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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이름부터 완벽한 평범의 길을 걷던 김지혜, 빙의조차 평범한 백작영애에게 했다?
특징조차 없는 주근깨투성이 이 영애는 도대체 누군데요?
남들은 빙의하면 악녀도 되고, 부자도 되고, 성녀도 된다는데 나는 여기서도 흔한 사람 1 역할을 맡고 있다.

빙의한 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돈 많은 난봉꾼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풀리는 빙의의 실마리들.
난봉꾼은커녕 세상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미남 2명을 모두 꼬셔야 한다?!

썸의 여신, 베스의 훌륭한 조언은 어려워서 성질대로 했더니.

"사업에 관련된 계약만 해야하나요?
제 영혼이나 당신의 지능과 같은 것과는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나요?"

나사가 풀린 마법사와,

"다, 다음에 한 번 가가같,이 한 번 가보는게 어떨지 네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편이었어."

생각보다 더 쑥맥인 검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해야하는 빙의녀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거사 좀 치뤄보자 우리?
응? 100년을 기다렸잖아?"

빌런이 100년간 계획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온의 이야기.


#동생바보 #딸바보 #평범 #빙의 #멸망 #먼치킨 #흔녀의_2회차_삶 #힐링

 
8
작성일 : 22-01-19 21:48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8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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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느즈막히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계약의 여파인지 새벽 훈련을 놓치고 말았다.

 

 "은...느..."

 

 "아가씨, 어서 일어나세요."

 "으으....."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고 있을 때였다.

 

 "아가씨, 오늘 교습 선생이 왔다더라구요."

 "무슨 교습?"

 "홈크단장님이 아실거라던데?"

 

 얼굴에 비누를 잔뜩 묻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었구나.

 

 "엄청 잘생겼어요."

 "알아. 그런데 뭘 들고 왔어?"

 "뭐 막대기도 아니고, 이상한 걸 두개 들고 왔어요."

 

 잠들었던 내 심장이 콩닥대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우아한 척 내려가는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협박을 당한(?)것으로 추정되는 리베론이 내게 살갑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생각보다 냉랭했다.

 

 "무술에 아.주. 진심이신건 알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에 감탄을 하는 바.

 일개 교습사로써 명받은 바는 다 하도록 하지."

 

 전혀 협박당한 것 같지 않은 말투로 리베론이 툴툴거렸다.

 

 "이게 뭐죠?"

 

 어차피 변명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기에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네 무기다."

 

 내게 맞춰서 제작됐다는 무기는 기묘한 형태였다.

 손목에 채울 수 있는 팔찌에 맞춰서 기다란 막대가 팔뼈에 덧대어 장착될 수 있었다.

 나의 팔 뼈를 보호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능이 없어보였다.

 

 "아래로 강하게 내리치면 막대가 길어지지.

 주먹이 상하지 않게 리치가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앞으로 지르는 것 보다는 후려치는 권법을 주로 쓰게 될 거다.

 마지막 단계는 버튼을 누르면 가장 끝에 칼날이 나오게 해뒀다.

 누를 일이 없도록 바란다."

 

 본인이 나를 가장 후려치고 싶은 눈빛으로 무기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어적 성격이 강하군요?

 얌전한 저의 성격과 딱 맞네요."

 

 나도 모르게 툴툴대는 미남에게 찡긋하고 말았다.

 이 망할 외모지상주의 성격은 인생 2회차에도 계속 내 삶을 망치고 있었다.

 

 "체술을 조금 변형해도 좋을 걸?

 이제까지 피했던 상황들에서 팔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체력도 보존할 수 있고."

 

 내 윙크를 가뿐하게 무시해버린 리베론이 설명을 계속했다.

 찡긋한 내 눈꺼풀이 갈 곳을 잃고 파르르 떨렸다.

 

 "네! 많이 도와주세요."

 

 내 말을 싹 무시한 리베론이 내게 시범을 보이고 내가 따라하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내 센스가 없었다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불친절한 수업이었지만,

 그의 경지는 불평할 수 없는 수준이긴 했다.

 나의 파트너와 나의 무기가 생겼다는 든든함은 내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줬다.

 리베론이 나를 싫어하게 된 줄 알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정도로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정도의 기쁨이긴 했다.

 나를 매일 미워할 수는 없도록 열심히 해야겠긴 하겠지만.

 

 

 다음 날 아카데미에 쑤시는 몸을 이끌고 출석했다.

