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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제는 지나간 것들에게
작가 : 은호
작품등록일 : 2017.10.28

"엄마의 새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름과
이제는 식어버린 이름
가까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 했던 이름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1부_6회
작성일 : 17-11-04 15:45     조회 : 224     추천 : 1     분량 : 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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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연히 있어야 할 은은한 햇빛이 안 보이고 어두컴컴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을 뺏겼지. 그치. 채광이 나쁘니 몇 시인지도 가늠이 잘 안 갔다. 몸이 무겁고. 겨우 핸드폰을 켜보니 10시 반.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지금 보니 어둡고 아늑한 느낌이 게으름 부리기엔 딱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침대에서 일어난 건 12시가 넘어서였다. 바닥엔 어제 다 못 치운 짐과 버릴 것들이 널려 있었다. 오늘은 끝내야지.

  “어머, 이제 일어났니?”

  대충 씻고 1층으로 내려오자 부엌에서 신문을 읽던 엄마가 노래하듯 꾸짖는다.

  “방 좋네.”

 반어법으로 들렸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아침 먹어. 아니 점심이겠구나.”

  “좀 이따.” 냉장고 포켓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침샘이 아려오면서 씁쓸한 맛이 입안 전체에 퍼졌다. 방금 양치질을 하고 왔다는 걸 깜박했네.

  “언니는?”

  “약속 있다고 나갔어.”

  “엄마는 오늘 어디 안 가지?”

  “웬일이야? 만날 내쫓질 못 해서 안달이더니?”

 그야…그 남자하고 둘이 있기 싫으니까 그렇지. 원래는 나도 오늘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회사 스케줄 때문에 다음 주로 미뤄진 터였다.

  “있다가 나갈 거야. 인쇄소 들르느라 늦을 수도 있으니까 저녁은 알아서 잘 챙겨 먹어.”

 아, 그것은 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소리였다. 거기에다 엄마는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직 작업실이 마련 안 돼서, 그 사람 오늘은 엄마 서재에서 일하고 있을 거야. 신작 쓰느라 바쁜 시기니까 네가 가끔 들여다보면서 커피라도 타다 주고. 저녁도 같이 챙겨줘.”

 맙소사, 이젠 나를 그 남자 가정부로 붙일 생각인가.

  “알아서 하겠지.”

  “작품 시작하면 거기에만 몰입하는 스타일이야. 요즘 저 사람 주가가 얼마나 올…. 암튼, 좀 챙겨줘. 부탁할게?”

 어머나-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너도 얼른 뭐든 먹고 금동이 사료랑 물 좀 주고-이러쿵 저러쿵. 엄마는 부산스럽게 신문을 접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렵다. 어려워.

 

  또 다시 둘만 남았다. 그렇군.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저 사람이 직업 특성상 거의 집에만 있을 거란 사실이었다. 점심 먹은 설거지를 끝낸 부엌에 앉아서 왼쪽 대각선 방향에 있는 서재 문을 뚫을 듯이 보다가 일어섰다. 그냥 올라가려다가 계단 앞에서 주춤주춤. 뭔가가 망설여져 한참 서성이다 서재 쪽으로 이동했다. 예의상,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라는 말이라도 해 둬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내 손은 쉽사리 그 문을 두드리지 못 하고 마음은 열 번도 더 노크를 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관두자, 어제 이미 성질 부려놓고 이제 와서 예의 차리는 것도 이상하고. 아니지, 그거랑은 별개니까 말 해야지, 이참에 어제 일 사과도 하고. 아니 무슨 소리야 저쪽이 먼저 건드렸는데. 그리고 1층에서 2층까지 올라와서 필요한 걸 말하란 것도 웃기지 않나? 아,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게 싫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손을 내리고 문에 가만히 귀를 대봤다. 아무 것도. 아무 소리도. 언뜻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이 안에서 그 남자가 평온하게 책이나 쓰고 있겠지. 바깥에서 이렇게 커다란 내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문을 두드렸다. 콩-콩-콩…. “들어와요.” 안에서 그렇게 말했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빠끔 열어본다.

