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보통이 아닌 연애
작가 : 꿀크리스마스
작품등록일 : 2017.6.16

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그것도 6살이나 어린, 갓 대학을 졸업한, 아주 예쁜, 우리 회사 신입사원과.

개자식, 3년 간 사랑이 이거야?

소임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별을 고했던 건 소임이었지만,
헤어진 지 이제 한 달 남짓 지난 시기에 새로운 애인을 사귀는 건
임준답지 않았으니까.

“오해하고 있잖아. 어떻게 나를 그렇게 몰라.”
왠지 모를 슬픈 눈으로 자꾸만 소임의 주위를 맴도는 준과

“저한테 고백한 거 아니예요? 나는 우리가 오늘부터 1일인 줄 알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들이대는 카페 알바생 진기까지.

소임과 준, 그리고 진기가 그려내는
보통인 듯 보통이 아닌 연애 이야기.

 
9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1)
작성일 : 17-06-26 22:13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818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9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1)

 

 

  “저를 이용하세요.”

  소임과 진기가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이번에는 유희가 준에게 말했다. 저를, 이용하시라고. 뜻을 알 수 없는 그 말에 준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유희씨?”

  “말 그대로예요, 임대리님. 저를 이용하시라고요.”

  유희는 굽히지 않았고, 준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식당을 나와 소임, 진기와 헤어진 두 사람은 유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한 정류장을 향해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유희는 준이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를 보냈지만, 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집 근처이니 차를 가져와서 유희를 데려다 주는 일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그 정도의 예의는 차리는 준이었다. 그것보다는, 지금은 유희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유희가 아닌, 그 누구와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소임이 아니라면.

  택시를 타고 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권했지만, 유희는 어차피 준의 차를 타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택시를 탈 필요가 없다는 듯, 버스를 이용하겠다 했다. 준은 애써 말리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에 서로 간단한 이야기 거리만 나누며 걷던 중에, 돌연 유희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을 이용하라는 말이었다. 대뜸 그렇게 선전포고를 던진 유희의 말을 준은 이해할 수 없을 수밖에.

  “앞뒤 설명이 필요한 말인 것 같은데요, 유희씨.”

  “임대리님과 차대리님 사이, 알고 있어요.”

  준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당황스러웠으나, 굳이 덧붙여 질문하지 않았다. 유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교제하셨고, 지금은 헤어진 사이라는 것까지, 전부 다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흘러다니는 말들 그냥 주워들은 것 뿐이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준과 소임의 사이를 굳이 파고들어 캐내고, 파헤치고 할 필요도 없이 직원들 사이에서 준과 소임의 이야기는 종종 떠돌고는 했다. 물론 그 둘이 3년이나 연애했던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직원들도 많이 있었지만, 준이 어쩌다 소임과 3년이나 연애를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며, 이야기를 꺼내는 직원들도 많았다.

  유희는 괜히 준이 이상한 오해를 할까 싶어 해명하듯 말을 했고, 이윽고 본심을 덧붙였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차대리님한테는 벌써 다른 애인이 생기신 걸요.”

  유희는 딱, 그렇게만 말했다. 준이 아직 소임을 잊지 못한 것, 미련을 갖고 있는 것, 식당에서 소임과 진기가 정확히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평범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 들을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했다.

  준 역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를 이용하시라고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뭘 어떻게 이용하라는 거죠?”

  “어떤 식이로든지요.”

  그렇게 말하는 유희의 눈빛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눈빛. 준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유희의 그 눈빛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대리님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시거나 아니면, 차대리님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질투 작전으로 이용하시거나. 뭐, 아니면 그 밖에 등등. 방식은 임대리님 필요하신 대로요.”

  너무나 방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유희에게, 준은 이 말 만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한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준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왠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회식 때의 일 뿐만 아니라 유희가 입사한 이후로 쭉, 이유희가 임준을 좋아한다는 것은 회사의 큰 이슈이자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었다. 물론 유희가 직접, 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준을 좋아하냐고 묻는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준 앞에서만 달라지는 유희의 행동이라던가, 계속 준의 주의를 맴돌고 가까워지고 싶어한다는 뉘앙스는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눈치챌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설마 그런 이유로 이런 제안까지 하겠어, 싶은 준이었다.