 수업에 들어가던 중, 가정관 앞에서 만날 이유가 없는 체리를 마주쳤다.

 

 "어머, 엘리온!

 웬일이에요!"

 

 '뭔일이긴, 내가 할 멘트 아닌가. 왜 이렇게 친절하지.'

 

 아주 수상한 반가움에 세 발짝 물러서서 인사를 했다.

 

 "체리~ 그러게요?

 저는 가정학과잖아요.

 가정관에는 무슨 일이죠?"

 "하.하. 지나가던 중이에요.

 방금 들었는데 엘리 인기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비결이 뭐에요?"

 "인기?"

 

 전혀 예상못한 대화여서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네~ 그 유명한 키셀 군부터, 많은 영식들이 엘리와 대화 한 번이면 반하고 만다던데.

 대단해요.

 제게도 인기의 비결을 알려주세요!"

 

 반묶음한 단정한 핑크머리를 휘날리며 매실이가 내게 펀치를 날렸다.

 대화를 나눈 남자도 없는데 프로집적러가 되어버렸다.

 

 "떨어트린 손수건 주워주던 걸 오해했나보네요."

 "아! 손수건을 여러개 들고 다니면 되는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스쳐갔다.

 내가 안심했다. 안일하게 생각했다.

 

 "대화했다고 반하다뇨.

 다들 과장이 심하네요."

 "키셀군이 공공연하게 여신님이라고 부르며 질투한다던데?"

 

 그 놈이라면 그럴 수 있을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키셀과는 공적인 관계에요."

 "키셀군은 다른 생각인 것 같던데.

 어쩌나, 상처받겠네."

 

 대신 울어줄 것 같은 그녀의 하늘빛 눈동자에 안타까움이 들어찼다.

 하, 쟤를 어떡하지?

 

 "하......"

 "매력발산을 조금만 참아주세요 엘리.

 욕심쟁이군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든 말든 나를 엿먹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체리에게 한 방 먹고 말았다.

 더 이상 순진한 척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그녀의 선전포고에 긴장감이 돋았다.

 어려운 적의 등장에 베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지 고민하며 잠이 들었다.

 

 

 "하이, 방가방가."

 "극혐."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네?"

 

 꺄르르 웃으며 내 곁을 떠도는 신의 감정이 전달됐다.

 

 "왜 이제 나타나요.

 기다렸는데."

 "기다릴 게 뭐 있어."

 "알죠?

 이 세계의 끝?"

 

 구체가 잠시 멈췄다.

 

 "기억났나보네?

 세상의 시간과 흐름에 끝은 없어.

 그 후에도 시간은 흘러가."

 "선문답 하자고 부른건 아니고, 그 폭발.

 그거 어떻게 막아요?

 막아줘요."

 "막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일이야.

 개입할 수 없어."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이대로 다같이 저 세상 가든지, 살아남아서 멸망후에 몬스터랑 싸우면서 정글에서 살라고요?

 무책임한 거 같은데?

 이럴 거면 그냥 놔두지 왜 데려왔어요?"

 "미안해.

 들어줄 수 없어.

 대신 하나, 알려주려 왔어."

 

 불같이 화를 내려다가 귀가 쫑긋해졌다.

 다혈질이지만 때와 장소를 아는 나, 역시 칭찬한다.

 

 "들어보고 화 낼게요."

 "체르밀리 말인데......."

 "호오."

 

 흥미가 돋았다.

 오늘 내 명치에 반격한 그 친구?!

 

 "걔가 약점이 있어.

 자기에게 반하는 친구들은 다 어장에 넣고 관리를 하는데, 예술적인 연하남에게 약해.

 듬직하고 능력있고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덩치가 큰 애같은 대책 없는 감성남을 좋아한다는 말이지.

 재고 따지는 것 같지만 제대로 반하면 앞뒤 안 가릴거야."

 "18살에게 연하는 애기 같은데?"

 "꼬투리 잡을 거야?! 그런 느낌 알잖아!

 조심해야 할 부분은... 질투가 강해.

 내 남자의 다른 여자보다, 나보다 주목받는 여자에 대한 질투가 더 강한 타입.

 알겠지?"

 

 알지알지. 훗.

 관종이라 이거잖아. 훗.

 오늘부로 체리의 무궁한 행복을 위해 내가 천생연분을 찾아주기로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제일 좋은 정보를 준 신 녀석을 쓰다듬어주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녔다.

