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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8. 단 한 번의 여행(1)
작성일 : 17-06-29 00:21     조회 : 25     추천 : 1     분량 : 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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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015. 4. 서울, 영어가 들려오는 작은 방.

 

 "I acted as if I didn't care, but silently l decided to change my body."

 

  더듬더듬 읽어나가는 발음에 긴장이 묻어난다. 한 음절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튀어나오려는 소리를 혀 뒤로 묶어버린다.

  발음이란 산을 넘으니 해석이라는 태산이 가로막고 섰다.

  결국, 빨간 비를 맞은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책상에 턱을 올렸다.

  이 색연필 하나가 뭐라고. 아이의 얼굴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비췄다 먹구름이 끼기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태산은 지팡이로 하나하나 짚으며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여기서 as if는 마치~인 것처럼. 즉, 가정법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에 as if I don't care는 안 되는 거야."

 "그럼 changing은 왜 안 돼요?"

 "To 부정사를 데려오는 동사가 뭐 뭐 있었지?"

 

  아이가 눈알을 굴리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는다.

  형님을 외칠 법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꼬물꼬물 움직이는 18살 사내 녀석이 제법 귀엽다.

  그리고 정확히 5초 후 아이가 책상을 탁, 하고 치며 외쳤다.

 

 "아, Decide!"

 "그렇지."

 

  나는 밤톨 같은 머리에 손을 얹어 좌우로 움직였다. 아이의 얼굴에서 먹구름이 가고 해가 뜨기 시작한다.

  도둑질도 해본 놈이 한다고. 1년간 탱자탱자 놀다가 갑자기 일을 시작하려니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1년의 공백을 마치 10년 경력단절처럼 보는 면접관들에게 구구절절 해명하기도 지쳤다.

  결국, 나는 학원에서 일했던 가락을 살려서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벌써 5명의 학생을 만나고 있다.

 

 "하아, 난 왜 이게 생각이 안 나냐..."

 

  그중 엄마 찬스를 이용해 만난 나의 첫 번째 학생은 의지는 있으나 실력이 받쳐주지 않아 안타까운 케이스.

  비록 비가 내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기특해 의욕이 솟는다. 기초만 탄탄히 다져주면 곧 비가 그치고 방긋 웃는 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좋아, 내가 널 영어의 신으로 만들어주지! 일단 내일 시험부터 넘겨보자고!

 

 Terrrrr..

 

 "네. 진해연입니다."

 "해연 씨, 나 김재욱 감독이에요."

 

  볼리비아에서 만난 김 감독님이었다.

  밤에라도 좋으니 제발 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과외를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방송국으로 향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코인 노래방만 한 방에 가둬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앉기도 부족한 작은 방 안에서 장장 3시간 동안 30분짜리 다큐멘터리에 쓰일 스페인어 인터뷰를 번역해야 했다.

 

 "이야, 작업이 딱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끝났네."

 

  해서, 김 감독님과 VJ 석훈 씨와 함께 방송국 앞 맛집으로 무려 12,000원짜리 갈비탕을 먹으러 왔다.

  맑은 국물이 내는 달짝지근한 김이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해 침이 고인다.

 

 "지부장님한테 연락 안 드렸으면 어쩔 뻔했어?"

 "인사드려야지, 해놓고 요즘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네요."

 "SNS도 안 하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잖아."

 

  당장 내일 오후에 방송되어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느라 우리는 3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변명이 아니라 시차 적응을 마친 뒤에는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친하지도 않은데 굳이 안부를 전할 필요도 못 느꼈고.

  어색한 침묵이 돌 무렵,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밖에 나가 급한 통화를 마치고 온 석훈 씨가 들어왔다.

 

 "감독님. 현지통역 섭외 결국 안 됐나 봐요."

 "왜 또?"

 "모르겠어요. 지금 조연출이 여기서라도 데려갈만한 사람 있냐고 물어보는데요."

 "갑자기 그걸 우리한테 물으면..."

