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여전히 침대에 앉아 창밖에 팔을 걸치고 멍하니 있는 바이안, 그리고 그 옆에는 늘 론이 항상 함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사와 화장실 갈 때 정도는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만 박혀서 밖으로는 전혀 나오지를 않는 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바이안의 수발을 드는 시녀들은 지금 생활이 이미 익숙한지 멀리 떨어져서 자신들끼리 떠들었다.
“카시어스님도 대단하시지, 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실까.”
“그러게 말이야. 카시어스 백작가도 든든하겠어. 그 덕분인지, 황자님도 식사는 하시게 되셨잖아.”
숙덕거리며 바이안의 옆에 앉아 있는 론을 기특하게 쳐다보았다.
론은 바이안의 옆에 바짝 앉아 두께가 상당한 제황학 교본을 펼치고 소리를 내서 읽고 있었다.
그는 틈틈이 그 외에 공부할 책들이나, 그 밖의 이야기책등 여러 종류의 책들을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 매일같이 읽어 주었다.
하지만 정작 바이안은 그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생각만 가득했다.
‘기사가 제일 짱 쎄!’
‘아니라니까. 황제가 제일 짱 쎄!’
‘아냐! 기사가 제일 멋있어!’
‘우씨~ 그럼 나 기사할까?’
‘진짜? 우와 오빠 멋있다.’
‘멋있어? 흐흥~ 까짓 거 그럼 제일 쎈 기사 하지 뭐.’
‘우와~ 오빠 쵝오. 오빤 쎄니까, 제일 잘 어울릴 거야.’
‘응. 나 꼭 기사가 될거야.’
“....기사...”
“황제의 기본을 다시 강조하자면, 그 누구보다 현명함과 빠르고 단호한 결단력이...응?”
달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로 막힘없이 책을 읽어 내려가던 론은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었나 하며 고개를 들고 바이안을 쳐다보자 따악 하고 눈이 마주쳤다.
“바이안?”
고개가 돌려져 자신을 정확하게 쳐다보고 있는 바이안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 론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속.. 했었어. 기사가 되겠다고, 기사야!”
크게 소리를 지르듯 외친 바이안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방문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론은 당황한 채로 허겁지겁 그 뒤를 쫒아가며 물었다.
“어디 가는데?”
“폐하 만나러.”
바이안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황궁 전체는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현재 바이안은 황제와 마주 앉아 있었고, 엉겁결에 따라 들어온 론은 눈알만 데구르르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자신을 찾아온 바이안에 내심 기뻐하며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로 황제는 진중하게 물었다.
“기사가 되려면, 어찌 하여야 하옵니까?”
자신의 눈을 직시하며 묻는 바이안의 질문에 황제는 적잖이 놀랐다.
“어찌하여 묻는 것이냐?”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황제는 이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왜 굳이 기사이더냐? 기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터, 게다가 기사는 그 어떤 이들보다 격식과 룰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거늘..”
황제는 반대하는 말을 돌려 말하며 자신의 아들이 1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아직도 한참이나 어린 아들이지만 이미 철이 다 들은 듯, 격식과 예를 갖춰 자신을 대했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의연했다.
“너는 황족이다. 기사가 되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느냐.”
“필요 없습니다.”
“허..”
너무나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잊은 황제에게 바이안은 바로 치고 들어왔다.
“누구보다도 대륙을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는 기사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단이 입대하기도 제일 어려울뿐더러, 가장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이안이 지칭하는 기사단이 어떤 기사단인지 바로 알게 된 황제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백의 기사단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더더욱 허락할 수 없다.”
“허락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단호히 반대를 해도 바로 치고 들어옴은 물론이오, 단 한 점의 고민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자,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것이냐?”
그래서인지 황제의 목소리에 살짝 언성이 높아져 뱉어졌다.
“예.”
어찌해야 하는 것이냐며 한참을 생각하던 황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래는 방법으로 바꿨다.
“얘야, 바이안. 그 곳에 들어간 다는 것은 황족의 지위와 권한을 모두 내려놓는 일이다. 지금에야 그들의 주인이 없어 내 권한에 임시로 들어가 있지만, 아예 다른 개념의 기사단이야.”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바이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기사들보다도 더 엄격한 룰과 격식에 얽매여 있단다. 게다가 네가 들어가게 된다면,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너를 지킬 수가 없어. 주체와 개념이 달라. 유일하게 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허락해 주십시오.”
