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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52.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건가.
작성일 : 17-12-05 21:00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8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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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건가.

 

 

 

 

 철수에게 제이가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었지만 그녀에게 묘하게 시선이 가던 것이 처음 시작이었다.

 

 철수는 풍성한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미소를 머금는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자신에게 제이는 그저 윤 선생님의 딸이자 가엽게도 혼자 사회에 내버려 진 소녀였다.

 

 제이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철수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그녀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자신은 고등학생이었을 때였다.

 

 어리고 불쌍한 소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제이가 자신에게 여자로 다가왔다.

 

 급한 사정으로 인해 독일로 돌아간 철수가 한국으로 다시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이 때문이었다.

 

 태오가 이상하게 여길 만큼 급하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철수는 다행히 건강해 보이는 제이를 보면서 속으로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석 달 전부터 같이 살면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게 되었고, 철수는 생각지 못한 그녀의 허술한 모습도 많이 보았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꼽이 낀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일 줄이야.

 

 제이는 아침에 밥을 먹는 대신 프렌치토스트나 베이글로 식사를 때웠다.

 

 언제나 아침에는 밥을 주장하던 철수도 자연스럽게 밥 대신 빵을 먹었다.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웠기에 식성 따윈 쉽게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제이와 정혁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성을 잃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는 자신이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ㅡ 강철수,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미쳤어.

 

 우는 제이를 보면서 흔들리는 자신을 느끼고 철수는 조금씩 그녀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ㅡ「제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

 

  ㅡ「윤제이 씨말입니까?」

 

 그렇게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이제 와서 제이의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태오에게 비웃음 살 것 같았다.

 

 답답했던 철수는 태오 대신 피터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ㅡ「그날 이후로 여자는 절대 믿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ㅡ「…….」

 

  ㅡ「그런데 제이는 믿어도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왜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납치 사건 이후 그동안은 그 어떤 여자에게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제이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철수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ㅡ 다시는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사랑은 절대 감출 수 없는 법이었다.

 

 숨기면 숨길수록 감추면 감출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감정 때문에 철수는 언제 어디서든지 제이만 주시했다.

 

 어디 돌아다니지 못하게 자신의 품에 가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제이가 철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철수 씨,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사실 철수가 제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수히 많았다.

 

 제이가 웃을 때마다 천국의 빛이 내리쬐는 것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고도 묻고 싶었다.

 

 제이가 울먹이면서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미는 게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말해주고 싶었다.

 

 제이의 단추 틈으로 보이는 하얀 살결이 얼마나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지 설명해주고 싶었다.

 

  "내가 제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이가 화를 낼 때는 미안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계속 놀려주고 싶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

 

 제이가 울면 자신이 얼마나 그녀 앞에서 무능력해지는 것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

 

 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철수는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는 약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멍청한 자신을 보면서 철수는 쓰게 웃었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 하겠습니다."

 

 그녀의 앞에서만 나약해진 철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다른 좋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

 

 

 

 철수는 낯선 이의 손길을 느끼면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철수의 가슴팍을 휘감아오는 가녀리고 작은 손의 손길은 능숙하고 농염했다.

 

  '철수 씨, 어서 일어나세요. 아침이란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철수의 고막을 울리자 그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제이?'

 

 자신의 몸 위에서 커다란 와이셔츠 하나만 입고 있는 제이를 보면서 그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매혹적인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던 제이가 셔츠를 돌돌 말아 그의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잠깐, 이거 분명히 꿈인데.'

 

 깨고 싶지 않을만큼 달콤한 꿈이었다.

 

 뜬금없이 제이가 나타나서 자신의 옷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보니 이건 틀림없이 귀접(귀신과 성관계하는 꿈)이었다.

 

 제이의 모습으로 철수의 앞에 나타났으나, 그것은 진짜 제이가 아니라 생기를 뺏으려는 귀신일 것이다.

 

 철수는 살포시 눈살을 찌푸렸다.

 

  '빨리 꿈에서 깨야 하는데…….'

 

 귀신은 질색이었지만, 제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귀신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제이의 모습을 한 귀신은 대담하게 그의 바지 버클에 손을 댔다.

 

  '철수 씨, 제가 싫으세요? 저는 철수 씨 좋은데……. 우리 조금만 더 진도 나가요.'

 

 아니, 왜 목소리까지 제이랑 똑같은 거야.

 

 철수는 스스로 간절하게 되뇌였다.

 

 이건 제이가 아니라 제이의 모습을 한 귀신이다.

 

 이건 진짜 제이가 아니라 추악한 귀신일 뿐이야.

 

 진짜 제이가 아니라 가짜 제이라고.