  서재는 폭이 넓지 않고 길쭉한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 옆 벽에는 책장이 주루룩 늘어섰고, 정면에 천장부터 시작되는 창문과 작은 원목책상이 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밝고, 아늑하고, 읽을 것도 많아서 좋아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그 남자의 등이 보였다. 문이 열린 것을 알고 뒤를 돌아본다.

  “저…다들 외출했어요.”

  “응.”

  “저 2층에 있으니까…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세요.”

  “고마워.”

 그게 다다. 어제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해요 같은 이야긴 차마 못 꺼냈다.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해냈다는 후련함과 꺼림칙함이 뒤섞인 채로 계단을 올랐다.

 

  책상에 앉아서 남자친구와 평소처럼 연락을 주고받다가 그도 일을 하러 가고, 나도 학교 과제를 시작했다. 곧 있을 기말 작업의 스케치를 10개나 그려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돼서 진행 속도가 무척이나 느리다. 퀄리티 같은 건 모르겠고, 얼른 끝내버려야지.

  겨우 여덟 개쯤 그렸을 때. 문 밖에서 애옹 애옹- 금동이 소리가 들렸다.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털뭉치 같은 손을 넣어 휘젓고 있었다. 들어오고 싶은 모양이다.

  “이상하네, 맘마는 먹었는데. 누나가 보고 싶었어?”

 마침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금동이가 방에 들어올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어라, 그런데 맞은편 방문도 열려 있다. 금동이가 내 침대로 풀쩍 뛰어오르는 걸 보고나서 건넌방을 닫으러 갔다. 그런데,

  차마 문고리를 잡지도 못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텅 빈 방에,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 앞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서서 창밖을 향해 있다. 무얼 하는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뒷걸음질 치는데…

  캬옹-!

 우와, 간 떨어질 뻔 했네. 침대에 올라간 줄로만 알았던 금동이가 다시 내 뒤에 와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물러서면서 꼬리 끝을 밟아버린 것이다. 내가 놀라서 발을 치우자 금동이는 빠르게 1층으로 달아나버렸고 그 자리에 빠진 꼬리털 한 움큼만 흩날렸다.

  그래서 들켰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그 남자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려서 이마에 주름을 짓는다. 뭐라고…해야 하지.

  “…죄송해요. 아무도 없는데 문만 열린 줄 알고….”

  “가서 사과하지?”

  “예?”

  “고양이. 밟았잖아.”

  “아…있다가 간식 하나 뜯어줘야죠 뭐.”

  “익스트림인가?”

 그가 금동이 종자를 맞췄다.

  “어떻게 아세요?”

  “고양이 키웠어. 예전에.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누가 키웠냐고 물을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대화는 이어가야겠다 싶어서.

  “종류가 뭐였는데요?”

  “코숏, 고등어. 도태된 건지, 길에서 죽어가는 걸 데려왔지.”

  “고등어 좋죠.”

 그가 피식-웃는다.

  “어제는, 죄송해요. 피곤해서 좀 예민했나 봐요.”

  “아니, 내가 오지랖이 넓었지.”

 대화가 끊겼고. ‘여기서 뭐하세요?’ 묻고 싶었으나 그럴 용기도 내겐 없었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글쎄.”

 아니야, 아니겠지. 역광이라 잘못 본 거지. 어쩐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그는 말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다행히,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이 지나갔다. 2층에서 봤을 때 저녁은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그는 알아서 한다고 했고. 그래서 나도 그냥 편하게 있었다. 엄마와 언니가 차례차례 귀가하고. 나는 과제도 끝냈고. 침대에 누워서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사이좋게 지내냐고? 어색하지 당연히.”

  “많이 불편해?”

  “그렇진 않아.”

