가에서 거대한 맹수가 튀어 나왔고, 막내인 리리아는 그 맹수의 등에 올라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숲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무슨 집안이 이러냐...”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해왔던 모든 것들의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재물로 모두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활개를 치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그의 앞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만이 있을 뿐이다.
때는 신세력 20년에 일어난 황가의 크다면 큰 변화였으며, 단 한명만 뺀 평화로운 일상의 나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