“하아~”
처음에 바이안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에는 드디어 딛고 일어났구나 싶어 기뻤지만, 1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더 큰 근심을 자신에게 안겨주는 모습에 스트레스가 곱절로 왔다.
“폐하. 저도 부탁드릴게요. 허락해 주세요.”
황후궁에서 서둘러 온 황후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오며 황제에게 간청했다.
“황후..”
황제는 치맛자락을 움켜 쥔 채로 작게 떨고 있는 황후의 모습에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그녀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황제 자신보다도 황후의 마음이 더 쓰리고 아플 것이다.
“폐하, 바이안 만은.. 이 아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해주세요. 바이안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저는 들어주고 싶어요.”
더 이상 말릴 수 없을 것 같았고, 한참을 고민하던 황제는 이내 결론을 내리고,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바이안을 내려 봤다.
“엘라이어 바이안 2황자여.”
“예 폐하.”
고개를 조아리며 명을 기다리는 자신의 아들에게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너의 그 결심에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입단에 필요한 것은 짐이 준비할 것이니, 그대는 그곳으로 갈 짐을 정리해 놓거라.”
허락이 떨어지자 바이안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했다.
“폐하의 은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꾸리러 나가는 아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안타까웠지만 이미 떠난 배였다.
눈치만 살피기에 급급했던 론 역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설득해 같은 날에 바이안과 함께 입단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궁을 넘어 천공의 땅 전체에 하나의 큰 소문이 퍼졌다.
물론 2황자의 행보 때문이었다. 황족 최초로 기사단, 그것도 공백의 기사단에 입단한 것은 물론이요, 최연소 기사 견습생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라이트리아라는 유일신인 여신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사용하고 있는 세계에서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며 무력의 정점에 있는 존재인 황제, 그리고 그 황제의 밑에 있는 무력의 최고라 불리는 이들이 모인 곳이 기사단들이었고, 그 곳에서도 황제 직속 기사단이 최고였다.
아무리 직위가 높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뿐더러,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일 정도로 그 존재가 크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가장 명예로우며 자부심이 강했고, 황제의 기사가 되는 것은 가문의 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그런 황제의 직속 기사단 보다 더 큰 명예와 자부심이 강한, 그리고 황제 본인도 어찌 할 수 없는 유일한 기사단이 있다.
모두들 그들의 집단을 공백의 기사단이라 불렀다.
황제가 거느리고 있는 기사들 보다 그 숫자는 적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기사단장과 맞먹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무력의 차이가 컸으며, 룰과 격식이 더 까다롭고 엄했다.
그래서 입단하기도 쉽지가 않고, 입단했다 하더라도 무사히 기사가 되는 이들의 숫자는 더 적었다.
그렇게 독립된 공백의 기사단이 모시는 주인은 황제가 아닌 다른 존재였고, 그 존재는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권력의 또 다른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황제가 힘을 대표한다면 그 존재는 세상의 눈과 귀라 칭해져왔고, 그 둘이 존재함으로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공백의 기사단이 모시는 이를 모두는 대현자라 불렀지만 둘에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마력을 운용하여 사용하는 능력은 대체적으로 유전으로 인하여 대물림 되는 특성이 강하여 같은 능력을 물려받은 아이가 그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 관례가 되었기에 황제의 역할은 대대로 이어져 왔지만 대현자의 자리는 마력의 능력과는 별개로, 여신의 눈물이라는 지금은 현자의 돌로 불리는 물건이 후계자를 결정하고 쭉 이어져 내려왔다.
그래서 천공의 땅이든 대륙의 지상이든 어디에서 누가 선택될지 알 수 없으며, 지금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500년 동안 그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긴 공백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백의 기사단들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주인을 찾고 모시는 것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9년 후, 지금은 황폐의 사막이라 불리고 있는 중심에 누워만 있던 바이안은 한 손을 들어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인기척에 론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너한테 어떤 존재였냐?”
론의 질문에 9년 동안 대답해 주지 않았던 대답을 조용히 건네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사랑한 사람.”
“호~ 여자겠네? 얼마나 깊은 사이였기에, 네 성격이랑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냐?”
호기심을 물씬 풍기며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약혼한 사이.”
“......!!”
평소라면 바로 깐죽거리고 놀려 댔겠지만, 여태까지 약혼녀가 있었다는 것도 전혀 몰라서 반대로 크게 놀라 어버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정쩡한 채로 어색해 하다가 순수하게 물어보았다.
“예쁘냐?”
“아. 예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