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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산촌의녀
작가 : 미루하
작품등록일 : 2017.6.3

퓨전무협/현대인 여의사 조력자/텔레마케터 여주인공/연애보다 직업/초자연적인 힘 주의

소원을 들어준다던 요정은 엉뚱한 무협세계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당장 살아남을 길이 막막해 엉뚱하게 정신과 의사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첫 환자가 황자라고? 말도 안돼!

 
프롤로그. 퇴근했다고 집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 02
작성일 : 17-06-05 11:04     조회 : 192     추천 : 5     분량 : 4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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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금빛으로 일렁이던 원은 점점 더 좁아지더니 사라졌고, 공간은 닫혔다. 그 속에서 혼자 툭 떨어져 나온 그는, 벌거벗고 있었다. 그와 함께 껴안고 있던 사람은 그쪽 공간에 남겨졌나 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납득했다. 그는 더러운 흙밭에 구르고 있다. 순간적으로 어어, 하고 신음소리를 내던 그는 벌떡 일어났다.

 

 벌거벗은 채 날카로운 돌과 여러가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학교 뒤편 마당에 굴러떨어졌으니 아플 것이다. 그는 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은정아! 은정아! 은정이는 어디 갔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언제나 하던 일. 긴 앞머리를 쓸어 내리며, 그는 소리쳤다. 그녀는 어쩐지 좀전에 분노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환한 방안에서 어두운 학교 뒤편으로 떨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검은색 투피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거, 꿈인가? 아니, 아냐. 좀전까지 분명히 은정이가-"

 

 사랑하고 있다. 아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 사람을 보니 알 수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다. 어린 날 모든 것을 바쳤던 그 사람의 그림자, 그 사람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아 사랑한다 하고 혼자 사랑 놀이를 했다. 잊지 못해 하고 뼈저리게 고통에 시달리며 밤마다 침대에서 울었다. 그렇지만, 그건 다 놀이였다. 그때는 그 감정이 진실처럼 느껴졌으나, 사실은 이 남자 따위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

 

 은정이니 뭐니, 벌거벗고 추위에 떨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에게 전혀 관심은 없다. 그녀가 사랑하던 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좀더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사랑하던 그는, 그녀의 추억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횃불과 같은 존재. 꺼지면 다시 살아날 수 없이, 재만 남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너, 넌!"

 

 여자의 얼굴을 마침내 알아보았는지, 남자의 눈이 커졌다. 손가락질을 했다.

 

 "뭐야, 이런 꿈! 이런 건 이제 제발 그만둬!"

 

 남자의 눈에는, 램프의 요정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램프의 요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 한밤중에, 벌거벗은 남자와 함께 서 있다. 동네 사람들이라도 나오면, 남자가 치한으로 검거되거나- 여자가 치한으로 검거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다지 환영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좀전까지 흥분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조금은 냉정해져서, 그녀는 말했다.

 

 "그를, 돌려보내줘."

 

 이제 그를 원하지 않아. 내가 바라보던 그는, 어린 날 기둥처럼 받쳐주었던 든든한 환상일 뿐이야. 첫사랑은 이제 지울 때가 되었어. 내가 지나치게 오래 붙들고 있었지. 그는 그의 연인과 함께 행복하도록, 바라고 있어. 진심으로.

 

 결코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삼월. 추위에 벌벌 떨며 자신의 알몸을 껴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는 초라해 보였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남자에겐 보이지 않는 램프의 요정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쌍둥이처럼 같은 둘. 그렇지만 남자의 얼굴에 명백히 드러난 난처함, 의문, 곤란함은 램프의 요정에게는 없었다.

 

 “고마워.”

 불만을 토하는 고객들에게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이는 것과는 다르다. 진심으로 여자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직 한 가지 소원이 남았다. 무엇이든 바라도 좋다고 하는 이 상황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복권 당첨을 원한다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사무실 옆자리 아가씨 생각도 났다. 일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가족들도 건재하다. 강렬하게 열망하던 ‘그’가 사실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 허탈할 뿐이다. 그리고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렵다. 홍보용 전단지를 돌리면서, 무료 쿠폰을 제공할 때에도 분명히 기업체 측에서 바라는 것이 있어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여자는 숨을 삼켰다.

 

 “마지막 소원은 없어. 가능하다면-“

 날 평안하게 해 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름모를 램프 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써야만 하는 그 능력을, 네가 쓸 수 있기를. 그녀는 고객서비스 팀장이 보면 백점 만점을 주었을 만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행복하길 바래.” 목적어는 필요없었다.