  “제가, 임대리님을 좋아하니까요.”

  준은 설마 했지만, 유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 이라고.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이 차소임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유희는 그 말까지는 속으로 삼켰기 때문에 준은 들을 수 없었다.

 

 

 *

 

 

  유희는 준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언제나 기억했고,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그 때의 준을, 가장 간단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의내릴 수 있었다.

  준 선배는, 나의 태양과도 같았다고.

  어둡고,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장마 같은 유희의 삶에, 꽉 막힌 거센 먹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을 내리듯 다가온 나의 태양.

  유희가 준을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 스무살, 대학교 첫 엠티에서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유희에게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들, 지금까지 없었던 친구가 생길까. 대학교에도 왕따라는 게 있으면 어떡하지. 처음부터 자발적 아싸인 척을 할까. 대학교는 식당에서만 밥을 먹는 게 아니니까 혼자 밥을 먹어도 이상하게 보지는 않겠지. 이런 종류의 걱정들이었다.

  수많은 걱정들의 밤을 보내며 유희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신입생 오티, 신입생 환영회 같은 것에 전부 불참했었다. 자발적 아싸가 되는 게 모양새가 제일 웃기지 않을 거야, 라는 결론에 도달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회장이라는 사람이 강의실에 들어와,

  “이번 주말은 엠티입니다. 신입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하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닌 이상 불참은 없습니다.”

  이런 중대 발언을 하고 떠났다. 그날부터 주말까지 유희는 하루도 마음 놓고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긴장 속의 엠티. 유희는 별다를 것 없이,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신난 듯 들떠있는 사람들 속에서 유희는 최대한 눈에 튀지 않도록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런 유희에게 아무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유희 역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말을 걸면 상대방이 싫을 테니까.

  “신입생이죠? 이쪽으로 와요. 아까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은데, 같이 먹어요.”

  그때 누군가 다가와 유희에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하며 신뢰감이 있는 묵직했다. 구석에서 혼자,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초라하게 앉아 있던 유희는 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이 고마운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가 아주 잘생겼다. 쌍꺼풀은 없지만 크고 쭉 찢어진 눈,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턱과 얼굴의 윤곽, 곧고 높은 콧대. 그의 얼굴은 뚜렷하지만 전혀 매섭지 않은 인상이었다.

  이렇게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까지 멋있는 남자가 나한테 말을 걸다니.

  유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긴장하고 있을 때보다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남자는 흔치 않았을뿐더러, 남자가 말을 걸때는 언제나 조롱과 욕뿐이었으니까.

  “야, 못생긴 돼지.”

  “냄새 나는 것 같아, 꺼져.”

  유희는 지금껏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들, 특히 학창 시절의 학우들이었는데 그들이 했던 말들이 귓가를 스쳐 몸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함께 하자고 했다.

  그는 유희를 사람들의 무리로 데려와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며 건넸다.

  “왜 혼자 있어요? 여기서 같이 이야기해요.”

  “아…… 가, 감사합니다.”

  “임준이라고 해요. 4학년, 졸업반. 학생회 임원이라 참석하게 됐는데, 너무 어려워하지는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준은 유희를 향해 싱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유희에게도 자기소개를 부탁한다고 했다. 유희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신입생이라고 답했다. 유희의 이름을 파악한 준은 사람들에게 유희를 소개하며 함께 하자고 말했고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아무도 유희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때 잠깐 사람들과 어울렸던 유희는 준이 자리를 떠나자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유희는 처음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준의 움직임을 쫓으며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으니까.

  준은 혼자 있을 틈 없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거나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거만함은 깃들여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들어주고, 누군가가 이야기 할 수 있게 말을 걸고, 했다.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유희는 준을 관찰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완벽한 사람은 종종 혼자 있는 유희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신입생 오티랑 환영회랑 다 참석 안 했죠? 처음 보는 얼굴 같아서요. 다들 그때 만나서 서로 친해지고 해서 다가가기 어렵죠?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죠. 이쪽으로 와서 같이 이야기해요.”

  “신입생이면 학교생활 자체가 많이 낯설텐데. 어려운 게 있거나, 힘든 게 있으면 저 찾아와요.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줄게요.”

