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06. 같이 걸을까(1)
작성일 : 17-06-26 00:23     조회 : 33     추천 : 1     분량 : 501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015. 1. 볼리비아 남부 산타크루스(Santa Cruz).

 

  한국에서 온 촬영팀이 돌아간 지도 벌써 2달이 되었다. 그 사이 산타크루스의 태양은 한층 더 날카롭고 뜨거워졌다.

  이미 봄부터 개장한 워터파크에는 매일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불과 몇 주 만에 물놀이와 바베큐파티는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하게 하는 최고의 여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사무실 안. 내 몸은 의자에서 흘러내릴 듯 늘어졌다.

  물이며 고기며 다 부질없다. 뜨겁고 따가운 태양에 지쳐 차라리 어마어마했던 우기가 어서 왔으면 싶을 정도다.

 

 "오늘도 많이 왔구나."

 "어휴, 이걸 받는 것도 다 돈인데."

 "그렇다고 선한 마음으로 선물한 사람들에게 보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니."

 

  요즘, 센터는 때아닌 선물들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갔던 모금방송은 나의 우려와 달리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루디의 수술뿐 아니라 학교의 창문도 모두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이 입금되자 한동안 지부장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일 줄 몰랐다.

 

 "역시 아이돌 팬덤은 위대해요."

 

  어떻게 알아냈는지 센터로 직접 선물을 보내오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다만 문제는 이곳에서는 소포나 택배를 받는 사람도 무조건 돈을 내야만 한다는 것.

  손바닥 두 개만 한 상자 하나를 받기 위해 한화로 3만 원 정도를 내야 하니 센터로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내 2주 치 생활비에 버금가는 금액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이 돈을 모으면 우리 애들 간식이 몇 달 치야?

 

 "루디한테는 오늘 들어온 것까지만 주고 앞으로는 센터 아이들하고 같이 써야겠다."

 "그러는 게 좋겠어요."

 "오늘 루디 보러 간다고 했지?"

 "네. 내일 입원한다고 해서요."

 

  루디는 다음 주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남매는 루디의 수술보다도 잠시 귀국한 엄마 덕분에 신이 났다. 역시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보내온 염원대로 꼭 다 나아서 건강하게 꿈꾸며 살아가기를.

  나 역시 또 다른 루디들을 위해 오늘도 힘을 내본다.

 

 "간만에 메일이나 확인해볼까?"

 

  이런저런 일로 바빠 한동안 메일을 확인하지 못했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오랜만에 집에서 연락이 왔다. 거의 3주만인가?

  인터넷으로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지만, 워낙 시차가 큰지라 평소에는 주로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한창 사회생활하고 돈 벌어올 큰딸이 외국에 박혀있는 모습이 답답할 만도 하건만 부모님은 지금껏 내색 한 번 않으셨다.

  그렇게 반대했던 요리를 전공하는 동생에게도 이제는 너그러워지셨다.

  당신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여유를 자식들이라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딸깍-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가뿐한 마음으로 '해연이에게'로 시작하는 메일을 열었다.

  그러나 한줄 한줄 읽어내려 갈수록 마우스를 잡은 손끝의 떨림이 커졌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난 뒤,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나는 그 날로 볼리비아 생활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

  다니엘라가 내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녀석이! 마지막까지 울지 않고 웃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Cuando regresaras? (언제 돌아올 거야?)"

 "Cuando Dios quiera. (신께서 원하실 때.)"

 

  언제가 될지 정말 모르겠다. 과연 내가 돌아올 수는 있을까?

 

 "No quiero decirte Adios. Chau, Querida. (아디오스 라고 하지 않을게. 차우, 소중한 친구.)"

 "Gracias. Nos vemos pronto. Chau. (고마워. 곧 만나. 차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남미에서는 대체로 아주 헤어지거나 오랫동안 보지 못할 상황에는 'Adios'를, 평소에는 'Chau'를 사용한다.

  곧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인사에 못내 가슴이 시리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바르르 떨린다.

  가슴의 시림이 전염됐나 보다.

 

 "Abrochese el cinturon de seguridad, Por favor.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지를 닮은 산타크루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기 어디쯤 우리 센터가 있겠지?

  만신창이가 된 나를 안아주어 고마워. 고집불통인 나를 받아주어 고마워. 모든 게 끝이라 생각했던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맞닥뜨려볼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Chau, Bolivia.

 

 

 *

 2015. 1. 대한민국 인천.

 

  잔뜩 먹구름이 낀 내 마음과 반대로 공항은 열을 지어 빛나는 불빛들로 환하기만 하다. 불 좀 줄여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겠지?

  예상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탓에 가족들이 오기까지 이 너른 공항에서 혼자 기다려야 한다.

  허리까지 오는 여행 가방 두 개를 실은 카트를 밀면서는 어디로 가기도 어렵다. 나는 일단 피곤한 몸이 쉴 곳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3천 원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를 샀다. 내 사랑, 진짜 먹고 싶었어!

  나는 들어오고 나가는 비행기의 이름과 목적지가 주욱 나열된 전광판 앞에 앉아 노란 항아리에 빨대를 꽂았다.

  부러운 눈으로 목적지를 쑥 훑다가 자연스럽게 전광판 옆 대형 홍보물에 눈이 갔다. 하얗고 빨간 선물꾸러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밀가루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달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눈길이 가는 곳마다 밀가루가 속한 그룹 멤버들의 얼굴이 눈에 띈다.