  “힘들면 나와도 돼. 학교 근처에서 자취한다고 하면….”

  그 얘긴 진작 끝낸 줄 알았는데, 살짝 짜증이 나서 말을 끊었다. “아냐. 아냐.” 저 너머에서 ‘흠…’하고 남자친구가 한숨 소리를 낸다. 별로 할 말이 없다. 잠깐 핸드폰을 얼굴에서 떼고 시간을 보니 벌써 밤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빠 빨리 자야겠다. 내일 출근해야지. 나도 학교 가고.”

  “알았어. 좋은 꿈 꾸고. 내일도 연락하고.”

  “응.”

  “사랑해.”

  “그래 그래.” 잘 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이 뜨끈뜨끈하다. 내려놓고 나니 귀가 서늘한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물 한잔만 마시고 자자.

 

  불을 켜지 않고 핸드폰으로 발밑을 비추며 난간을 짚고 1층으로 내려왔다. 어차피 모든 건 늘 있던 자리에 있으니까 부엌 불을 켤 필요도 없이 컵을 꺼내고 냉장고 포켓을 열어 물을 따랐다.

  컵을 개수대에 내려놓고 올라가려던 참에 거실로 눈이 갔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에 보름달이 떠있어 사물들이 제법 뚜렷이 보였는데 소파 팔걸이에 황갈색 털뭉치가 놓여 있었다. 금동이다. 보통은 언니 침대에 콕 박혀서 자는데 웬일로 밖에 있을까. 뭐, 절대 가만히 있어주지 않겠지만 5분이라도 데리고 자보려고 소파로 다가갔다. 그러다 멈췄다. 숨을 죽였다.

  정말…이 남자가 온 다음부터 수시로 깜짝 놀라게 되네. 소파에 뭔가 길쭉한 것이 누워있다 싶었더니 사람이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쭉 끼쳤고. 자세히 보니 그 남자가, 소파에 길게 누워서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어 있던 것이었다. 금동이는 그의 머리맡에 동그랗게 말려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니, 첫날에는 무서워서 도망가던 녀석이….

  그런데 왜 이런 데서 자는 건가. TV 전원도 꺼져 있고. 이제 막 결혼한 사람이 혼자서 한뎃잠을 잘 이유는 없을 텐데. 이런 저런 이유를 추측해보느라 한참을 서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오래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조용히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엔 다리를 올리고 누워봤다. 쿠션을 베고 몸을 옆으로 해서 그 남자를 마주보자 가죽소파의 냉기가 몸 왼쪽에 스며들어온다.

  저 사람 4인용 소파에 거의 꽉 차네. 진짜 키가 크긴 크구나. 얼굴은 깨어있으나 자고 있으나 무표정. 약간 이완된 것 같기도.

  달빛에 이목구비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깔끔하게 넘기고 있던 머리는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고 이마엔 주름 한 줄기가 깊게 패였다. 짙은 눈썹 밑으로 감겨진 눈엔 잠시나마 매서운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코는 선이 제법 날렵하게 뻗어 있었고, 다소 가느다란 입술은 팔자주름을 따라 양 끝이 살짝 쳐져 있었다. 그래서 더 무표정해 보인다. 턱 끝은 조금 각져있다.

  그를 보고 있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순간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한가운데가 찌르르-하며 아리고.

  그가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듯 잠시 초점이 흐린 눈빛을 하다가.

  나를 봤다.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가 하는 것처럼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실제론 고작 몇 초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꽤 오랜 시간을 마주본 것 같이 느껴질 무렵, 이내 그는 다시 눈을 감았고. 다시 뜨지 않았다. 아, 잠결에 그런 거구나. 다행이다.

  나는 여기에 왜 누워있을까.

 

  다시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일어나 2층으로 올라왔다. 침대에 눕자 떠오른다. 그 얼굴이. 심장이 덜컹거렸던 느낌이 가슴에 짙게 남은 채로, 애써 그 영상을 지워내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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