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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Carmen Puella(소녀의 노래)(14)
작성일 : 17-07-09 23:27     조회 : 80     추천 : 0     분량 : 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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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십자가 간판이 달려있는 한 건물 위로 빗방울이 추적추적 떨어진다.

 쾅쾅!

 

 “계세요―!? 아무도 없어요――?”

 

 유하를 업은 채 건물 앞에 선 루리가 문을 두들겨 보지만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다.

 

 “여기도……. 대체 왜 이 도시는 의사는커녕 사람조차도 없는 거야……!”

 

 어린아이처럼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루리의 인상이 구겨진 종이쪼가리처럼 우악스럽게 구겨진다.

 쾅――!

 될 대로 되라며 현관문을 부술 각오로 발로 힘껏 차보지만 단단한 철문이라 살짝 흠집만 날뿐, 부서질 생각은 않는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서 나오면 좋으련만,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대답이 없다니……. 무슨 유령마을 같아…….”

 

 루리가 고개를 돌려서 걸어 올라온 언덕길을 내려다본다. 언덕길의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집과 건물들.

 한낮임에도 먹구름 때문에 초저녁같이 느껴지는 날씨지만, 불이 켜져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아무런 대답이 없고…….”

 

 루리가 빗물에 쫄딱 불어터진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흐어. 으어어.”

 “유하 님…….”

 

 여관에서 나온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유하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는커녕 의사소통조차 안 되는, 마치 갓난아기가 된 것 같은 정신적 아사상태.

 

 “아무라도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흐흑.”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은 루리가 언덕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찰박찰박.

 발을 옮길 때마다 오히려 빗줄기는 더욱더 굵어졌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계세요――?!”

 

 이제는 아무 집 문이나 두들겨보지만 대답이 없다.

 

 “계시나요―?! 있으면 대답해 주세요―!”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얼마나 걸었을까.

 루리의 체구는 초등학생처럼 작고 팔다리도 가늘지만 앙고리아족의 근력은 인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유하를 업고도 오랫동안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루리마저도 힘이 달리는지 다리를 후들거린다.

 

 “하아―. 하아―. 이제 점점 지친다…….”

 

 평지라면 그나마 좀 더 걸을 수 있었을 테지만, 테라로사 기차역 인근 마을의 지형은 끝도 없이 펼쳐진 경사의 언덕이었다.

 게다가 루리는 비에 젖은 자신과 유하의 옷 무게, 그리고 찢어진 이마의 상처로 인한 어지럼증까지 감당해야했다.

 도중에 보이는 병원이란 병원은 족족 들르면서 언덕배기의 끝을 향해 계속 올랐기에, 이미 몇 번이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아……. 그래도 분명 이 언덕만 넘으면 도심이 있을 거야……. 아니, 있어야 해.”

 

 그럼에도 루리는 오로지 언덕 너머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도심을 막연하게 기대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드디어 다왔――, ……윽!”

 “으어, 흐어에―!”

 

 언덕의 고지를 밟은 순간,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루리의 나뭇가지 같은 가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언덕배기 너머 다시 시작되는 경사면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던 루리와 유하가 나무 밑동에 받혔다.

 

 “으윽, 이제 겨우…… 비가, 그치려고 하는…… 데…….”

 

 신음을 내며 스르르 감기는 루리의 눈꺼풀.

 대차에 비를 쏟아내던 날씨는 언덕의 능선에 다다르면서 점차 약해지더니, 루리가 정신을 잃고 나자 야속하게도 거짓말처럼 햇빛을 드러냈다.

 

 

 * * *

 

 

 “―음?”

 

 큼직한 우산을 들고, 튼튼한 소재로 만든 지팡이를 짚으며 언덕을 올라오던 한 남성.

 

 “어이쿠!”

 

 배낭을 멘 그 남성은 발이 무언가 걸려 크게 뒤뚱거렸지만, 이내 자세를 다잡고 걸음을 멈췄다.

 

 “넘어질 뻔 했네……. 음, 비는 그친 건가.”

 

 남성은 허공에 손바닥을 내밀어 비가 오는 지 확인 한 뒤, 과장되게 말해 파라솔이 아닐까 싶은 큰 우산을 접었다.

 우산을 접자, 중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난다.

 

 “뭐야, 이건!?”

 

 흰색 민소매티를 입었으며, 긴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내가 쓰러져있는 유하와 루리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설마, 당한 건가?”