 왜 도망가지?

 

 신나게 쫓다가 눈을 번쩍 떴다.

 오늘부터 0순위는 매실이의 남친 찾기가 되었다.

 신나는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또 등교를 해야하긴 했지만.

 

 '내 팔자야...

 삭신은 안 쑤셔서 그건 좋네.

 젊음이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며 안나가 물었다.

 

 "오늘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아가씨"

 "아 그런가?

 똑같은 거 같은데."

 "에이, 요새 온 세상을 짊어진 얼굴로 다니신 거 아세요?"

 

 실제로 온 세상을 짊어지고 있단다, 안나.

 

 "하하. 그런가.

 짊어지고 있을수도 있지."

 "말도 안되는 소리 마시고요.

 누가 아가씨를 그런 얼굴로 만들게 하거든 정강이를 팍 걷어차고 도망가세요.

 아! 음...

 폭력은 쓰지 마세요.

 들어보니 아가씨 엄청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술."

 "훗. 누가 그래.

 듣기 좋아서 믿을 뻔 했다!"

 

 둘이 키득거리며 준비를 하는데 문득 특별한 스케줄이 기억이 났다.

 

 "아, 안나.

 오늘 무술 수업도 없고, 중요한 날이야.

 엄청 예쁘게 꾸며줘."

 "어머, 아가씨!

 기다리던 말이네요!"

 

 전투의지가 상승한 눈빛으로 안나는 나를 치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멘토링 프로그램의 첫 날이었다.

 

 안나는 마법사가 분명했다.

 공을 들여 치장한 나는 내가 봐도 꽤나 예뻤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머리도 소녀다운 반묶음에 곱슬거리는 발랄함이 추가되었다.

 두상이 아빠를 닮아 뽕을 살짝 넣어야했지만, 괜찮았다.

 나름 반짝 반짝 귀여웠으니까.

 흐릿한 갈색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역시 아름다움은 찾아내기 마련이다.

 운동을 시작한 후로 몸매나 자세가 매우 좋아져서 옷태가 나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간 깊이 소망했던 강렬하고 섹시한 드레스를 들고 콧김을 내뿜었다.

 

 "안나! 나 이거!

 이거 입고 싶어!"

 "아가씨....."

 

 안나의 슬픈 눈망울이 답을 대신했다.

 

 "아가씨 이건 데뷔탕트 후에나..."

 "왜! 나도 이제 다 컸어!

 입으면 안 될까?"

 "머리와 분위기가....."

 "다시 해주면 안 돼?

 오늘 수업은 늦게 있으니까 바꿔도 돼!"

 

 다 컸다며 떼를 쓰는게 영락없는 애 같다고 스스로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김지혜는 이런 탄탄하고 곧은 몸을 가져본 적이 없어 엄두도 못 냈었단 말이다.

 

 "아가씨, 불충을 각오하고 말씀드릴게요.

 아가씨는 확실히 늘씬해졌지만, 이 드레스는 풍만해야 잘 어울려요.

 뼈대가 가늘고 살이 붙어야 할 곳에만 붙은, 신이 내린 몸매에만 잘 어울린다고요."

 "......"

 

 너무해.

 안나는 내 약점을 너무 잘 안다.

 

 "자! 보세요!

 무늬도 없고 치장도 최대한 줄였죠?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게 착 붙고요.

 원단을 살리려고 이런거 같지만 몸매에 집중하라고 만든거라구요!

 여기에 이런 강렬한 남보라색이에요.

 엄청 섹시한 색이죠?

 이걸 아가씨 얼굴에 대 볼게요.

 자, 이것봐요.

 아가씨 얼굴이 여백도 많아 보이고 이목구비가 옹이구멍처럼 보이잖아요.

 이목구비가 화려하고 젖살도 빠지고, 짙은 화장을 해야 찬란한 드레스에요.

 아직 아가씨는 얼굴에 젖살도 있고 귀엽고 밝은 느낌인데 어울리겠어요?

 애기가 엄마 구두신고 빨간 루즈 바르고 요염하게 포즈를 취한다고 어른처럼 보이던가요?

 주근깨에 운동으로 다져진 빼빼마른 몸으로 도대체 이 드레스를 어떻게.....!

 살 때부터 그렇게 말려도 거금을 들여서 사시더니!

 제발 아가씨가 어른이 되시면 제가 알아서 이걸 입어달라고 들고 올게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빙의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프게 맞은 적이 없었다.

