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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술사
작가 : 크라피아
작품등록일 : 2017.7.23

떨고 있는 대주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공작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소녀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옆 자리에 앉혔다. 소녀는 생에 처음 마차의 진동을 느끼며 이젠 시체밖에 남아있지 않은 마을을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눈동자의 불길은 서서히 잦아들며 마을의 풍경에서 점차 공작에게 이동했고 소녀는 마침내 공작의 눈을 마주했다.
“이름을 하나만 지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다. 베아트리체.”

 
4화. 또 한명의 마술사의 제자 <8>
작성일 : 17-07-23 15:00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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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은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또 계산적이었다.

 먼저 이 전쟁은 승리가 확정되었다. 현재 잉글랜드 내에서 일어나는 귀족끼리의 다툼은 거대해질 것이 분명했다. 벌써 전후처리를 행하고 있을 정도로 녀석들은 머리가 깡통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자신이 행할 것은 무엇인가. 전장의 승리가 확정된 이상 굳이 잔을 붙들고 있을 이유는 그에게 존재치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왕의 권위를 위협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 뻔한 전장에 투입시켜 줄 만큼 샤를은 바보가 아니었다. 물론 파리를 점령하면 이점은 크다. 북부의 탈환을 얻으며 물자 수송의 거목을 빼앗게 된다. 그렇지만 그 명예를 잔에게 넘겨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잉글랜드의 주요 군이 파리 내에 도착하지 못한 것. 그리고 질드레의 활약으로 잔이 살아남은 사실이었다. 약 하루만 더 있었다면 확실하게 잔의 목숨을 끊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로 대단한 여자라며 경탄했다. 존경했다. 그렇기에 지금쯤 패배를 선언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욕정을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닐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함정을 위하여 샤를은 지체하지 않고 잉글랜드와 접촉했다.

 휴전 협정을 채결했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아직 군은 건제하며 분명 다시 한차례 군대를 일으켜 프랑스를 공격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한다 자부하는 우리 아름다운 성녀님께서 출전하겠지.

 왕실의 도움 없이 개인의 군대를 이끌어 달려갈 것이다. 배신을 알고서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생명을 버릴 그녀가 아니니.

 이죽거리며 웃던 그는 돌연 한 가지 욕망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대에서 그녀를 맞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녀는 매혹적이다 풍만한 육체를 지녔으며 상처가 새겨진 몸과 다르게 그 아리따운 얼굴은 분명 아직도 빛을 띄고 있다.

 그런 그녀를 침대에 눕혀 앙앙 거리며 울부짖게 만들고 자신의 곁에 앉히는 거다. 그 육체를 가지고 심장을 핥아 유린하여 어디에도 힘을 쓰지 못하는 인형으로 만든다면 그 세력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잔 역시 자신과 손을 잡는 것 말고 사지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그 자신 만만했던 얼굴을 발로 짓밟고 배를 걷어차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를 떠올리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시녀를 불러 오거라!”

 아직 잔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샤를은 자신의 눈앞에서 앙앙거리며 신음을 내뱉는 시녀를 잔과 겹쳐 보이며 미친 듯이 광소와 욕망을 토해냈다.

 

 ***

 

 항상 갑옷을 걸치던 잔에게 하늘거리는 드레스는 오히려 어색했다. 그러나 그녀의 느낌과는 다르게 그날 스쳐지나간 그녀를 본 모든 병사들은 일제히 얼굴에 홍조를 띄워 헛기침을 내뱉었다.

 전장을 헤쳐 나온 그녀의 몸에는 근육이 자리했고 탄력적으로 부풀어 오른 여자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왕의 명령아래 분을 찍어 바른 얼굴에는 윤기가 감돌았으며 슬릿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다리는 하얀 달걀과 같이 육감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호오…….”

 눈앞에 자리한 잔을 보며 샤를은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좋은 경험을 시켜주셨습니다. 왕이시여.”

 잔의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무관에게 드러나는 강함은 존재치 않았고 문관에게 드러나는 총명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인형처럼 늘어진 모습에 샤를은 욕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시골의 소녀는 오를레앙의 성녀가 되었고 구원의 성녀가 되었으며 신의 목소리를 신의 대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끌어내려 이토록 힘을 잃게 만들고 빛을 잃게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 흥분을 가속시켰다.

 “덕분에 프랑스를 구했지.”

 샤를은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지금 저 아래에서 분노를 씹어 삼키고 있을 잔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그 분노를 유지한 채 다리를 벌려 앙앙거릴 그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그렇기에 내 그런 자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겠네! 한 여자로써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위를 주겠단 말이네!”

