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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제는 지나간 것들에게
작가 : 은호
작품등록일 : 2017.10.28

"엄마의 새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름과
이제는 식어버린 이름
가까이 있어도 이해하지 못 했던 이름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1부_2회
작성일 : 17-10-28 15:36     조회 : 236     추천 : 1     분량 : 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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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라, 오늘 중요한 자리 가는 거 아니었어?”

  “뭐 그리 대수라고.”

  토요일. 내 가정사 때문에 남자친구는 모처럼의 주말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나를 만났다. 이렇게 무리해서 까지 보지 않아도 괜찮은데, 이 남자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아무튼 온종일 문자로 징징거리는 건 보고 싶지 않아서 만나주러 왔다.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다. 평소처럼 흰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고 화장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데이트가 끝나면 곧장 엄마 애인을 소개 받는 자리로 가는 건데, 이토록 편안한 차림에 남자친구는 약간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슬랙스는 색깔 있는 걸로 입었잖아.” 빨간 색이었다.

  “그 부분은 또 너무 튀는 것 같은데.”

  “상관 없대두. 상견례도 아닌데.”

  “알았어. 점심은 먹고 가야지?”

  “조금만 먹지 뭐.”

  “왜?”

 저녁엔 틀림없이 한정식 풀코스일 테니까.

 

 

 

  그러나 예상 외로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 엄마가 알려준 한식당 앞에 언니와 만나서 기다리자 곧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저만치서부터 달려와 섰다. 엄마 차는 아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경직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조수석에서 내렸다. 하늘색 민소매 투피스에 옅은 회색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클러치 백을 조심스레 손에 쥐며, 웃는 얼굴로.

  “오늘은 시간 맞춰들 왔네. 어머, 너는…이런 날 옷차림이 그게 뭐니 얘.”

 언니조차 원피스 정장을 하고 왔기에 내 편이라곤 없다. 뭐 어떤가.

  이윽고 발렛파킹 직원이 뛰어왔고, 운전석에서 엄마의 애인이 내렸다.

  갑자기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넷 프로필에서 본 그 얼굴. 안경은 없고. TV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었는데, 나름 수트빨이 잘 받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남색 바탕에 흰색 사선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넥타이 센스는 별로다. 그는 무표정하게 차 키를 직원에게 주고 우리 쪽으로 왔다. 이질감이 공기를 타고 훅 끼쳐왔다.

  “자, 인사들 해. 이쪽은 신우진 작가님. 엄마랑은 10년 넘게 같이 일했고, 이제 가족이 될 분이야. 여긴 우리 딸들. 큰 애는 강하나, 작은 애는 강두리.”

  “안녕하세요.”

 엄마의 군더더기 없는 소개를 받고 언니와 나는 고개를 꾸벅 거리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이런 식의 만남은 몇 번 있었다고 내가 너무 방심했던가. 마음의 준비를 덜 했던가. 간신히 숨을 내 쉬지만 여전히 이질적이고. 사람 존재 자체가 이물질 같긴 처음이었다. 인사도 그게 다야? 심지어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말야. 속으로 구시렁대며 고개를 드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안검하수가 있는, 차갑고 무표정한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자, 어서 들어가자. 들어가요.”

 엄마와 신우진 씨가 앞장서고 언니와 나는 뒤를 따랐다. 나도 여자치고 키가 큰 편인데, 이 사람의 뒷모습에선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서 앉았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그 사람 맞은편에 앉게 됐다. 언니가 나를 밀어 넣을 때 뒤로 비킬 걸. 불편함이 목구멍을 꽉 메운 느낌이 들었다.

  코스 요리가 나오는 동안 나는 최대한 앞 사람을 피해 시선을 움직이며 음식에만 집중했다. 주로 엄마가 이야기했고, 신우진 씨는 맞장구를 쳐줬으며 가끔씩 언니에게 발언권이 돌아갔다. 나는 딱히 할 이야기도 없다. 일 얘기, 신간 이야기, 동료 작가들 이야기….

