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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5)
작성일 : 17-07-12 22:03     조회 : 45     추천 : 0     분량 : 8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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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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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단아와 은랑은 한동안 발걸음을 끊었던 시린 겨울의 공간으로 향했다.

 

 어느덧 10월이라 겨울의 찬바람이 서서히 다가올 때이긴 했으나 눈이 쏟아질 계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향한 공간에 큼지막한 함박눈이 내려와 지상을 새하얗게 뒤덮고 수북이 쌓인 눈으로 발걸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과거의 일을 계기로 사냥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스스로에게 금제를 걸었던 것을 해제하기 위해서였다. 괴물을 사냥하는 자들, 미드워커(mid-walker). 그 삶에서 도망쳐왔던 것도 무색하게 운명이라는 건 자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어쩌면 나는 피할 수가 없었을 테지. 단아는 스쳐지나는 기억들에 울듯 일그러지다 이내 담담해진 표정으로 초연하게 눈을 감았다.

 

 겨울의 도서관 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분수가 있었다. 두 마리의 용이 아치형으로 만나 서로 몸을 꼬아가며 올라가는 모양의 하얀 조각상이 분수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분수대 안의 물은 보석처럼 옅은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단아와 은랑은 신발을 모두 벗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가깝게 발목 언저리까지만 차있던 물은 두 사람이 들어가자 점점 차오르더니 별빛이 부스러지는 색이 섞였다.

 

 거칠게 튼 입술을 가르고 주문이 쏟아졌다. 분수를 장식하는 두 마리의 용의 비늘에도 금빛의 글귀가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물속엔 거친 파동이 일었다. 물길이 넝쿨이 되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고 얼어붙고 점점 뻗어나가다 아름답게 얼어붙었다. 열매를 맺지못한 차가운 식물의 이파리는 본래 있던 것이 사라져 찢겨진 채로 너덜거리고 있었다.

 

 [눈 먼 여행이 이제는 끝이 났으니.]

 

 은랑이 먼저 입을 열었고 단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이 땅으로 되돌아왔노라.]

 

 부서질 듯이 반짝이는 금빛을 껴안은 불꽃의 나비떼가 날아들었다. 본래 있어야 했던 자리로 내려가 날개를 접자 찢겨진 이파리가 녹아내리면서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났다. 넓은 새 이파리는 나비를 감싸앉았고 무수히 많은 불꽃의 열매를 다시 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단아는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물은 어느새 다시 발목에 겨우 닿을 높이에 불과했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에 눈을 깜박이자 은랑이 손을 뻗어오는 게 보였다.

 

 '조금 쉬어.'

 

 눈을 무겁게 내려감았다가 다시 힘겹게 떴을 땐 얌전히 그 소파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벨벳재질의 붉은 색 소파였다. 짙은 색의 카펫과 화려한 내부의 장식물들. 그녀는 여기가 어디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세계.

 

 황금색 구두가 신겨진 발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소파 뒤에 보라색 커튼이 쳐진 창가로 다가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문명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푸르른 녹음과 청명한 하늘이 묵묵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불었던 바람과 같은 바람이다. 바람의 행군에 침묵을 지키던 여린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재잘재잘 입을 열었다.

 

 [돌아 온 걸 축하해.]

 [우리들의 여왕.]

 

 

 이런 꿈을 꾸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른 아침의 햇살을 멍하게 바라보던 단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한 아침의 여유를 즐기기엔 온 몸의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했다. 피이, 하는 공명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귓전에서 맴돌다 사라지다가를 반복하고 온 몸의 털이 쭈볏 서는 것 같은 날이 선 감각이 찾아왔다.

 

 억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발을 내딛는데 시야가 마구 일그러졌다가 멋대로 커졌다 작아졌다가를 반복했다. 감각이 지나칠정도 선명해 폭력적이었다. 진짜 엿 같네. 단아는 괜히 침대 맡에 있는 검은 상자를 노려보았다.