 샤를의 눈이 욕망에 불타올랐다. 끈적이는 시선은 쉴 새 없이 잔의 몸을 능욕하고 있었고 꿈틀거리는 손은 전력을 담아 그녀에게 희롱의 의미를 띄우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는 폭거, 왕이라는 존함에 걸맞지 않은 그 추악한 행동에도 잔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끈적한 눈길에 시선을 돌리고 등덜미를 간질거리는 스산한 공포를 참아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자, 내가 오늘 그 드레스를 너에게 내민 이유를 굳이 나의 입으로 말해야겠는가?”

 샤를의 욕망은 비뚤어졌다. 그러나 그 비뚤어진 욕망을 알고서도 잔에게 선택권은 존재치 않았다. 이곳에서 자결을 한다 한들 돌아올 이득은 존재치 않았다.

 자신 휘하의 병사들이 학살당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또한 이 빌어먹을 황제가 휴전을 깨고 달려들 잉글랜드를 빌미로 협박 하고 있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다.

 “저는…….”

 입이 무거웠다. 그러나 무거울 뿐이다.

 쇠를 들어 올렸고 갑옷을 걸쳤으며 등 뒤에 걸린 중압감은 항상 겪어왔던 감정이었다.

 “자! 어서 말하거라.”

 “저는…….”

 이 짧은 틈새 속 샤를은 욕정했다.

 참기 힘들었다. 이미 부풀어 오른 욕망은 가라앉지 않았고 뒤편에 놓인 침실에 벌써 그녀가 있을 모습이 심장을 휘어잡았다. 누구도 가지지 못할 그녀를 가진다는 생각은 가속되어 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잔의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비참했다. 저주스러웠고 사람에 대한 공포감이 머리를 잠식했다. 고개를 떨어뜨려 바닥을 바라보았다.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때 잔은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빛나고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단 한순간도 떨어뜨리지 않았던 감정의 결정체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함께했던 그것이, 그가 자신을 향하여 자애롭게 빛나고 있었다.

 “포리엔트…….”

 “자! 어서!!!”

 이미 샤를은 이성을 잃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얼굴을 쓰다듬어 뺨을 내리치고 피가 베어나온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어 미칠 듯한 욕망을 풀어낼 생각밖엔 존재치 않았다.

 “저는 포리엔트의 것입니다.”

 “그래 넌… 이 샤를의…….”

 잠시 샤를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달려 나가던 다리가 멈추었으며 손에 움켜쥐려 했던 풍만한 감촉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10년만 일찍 당신을 만났다면 다른 답이 나왔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샤를.”

 잔은 보라는 듯 샤를을 향하여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예를 표했다. 그녀의 눈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유리파편을 박아 놓은 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전 이 사람의 것입니다.”

 잔은 반지를 내밀었다. 소재는 빛났으며 새겨진 문양은 아름답게 맞물려 있었다. 샤를에 창고에 쌓여있는 몇 십 몇 백의 반지를 전부 꺼내어 털어내 보여도 그보다 아름다운 반지는 찾아 낼 수 없었다.

 샤를의 마음속에 공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빼앗고 마음대로 휘둘러 자신의 인형이 되어 빛을 잃고 고통에 눈물을 흘릴 그녀가 어느새 뿜어내고 있는 광채는 마치 처음 그녀를 보았던 그날 그녀가 뿜어내었던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 무슨 소리냐! 나의 힘이면 너의 병사들은!!!”

 “하나 진심으로 충언을 드리겠습니다. 불쌍한 샤를.”

 그녀의 말엔 힘이 실려 있다. 글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써내지 못하는 그녀이기에 거듭되는 전투에서 쌓아온 경험은 기백이 담겨 샤를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샤를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질식할 정도로 아름다운 입술에서 쏟아지는 말을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만일, 저의 병사를 건드리신다면. 전 진심으로 왕을 노릴 것입니다 전하.”

 그 말을 끝으로 잔은 무어라 소리를 중얼거리는 샤를을 뒤로한 채 보라는 듯 왕의 방을 빠져나갔다.

 “제기랄 년!!!”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지탱 할 것이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는다면 대체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진심으로 공포에 빠져들었다. 쥐새끼마냥 어깨를 덜덜 떨어댔으며 어울리지 않게 옥좌를 걷어차며 분노를 표출했다.

 “반드시… 반드시 죽일 것이다. 잔!!!!!!!!!!”

 그날 황제의 처소에 불려간 시녀는 죽임을 당했다. 목을 졸렸으며 전신을 구타당했고 팔은 으스러졌으며 격한 비명소리에 시체의 혀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이후 샤를의 폭거는 약 1주간 계속되었고 죽어간 시녀는 산이 되었으며 그 시체더미 속에서 샤를은 분노의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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