 이... 이건 폭력이야!!

 

 "어...어... 알았어...

 안 입을게 그... 그만...."

 "역시 아가씨는 참 착하시네요.

 제가 고맙죠."

 

 씩 웃는 안나가 조금 무서웠다.

 팩폭과 당근으로 나를 조련해가고 있는 걸 알었지만, 그녀를 거스를 자신이 없었다.

 

 안나가 들고 온 주황빛이 도는 다홍색 드레스를 입었다.

 시원하게 목을 파버린 디자인에 프릴로 쇄골과 어깨, 팔까지 감싸서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드레스였다.

 여름에 가까워지는 날씨에 다홍색이었지만 시원해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옅고 큰 플라워 패턴이 들어간 드레스는 별다른 디테일 없이 허리 라인만 살짝 들어간, 탁 떨어지는 라인이었다.

 노숙해 보일 것 같아 쳐다도 안 봤는데 의외로 귀여움을 살려줬다.

 

 "안나, 나 너무 거대한 꽃 같지 않아?"

 "전혀요, 아가씨처럼 키가 좀 있고 군살이 없으면 세련되게 어울린답니다.

 아가씨가 어른스러워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골라봤는데 정말 잘 어울리네요."

 "헤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보자, 슬림하게 떨어져있던 드레스가 하늘거리다 다시 가라앉았다.

 화장까지 마무리 된 뒤, 화장을 유지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점과 수정 화장에 필요한 화장품들을 덜어넣은 용기를 받았다.

 이렇게 꾸며지는 게 생애 처음이라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크, 이 맛에 다들 샵을 다니는 거였구나.

 

 오랜만에 신은 구두의 또각거리는 굽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며 캠퍼스로 들어갔다.

 갖가지 색들이 맹렬히 얽혀있는 봄이 타오르고 있었다.

 만개한 꽃들과 벌써 고개를 내미는 연녹색 이파리들이 설레는 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비가 많이 오는 시기가 오고, 저 연녹색 잎들이 쨍하고 싱그러운 녹색으로 변하겠지.

 그 전에 많이 많이 설레고 싶었다.

 

 화장을 하고 나니 평소처럼 고개를 괼 수도 없었다.

 얼굴 위로는 절대 손을 올리지 말라 신신당부했던 안나의 조언(잔소리)에 따라 곧게 앉아 쏟아지는 춘곤증을 이겨내고 있었다.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하필 저 멀리 매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계속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아는 사람도 많았다.

 문득 오늘 그녀와 멘토링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 유심히 봤다.

 

 밝고 따뜻한 봄 햇살 때문인지 그녀는 더욱 빛났다.

 눈동자와 같은 연푸른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예쁜 몸매를 강조하는 과감한 디자인을 택했다.

 상의 부분은 갈비뼈가 살짝 보일 정도의 브이넥에 붙는 재질의 실크였고, 하의 쪽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랑스러운 프릴 치마였다.

 재질은 실크였지만 색때문인지 가볍고 시원해보였다.

 

 '하...... 더럽게 잘 꾸미네.'

 

 원래 뒤끝이 길고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라 죽는 날까지 매실이를 싫어하기로 결정한 나는 툴툴거렸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전투복 대신 화장과 드레스로 무장한 나는 약속된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보통은 원하는 소수만 참석하는 프로그램인만큼 적게는 2대1에서 많아봤자 대여섯명의 학생들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리베론 교수는 싸늘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멘티로 신청한 학생들이 15명을 넘어갔다.

 첫 날엔 보통 대면식으로 식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연회실을 빌리는 수준의 인원이 모이고 말았다.

 

 워낙 긴 테이블이어서 끝에 앉았다간 리베론과 말 한 번 못 섞을 것 같아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앉기 위해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식당 입구부터 모두 경보를 하고 있었다.

 

 '리베론이 이정도라고?

  다들 평민이 어떻네 하면서 투덜거리더니?'

 

 아마 내가 모르는 새에 학생들 사이에서 평판의 변화가 있었나보다.

 이래서 동아리 활동도 해야하나, 이러다 늙겠다 싶어서 내적 투덜거림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레이디, 안쪽에 앉으시겠습니까?"

 "오, 고마워요."

 

 조교로 보이는 남자가 다행히 몇 안 되는 여학생들에게 가까운 자리를 양보해줬다.

 조교들도 신청했나 궁금해하고 있을 때, 말을 걸어왔다.