  대화는 거의 그런 일회용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유희는 그런 준의 관심이 고마웠다. 선배로써 후배를 챙기는 예의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다른 선배들도 준처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준의 행동은 특별했다. 적어도 유희에게는 그랬다.

  그날 밤, 일찍 잠이 든 유희는 온종일을 준과 대화하는 꿈을 꾸었다. 아마도 그렇게, 유희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다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고, 유희는 여전히 혼자였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같은 학교에, 같은 과에 임준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유희가 알게 된 것이다. 유희는 준을 따라 봉사동아리도 가입하고 준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애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준과는 학년 차이도 많이 났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다가갈 수 없는 높은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준은 유희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변함없이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준과 잠시 잠깐, 대화하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숨을 쉬며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준을 너무나 좋아하는 마음에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건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다. 준은 너무도 대단하고 완벽한 사람이었고, 자신은 뚱뚱하고 못생긴 돼지였을 뿐이니까. 사실이 아니더라도 유희는 그런 생각이었다.

  “핫, 서, 선배, 임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그러니까, 유희는 준을 다시 보게 된 날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준이 졸업하고 난 5년 뒤, 뜻밖의 장소인 회사에서 다시 만나게 된 유희는 예전 버릇대로 말을 더듬으며 준에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꿈에 그리던 사람을, 꿈처럼 다시 만나게 돼서, 이게 정말 꿈은 아닐까, 설레면서도 두려웠으니까.

  “선배님?”

  “아, 저 서주대…… 그, 동아리……”

  “아, 후배님이시구나. 반가워요.”

  준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유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유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때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나는 변했으니까. 예뻐졌으니까. 이제는 선배 옆에 서 있어도 완전히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유희는 이제는 다시는 준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감히 준의 옆에 서서 말조차 걸 수 없는 초라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게나 변했는데, 이제 이런 자신의 옆에는 임준이라는 사람만이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차소임 대리?”

  그래서 처음, 준과 소임이 3년이나 연애를 했고 얼마 전 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유희는 분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예쁜 거라고는 소임이라는 이름이 전부인 그 차대리?”

  준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얼굴에, 몸매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존재감은 제로에 매일 김부장한테 치이기나 하는 차소임 대리라니. 유희는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

  준이 어떤 사람인데. 대학교 시절에도 과에 난다긴다 하는 여자 선배들도 준에게 죄다 까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루 걸러 하루 뛰어난 여자들한테 대쉬를 받지만 성에 차지 않는 건지, 아님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전부 거절해버린다고. 그래서 한때 준이 게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는데,

  차소임이라니.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인건 현재는 소임과 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유희는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승산이 있는 게임이 되었으니까. 준에게 자신을 마음껏 이용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이용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유희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준, 당신은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감은 눈을 뜬 준은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가량을 욕조에 죽은 듯이 몸을 담구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벅처벅, 욕조에서 빠져나온 준은 샤워 가운을 걸친 채로 스킨, 로션을 바른 후 욕실을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대충 마르고, 가방 속에서 서류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하…… 그러게. 나는 오늘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다 하루를 이렇게 보낸 건지.”

  유난히 길었던 하루 끝에 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욕조에 누워 있는 동안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은 준의 이동에 따라 그대로 움직임을 함께해 책상 앞까지 따라왔다. 준은 소임과 진기, 그리고 유희가 했던 말까지. 머리 속에서 지우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서류를 펼쳤다. 하지만 서류의 문자들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아, 일하자, 일!”

  급기야 준은 자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기합을 넣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서류에 집중하려 했다. 몸을 더 정돈해보자는 생각해 팔을 길게 늘려 기지개를 폈고, 그러던 중에 서류 몇 장이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너까지 안 도와주냐, 나를.”

  준은 혼잣말을 하며 책상 밑으로 몸을 숙여 떨어진 서류를 주워들었다. 그런데, 분명 떨어진 종이들은 다 주웠는데 바닥에 작은 종이 같은 게 하나 더 떨어져 있었다. 뭐지? 에이포 용지는 아니었다. 또 뭐가 떨어져 있는 거야, 조금 짜증을 내며 준은 그것을 주워들었다.