 

 그의 형체를 이루던 부연 것이, 흐릿해지면서 날아갔다. 까맣기만 한 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또각또각, 등을 곧게 펴고 이제 오십 미터 남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흐릿한 것이 다시 돌아와서 그녀 앞에 섰다. 한순간 형태가 흐려졌다가 다시 뚜렷해졌다. 그의 모습이지만 너무나 표정이 다른 ‘그’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행복이 뭐지?”

 “…에?”

  그녀는 당황했다. 행복이 뭐지? 오늘 아침 점심 식사 때 구내식당에서 받은 돈까스 한 조각이 다른 사람 것보다 유난히 컸을 때 느끼는 감정인가? 월급이 몇 퍼센트 인상되었을 때 느꼈던 기쁨일까? 아침에 예정된 프레젠테이션이 갑자기 취소되었을 때 느끼는 찝찝하고 달콤한 안도감인가? 무어라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그건 사람마다 달라.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다르듯이.”

 “그렇다면 소원은 성립하지 않는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그녀는 매달 실적 평가를 받았다. 직속 팀장이 실적 평가를 하면서 네 점수는 도대체 왜 이러니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하고 물어볼 때마다 그녀는 멍하니 구두 앞코를 바라보곤 했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자 진흙과 풀이 묻어 더 볼품없어진 낡은 구두 앞코가 그녀를 반겼다. 직속 팀장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도대체 왜 이러니. 조금 전까지 고맙던 마음이 한순간에 가셨다.

 

 “아니, 왜?”

 “소원의 객체와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램프의 요정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즉,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지만 타인의 완벽한 행복을 기원할 수는 없다.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는 존재한다. 평양감사도 싫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문득 램프의 요정이 하는 말에 납득하면서 그녀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텔레마케터 일에 지쳐서 안정적인 공무원을 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쳐볼까 하고 알아보던 중이었다. 감동적인 합격수기를 여러 건 보다가, 현직 공무원 모임을 발견하여 몰래 가입했다. 그곳에서 본 글은 대부분 일이 얼마나 지겹고 고된지에 대한 것이었다. 동료 텔레마케터와 그녀가 나누는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말도 많았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직을 하면 어떨지, 월급이 얼마나 적은지 등등, 그 글들을 본 그녀는 공무원 시험에 대한 미련을 바로 버렸다.

 

 아니다. 납득해서는 안된다. 네가 나한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너한테 주늑들어야 해? 가끔 고객에게 이런 식으로 따져대서 직속 상사에게 혼나던 그 ‘반항심’이 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윽박질렀다.

 

 “난 네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인데 그런 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해? 그런 사소한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그런가.”

 

 고객들이 소리치고 우기면서 이런 느낌이었을까, 문득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소리를 질러보는 게 얼마만인지 알지 못했다. 하이톤으로 다정하게 고객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극존칭을 쓰던 상담원이 아닌 양, 그녀는 마음껏 외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 수 있지!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네가 돈을 좋아할지, 사랑을 원할지, 권력을 바랄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어쩌면 가정의 평화를 제일 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다 다르다고!”

 “그렇군!”

 

 유령이 갑자기 유쾌하게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늘로 솟아오를 양 높이 떠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녀는 문득 한기를 느꼈다. 지금 이 인간도 아닌 존재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대가 도와주면 되겠어.”

 다정하고 상냥하게, 요정이 웃었다. 그의 얼굴이 지은 그 표정은, 너무나도 그를 닮아 있어서 그녀는 자못 슬퍼졌다. 아니다, 그에 대한 감정은 이미 잊어버렸다. 하지만 잊었다고 생각한 그 감정은 목욕탕 밑바닥에 깊숙이 가라앉은 해묵은 물때처럼 청소할 때마다 슬그머니 기어올라왔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그대가 알려주면 되겠어.”

 하늘 저 멀리 있던 달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몸에 힘이 빠지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핸드백을 툭 하고 떨구었다. 귀가 멍하고 코가 막히며 눈에 눈물이 났다. 세계가 접히고 있다! 몸이 구겨지는 것만 같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릿한 감촉이 달아올랐다가 후려치고 내떨어져 그대로 무너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아래로 깊이 깊이 끊임없이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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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06-07 09:24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다음 회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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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하 17-06-23 10:2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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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이브 17-06-12 05:25
 
앗 다음편 없어요!!!!! 작가님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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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하 17-06-23 10:27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 내어 열심히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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