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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브라콘 여동생은 울지 않아!
작가 : 송완청
작품등록일 : 2017.10.20

19세기와 20세기를 더불어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이어진 전쟁들로 인해, 남성 인구에 대한 감소가 절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전 세계에 남성 인구 부족 현상이 뒤따랐고, 성비 불균형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몇 차례의 국제 회의에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심각성이 바다 위로 떠올라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모든 국가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1960년대부터 시행해온 정책의 이름은
치카사 제도(近さ制度).
수 십, 수 백번의 시행착오와 함께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던 치카사는 역경을 딛고 성공을 향해 도약하여
비로소 21세기가 된 2000년 전후가 되어서야 정책의 효과가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이 된 지금, 조금 특별하고 별난 이 현재의 법을 지지하는 절대적 브라콘 오빠바라기 여동생과,
현재의 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하지 않는 은근한 시스콘 여동생바라기 오빠와 그의 파트너가 된 국가 연인 추천상대 외 몇 명의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기 펼쳐진다.

 
IV 여동생의 밤
작성일 : 17-11-02 09:05     조회 : 357     추천 : 0     분량 : 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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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4화 여동생의 밤

 

 

 정부의 메시지가 도착한 스마트폰을 들고 방으로 올라온 나는 차마 메시지를 확인을 할 수 없어서 침대에 마냥 누워 제대로 읽지도 않는 소설책 종이만 괜히 한 장 한 장 끄적였다.

 손가락 한번의 움직임이면 그 때부터 내 인생은 완전히 뒤바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 고등학교 1학년생이 된지 겨우 2~3달 남짓한 히마리를 못해도 대학을 가겠다거나 적당히 취업해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기 전까지 책임져야할 날들이 끝 없이 늘어서 있는데 과연 이게 옳은 일일지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이런 나라고 해서 나의 국가연인추천 상대가 누군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도 가장이자 오빠이기 전에 실은 남자였고, 때론 응석도 부리고싶을 어려운 나이의 사내 아이이다.

 막중한 책임을 한 몸으로 짊어지고 있는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외롭고 불안했어도 그러한 티를 애써 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걱정되는 점은 (편하게 줄여서) 정부 연인이 지금 이 순간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이미 결정되어 공개될 상황에서 후에 그녀를 만나면서도 히마리를 잘 챙길 수 있을까이다.

 

 "… …"

 스마트폰 화면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켜놓고 있었고 터치 한 번이면 정부로부터 도착한 메시지 확인이 가능했다.

 

 그래… 오늘 호되게 들었던 호타루의 말대로 지금 이것이 어차피 언젠가는 오게 되었을 내 운명이었다면 결국 그 현실을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 들이는 것도 나중에 비굴해지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라.

 떨리는 심장소리의 고동은 세밀하게 퍼져 위치해있는 모세 혈관 안의 뜨거운 혈액의 이동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긴장된 근육을 타고 내려와 손으로 전해져 마치 수전증이 온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미친 듯이 떨리던 손가락은 내게 닥칠 그 어떠한 미래를 좌우할 한 통의 메시지를 아무런 주저 없이 눌러버렸다.

 

 메시지를 열자 울창한 숲 깊은 곳, 광대한 협곡의 폭포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디지털 화면의 바닥 아래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과 숫자들이「촤르륵ㅡ」거리며 떨어져내려갔다.

 

 "뭐야 이거. 해킹이라도 당한 건가?"

 스마트폰 데이터의 과부하 되는 것은 아닐까.

 끝을 보일 기미가 없다.

 

 잠시 후, 메시지에 적용되있던 프로그램이 숨 쉴 틈 없이 뿜어낸 무한한 문자와 숫자 조합의 알지 못할 문장들에 마침표를 탁 끊어내면서 메시지 창이 닫히고 새로운 pdf 파일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믿지 못할 만큼 확대된 동공으로 몇 번이고 그 파일에 쓰여 있는 서류의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여러번 눈을 깜빡이기도 했고, 스마트폰이 떨어뜨리면서 고장이 난 것은 아닌지 전원을 끄고 켜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리 읽고 또 읽어 보아도 내 눈은 절대 틀릴 리가 없다고 떵떵거리며 자부하는 「니시하라 카나미」의 이름 부분을 떠나지 못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니시하라 선배는 아닐 거라 자기 회유를 하지만 나의 현실 회피를 위해 허락된 단 한 개의 어떠한 오류도 자비도 없는 서류상의 정확한 정보들은 모두 방금 전에 만났던 그 니시하라 선배를 지목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거냐…"

 

 내 정부 연인이 니시하라 선배라는 사실에 솔직히 그런 다정한 분이 돼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주고 받았던 그 시점부터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어쩌면 나 혼자 앞의 이 여자가 내 인연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들만 들어 나를 괜히 더 괴롭게 만들었다.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의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 생각만 하면 바보같이 앉아만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분이 차서 이불을 있는 힘껏 발로 차거나 베개를 물어 뜯어댔다.