 

 그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일단 죽은 건 아니군. 그러게 빨리 시내로 가서 묵을 곳을 찾으라고 그랬는데…….”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 유하와 루리의 상태를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으……. 이 청년은 당했구먼, 당했어. 이미 삭아버렸어.”

 

 완전히 의식을 잃은 유하의 눈을 까뒤집어 본 뒤 눈동자가 제각각 따로 노는 모습을 확인한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어서 그는 식은땀인지 비에 젖은 물인지 모를 것을 흘리며 무의식중에 신음하는 루리의 상태를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이 앙고리아인은 탈수로 쓰러진 듯한데. 하지만 머리의 상처에서 피도 나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둘 다 야생동물들의 밥이 되겠구먼. 으음…….”

 

 사내는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긴 신음을 내며 고민하던 그가 결심한 듯, 손에 들고 있던 우산과 지팡이를 팽개치고 배낭에서 튼튼하고 악착스런 대형 보자기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지팡이 양쪽으로 보자기를 묶고 그 위에 유하를 힘겹게 눕혀놓고는 루리를 자신의 등에 업혔다.

 

 “썩을. 가게 접으려고 남은 물건 챙기러가다가 이게 뭐람. 거대한 짐 덩이가 둘이나 생겨버렸구먼. 으휴, 이놈의 오지랖.”

 

 사내는 한 손으로는 루리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잡고 유하를 끌면서 올라왔던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일어나면, 제대로 받아내야 쓰겄어.”

 

 

 * * *

 

 

 “제엔장……. 힘들어 죽겠네!”

 

 아무리 건장한 사내라도 여자아이를 업은 채로 질척거리는 땅을 걷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다가 성인 한 명을 끌고 가는 것마저 추가된다면 드는 힘은 배가 된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한 건지……, 이제 와서 버릴 수도 없고.”

 

 토옥.

 콧수염 사내의 어깨 앞쪽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보랏빛이 반짝이는 작은 광물―마력석.

 마력석이 청명한 하늘에 높이 솟은 태양빛에 비춰지니 찬란하게 빛난다.

 

 “이건……. 이 여자애 손에서 떨어진 건가?”

 

 그가 무릎을 부들거리며 굽혀 보랏빛 마력석을 주우려고 할 찰나였다.

 마력석에서 갑자기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한낮임에도 눈이 간질거릴 정도로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마, 마법?”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산 너머 하늘에서부터 번쩍거리는 빛이 별똥별처럼 잔상을 그리며 날아와 사내의 눈앞에 떨어진다.

 하지만 운석처럼 강력한 충격으로 지면이 파괴된다거나 그로 인해 굉음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으악! 메테오?! ……는 아닌 것 같고, 이 여자아이는 대체……?”

 

 깜짝 놀라 소리쳤던 사내가 환한 빛이 잦아들자 나타난 은발의 작은 여자아이―엘리시아의 모습이 드러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유하! 루리!”

 

 엘리시아가 콧수염 사내를 밀치며 그가 보자기로 만든 끌것 위에 뉘어있는 유하에게 먼저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사내의 등에 업혀있는 루리의 얼굴을 만지며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봐, 꼬마!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짓―, ……이봐, 너도 지금 많이 지쳐 보이는데?!”

 

 엘리시아의 모습은 유하나 루리의 꼴과 크게 다를 것 없어보였다.

 비에 온통 젖어있는 몸과 옷, 그리고 꽤나 피곤한 듯 보이는 그녀의 지친 눈동자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시아는 그렇게나 싫어하는 ‘꼬마’라는 단어에도 그런 말 따위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에메랄드빛 오오라를 내보내 루리와 유하를 덮어씌웠다.

 

 “오잉? 역시, 당신 마법사지!? 아니, 치유사인가?”

 

 콧수염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치유마법을 사용하는 엘리시아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으, 으음…….”

 

 내내 앓는 듯이 신음을 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루리가 어느새 편안해진 얼굴로 천천히 눈을 떴다.

 

 “루리, 정신이 드느냐.”

 “뭐야, 귀머거리는 아닌가보네.”

 

 사내는 루리를 천천히 내려놓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 이, 이 괴물!”

 

 정신을 차린 루리가 엘리시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한달음에 뒤로 먼발치 떨어져서는 얼굴을 붉히며 경계했다.

 

 “진정하거라, 루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앙고리아족 아가씨, 이 은발의 여자아이가 널 치료해줬는데 일단 진정하는 게 어때.”

 “당신은 누구……. 아니, 그보다 저를 치료해줬다구요? 서, 설마― 진짜 엘리 님이세요?!”

