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에는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공백의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치루고, 모든 관문을 통과하자 기쁜 소식을 바로 세이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지금 자신의 행색이 상당히 꾀죄죄한 것도 잊을 정도로 신이 나서 서둘러 오는 중이었었다.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 그녀의 자리 배치는 미리 끝내놓은 뒤였고, 집무실의 안과 밖에는 하일팀만 있어서 그녀가 나타나도 크게 막지는 않았었지만, 문 앞에 있던 기사들이 중요한 회의 중이라서 나중에 오라고 하려하다가 같은 팀이라서 로이에에게 완전히 무방비한 기사들을 그녀는 한방에 제압하더니,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다 듣고는 완벽하게 뿔이 나버렸다.
“성질내면 뵈는 게 없는 건 고쳐지지도 않았냐.”
론의 힐책에 로이에는 그제야 자신의 무례를 인지하고 바로 자세를 고친 뒤 세이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심장에 손을 얹으며 주인에게 보이는 기사의 예를 취했다.
“카시어스 로이에가 주군을 뵙습니다.”
“응. 고생했어.”
로이에의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그녀의 엉망인 옷이 눈에 밟혀서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다친 거 아니야? 치료 받고 오지.”
세이나가 자신을 걱정해주자 기분이 좋아진 로이에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밝게 설명했다.
“괜찮습니다. 이 피 제 피 아니에요.”
당당히 대답을 했지만, 세이나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에 하나 뜨끔했는지, 로이에는 서둘러 자신의 팔을 걷어붙이며 손바닥길이만한 스크래치를 보여주었다.
“다친 곳은 여기뿐입니다. 다른 곳은 다 괜찮아요.”
자신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만 하는 말이 아닌지라 세이나는 로이에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왼편에 앉아 있는 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단시험 보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니, 로이에를 보니까 그 시험이 어떤 건지 새삼 궁금한데?”
호기심에 반짝이는 세이나의 눈동자에 론의 표정이 썩어갔다.
“궁금해 하지 마세요. 안 보시는 게 눈에 이롭습니다.”
“로이에가 특이한 거지. 볼 만 한 게 못 되.”
바이안은 세이나의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그녀의 호기심을 말렸다.
“로이에가 시험 본지, 총 3일 걸린 거지?”
“아주 신기록을 갱신하셨지요.”
“저 녀석이니까 가능한 거지.”
로이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화제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을 때, 로이에는 여전히 세이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한결같은 눈빛으로 세이나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로이에?”
세이나가 이름을 불러도 대답대신 그녀에게 쏘아대는 눈빛이 더욱 강렬해질 뿐이다.
“으음... 끼워달라고?”
원하는 바의 물음이 들리자 나오는 대답도 강하다.
“네.”
로이에의 대답이 귀에 꽂히자마자 휙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모두의 고개가 로이에에게 돌아갔다.
앉아있는 이들 뿐만이 아니라 호위로 안에 들어온 기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말도 안 돼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동작에 세이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해버렸고, 왜들 저러는지 몰랐지만 역시나 오라비인 론이 입을 떼어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로이에. 말 같지도 않은 말과 행동은 이제 그만해라. 능력여하를 불문하고 너는 이제 갓 들어왔거늘, 기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려 하는 것이냐?”
평소라면 바로 반박했겠지만, 로이에 그녀도 기사가 되었고, 그가 지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기에 입을 굳게 다물고 따라가겠다는 말을 참아야만 했다.
팔걸이에 손가락으로 톡 토도독 리듬을 넣으며 한 손으로 턱을 괜 세이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론. 로이에의 능력은 뭐야?”
“주군.”
“주군!”
세이나의 질문의 의도를 모를 수가 없기에 모두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침착하게 가라앉은 눈빛에 론은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로이에의 능력을 풀어주었다.
“저와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제 손에 닿는 것들의 형태를 변형시킨다면 로이에는 자신의 신체 자체를 변질 시키는 능력입니다.”