 

 그의 속에서 울부짖는 늑대 한 마리를 제어하기 위해 철수는 안간힘을 썼다.

 

 다시 한번 제이의 따뜻한 손길의 철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팍을 더듬던 손은 이제 대담하게 그의 아래쪽을 더듬었다.

 

 철수는 입을 꾹 다물고 끄응,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게 귀신만 아니었다면 당장 일어나 그녀를 끌어안았을 텐데.

 

  '잠깐, 혹시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 아닌가.'

 

 철수는 어쩌면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절호의 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끓어오르는 욕정에 이성을 잃어버린 철수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제이 입술이 너무 보드랍잖아."

 

 맞닿은 입술은 생각보다 훨신 더 말랑하고 보드라웠다.

 

  '역시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

 

 철수는 아랫입술로 제이의 윗입술을 문질렀고, 뒤이어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따뜻한 온기에 철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철수가 그의 상의를 벗는 순간.

 .

 .

 .

 .

 .

 .

 딩동딩동.

 

 달콤한 꿈에서 현실로 소환하는 벨 소리에 정우는 번쩍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자신의 몸에 욕정이 가득 쌓여있었던 걸까.

 

 귀접에서 빠져나온 철수는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이런, 젠장……!"

 

 하필 그 순간에 깨어버리다니.

 진짜 제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깨고 싶지 않은 순간에 꿈에서 깨어난 철수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누구야?'

 

 진심으로 화가 난 철수는 거친 목소리로 인터폰을 받았다.

 

  "누구세……."

 

  - 철수 씨, 얼른 문 좀 열어주세요.

 

 인터폰에 비치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제이를 보고 철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였습니까?"

 

  - 네. 제가 지금 들고 있는 게 많아서 벨을 누를 수 밖에 없었어요.

 

 철수는 가볍게 날숨을 내쉬고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후우, 진짜 무겁네요."

 

  "이리 줘요. 내가 들겠습니다."

 

 철수는 그녀의 품 안에 들려있는 짐을 대신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벨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요. 철수 씨, 뭐하고 계셨어요?"

 

 아까까지 제이와 꿈에서 진한 키스를 하고 있었던 철수는 제이의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러세요? 혹시 어디 몸이 편찮으셨어요?"

 

  "네, 아팠어요. 엄청 많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생기를 빨아먹으려고 제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귀신이 붙은 걸 보니 아무래도 요즘 자신의 기가 허해진 것 같았다.

 

  "오늘 집에만 있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세요. 제가 오랜만에 장도 봤으니까 뭐든지 만들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에이, 오늘 종일 아무것도 안 드신 것 같은데 말해보세요."

 

 먹고 싶은 것, 철수가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정말로 내가 먹고 싶은 거 말해도 됩니까?"

 

  "네."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살짝 눈썹을 위로 추켜올렸다.

 

 이쯤 되면 제이가 다 알면서도 눈치 없는 척 연기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바로……."

 

  "아, 철수 씨 잠깐만요."

 

  "……?"

 

  "죄송한데 편의점에 가서 소금 좀 사다 주실래요?"

 

  "소금 말입니까?"

 

  "네, 깜박 잊고 소금을 안 사 왔지 뭐예요."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앞에 있는 그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놨다.

 

 분명히 이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는 거야.

 

  "……?"

 

 짐을 정리하던 제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철수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그녀의 입술은 꿈에서 나왔던 그대로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철수 씨, 오늘따라 철수 씨 답지 않네요."

 

  "내가 나답지 않습니까?"

 

  "네, 평소의 철수 씨답지는 않은 것 같아요."

 

  "평소의 나는 어땠는데요?"

 

  "항상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철두철미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은요?"

 

  "지금은 뭔가……."

 

 눈을 가늘게 뜬 제이가 픽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음란해 보여요."

 

 제이에게 정곡을 찔린 철수는 손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혹시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이상한 동영상이라도 보고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보지는 않고 사실 꿈에서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끝까지 가진 못했지만.

 

  "사실 내가 낮잠을 조금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이가 벨을 누르는 것도 못 들었죠. 그래서 조금 늦게 열어준 것일 뿐입니다. 이상한 동영상이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알았어요. 아니면 됐어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돌아서는 제이의 입가에 흐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철수는 물끄러미 짐을 정리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눈치 챌만도 한데 왜 제이는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

 

 이상하게도 철수는 제이와 관련된 일에 관해서는 항상 끈기가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성급하고 감정적이게 되었으면서 이성까지 잃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매번 이성이 날아가고 오로지 본능만 남아서 근느 자신을 제어하는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제이가 손목에 걸려있는 머리끈으로 머리를 올려묶자,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철수의 눈앞에 드러났다.