 

 한창을 혼자서 베개랑 이불과 침대 위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아래 현관 쪽에서 「띵동ㅡ」하고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우리 집에..?'

 

 "나갑니다!"

 집주인이 나오지 않자 조금 텀을 들이며 재차 초인종을 울려대는 덕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늦은 밤의 손님을 맞이하였다.

 

 문을 열어젖히자 어둠 속의 현관문 앞 전등 센서의 누리끼리한 빛을 받으며 깔끔한 검은 정장과 서류 가방 등을 들고서 웃고 있는 여성 한 분이 서있었다.

 "누구..."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댁은 평안하신지요? 저는 후생노동성에서 국민들의 평안을 위해 열심히 일 하고있는 국가 공무원 카와무라 신지입니다."

 여성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말을 이어갔다.

 

 "가나가와 현 제2 신도시 쇼오토쿠 시, 쇼오토쿠고 2학년에 재학중이신 '쿠로다 신이치'님께 이미 컴퓨터로 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통해 보셨겠지만 당신의 국가 연인 추천상대가 정해지셨다는 소식을 재차 알리기 위해서 가택 방문차 찾아뵈러 왔습니다."

 자신을 정부기관의 직원이라고 밝힌 여성이 가방에서 몇 장의 추가 서류를 꺼내어 내게 쥐여줬다.

 

 "이건 뭔가요?"

 "연인 상대 분의 세부 정보를 정리한 서류 두어 장이랑 앞으로 치카사라는 유전적 운명으로 이어져 평생을 함께 하시게 될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의 안내 사항들을 기입한 서류 석 장 정도 입니다."

 

 인기 캐릭터 모양 고리가 달린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 주며 화면에 적혀 있는 자신의 메일 주소와 번호를 알아서 보고 저장하라는 제스처와 함께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시간도 시간인지라 간단하게만 일러드리고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의 상황을 체크하고, 중요한 정부 이벤트를 알려드리기 위해서 몇 번이고 방문할 예정이니 잊지 말고 꼭 자택에서 기다리고 있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로 조만간 또 찾아 뵙도록 할게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실컷 하고 스마트폰을 뺏어가듯이 콕 집어서 어둠속으로 사라진 정부 관계자였다.

 

 뭐지…… 한마디도 질문하지 못했다.. 자기 일만 딱 끝내고 그냥 가버리네.

 

 손님이 떠난 현관문을 닫은 뒤 신발장 위에 서류들을 놓고 그 내용을 유심히 살폈다.

 세부 정보지에는 상대방의 사진,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재직중인 직장 및 학교, 혈액형과 같은 자잘한 정보 외에도 쓰리 사이즈나 가족 관계도와 같은 깊은 부분까지 모두 기입돼 있었다.

 세부 정보지는 구석 한 켠으로 치워두고 정부 안내 가이드를 읽어 보려는 순간, 2층 계단 쪽에서 들린 작은 소리에 깜짝 놀라 시선이 향하였다.

 계단 난간 옆에 쪼그려 앉고서 몰래 내 동태를 살피던 히마리가 국가연인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아채고 놀라 쥐고있던 폰을 놓쳐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아마 늦은 밤에 울린 초인종 소리에 궁금했던 히마리도 뒤따라 나왔지만 멀리 계단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서 무슨 얘기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 히마리 나왔어?"

 시선은 히마리를 향해 고정시 해두고 서둘러 서류들을 정리해 등 뒤로 숨겼다.

 굳이 이렇게 숨길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 싶지만 히마리를 보자 몸이 놀라서 자발적으로 반응하였다.

 

 히마리의 눈썹이 내려왔다. 아마도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 이제 슬슬 씻고 잘 준비나 할까.물 데워지면 나 먼저 씻을게. 너도 시원하게 목욕하고 자!"