  “아.”

  그리고 짧은 단발마를 내뱉었다. 그 종이는 사진이었고, 그 사진에는 소임과 준기가 껴안은 채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저를 이용하세요.’

  유희의 말이 귓가를 때렸다. 준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차대리님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시거나 아니면, 차대리님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질투 작전으로 이용하시거나. 뭐, 아니면 그 밖에 등등. 방식은 임대리님 필요하신 대로요.’

  이용을, 하라고?

  준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유희의 말들과 손에 들고 있는, 행복한 듯 미소 짓고 있는 소임과 자신의 사진을 교합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임이 정말 자신을 잊은 것이라면, 새로운 남자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제 그만 소임을 놓아주는 것이 옳은 것일까. 소임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불행하잖아! 너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잖아!”

  헤어지던 날, 온통 눈물이 범벅인 얼굴로 소리치며 울부짖던 소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임은 정말, 나 때문에 불행하고 힘들었던 걸까. 준은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소임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옆의 그 사람과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이 떠나주는 게 맞는 게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준이 신경 쓰이지 않고 편하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오히려 현재 소임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유희와 사귀는 척을 하는 게 혹시 소임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은 아닌지.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유희가 스스로 자신을 이용하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유희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준은 그런 제안을 한 유희를 잠시 원망했다가, 유희를 이용할 생각을 하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고개를 저었다가, 소임이 그리웠다가, 소임이 미웠다가, 이해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때 띠링, 문자 알람 소리가 울렸다. 준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제 마음 확고해요, 임대리님. 또, 임대리님이 뭐라고 하시더라도 저는 그렇게 할 거고요. 남은 주말 잘 쉬시고, 월요일에 봬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해맑게 웃는 이모티콘까지.

  여전히 유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준의 생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소임의 행복을 위해 유희를 이용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유희가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고 확고하기까지 하다는데 괜찮지 않을까, 하고.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24 알 수 없어요 (3) 2017 / 7 / 30 310 0 7804   
23 23 알 수 없어요 (2) 2017 / 7 / 16 330 0 7779   
22 22 알 수 없어요 (1) 2017 / 7 / 13 342 0 7398   
21 21 그런 출장, 그런 여행 (4) 2017 / 7 / 11 326 0 6436   
20 20 그런 출장, 그런 여행 (3) 2017 / 7 / 9 332 0 7013   
19 19 그런 출장, 그런 여행 (2) 2017 / 7 / 8 338 0 8245   
18 18 그런 출장, 그런 여행 (1) 2017 / 7 / 6 350 0 6424   
17 17 이해와 오해의 너무 잔혹한 차이 (4) 2017 / 7 / 5 330 0 6534   
16 16 이해와 오해의 너무 잔혹한 차이 (3) 2017 / 7 / 3 353 0 6667   
15 15 이해와 오해의 너무 잔혹한 차이 (2) 2017 / 7 / 1 346 0 6486   
14 14 이해와 오해의 너무 잔혹한 차이 (1) 2017 / 6 / 30 337 0 6953   
13 13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5) 2017 / 6 / 30 339 0 7180   
12 12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4) 2017 / 6 / 28 337 0 5911   
11 11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3) 2017 / 6 / 28 329 0 8445   
10 10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2) 2017 / 6 / 26 332 0 7677   
9 9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1) 2017 / 6 / 26 345 0 8186   
8 8 보통이 아닌 연하 (5) 2017 / 6 / 24 338 0 7554   
7 7 보통이 아닌 연하 (4) 2017 / 6 / 22 324 0 6829   
6 6 보통이 아닌 연하 (3) 2017 / 6 / 22 337 0 7444   
5 5 보통이 아닌 연하 (2) 2017 / 6 / 21 331 0 7335   
4 4 보통이 아닌 연하 (1) 2017 / 6 / 19 356 0 6876   
3 3 보통 연애 (3) 2017 / 6 / 18 333 0 6782   
2 2 보통 연애 (2) 2017 / 6 / 17 328 0 6396   
1 1 보통 연애 (1) 2017 / 6 / 16 561 0 716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나를 구원해줘
꿀크리스마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