 

 꼭 일부러 보라는 것같이 그녀의 아름다운 목선은 철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이는 철수가 그녀의 목선을 지켜보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하긴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까.

 

 철수는 그녀의 목선을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피가 한쪽으로 몰리는 듯 해서 철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에게 더 물러날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빨리 끝장을 봐야겠어.’

 

 철수는 제이의 하얀 살결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

 

 

 

  "아얏!"

 

 손가락에 칼이 스치기가 무섭게 바닥으로 새빨간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흐음, 아, 아파."

 

 급한 대로 제이는 옆에 있는 휴지로 지혈을 했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제이, 무슨 일입니까? 괜찮아요?"

 

 제이의 신음을 듣고 철수는 쏜살같이 그녀의 곁으로 달려왔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조금 다친 것뿐이에요."

 

  "조금 다치다니요. 피가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괜찮다고 말하면서 상처를 뒤로 숨기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상처 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산 칼이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예리했던 모양이었다.

 

 깊숙이 베인 상처에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철수는 그가 다친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그냥 밴드 바르면 괜찮을 거예요."

 

  "아닙니다. 아직도 지혈이 안 되는 거 보면 굉장히 심각한 상처입니다. 손가락 움직여 봐요. 움직일 수는 있습니까?"

 

 제이가 손가락을 까닥했지만, 철수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철수는 바쁜 걸음으로 서랍에 다가가 구급 상자를 꺼내왔다.

 

  "아직도 피가 멈추지 않는 거 보니까 진짜 깊게 배였나 보군요."

 

  "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훨씬 깊게 벴나 봐요."

 

 갑자기 피를 봐서 놀란 제이의 얼굴을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럼 대충 지혈했으니까 일단 하던 거마저……."

 

  "아니요. 됐습니다. 요리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철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어떡해요."

 

  "그게 문제에요? 제이가 지금 다쳤잖아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아, 알겠어요."

 

  "오늘은 손 하나 까닥이지 말아요. 알겠습니까?"

 

 철수의 강렬한 눈빛이 제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는 칼에 베인 상처를 지혈하고 깔끔하게 봉합했다.

 

 제이는 손에 감긴 붕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 가지곤 오늘 목욕도 못 하겠네요."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네?"

 

 지금 그거 되게 야한 말 아닌가?

 

 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수를 바라봤다.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서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까 철수 씨를 보고 음란해 보인다느니, 그런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어느새 제이의 볼을 화르륵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이가 머리 감는 거 도와주겠습니다."

 

  "철수 씨가 제 머리 감는 걸 도와주시겠다고요? 어떡해요?"

 

 제이의 물음에 철수가 찡긋하고 눈짓을 보내왔다.

 

 

 *

 

 

 우비를 입은 제이는 철수의 지시대로 욕조 턱에 걸터앉았다.

 

 죽어도 자신의 머리를 감겨주겠다는 철수 때문에 제이는 못 이기는 척 욕실로 들어왔다.

 

 사실 하루 정도는 머리 안 감아도 되는 건데.

 

 철수와 같이 살면서 매일매일 머리를 감고 있던 제이는 조용히 그의 말을 따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온 철수가 욕실의 문을 닫고 잠갔다.

 

 철컥.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갇혀버린 제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봤다.

 

 이거 참, 괜히 느낌이 이상하잖아.

 

 욕실 문을 잠그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뭘 어떻게 하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욕조 안에 들어간 철수는 제이의 뒤에 섰다.

 

  "일단 샴푸질부터 하겠습니다."

 

 제이는 평소에 자신이 쓰는 샴푸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샴푸를 짠 다음에……."

 

  "먼저 물부터 묻혀야죠."

 

  "아, 맞다. 그렇죠."

 

 자신만만 하게 말한 것과는 달리 철수의 행동은 너무나도 서툴렀다.

 

  "철수 씨는 예전 여자친구 머리도 안 감겨줘 보셨어요?"

 

 제이의 당돌한 질문에 철수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으세요? 진짜로 여자친구 머리 감겨줘 본 적 없어요?"

 

 제이가 투덜거리든지 말든지 철수는 미지근한 물로 그녀의 머리를 적셨다.

 

 등 뒤로 제이의 옷이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세심한 손길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지는 철수의 손이 느껴졌다.

 

 제이의 머리를 충분하게 적신 철수가 손바닥 위에 샴푸를 짰다.

 

  "여자 머리 감겨 줘 본 적 없습니다. 제이가 처음입니다."

 

  "……."

 

  "고개 들고 눈 감아요. 샴푸질 다 했으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헹글 겁니다."