 

 히마리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일단은 자리를 떠나서 거실 서랍 한 곳에 서류들을 숨겨두고 욕실로 들어와 욕조에 물을 데워 넣고 있는 중이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분명히 엄청나게 의심하고 있을텐데…

 피할 수 없는 게 운명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운명이라면 두려워진다고..

 

 온도가 알맞게 된 타이밍에 욕실 밖을 사방팔방으로 가만히 있질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던 나는 차분하게 옷을 벗어 두고 후덥한 김으로 가득 찬 욕실로 들어와 뜨신 물에 몸을 담궜다.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뜨거운 물속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있던 걱정이나 심란하던 마음들이 시원하게 녹아드는 기분이 들어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해졌다.

 욕조 안에서 혼자 있을 때만큼은 손으로 작게 물장구를 쳐서 파동을 일으키며 놀기도 하고, 얼굴 전체를 물 속으로 집어 넣어 잠수하는 시늉을 함으로써 약간이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편안해졌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씻지는 않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을 때 욕실 문 밖에 희미하게 비치는 살구빛의 가녀린 몸의 그림자가 보였다.

 

 '히마리…?! 나 아직 목욕 중인데?'

 옷은 다 벗은 채 수건 한 장만 몸에 두르고 있는 실루엣은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아무 미동 없이 문 앞에 서있었다.

 "저기… 오빠 아직 목욕 중이거든? 이따 목욕 끝나면 말해줄테니까 방에서 기다리고.."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욕실 문이 가차 없이 열린 탓에 동생의 수건 한 장만 달랑 걸쳐 부끄럽지만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전라를 곧이곧대로 봐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태까지 히마리가 부려온 응석들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한 번 고려해봐야 될 정도로 심각하게 그 수위나 도가 지나쳤다.

 수줍은 듯 두 뺨에 옅은 홍조를 띄우고 다소곳이 서있던 히마리가 한 발짝 욕실을 향해 들어서려 하자 무심결에 화를 내며 소리쳤다.

 

 "들어오지마!! 한 발짝이라도 들여놔 봐. 그럼 다시는 히마리 너랑 얘기도 안 할줄 알어. 알았어?"

 질러 놓고 나 스스로도 이렇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어 놀랐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빠의 호통에 얼어 붙은 것은 히마리 녀석도 똑같았다.

 들어오던 히마리의 작은 발이 순간 흠칫해서 흔들리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히마리의 발을 날카롭게 째려 보던 나는 제자리로 돌아간 것을 보고 나서야 한 층 풀린 표정으로 쳐다볼 수 있었다.

 화가 풀어진 나는 평상시 표정으로 되돌아 왔지만, 그런 내가 본 것은 어느새 울상이 되어 밝은 웃음보다도 보기 힘들다는 히마리의 하염 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들이었다.

 "히.. 히마리…"

 

 익숙치 않은 히마리의 눈물에 몹시 당황한 내가 욕조 위에 걸쳐둔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려고 하자 히마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히마리가 우는 모습을 본 건 우리가 좀 더 어렸을 때 있었던 그 사건의 날 이후로는 없었기에 충격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컸다.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닌 심장이 옥죄이는 것처럼 가슴이 찌릿한 게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목욕을 끝낸 나는 히마리와 얘기하기 위해서 굳게 걸어잠겨있는 방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히마리, 문 좀 열어줄래? 오빠가 화내려던 게 아니였는데… 미안해."

 아무 반응이 없는 방 문에 대고 다급한 마음에 횡설수설하고 있는 중이다.

 화가 났더라도 귀를 틀어막고 내 말을 듣지 않을 애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으니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히마리가 나오지 않아서 나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이 문 열고 오빠한테 해명할 기회를 준다면 네가 원하는 게 뭐든지 간에 상관 없이 소원 한 가지 들어줄게. 그러니까 오빠 얼굴 좀 봐줘."

 최후의 카드로 내세운 것은 울던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든다는 제한 없는 소원 들어주기.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방 문고리도 결국 달콤한 유혹에 넘어와 흔들리고 말았다.

 

 문이 열리자 지금은 울지 않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소금기를 머금은 눈물 때문에 눈가가 퉁퉁 부은 히마리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마룻바닥만 보고 서있었다.

 그러한 동생의 어려운 모습에 나도 순간 울컥했지만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작고 여린 히마리를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자 녀석도 단단히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훌쩍…… 오빠가 싫어할 거란 걸 알고 있었는데 같이 목욕하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화나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더 좋게 타이를 수 있었을 텐데 무작정 화부터 내서 오빠가 미안하지."