 

 어제 밤, 학교에서 발케를 처리하고 그 빌어먹을 여왕의 대리인을 다시 하겠다고 패기 좋게 마음먹은 것도 더럽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온 몸의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돌아버리겠다. 새삼스럽게 팔팔거리며 돌아다니던 몇 년 전이 대단하게도 느껴졌다.

 

 역시 한국의 고등학생은 무적인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검은 상자로 손을 뻗었다. 약 1년간 벽장에 박아두었던 물건이며 그 모든 일들의 시발점. 그러나 이렇게 꺼내두고 보니 우습기도 했다.

 

 어젯밤 벽장문을 잡은 손은 덜덜 떨리고만 있었다. 과연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걸까,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겔샤르의 인이 깨졌으니까. 결국 그것을 꺼내들고 겨울의 도서관으로 넘어가 스스로 봉인했던 모든 것을 해제시켰다.

 

 다시 한 번 '여왕의 대리인'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상자의 내부에 들어있는 건 카드뭉치였다. 여왕의 주된 능력은 '예지'이고 꿈이나 직감들을 통해 발현되고, 이 카드는 그것을 더 세분화 시켜주기 위한 도구였다. 자신과 함께 마법적 능력을 봉인했던 은랑도 결국 이 길로 다시 들어섰다.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와버렸다.

 

 급작스러운 허기가 찾아와 단아는 냉장고를 열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거의 혼자 사는 집이나 다름없으니 냉장고 상황이야 뻔했다.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빵이며 핫도그며 먹을 것이 가득 든 봉지를 든 은랑의 등장에 단아는 인사도 않고 봉지를 빼앗아 빵 봉지 하나를 찢고 쩝쩝 먹어대기 시작했다.

 

 "네가 그렇게 먹어대는 걸 보니 확실히 능력이 돌아왔네."

 

 은랑이 체하지 마라며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 진짜 지랄맞게 배고팠어. 단아가 냉큼 받으며 대답한다. 여왕의 권능은 엄청난 식욕을 동반했다. 보통 사람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세계에 들어서고 다들 식욕이 늘긴 했지만 그녀만큼은 아니었다. 덕분에 단아는 항상 배고픔에 허덕였고 동아리실에는 간식거리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여왕님 품위는?"

 "밥 먹는데 그딴 건 없다."

 

 단아는 전투적으로 먹는 데에 집중했다. 한창 먹어치운 단아는 어제 사수한 아이스크림 통을 열고 후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자, 그래서 이제 계획은 뭐야?"

 

 은랑이 스푼을 들고 아이스크림에 꽂으며 물었다. 그 말에 단아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스푼을 아이스크림에 박으며 대답했다.

 

 "일단 그 세 놈을 찾긴 해야겠는 데. 전화번호도 모르고."

 

 그 날 이후로 전화번호며 뭐며 다 지워버려서 남은 거라곤 없다. 친할 때도 핸드폰에 저장된 그대로만 쓰니까 번호라곤 외운 것도 없고. 이건 현대사회의 병폐야! 단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넌 번호 기억하냐며 물었다.

 

 나도 모르지.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연락할 사람도 없다. 확실히 다섯 명이 친해진 것도 자연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니 서로의 접점도 없었던 탓이다. 카카오톡이며 페이스북으로도 그들의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잡고 끙끙대던 은랑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제 친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위대한 권능을 다시 얻은 여왕님께선 뭐 느껴지는 거 없어?"

 "음…. 네가 사온 떡볶이가 내 후각을 자극하는데."

 "개년, 제대로 능력 찾은 거 맞냐."

 

 단아가 그 말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고 도착한 메세지를 확인한 은랑의 표정이 한없이 썩어들어갔다.