 “나 참, 구해준 은인인 것 정도는 눈치 채라.”

 

 그 탱글탱글한 피부에 주름이 다 잡힐 만큼 얼굴을 찡그리며 엘리시아를 노려보고 있던 루리가 사내의 얘기를 듣고 인상을 확 피며 놀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엘리시아의 끄덕거림을 보고 별안간 다른 의미로 얼굴을 다시 찡그렸다.

 

 “엘리 님! 흐윽……. 왜 이제야 오셨어요!”

 

 루리가 엘리시아의 품에 안기며 훌쩍였다.

 루리가 갓 중학생이 된 어린애 티를 못 벗어난 여자애라면 엘리시아는 루리보다 한참 어린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의, 더 여린 체구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 장면은 이상한 것이었지만―

 

 “왜, 왠지 분위기는 이 은발 여자애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네.”

 

 콧수염 사내는 이마를 긁적이며 어색하고 난감한 상황에 대해 정확한 감상을 남기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아무리 기다려도 마력석의 신호가 감지되지 않아서 일을 마치자마자 뒤늦게 부랴부랴 직접 나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유하의 상태마저도 끊기는 바람에 더 헤매었고…….”

 “유하 님은…… 악령 같은 녀석에게 당한 것 같아요. 마족인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엘리 님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저렇게…….”

 

 엘리시아가 고개를 돌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유아처럼 침을 질질 흘리는 유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흐어어.”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자, 온몸에 은빛의 오오라가 잔잔하게 맴돈다.

 

 “멘탈이터(Mental Eater)야.”

 

 콧수염 사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오고서야 엘리시아가 드디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멘탈…… 이터?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일단, 이런 곳에서 얘기하는 것도 뭐하니 우리 집으로 가자구. 저 청년도 저렇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

 “흐으으으어!”

 

 유하가 편하게 누울 수 있게 루리가 머리를 받쳐준다.

 

 “……그러지.”

 

 엘리시아가 곁눈으로 그것을 보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참, 나는 ‘세르만 구즈’라고 한다. 테라로서역에서 잡화를 팔아. 접을 생각이지만.”

 

 그러면서 자신을 ‘세르만’이라고 소개한 콧수염 사내가 그의 까무잡잡한 구릿빛 피부의 손을 엘리시아에게 내밀었다.

 

 “……‘엘리시아’다.”

 

 엘리시아는 잠시 머뭇하더니,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손을 내밀어 잡았다.

 

 “전, 루리라고 해요. 저희를 못 본 척 안하고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유하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에 받쳐놓은 루리가 앉은 채로 세르만에게 고개를 숙였다.

 

 “흐어. 으어어. 으에.”

 “―세르만, 그대가 사는 곳은 어디지?”

 

 정신이 피폐해진 유하의 모습을 엘리시아도 차마 더 이상 보기 어려웠는지, 눈을 질끈 한 번 감고 나서 세르만에게 물었다.

 

 “저―기 보이는 해안가 근처야. 이쯤이라면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려나.”

 

 엘리시아는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나쁘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루리, 유하를 업을 수 있겠느냐.”

 “네, 전 충분히! 그나저나 엘리 님도 안색이 안 좋으신데…….”

 “괜찮다. 그보다 유하를 어서 업거라.”

 

 유하를 등에 업는 것은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루리였기에, 엘리시아의 마법 덕에 상처가 낫고 힘이 조금 보충된 지금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루리, 세르만. 나를 꽉 잡거라.”

 “뭐? 무슨……, 에이―.”

 

 엘리시아는 루리가 유하를 업고 준비된 사인을 보내자, 가녀린 양팔로 각각 둘의 하반신을 감싸 안아 들어올렸다.

 

 “우, 우아아! 엘리시아! 장난 아닌데?!”

 

 반신반의하던 세르만이 진짜로 자신과 루리, 유하 세 명을 한꺼번에 들자 까무러칠 만큼 감탄했다.

 

 “자, 빨리 안내해라.”

 “아아, 그래. 우선 아까 말한 대로 저기 보이는 해안가 쪽으로 내려가면 돼.”

 

 그가 다시 한번 해안가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엘리시아는 지체 없이 경사진 언덕을, 나무의 줄기를 허공답보 하듯 사뿐히 넘나들었다.

 저 멀리 드넓은 푸른 바다의 수평선 때문인지, 엘리시아의 움직임은 마치 해수면을 참방참방 뛰는 것같이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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