 

 제이는 순순히 고개를 들고 눈꺼풀을 닫았다.

 

 솨아아.

 

 머리로 느껴지는 따듯한 물의 온도에 제이는 작게 숨을 토해냈다.

 

 눈을 감아도 얼굴 위로 쏟아지는 철수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다.

 

 제이는 그냥 꼭 눈을 감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철수의 손이 그녀의 두피를 더듬을 때마다 제이의 입에선 날숨이 튀어나왔다.

 

 미용실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감겨주는 것에 익숙했지만, 오늘은 왠지 조금 특별한 기분이었다.

 

 철수는 고개를 들고 있는 제이의 목이 아프지 않게 단단하게 그녀의 목을 받쳐주었다.

 

 조심스럽게 와닿는 철수의 손길에 제이는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는 듯이 질끈 눈을 감았다.

 

  "다 됐습니다. 눈 떠요."

 

 제이가 눈을 뜨자 철수가 부드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을까.

 

 철수의 깊은 눈동자에 제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꼭 눈빛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머리 감겨 주셔서 감사해요. 처음이신데 정말 잘하시네요. 미용실에 취직하셔도 될 것 같아요."

 

 붉어진 얼굴의 제이는 머리에 수건을 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까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한거야.

 

 조금 머쓱해져서 헛소리를 한 제이는 수건으로 톡톡 머리카락을 두드리며 머리를 말렸다.

 

  "잠깐만요. 그래도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 되지 않습니까."

 

 철수는 손에 들고 있는 드라이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머리도 잘 말려 주겠습니다."

 

 철수의 제안을 거절할 타이밍을 놓친 제이는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위이이잉.

 

 제이의 뒤에 않은 철수가 드라이기를 켜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섬세하게 그녀의 머리를 만지는 철수의 손길에 제이는 척추를 곧게 세웠다.

 

 별 거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 되는 거야.

 

 뒤에서 느껴지는 철수의 존재감에 제이는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위이잉.

 

  "제이, 내가 어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 거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네! 기억하고 있어요."

 

 위이잉.

 

 귓가에 울리는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철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제이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어제 하려고 했던 말이 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하죠! 근데 철수 씨가 나중에 이야기해주신다면서요."

 

  "네, 그랬었죠. 그럼 지금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레요. 철수 씨 뜻대로 하세요."

 

 철수의 말에 제이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쪼옥.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그의 입술에 제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툭,

 

 사납게 돌아가던 드라이기가 멈추자 제이는 자신의 뒷덜미를 잡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철수 씨가 내 목에 키스하다니.

 

 이게 무슨 의미야. 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건가.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철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 제이랑 키스하고 싶어요."

 

  "네……?"

 

 당황한 제이가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철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농담이라기엔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제이를 쉽게 생각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닙니다."

 

  "……."

 

  "아무래도 내가 제이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철수 씨가 나를……?

 

  "사랑해요, 제이."

 

 제이가 눈꺼풀만 껌벅거리고 있는 사이 철수가 팔로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의 허리를 꽈악 휘감았다.

 

  "나 제이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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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알았어, 오늘은 키스만 할게. 2017 / 12 / 29 274 0 7807   
62 62.너 없으면 못 살아. 2017 / 12 / 28 251 0 8284   
61 61.윤제이 납치 계획 2017 / 12 / 28 284 0 8258   
60 60.키스 좀 해줘라. 2017 / 12 / 25 272 0 8841   
59 59.침대로 갈까? 2017 / 12 / 23 276 0 8348   
58 58.급발진 사고를 내가 낸 거라니까. 2017 / 12 / 22 265 0 8445   
57 57.오빠, 미안한데 저 수건 좀 가져다주실래요 2017 / 12 / 21 364 0 7726   
56 56.그럼 둘이 언제 잤어요? 2017 / 12 / 20 268 0 8352   
55 55.정말로 미치도록 귀엽다 2017 / 12 / 11 252 0 8486   
54 54.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2017 / 12 / 9 262 0 8422   
53 53.나도 철수 씨를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2017 / 12 / 7 253 0 8814   
52 52.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 2017 / 12 / 5 239 0 8764   
51 51. 개미지옥에 빠진 불쌍한 개미 2017 / 12 / 4 272 0 8102   
50 50.당신들한테 제안할 게 있어요. 2017 / 12 / 3 240 0 7987   
49 49.영원히 그와 함께 하고 싶어. 2017 / 12 / 2 252 0 7901   
48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2017 / 12 / 1 247 0 8611   
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2017 / 11 / 29 628 0 8123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77 0 8107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2017 / 11 / 26 258 0 8563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59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7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49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59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38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38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69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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