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요?”
“하하, 예. 모처럼 이지 않습니까. 작게나마 여유를 두고자 준비했습니다.”
손님맞이용의 응접실에서 세이나는 황태자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의 초청에 들고 있었던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으며 티 없는 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쁘지는 않네요.”
세이나가 긍정적으로 나오니 황태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몇 주 전부터 세이나가 자신에게 오는 알현 신청서를 본격적으로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했었던 것이 황태자가 접근하기 쉽게 해주기 위해서였고, 그 덕분에 요즘은 황태자와 자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다렸던 황태자가 던질 미끼가 드디어 던져졌고, 이제 자연스럽게 냠 하고 물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황태자는 이제 물고기를 낚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세이나는 반대로 거대한 흰 수염고래가 되어서 새우가 달린 미끼를 물고 깊숙한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갈 셈이었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사이가 좋아 보이는 관계 같겠지만 서로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전혀 반대적이다.
세이나는 마침 생각이 난 듯 작게 손바닥을 마주치며 황태자에게 물었다.
“그럼 약혼하시게 된다는 그 여성분도 함께 오시겠네요.”
요즘 소문이 자자하다는 듯이 말을 걸자 황태자는 부끄러운 듯 웃어보였지만 그의 입 꼬리는 미세하게 틀어져있다.
“아직, 약혼까지는 아닙니다. 만나보고 있을 뿐이죠. 만나보고 마음이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을 하는 황태자는 정말 누가 보더라도 그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을 완벽히 연기하는 모습이었지만, 세이나의 특기가 관찰력이라서 그가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손동작이나,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캐치하고 있었다.
“대현자님께서도 항상 바쁘실 테니, 이번으로 잠시 휴식을 가지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이 들어 이리 말을 꺼낸 것이기도 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정말 배려심이 깊으신 분이셨군요.”
‘등신. 뭐라냐? 아주 가끔 빼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꿀 보직 이거덩?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어도 밥이 나온다. 븅~신아.’
그의 배려심을 칭찬하자 황태자는 그렇지 않다는 듯 손 사례를 쳐 보인다.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현궁에 있는 주요 인사들도 함께 동행 하시지요.”
“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세이나의 대답에 황태자는 옳거니 들어 왔구나. 라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세이나는 속으로 그를 까 내렸다.
‘속이려면 제대로 좀 해봐라. 다 보인다. 어떻게 뻔한 미끼를 쥐어주니? 너 똑똑한 새끼라며.’
“제 아우의 약혼녀이셨던 분이셔서 언제 한번 제대로 뵙고 싶었었는데, 설마 저와 대현자님이 이리 친해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태자전화와 비슷해요.”
둘은 동시에 사람 좋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네 놈 씨끼가 아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은 너 빼고 다 안다. 띠밤바야.’
된소리를 넣어 강하게 씹어댔지만 겉으로는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았다.
오늘 세이나는 능구렁이 탈을 전신에 꼼꼼히 둘렀기에 겉은 완벽했다.
“후~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모셔야할 주군과 기사의 사이로밖에 남을 수 없다니요..”
아쉽고 걱정스러워하는 황태자의 몸짓과 말투에 세이나는 저 새끼가라고 속으로 꿈틀했다.
“약혼과 결혼이 뭐 그리 대수인가요. 서로가 좋고 함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지요. 저는 지금도 좋습니다.”
그의 말을 날카롭게 지적해주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입가를 더욱 진하게 말아 올렸다.
그녀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말투에 황태자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날은 아우와 함께 자리를 빛내 주십시오. 대현자님 덕분에 이름뿐이라도 아우가 모처럼 황족으로서의 권위를 돌려받았으니, 두 분의 좋은 모습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네. 꼭 그럴게요.”
‘응. 아주 배가 아파 미치게 좋은 모습 보여줄게.’
이번에는 마음속과 나오는 대답이 일치해서 더 기운찼다.
좋은 분위기에서의 대화가 오갈 때, 응접실과 연결되어있는 조그마한 방안에서 바이안이 벽에 등을 걸치고 둘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옆에서 호위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매끄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서 자연히 비밀 방에 숨어서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이나와 황태자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듣는 바이안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서 심해의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이 지금의 그의 눈빛을 마주하게 되면 온몸이 꽁꽁 얼 정도다.
해가 기울어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둘의 만남은 끝이 났고, 황태자가 현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보고를 들은 후에 세이나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퉤퉤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으퉤퉤~ 새우가 상했나, 맛팅아리가 한 개도 없네. 우웨엑”
세이나만의 비유법 씹기에 굳어있었던 모두의 몸이 조금 풀렸다.
“미끼도 참, 뻔해보여서 웃기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일이 일어나면 증인들은 잔뜩 만들어 질 테고, 거기에서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주변에서는 높게 보게 되겠지. 스리슬쩍 빠지면서 명성은 꿀꺽.”
소파에 대충 널브러져 있던 세이나는 자리에 일어나 손뼉을 짝짝 쳐서 모두를 집중시켰다.
“자~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배경은 연회가 열리는 홀이니 자리와 역할 배치 정해줄게.”
그리고 늘 그렇듯 회의하면 집무실이라고 굳어져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무실로 모여 들어가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연회에 움직인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모이는 사람들도 많지요. 주군이 나타나면 한번이라도 말을 걸고 싶어 안달난 이들이 너도나도 덤벼들 텐데요.”
“틈이 많습니다.”