 

  난감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하던 두 사람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야들야들한 고기를 뜯고 있는 나를 향해 김 감독님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었다.

 

 "해연 씨. 요즘은 취업 준비하고 있나?"

 "아무래도 그렇죠. 지금은 과외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 다음 주엔 뭐해?"

 "과외하죠."

 

  김 감독님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자 이번엔 배턴을 터치해 석훈 씨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고기를 내게 건넨다.

  그러면서 손은 왜 떠는데?

 

 "혹시 스페인은 가본 적 있어?"

 "응. 대학교 때 마드리드랑 바르셀로나에 갔었어."

 

  말을 마치자마자 식탁 건너편에서 후다닥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서로의 팔을 밀어대며 내게 들리지 않게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석훈 씨가 핸드폰을 들고 빠른 속도로 글자를 입력한다. 김 감독님은 물을 한 잔 들이켜고는 손바닥을 마주 대고 나를 향해 싱긋 웃는다.

  뭐야, 왜들 저래?

 

 "들어봐. 우리가 이번에 여행 프로를 찍거든. 다음 주에 스페인에서 촬영이야."

 "오, 4월의 스페인이라. 좋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현지통역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하게 됐나 봐."

 "아이고, 저런. 당장 다음 주인데 큰일이네요."

 

  나는 영혼의 각질도 담기지 않은 추임새와 함께 밥을 뚝배기 안에 넣었다.

  통글통글한 밥알이 한알 한알 떨어지며 국물의 윤기를 머금는 모양이 또한 일품이다.

  음, 뭔가 아쉬운데. 맑은 국물에 깍두기는 좀 그렇지? 파를 좀 더 넣어야겠다. 룰루!

 

 "그래서 말이야. 혹시 해연 씨가 통역해볼 생각 없어?"

 "없습니다."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망설이는 척이라도 하지.

  별로 충격적인 말도 아니었건만 두 사람은 벙찐 얼굴로 날 쳐다봤다.

  먼저 정신을 차린 김 감독님이 멋쩍은 얼굴로 헛기침하며 갈비탕 국물을 떠올렸다.

 

 "어이구, 이 친구 단호박일세."

 "그런 건 현지 가이드나 통역 전문가가 해야죠. 그리고 저 지금 일하는 중이라니까요."

 "알아볼 만큼 다 알아보고도 못 찾아서 그렇지. 과외는 시간 조절할 수 있잖아. 겨우 5박 7일이야."

 

  일주일이면 한 달 수입의 4분의 1이거든요.

  거기다 다섯 명의 하루 스케줄 조정하는 것도 일인데, 일주일이면 뒤로 3주는 헬게이트 열렸다고 봐야 한다.

  안 그래도 애들 대부분이 이번 주에 중간고사라 하루에 4시간씩 자고 있는데 여기다 3주를 더 버티라고? 노노노!

 

 "바람도 쐴 겸, 돈도 벌 겸 같이 가자."

 "... 돈 많이 줘요?"

 "그럼 그럼. 거기다 프로그램 예산으로 가는 거라 경비도 일체 지원! 이런 게 바로 따블이지. 어때? 같이 갈래?"

 

  돈이 뭐라고.

  나도 모르게 귀가 밀어서 잠금 해제 되어버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돈바람에 팔랑이는 얇디얇은 귓불이 원망스럽구나.

  그래도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순 없지. 나는 눈을 새초롬하게 내려뜨고 식탁에 놓인 휴지로 입술을 닦았다.

  톡톡,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도도하게.

 

 "생각 좀 해볼게요."

 "생각할 게 뭐 있어. 모르긴 몰라도 코찔찔이 과외 두세 달 한 것보다는 더 많이 받을걸?"

 "그래, 같이 가자. 바깥바람 쐬고 오면 취업준비도 더 잘 될 거야."

 "생각 좀 해본다니까."

 

  돈을 많이 준다면 해볼 만 하지.

  공짜여행에 돈까지 번다라... 괜찮긴 하네. 돈을 생각하니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건 뭐,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내 마음이 이미 많이 기운 걸 귀신같이 알아챈 김 감독님이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럼 가는 걸로 한다?"