 

 "뭔데,뭔데"

 

 막 일어나 씻지도 않은 몰골의 친구가 얼굴을 들이밀자 은랑은 몸을 뒤로 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선배님, 도와주세요 ㅜㅜ 엉엉 - 김 빈]

 

 

 

 유신고등학교 인근의 카페에서 만난 빈은 두 사람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려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곧 짜증스러운 단아의 눈빛에 입을 다문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단아와 은랑은 서로를 마주보고 급격히 늘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니 다섯 명이서 괴물들을 무찌르는 용사놀음을 할 때도 한숨은 징그럽게도 붙어있었다. 빈에게는 설명할게 정말 많다. 그걸 이해시키는데도 시간은 걸릴거고 결국 실전이 모든 해답이 될 터였다. 자신들도 그랬듯 말이다.

 

 근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젯밤 혼란에 풍덩 빠진 그에게 다음에 모든 걸 설명해주겠다 하고 헤어졌긴 했는데 계속해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묻는 말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네가 말하는 '이게'뭔데?"

 

 곧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이 된 빈이 자신의 가방에 들은 것을 꺼냈다.

 

 "어…."

 

 단아는 할 말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 하얀 털뭉치는 우습지만 발케다. 어젯밤 학교를 휘저은 커다란 검은 괴수와 같은 존재란 말이다. 비록 이렇게 강아지마냥 작고 하얗지만 노란 눈동자며 뿔은 그 특성이었다.

 

 건방진 자식, 염화의 진에 타들어가면서도 제 파편을 남겼구나.

 

 그러나 그 의도대로 되진 않은 모양이지만 말이다. 단아는 피식 웃으면서 발케 미니미버젼을 안아들었다. 흐어억, 그 모습에 빈이 사색이 되어 덜덜 떨며 물었다.

 

 "이상하다구요, 그러니까..엄마도 누나도 저걸 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스쳐지나갔다구요!, 아니아니 이게 먼저가 아니지. 그거 어제 그 괴물 맞죠? 어떻게 된 .."

 "내가 어제 한 말 기억하니?"

 

 단아가 횡설수설하는 후배의 말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하얀 발케는 머리를 팔에 부벼댔고 그 거대한 검은 괴수와의 괴리감에 빈은 질린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세상에 들어온 걸 축하한다고 했잖아."

 

 은랑은 발랄하게 말하는 단아가 사실은 어떤 감정일지 너무나 잘 알았다. 또다시 한 명분의 죄책감을 떠안는다. 은랑은 이제 버둥대는 발케를 단아의 품에서 빼앗아 다시 빈에게로 떠맡겼다.

 

 으억, 하면서도 허둥지둥 그것을 안아든 빈의 팔에 닭살이 돋아났고 표정은 절망적으로 변해갔다. 일단 전부 설명해 줄 테니 자리를 옮기자. 은랑의 말에 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랑이 이끈 곳은 바로 옆 건물의 노래방이었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방에서 쿵쿵거리는 비트와 멱따는듯한 소음들도 함께 들려와 방의 내부를 난잡하게 만들어버렸다. 선곡 따윈 하지 않고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4번방은 방 숫자도 불길했다.

 

 빈은 침을 한번 꿀떡 삼켰다. 어쨌거나 두 명의 선배들은 여자긴 한데 무서웠다. 어제 그 발케인지 뭔지에게 쫒기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태연한 정신상태도 그렇고 정상은 아닌 게 틀림없었다.

 

 근데 문제는 자신이 그 상황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없어서 어제는 별 생각도 없었는데 분명히 단아는 자신에게 앞으로 지겹도록 저런 것을 볼 것이라고 말했었다. 무엇보다 현재, 하얀 발케는 빈의 주위를 빙빙 돌며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단아는 잔뜩 긴장한 빈의 모습에 착잡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죄책감 비슷한 게 올라와 감정을 건드렸지만 이내 물 밑으로 꾹꾹 내려담았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필연에 의하는 세계의 의지니까.

 

 "자, 용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는 지루한 세계사 좀 배울 시간이야."

 "예?"