세이나는 분명 역할 배치를 정해준다고 말을 했는데 다들 자신들이 생각한 걸리는 부분을 짚어내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저러는 것에 속으로 걱정쟁이들 이라고 일축시켰다.
저들 덕분에 말수가 느는 세이나다.
“저 새끼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는 내가 예상하기로는 몇 개 없어. 먼저 황태자와 그것들. 그것들은 내가 죽었으면 하고, 황태자는 반이 죽든 나빠지든 불행하기를 바라지.”
세이나의 설명이 시작되자, 모두 그녀의 입에 집중했다.
“하지만 황태자가 반만을 노리고 싶어도 그것들은 그 부분은 들어줄 생각이 없으니 자연히 그의 화살도 나로 향해. 일단 반의 세계에 내가 자리 잡은 비중이 엄청나게 큰 것은 황태자도 잘 아니까. 내가 죽는다 이꼴은 반이 불행해진다. 최고잖아.”
아무렇지 않게 심드렁하니 자신이 죽는다는 단어를 뱉는 세이나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자신 때문에 세이나가 더 크게 위험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바이안이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손으로 부숴서 우지끈 하는 소리에 단체로 시선을 그쪽으로 옮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나무 조각과 부스러기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고, 자신의 손을 멀거니 보다가 바이안이 미안하다고 대답하고 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황태자는 직접적으로라도 반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었겠지만,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큰 이유는 반이 가지고 있는 무력이겠지. 지도 무서운겨. 어렸을 때야, 여러 가지가 가능했어도 지금은 그런 걸로는 건드리지도 못하니 분함만 커지고, 쌓이잖아.”
“흐음..”
“아무리 투석기로 공격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철옹성이 반이었는데, 지금은 그 성의 한쪽에 구멍이 하나 생겼으니 그 것을 건드릴 거라고 생각해. 일단, 반이 나를 지키고 있으면 인형도 어쩌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할 테고, 반을 어찌 해야 가능해 보이는데, 그러다 그 구멍을 발견하니 어머나? 세상에 둘 다 가능하네? 대박!”
“....구멍이요?”
하일은 여러 가지를 예상해 보지만, 직접 묻는 게 빠르기에 질문의 답을 구했다.
“천공의 땅에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반이 예전에 데스페어라는 독에 중독되었었던 것.”
그 말에 다들 심각하게 그 상황의 확률을 재어보고 있지만, 바이안만은 동공이 심하게 요동치며 혼란해졌다.
“후유증이 쉽게 낫는다고는 생각 안 해. 반. 가끔 한 번씩 쓰러지는 거 말 안하다고 모르지 않아.”
“내가....”
자신이 세이나의 약점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바이안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들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심경이 어떻든 세이나는 지금은 배려해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황태자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이쪽을 건드릴 것이 확률적으로 제일 높아. 무기력해진 반의 눈앞에서 내가 죽으면 절망하는 강도가 최강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일석이조에 최고로 기분 좋을 테니까. 대신에 어떤 방식을 써서 반의 후유증을 건드릴 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 여자라면 무언가를 해주겠지.”
세이나의 추측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다고 해도 의문점이 생겨서 론은 세이나의 말을 잘랐다.
“후유증이 언제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데, 날짜나 시간을 정해서 후유증을 건드린다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가능해.”
확신적인 즉답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내 능력을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어. 기본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이거니까.”
세이나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 피해자가 우리들 옆에 있잖아.”
이들 앞에서 차마 이름을 꺼내기가 어렵기에 호칭과 이름을 뺐다.
이들에게 그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기에 쓴 약을 1리터는 들이 마신 듯 썼다.
“돌릴 수는...”
“내 예상으로는, 이미 늦었어.”
역시나 모두의 마음은 벌써 장례식에 가있었다.
그 모습에 세이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강하게 일갈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모두 버려.”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는 몸을 경직시켰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던 반은 조용히 들어 세이나의 표정을 살폈다.
“그것이 섞이게 되면, 겨우 잡아 들출 수 있는 적의 꼬리마저 놓친다. 그리고 뒈지기 싫으면 버려.”
목숨이 노려지는 것은 본인임에도 세이나는 강하게 밀고나가며 주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황태자에 관한 것은 이미 폐하께서 준비를 다 끝내셨으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
눈앞에 있는 자신들의 주인이 저리도 강하고 의연한데 자신들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되기에 어깨를 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표정을 굳혔다.
“이제 각자의 포지션을 말해 줄게. 그 날에는 하일경의 역할이 제일 중요해.”
“맡겨주십시오.”
눈빛이 바뀐 그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뭐 이, 똥으로 팩해서 똥독 오른 돌아이가 다 있어억!!!”
“아븟. 내 혀...”
집무실의 문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우렁차게 열리더니 어마어마한 목청이 세이나의 뒤통수를 때리자마자 그대로 혀를 깨물어버린 세이나의 한쪽 눈에 눈물이 찔끔 맺혀버렸다.
그리고 모두의 진한 한 숨이 동시에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여기저기가 찢어져 넝마가 된 옷 군데군데에는 피가 예쁘게 염색을 한 상태인 로이에가 씩씩거리며 허락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로이베... 푸~”
아직 혀가 얼얼한지 발음이 잘 안되어 혀를 내밀고 후 하고 숨을 뱉으니 히데아와 바이안이 그녀의 혀에 서둘러 손으로 파닥파닥 부채질을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