변형이 아니라 변질이라고 한 그의 말에 로이에가 피범벅이고 옷이 찢어져도 멀쩡한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즉, 최고의 탱커라는 것이다.
“로이에도 넣어서 역할 배치 다시 짜자.”
“안 됩니다.”
말리는 기사들과 얼굴이 환해지는 로이에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세이나는 조용히 그들을 말렸다.
“내가 멋대로 하는 행동은 아니야. 기사들의 기본이나, 소양, 들어온 이가 순차적으로 배우고 해야 할 순서들을 무시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일이 일이기도 하고, 지금 상황이나 입장에서 보고 한 말이야.”
“하지만..”
“그리고, 연회까지는 아직 몇일 남았고, 그 안에 하나씩 해나가면 되잖아. 게다가 유일한 여기사이니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 진거지. 나한테 바로 붙어 있어야 하잖아.”
주군이 그런다는데 어찌 말릴까, 그리고 로이에가 바쁘게 되는 것도 확실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로이에를 이번 팀에 끼워 넣으면서 다시 역할 배치에 대해 논의했고, 그렇게 연회의 날의 준비를 마쳤다.
연회의 당일, 아직 이른 시간이라 새벽같이 어둑한 아침부터 세이나는 시녀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다녔다.
시녀장인 히데아의 지휘아래에 시녀들은 잠에 취해서 감긴 눈으로 비틀거리는 세이나를 잡고 조심히 욕실로 모신 뒤에 재빠르게 잠옷을 훌떡 벗겨버렸다.
그 뒤에 이미 준비가 되어 향기 가득 머금은 따뜻한 욕탕에 세이나를 밀어 넣고 이리저리 마사지부터 목욕시중을 들었다.
“후이...”
이렇게 까지 하니 깨고 싶지 않은데 깨야만 한 세이나는 마지막 발악처럼 잠투정을 부렸지만, 시녀들은 이때만은 귀를 틀어막고 못들은 척 했다.
오직 시녀장의 명령만 머리에 입력할 뿐인 행동이 과히 대단했다.
목욕 한번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지 해가 많이 올라 와 있었고, 방에 따로 아침이 차려졌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욕실에 막 나와 머리를 말려주는 시녀들과, 밥을 떠 먹여주는 시녀들로 분담이 되었다.
“편하기는 한데, 애기가 된 기분이야.”
“오늘 같은 날이니, 다들 힘이 들어가서 그래요.”
히데아가 이번 연회에 주인을 꾸밀 역할을 나누려 시녀들을 불러 모았을 때, 너도나도 흥분해서 넣어달라고 성화가 컸기에 그녀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시녀들은 주인이 여성이니, 이리 저리 예쁘게 꾸며드리는 것으로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풀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다.
예전 가짜가 주인 행세를 했을 때야, 사치도 심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어울리지도 않는데 온갖 보석장식으로 도배를 해야 하니, 마음에도 없는 입바른 말과 함께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중 됐고, 그녀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 후에 진짜 주인이 들어왔으면 뭐하나, 시중도 시녀장 이외에는 심부름 정도가 전부이며, 현재의 대현자님은 예쁜 옷은 불편해서 싫다고 하고, 장식은 무거워서 싫다고 창고에 다 때려 박으라하지를 않나, 피부관리를 해드리려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도망 다니기 일쑤이니, 쌓일 데로 쌓였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새벽부터 벼르고 벼른 시녀들의 마음을 세이나는 몰라서 그대로 당해야했다.
아침 식사가 마무리가 되자마자 2차전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화장대에 앉혀진 세이나의 앞으로 온갖 보석 장식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히데아의 손뼉에 맞춰 언제 밖에서 대기했었는지 다른 시녀들이 드레스들을 하나하나 곱게 펴 놓았다.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판단이 빠른 세이나는 오늘은 어떤 핑계로도 도망 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바로 포기하고 멍하니 몸을 맡기는 것을 택했다.