 "정말‥?"

 품 속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동생의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고 방금 전 행동의 이유를 캐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보통 특별한 보상 없이 이렇게 물었다면 입에 지퍼를 달고 묵인했을 녀석이지만 소원 성취라는 약속이 걸려있는 지금으로썬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이 밤중에 누가 왔는지 궁금해서 몰래 계단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그 여자, 말도 빠르고 제대로 들리지도 않아서 몰랐었거든..

 근데 후생노동성이라는 말이랑 생전 마주친 적도 없는 초면의 여자가 별안간에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는 서류만 던져주고 가버린 게 너무 수상하고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나 SNS를 보다 보면 치카사에 대한 정보가 많이 굴러다니길래 찝어 봐서 알고 있던게 좀 있었어.

 모든 정황이 「오빠에게 정부의 손이 닿았다」를 가리키고 있어서 초조한 마음에 되지도 않을 오기를 부린거야…"

 

 「치카사 때문에」라고 한 마디로 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자세하게 불었다.

 신기하네.. 동생한테서 이렇게 긴 문장은 처음 경험했어.

 

 정신도 몸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동생이 대견스러워 만족해 하고 있을 때 새끼 코알라 마냥 품에 찰싹 붙어있던 히마리가 먼저 떨어지고서 나를 올려다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치카사.. 거절하면 안돼?"

 뜬금 없는 말이 무의식을 장악하여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지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내게 온 치카사를 거절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걸까..

 

 매 번 성드립이나 수위 높은 응석을 부릴 때에도 진담 반 농담 반의 어조로 얘기해서 '장난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히마리의 표정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라 이상하게 헷갈렸던 경험이 많다.

 학교 가는 날에는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덕질 활동을 하고, 휴일에는 껌딱지처럼 거실 쇼파에 누워서 일어나려 하지 않고, 밖으로 외출하자고 물어보면 흐물흐물 액체가 되서 끌고 나갈 수도 없는 슈퍼 게으름뱅이지만

 스스로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있으면 그 어떠한 천재지변이 있더라도 혼신을 다해서 꼭 얻고 보는 부족형 의지파다.

 

 내가 부탁하는 일들은 자기가 원하는 제안만 받아들이는 반면, 선뜻 제의를 걸어오며 체결하는 약속들은 예외 없이 모두 지키는 동생이기 때문에 이 녀석이 진지 빨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미국 식품안전청 FDA나 전세계의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들이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해산·농작물을 거리낌 없이 먹어도 인체에 전ㅡ 혀 무해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이 믿지 않으면 손해 보는 그런 속에서 우러나온 참된 진실이라는 말이다.

 

 히마리가 저렇게 까지 강요하듯이 나를 막아서는 이유를 대충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엄격하게 동생을 대해야만 했다.

 

 "히마리,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받지 못하는 운(運)이 있고, 평생은 살지 못하는 정해진 명(命)이라는 게 있어.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 두 개를 기점으로 해서 한 사람의 인생 그래프의 앞에 행복의 복선이 따르기도 하고, 때론 불행이 기다리고 있기도 해.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 두 개의 인생의 기점을 합쳐서 「운명(運命)」이라 불렀었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처음에는 그 운명을 거르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도착한 장소는 결국에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있는 상태가 돼있을 거야."

 

 말이 조금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 없이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여동생.

 

 그런 녀석에게 나는 가볍게 정리된 문장으로 타일렀다.

 "너와 내가 둘도 없이 사이좋은 남매로 태어난 것도 어찌 보면 타고난 운명이고, 치카사라는 특이한 정책이 서려있는 지금의 이 일본 시대에 태어나서 어쩌면 평생을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인연이 정부 덕분에 연인이 되어 보이지 않던 서로의 운명의 실이 좁은 바늘 구멍을 지나 이어지게 되는 것도 알고 보면 운명이라는 거야."

 "우리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나 신이 아닌 이상은 너와 내 미래가 어떻게 바뀌고, 또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서도 지금 우리한테는 패가 쥐어져 있으니 그 패에 써있는 글씨를 읽으면서 기대하는 우리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란다."

 "네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게 아니야. 나도 히마리 니가 좋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해.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남매인 걸. 그 점 하나는 기억해줬으면 싶어."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여동생을 향한 내 마음을 아이 콘텍트를 하면서 빠짐 없이 전하였다.

 

 히마리는 나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서 다시금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고개를 흔들고 파자마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내게 말했다.