 

 얼빵한 대답에 키득이던 단아가 말을 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생물부터 배우고 가자. 아, 선행을 했다면 알겠지만 우리 몸에 침투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병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항원'이라고 해. 그리고 우리 몸은 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항체'라는 무기를 형성하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의 빈을 보며 단아가 음료수 캔을 따며 말했다.

 

 "현재의 문제를 내가 그냥 설명하기 쉬우라고 일단 '이 세계'를 하나의 개체의 개념으로 볼게. 아주 옛날에 말이야, 이 세계는 그냥 잘 돌아가고 있었어. 그냥 그랬듯이 말이야. 그런데 병균이 나타난거야. 자. 그게 바로 '괴물'이야. 내가 아까 말한 항원항체 기억하지?"

 

 빈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대한 일차적인 방어기전으로 우선 세계는 자신을 복제했어. 우리가 사는 현실의 공간을 A라고 한다면 그 복제된 공간은 A`라고 할수 있지. 바로 거기, 이면의 세계에 괴물들을 밀어넣었어. A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안전을 위해서. 음, 포토샾의 레이어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거야. 두 장의 투명한 비닐이 있는데 기본적인 건 똑같아. 한 장엔 사람을 그리고 한 장엔 괴물을 그리고 겹친다고 해도 괴물이 다른 비닐로 튀어가진 못하잖아?, 그런 식으로 격리된 거야. 괴물은 A`에 존재하니 A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거지."

 

 단아가 그렇게 설명하며 손가락을 허공에 휙, 그어내자 금빛의 선이 새겨져 반짝 빛을 발했다. 재빠르게 움직인 손가락에 사나운 얼굴의 괴물이 그러졌다. 빈은 놀라운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지만 그것들 중 일부는 이면의 세계에서 실제의 세계로 넘어오는 법을 알아버리게 되었지.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미드워커란 사냥꾼이 평생 경계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셈이지.

 '우리들은' 그 괴물에 대항하는 항체야. 현실과 복제된 세계의 중간에 걸쳐져 양 쪽 세계의 영향을 모두 받을 수 있는 존재. 괴물들이 이 현실의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복제된 공간에 밀어넣어진 괴물들을 처리하기 위한 거지.

 다시 옛날이야기로 넘어가자. 늘어가는 괴물에 세계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냈어. 강력한 힘을 가진 두 마리의 하얀 용과, 세계의 본질과 어긋나는 힘을 불어넣은 여왕이라는 존재를. 가면 갈수록 이야기가 커지지?, 아직 멀었으니까 정신 붙잡고 들어."

 

 용은 괴물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용이나 여왕이나 본래 현실의 세계엔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니 세계는 복제된 이면의 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공간을 창조해 용과 여왕을 배치했다. 그것이 바로 B.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세계, 통칭 두 번째 세계이다.

 

 용은 실제의 세계의 사람과 계약을 맺어 그 힘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괴물에 대항하고 계약자는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용의 하수인, 힘의 인도자, 무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두 마리 용과 여왕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내고도 부족해서, 세계는 다른 항체들을 만들어냈다. 현실에 존재하는 소수의 인간들에게 괴물을 처치할 힘을 준 것이다. 그들은 현실과 복제된 이면의 세계의 경계에서 살아가게 되며, 두 번째 세계로도 넘어갈 수 있어 스스로를 중간에 존재하는 자, 경계를 걷는 자라 하여 미드워커(mid-walker)라 칭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 이유로 힘을 가지게 된 이들과 용과 여왕. 이들의 힘으로 문제는 거의 해결되어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과거에 한 용의 계약자가 괴물들에게 잠식당했고 괴물은 그들이 존재하던 복제된 세계에서 두 번째 세계로 넘어갔고 계약자의 용을 감염시켰다.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가장 큰 비극이며 참혹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감염된 용은 검게 물들었다. 하얀 용과 검은 용은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고 미드워커들은 두 번째 세계로 넘어가 검은 용이 파생시킨 괴물들과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를 강력한 위기로 인식한 세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미드워커들을 만들어냈다. 하얀 용은 여기서 크게 상처 입고 정화를 위해 두 번째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 듀비에의 지하로 몸을 숨겼다.