 

  조금 더 튕길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돈이 시급했으므로 못 이기는 척 수락했다. 어차피 중간고사는 이번 주면 끝나니까.

  오늘이 화요일. 남은 수업이 5개. 다음 주 수업의 절반만 당긴다 쳐도 10개.

  까짓거 오랜만에 코피 좀 터뜨려보지, 뭐.

 

 "턱걸이라도 아직 20대인데 쓰러지기야 하겠어?"

 

  그나저나 어떤 여행 프로그램이지?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런 느낌인가? 기왕이면 남부로 가면 좋겠다.

  오랜만에 바람 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선덕선덕하다.

  식당 밖 조명에 비친 벚나무가 춤을 추듯 하늘거리는 모양이 꼭 내 마음 같아 남은 국물을 통째로 후루룩 들이켰다.

 

 

 *

  5일 뒤, 인천공항.

 

 "... 연예인이 간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응? 내가 말 안 했나?"

 "안 했어요."

 "그래도 도준이는 까탈스럽지 않은 녀석이라 괜찮아. 해연 씨도 저번에 봐서 알잖아."

 "그래서 문제라고요."

 

  안 그래도 어색하고 껄끄러운데 오그라드는 라디오 사연까지 들어버렸으니 내가 편하겠냐고요!

 

 "차라리 평생 안 만나는 편이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정작 내 근심의 원인 제공자께서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선글라스 끼고 태연히 기자들에 둘러싸여 공항을 런웨이로 만드는 중이시다.

  볼리비아에서는 항상 간편한 차림에 단체 조끼를 입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기럭지가 제법 훈훈하다.

  딱 봐도 군살 없이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상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데 반대로 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피부, 그와 대비되는 도톰하고 붉은 입술은 여자라 해도 믿을 정도로 곱다.

 

 "너른 어깨를 강조하는 화이트 데님 남방에 무릎이 살짝 찢어진 진청바지라..."

 

  보통은 피하는 청청패션을 색을 다르게 배치했다. 센스가 있네. 거기다 산뜻한 밀짚 페도라, 포인트로 빨간 백팩까지.

  이건 그냥 잡지를 찢고 나온 거라 해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옷이 연예인발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건가?

 

 "흥, 그래 봐야 우리 고창석님만은 못하지."

 

  스마트폰 화면 속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문도준 출국, 문도준 공항패션, 문도준 스페인... 이게 다 뭐라니?

  얘는 남들 다 입는 옷에 선글라스 하나만 걸쳐도 실시간으로 검색순위에 오르네. 인생 참 핫(Hot)하구나.

  다행히 밀가루 아니, 문실검은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에 가려 나를 못 알아본 듯하다.

 

 "그럼 뭐하냐고. 통역이면 계속 붙어 다닐 거 아냐!"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젠장, 계약서를 써버렸잖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어.

  나는 민망함과 비통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동갑내기 석훈 씨가 어깨를 토닥인다.

 

 "도준이도 아는 사람이라 더 좋아할 거야."

 "난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코노미석에서 콩나물시루처럼 끼어 가는 나와 달리 밀가루는 비즈니스석으로 탑승한단다.

  기내 한쪽 귀퉁이에서 열 명에 가까운 제작진들이 바글거리며 자리와 짐 문제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틈으로 나는 보았다.

  책 한 권과 함께 느긋하게 걸어 들어와 유유히 커튼 앞쪽으로 사라지는 밀가루의 모습을.

 

 "망할 부자 놈들."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5박 7일이라고 했지?"

 

  나는 유사시를 대비해 챙긴 생존 스페인어 단어장의 종이 한 장을 부욱 찢었다.

  괜찮다, 괜찮지 않다, 괜찮다... 스프링에 찢겨 오돌도돌 튀어나온 종잇조각들을 하나하나 뜯으며 5박 7일간의 운세를 점쳐보자.

 

 "괜찮다,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고? 아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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