 

 "면세점 전속모델이구나. 인기 많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단연 밀가루였다.

  며칠뿐이지만 나와 함께 지냈던 사람이 맞나 싶어 조금은 낯선 그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 보는 그는 다른 사람 같다. 산타크루스에서 봤던 자연스러움은 덜하지만 다듬어진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제법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구나. 달 맞네.

  다시는 볼 일 없는 사람. 그래도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본 얼굴이 아는 사람이라 조금은 위안이 된다.

 

 

 **

  1년 3개월 만에 돌아온 집안의 공기는 차가운 계절만큼이나 냉랭했다.

  집의 상황은 메일에서 본 것보다 심각했다. 아빠가 고향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단다.

  액수는 자그마치 5억.

  퇴직금을 비롯해 갖고 있던 돈이며 땅이며 모두 넘어갔는데도 빚은 아직 절반 이상 남은 상황이다.

  그나마 내 명의로 해두었던 집 하나가 남아 이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 나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제법 춥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민소매에 핫팬츠를 입고 다니다가 햇빛이 들지도 않는 방 안에서 꽁꽁 싸매고 있어야 한다니. 나름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13시간의 시차에 적응하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하루 세 번, 엄마가 흔들어 깨우면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까무룩 잠드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

 "......"

 

  추위나 시차는 며칠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적응하기 힘든 것은 변해버린 집안 분위기였다.

  꿈결에 들려오는 부모님의 언성은 잠에 취해있는 나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마치 주먹으로 내리치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방문을 열지 못했다. 꿈속에서 들려온 소리를 눈앞의 현실로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다.

 

 "술 좀 그만 마셔!"

 "이거라도 없으면 내가 살 수가 없어서 그래."

 "술 마실 정신이 있으면 가서 그놈이라도 잡아 오던가!"

 

  시작은 항상 술이다. 매일 술에 절어 들어오는 남편으로 인해 답답한 아내의 질책.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편은 마치 녹음된 테이프처럼 한 가지 말만 반복한다.

 

 "당신은 가계부나 가져와."

 "가계부는 또 왜?"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서 돈을 갚아봐야 할 것 아냐!"

 "여기서 줄일 게 뭐가 더 있어서? 아, 그래. 당신 술값 줄이면 되겠네."

 "......"

 

  말 한 마디 듣는 체도 않는 고집이나 방향이 잘못된 화살보다도,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 아내의 숨을 틀어막는다.

  막힌 숨을 터뜨리는 날 선 공격에도 남편은 입을 다문다. 문드러진 마음은 술밖에 달래줄 이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아내는 남편이 원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정작 이 사단을 만든 원인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뭐?"

 "......"

 "그리고 일을 저지르는 건 당신인데 왜 허리띠 졸라매고 뒷수습하는 건 난데?"

 "......"

 "해연이도 돌아왔고 해온이도 졸업하는데. 같이 방안을 모색하지는 못할망정, 혼자서만 현실 부정하고 앉아있으면 뭐해?"

 

  고집스레 닫힌 아빠의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엄마는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침대 위에서 몸을 구부린 모습이 보인다. 동그랗게 웅크린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누운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몸을 돌렸다.

  그때 아빠의 입에서 누구를 향한 지 모를, 한숨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서로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다. 목표물 없이 날 선 외침이 허공에서 저들끼리 거세게 부딪친다.

  서로 부딪치고 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이 떨어져 우리의 눈을 찌르고, 머리를 찌르고, 가슴을 찌른다.

  추운 겨울, 깊이 찔린 상처는 나을 줄을 모르는데 매일 생겨나는 날카로운 조각은 같은 곳을 또 찔러댄다.

  누구 하나 아프다는 소리는 내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신음마저 말라간다.

 

 "......"

 

  29살이나 되어서도, 장녀가 되어서도 가족을 보듬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받기만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한심 그 자체다.

  소리 없이 베개를 적시고 현기증에 취해 잠이 들면 작열하는 태양이 나를 맞이한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태양이 차라리 반가워 잠에서 깨지 않길 바라기도 여러 번.

  그러나 나의 현실은 햇빛이 들지 않는 차가운 방. 몸을 파고드는 한기가 이제는 받아들이라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나를 다그친다.

  단 며칠 만에 가장 뜨거운 계절에서 한순간에 가장 추운 계절로 넘어왔다.

  인생의 계절도 그리 변한 것 같아 그 무엇보다도 마음이 가장 춥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과하객 17-06-28 14:05
 
가족끼리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지요. 특히 경제 문제가 되면... 이야기의 본류가 아닌 내용인데도 실감이 나는 장면이네요.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008. 단 한 번의 여행(1) 2017 / 6 / 29 26 1 5210   
8 007. 같이 걸을까(2) (2) 2017 / 6 / 26 32 1 5167   
7 006. 같이 걸을까(1) (1) 2017 / 6 / 26 34 1 5014   
6 005. 안녕 낯선사람(5) (1) 2017 / 6 / 22 32 2 5767   
5 004. 안녕 낯선사람(4) (1) 2017 / 6 / 22 38 1 5001   
4 003. 안녕 낯선사람(3) 2017 / 6 / 22 33 1 6072   
3 002. 안녕 낯선사람(2) 2017 / 6 / 22 38 1 5754   
2 001. 안녕 낯선사람(1) 2017 / 6 / 18 103 1 5405   
1 Prólogo. El Camino de Santiago 2017 / 6 / 18 356 1 1385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49일,
에스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