 

 하얀 용과의 싸움에서 검은 용도 힘을 잃긴 마찬가지였고 미드워커들과의 싸움 중 '붉은 기사'에게 목이 베이면서 숨을 다했다. 미드워커들의 승리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후에 살아남은 이들이 그 것을 용의 흑백전쟁이라 이름 붙였고 괴물들을 두 번째 세계에서 완전하게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검은 용의 몰락 이후, 복제된 이면의 세계에 존재하던 괴물들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미드워커들이 존재하던 시기이니 만큼 괴물들의 개체가 줄어드는 것도 빨랐던 것이다.

 

 결국 괴물들의 출현의 소강기가 도래했다. 명백한 세계의 승리였다. 괴물들의 수가 줄어들자 세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미드워커들의 수를 줄였다. 그러나 완전한 괴물들의 소거는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극소수의 미드워커와 하얀 용, 여왕의 존재는 남겨두게 되고 지금까지 시간은 이어져 오게 된다.

 

 시대는 거의 안락함을 되찾았다. 기계와 문명이 더욱 자리잡아가고 격리된 세계의 괴물들은 제 모습을 바다나 숲 속으로 깊숙이 숨겼다. 오랫동안 세계에 자리 잡은 그것들은 어느덧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나 더 이상 파괴를 일으키지 않고 긴 잠을 택했고 적은 개체수가 인간의 삶 틈바구니에 끼여 현실로 넘어올 기회를 엿볼 뿐이었다.

 

 선천적으로 태어나던 미드워커들은 거의 사라졌다. 드물게 예민한 인간은 복제된 세계를 감지하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걷게 된다. 그렇게 미드워커로의 본질을 스스로 자각하거나 여왕의 세례를 통해서만 미드워커는 그 개체수를 유지해 나가게 되었다.

 

 긴 이야기를 마친 단아는 청량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정보에 빈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진실인지 판타지소설인지 구분이 안 될 이야기가 현실이라며 제게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제 손으로 어젯밤 괴물을 죽이지 않았는가. 또한 그것이 작게 변해 지금 무릎 위에서 잠을 자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 드문 경우인데, 괴물을 소멸시킬 때 영악한 놈들이 자신의 파편을 흘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바퀴벌레가 죽을 때 알까는 거랑 비슷해. 어젯밤 발케가 그랬지, 아마도 가장 만만해 보이는 너한테 숨어들었던 거야"

 

 계속해서 음료를 마시는 단아를 대신해 은랑이 입을 열었다.

 

 "그것들은 힘의 일부에 불과해서 저런 모습이 되곤 해. 그런데 본체가 아니라 파편에 불과하니까 정말 가끔씩 염화의 진에 의해서 '정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어. 우리도 실제로는 오늘 처음 보는 거지만 말이야."

 

 이어지는 은랑의 말은 그런 경우 안전하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네가 데리고 있으란 말에 빈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우울해하던 빈은 단아의 설명을 머릿속에 다시 정리해보다가 발견한 이상한 점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저기, 저는 그럼 미드워커죠?"

 "그래, 그렇다니까."

 

 단아가 빈 깡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아까 미드워커는 극소수의 선천적 경우와, 또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되는 거잖아요. 혹은 그 머시기…. 여왕의 세례를 받거나요. 그럼, 그렇다는 건…."

 "아, 내가 말 안했었나? 했던 것 같은데."

 

 단아는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며 담백하게 말했다.

 

 "내가 여왕이야."

 "네?"

 "그리고 이쪽은 현직 용의 무녀."

 

 단아가 해사한 얼굴로 은랑을 가리키며 이은말에 빈은 입을 벌리고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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