한창 세이나가 치장을 할 때, 남자들은 모두 나가 있는 상태였고, 로이에만이 방 안에 들어와 세이나의 옆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로이에도 은근슬쩍 한 손을 거들고 있다.
몇 십번인지 몇 백번인지 모를 빗질 덕분에 타고난 머릿결을 가진 세이나의 머리카락이 반짝이다 못해 부드러운 비단결을 넘어 서버렸다.
“많이 길어지셨네요.”
히데아는 세이나의 오른편에 서서 어깨까지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말하자 세이나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상당히 자랐다 긍정했다.
“그러네.”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잘라드릴게요.”
세이나의 성격을 배려해서 꺼낸 히데아의 말에 세이나는 오히려 되었다고 거절했다.
“아니야. 더는 자르지 않을 거야.”
“기르시게요?”
“응. 어렸을 때, 긴 머리가 어울린다고 했었던 말이 떠올랐거든.”
그 말과 동시에 세이나는 대화를 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꺅꺅거리며 방방 뛰는 시녀들도 있었고, 두 볼을 감싸고 부끄러워하는 시녀들도 있어서였다.
시녀들은 세이나가 누구를 지칭하지도 않아도, 긴 머리가 어울린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로맨스나 남의 연애사를 좋아하는 그녀들답게 마치 자신들의 일 인양, 상상만 해도 좋은지, 단체로 들떠버렸다.
그리고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시녀들의 의욕과 열정에 더욱 큰 불을 일으켜 단체로 힘이 더 빡 들어가 버렸다.
“....쩝”
세이나만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그녀들의 뜨거운 열기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문제는 시녀들과 동화되어 있던 로이에가 더 좋아 죽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답답한 것은 싫다. 화려한 것은 싫다. 심플하고 편한 것이 좋다는 세이나의 말을 반영 하면서 머리를 말아 올리는 것은 하지 않고 간단하게 양 옆으로 머리를 작게 땋은 뒤, 반 묶음 형식으로 살짝 올려 붉은 루비 핀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하얀색의 작은 보석들이 안개꽃을 넓게 펴 놓은 모양의 넓은 핀을 오른쪽의 귀 바로 위로 시작해서 한 면을 덮듯이 고정했다.
보석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세이나 로서는 크게 무겁지 않은 것과 화려하지 않기에 대충 납득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지자, 이제는 드레스를 고르는 차례가 되었다.
그 한 편에서 로이에는 턱을 괴며 심각하게 드레스를 훑어보더니 옆에 있는 시녀들과 숙덕숙덕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머리 준비가 끝난 세이나를 힐끔 한번 본 후에 하나의 드레스를 잡고 들어 보인다.
그 드레스를 시작으로 세이나의 곤란지옥이 시작되었다.
“그건 패스.”
“제일 잘 어울리실 거예요.”
로이에가 들어 올린 드레스를 보자마자 질겁해서 패스를 외쳤지만, 로이에를 필두로 모두 못들은 척 했다.
“그러니까 그건 싫어.”
고개를 거세게 좌우로 저어보여도, 역시나 당당히 들고 거리를 좁혀온다.
“싫어. 다른 거.”
다시 한 번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제는 눈앞에 바짝 들어 올려 진 드레스를 지진 5 강으로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껏 부정했다.
그 드레스는 확하고 대번에 눈에 띄는 분홍빛에 등이 깊게 파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귀여움을 강조하려는 듯, 치마는 몇 겹으로 쌓아 올린 것처럼 펑퍼짐하고 넓게 퍼져있었다.
그 것 뿐이면 어느 정도 협상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제일 곤란하게 다가 온 것이 드레스 전체적으로 크고 작은 리본들이 도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 어울릴 거 같은데.”
“주군은 조그마하셔서 무척 잘 어울리실 거예요.”
악의 없는 로이에의 진심이 담긴 말에 눈물짓고 싶어진다.
‘조그마한 것이 아니고, 짜리몽땅 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