  “아, 두리는 이번에 학교 복학해서 다니고 있어요. 너무 오래 쉬어서 걱정했는데. 지금 2학년이지?”

  “그래? 전공이 뭔데?”

  “…도예요.”

 어색한 공기, 호의를 담은 말투, 조여드는 심장. 나는 이런 게 너무 싫다. 정말 싫다! 지금껏 엄마 애인들을 만났을 때 이 정도였던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싫다. 숨이 막힌다. 이 사람은 눈도 마주치기가 어렵다. 엄마는 왜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그쪽은 아무래도 몸이 힘들겠지.”

  “어머 아무리 그래도 2년씩이나.”

 평소 같으면 엄마의 새침한 말에 몇 마디 던졌을 텐데. 지금은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이놈의 코스 요리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낮에 남자친구에게 호기롭게 외쳤던 것과는 달리 나는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젓가락으로 죄 없는 삼치의 배를 갈라서 별로 있지도 않은 가시만 주구장창 발라댔다.

  “입에 안 맞나?”

 뭐요? 신우진 씨의 말에 나는, 폭격당한 모양새의 삼치에서 눈을 들어 그를 봤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자기도 안 먹고 있으면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니요. 먹고 있어요.”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비로소 코스가 끝나고 후식 다과와 차가 나왔다. 나는 살았다 싶어 한숨을 쉬고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복도로 나와서 미닫이 문을 닫자 드디어 숨이 트인다. 맙소사. 먹은 것도 없이 체하겠네. 화장실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마냥 서 있을 수는 없고, 거울이라도 볼까 해서 갔다. 웬걸. 뜻밖에도 조명이 괜찮아서 세면대 앞에 서서 셀카를 몇 장 찍었다. 남자친구에게 전송할까 하며 복도로 나왔다.

  우리 방 앞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받으며 여전히 한 손은 주머니에, 시선은 벽에. 가까이 갈수록 통화 내용이 귀에 들려와서 최대한 청세포를 죽였다. 일 얘기인 것 같다. 내가 다가가는 걸 느꼈는지 그는 내 쪽을 한 번 흘끔 보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냥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에

  “불편한가?” 그런 물음이 들려왔다.

  “아뇨, 하지만…편하진 않네요.”

  “이름 불러도 되나?”

  “그래도 되고요. ‘이봐’, ‘학생’, 아니면 ‘진숙 주니어’같은 것도 괜찮죠.” 엄마 이름이다.

 그러자 그는 작게 웃었다.

  “조용한 아가씬줄 알았더니. 이런 구석도 있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이었다. 불쾌한 건가, 싫은 건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가슴 부근이 근질거린다. 나는 찌푸리듯 미소를 지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대꾸도 안 했다. 들어가기나 해야지-그러다 문득 묻고 싶은 게 생겨서 멈췄다.

  “우리 엄마 진짜 사랑해요?”

 그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탐색하듯 나를 보다가 너무나 산뜻하게

  “응.”

 이라고 답했다.

 

 

 

  집에 올 때는 그 남자의 차를 탔다. 이따금씩 다른 사람의 차를 탈 때 차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장식물이 내부에 대롱거리고 있으면 그의 사공간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불편해지곤 했는데, 이 차 안에는 아무 장식도 없어서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다. 집 앞까지 세 모녀를 데려다주고 그는 ‘또 보자’며 떠났다.

  “어때. 괜찮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엄마는 쾌활하게 외쳤다.

  “좋아. 별로 간섭도 안 할 것 같고.” 언니도 가벼운 목소리였다.

  “두리는?”

  “괜찮았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힘이라도 쓰고 온 것처럼 노곤하고, 이대로 있다간 잠들어버릴 것 같아서 일어나 콘택트렌즈를 뺐다. 눈을 감으니 갑자기 복도에서 나를 쳐다보던 그 남자의 영상이 캄캄한 눈꺼풀 위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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