 "응.. 맞아. 난 오빠를 정~ 말 사랑해!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오빠가 내 사랑을 톡톡하게 알아주는 그 날이 언제든지, 평생이라도 기다릴 수 있어. 오늘은 한 발짝 뒷걸음치고 철수하는 거로 할게. 대신 방금 소원 이루게 해준다는 약속 지킬 시간이야."

 그렇게 강조하며 말했는데도 절반을 채 타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뭐 어쩌겠어. 자기도 일단락 물러서겠다고 말했고, 그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거니까 시간을 두고 계속 지켜봐야지.

 

 "알았어. 소원이 뭔데 그래?"

 히마리가 내 방으로 향해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자연스럽게 침대 위에 앉으며 활기차게 말하였다.

 "앞으로 내가 하는 얘기를 진심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면 좋겠고, 또 아침 밤으로 잠에서 깨고 자기 전에 하루 두 번씩 머리 쓰다듬어 주기, 그리고 또…"

 

 "소원은 하나니까 한 가지만 정해서 얘기해주시겠어요~ 손.님?"

 두 개, 세 개씩 자기가 원하는 바를 늘어놓으며 좋아하는 녀석의 양 볼을 꼬집어 당겨 선을 잘라내었다.

 

 "우아아.. 죄송합니다."

 상심한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며 자숙한다..

 이건 거의 뭐 병 주고 약 주는 수준의 악랄함이네.

 

 … …

 

 "그럼… 내가 원할 때, 오빠랑 같이 자고 싶어.."

 그렇게 준비해두었던 말을 내뱉는 동생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외로워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야 된다며 무섭고 외로워서 혼자 자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재웠었으니.. 하고 많은 것들 중에 겨우 이런 걸 다시는 기회 없을 소원으로 사용했다는 생각에 또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면서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뭐… 딱히 강경하게 대할 수준의 제안은 아니었다.

 

 "좋아. 대신 자.기.만 하는 거다?"

 "응!"

 

 

 집에 있는 모든 전등을 끄면서 온 집안은 어둠으로 가득해졌고,  길게 느껴졌던 시간도 이제는 12시 40분이라는 늦은 시각을 지나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시계침의 째깍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밤벌레들의 요란한 밤의 랩소디가 작은 기침 소리조차 크게 들릴 법한 고요ㅡ 한 내 방 안을 돌아다녔다.

 성장기의 폭풍 성장으로 안 그래도 나 혼자 눕기도 좁게 느껴지던 침대에는 같이 잠을 자기로 약속해서 내 옆에서 잠을 청하는 히마리까지 곁들여져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눈 뜨고 정신 맑은 아침이나 낮에나 가까이서 보던 히마리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하고 깜깜한 방의 한 침대에 누워 숨소리가 닿는 바로 눈 앞에 있으니 어째서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서 혹여나 쿵쿵거리는 고동 소리가 히마리에게까지 들릴까 조마조마하였다.

 그것이 내 동생일지라도, 오랜만에 여자라는 존재와 함께 잔다는 그 익숙치 않은 떨림 때문에  베개가 있지만 내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눈을 감은 히마리의 앞머리를 꽤 늦은 밤까지 뜬 눈으로 만지작거리다 2시 정도나 되어서야 나도 잠에 들 수 있었다.

 

 

 

 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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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빼빼로데이外』게임을 가장한 키스 작전! 2017 / 11 / 12 286 0 6432   
12 XI 야밤의 두 신부 2017 / 11 / 12 278 0 8762   
11 Ⅹ 내 두 팔 위에 두 여동생 2017 / 11 / 12 313 0 6079   
10 Ⅸ 우리 집엔 왜 왔니 2017 / 11 / 12 280 0 6263   
9 VIII 삼인방 (完) 2017 / 11 / 9 317 0 10281   
8 Ⅶ 삼인방 (2) 2017 / 11 / 7 287 0 6039   
7 VI 삼인방 (1) 2017 / 11 / 6 288 0 4161   
6 V 활기의 학교 2017 / 11 / 3 309 0 5526   
5 IV 여동생의 밤 2017 / 11 / 2 358 0 9404   
4 III 너와 내 마음의 준비 2017 / 11 / 1 311 0 5885   
3 Ⅱ 충고와 갑작스런 준비 2017 / 10 / 30 334 0 4406   
2 Ⅰ 아침부터 이러기냐 2017 / 10 / 21 378 0 3469   
1 프롤로그 2017 / 10 / 20 572 0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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