 

 "시호니 남작가의 로세인입니다.

 챔버 백작가의 엘리온 양이시죠?"

 "아, 저를 아세요?"

 "하하, 검술학부 학생들 대부분이 알 겁니다.

 챔버 영애와 아슬란 영애는 신입생 중에서도 돋보이는 실력이니까요."

 "과찬이시네요, 호호.

 시호니 영식은 그럼... 조교신가요?"

 "네?

 저... 같은 신입생인데..."

 

 건치를 자랑하던 로세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앗!

 아...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서요. 호호호호호호호호.

 신입생이라고는.... 호호호호호호.

 그럼 늦게 입학을 하셨나봐요?"

 

 당황한 나머지 웃음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조교가 틀림없는 얼굴인데 4학년도 아닌 신입이라니.

 

 "네?

 저... 18살인데..."

 "......"

 

 이제 더 이상 웃을 수도 없었다.

 더 웃으면 결투 신청을 당할 것 같았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 나보다 적어도 5살은 많아 보였다.

 그에게는 어떤 삶의 고난이 있었던 걸까.

 

 "풉. 시호니 영식, 상당히 노안이네요!"

 

 어느 새 반대편에 앉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체리가 말을 건넸다.

 저 따위 무례한 말을 상큼하게 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하하. 다들 제 나이를 오해하긴 하더군요.

 우리 구면이죠?"

 "네. 엘리온을 곤란함에서 구해줬어야 했어요. 호호."

 

 체리에게 관심을 받자마자 환해지는 로세인의 거무죽죽한(했던) 얼굴을 보라.

 나를 징검다리 삼아 검밖에 모르던 소년에게 훅 다가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매력이 나에게도 느껴져서 괜시리 질투가 났다.

 동시에 질투나 느끼는 찌질이가 나라서 조금 서글펐다.

 

 때마침 들어와준 리베론이 아니었다면 안나의 노고도 소용없이 시들어 있을 뻔 했다.

 리베론은 오늘도 촉촉한 눈빛을 장착하고 단추를 3개쯤 풀어헤치고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총명해 보이면서도 상처받은 아기맹수 같았다.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꼭 안아주고 싶게 생긴 그런 눈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분명히 연예인으로 대성했을 것이 분명해, 혼자 감탄하고 있었다.

 

 "꽤 많이 왔군? 일단 식사들 하지."

 

 목적을 떠나, 그의 촉촉한 눈빛이 서브남주 병에 걸린 나를 자극했다.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싶어서 고개를 쭉 빼보았으나, 리베론은 묵묵히 식사를 할 뿐이었다.

 몇몇이 용기를 내 리베론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미소와 함께 단답으로만 답했다.

 

 식사와 함께 술이 들어왔고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학생끼리도 개인적인 얘기들이 오갔고, 리베론의 배경에 대해 다들 궁금해했지만 그는 철저히 함구했다.

 나도 와인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훌륭한 맛과 분위기에 조금씩 취해갔다.

 원래도 술이 들어가면 흥이 잔뜩 오르는 타입이었고, 빙의한 후에 처음으로 제대로 마시는 술이라 어깨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흥이 오른 상태였다.

 

 오랜만에 멸망이니 사업이니 모두 잊고 순수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또래 학생들과 다른 교수님에 대한 정보도 듣고, 무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인생의 작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술 취한 학생이 짖궂게 물었다.

 

 "교수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적당히 마신 리베론도 마주 웃어주며 대꾸했다.

 

 "검에 대한 내 사랑을 이해해주는 사람?"

 "에이~ 더 자세히요!"

 "밝았으면 좋겠군.

 보다시피 내가 이래서."

 "어머, 나네?!"

 

 그래, 내가 뱉은 말이다.

 알콜로 인해 맥스를 찍어버린 내 흥이 저런 망발을 내뱉고 말았다.

 

 "제가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겨스님~"

 

 그리고도 상황파악이 안되서 윙크까지 하며 신나서 나불대고 있었다.

 보통은 다들 한바탕 웃고 끝났을 것이다.

 그 상대가 리베론만 아니라면.

 급격하게 굳어버린 리베론의 얼굴을 보면서 술이 깨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다른 빙의한 애들은 술취해서 진상을 떨어도 로맨스를 진행시키던데......

 나는 술취해서 집적거리는 변태 아저씨 같은 멘트를 하고 말았다.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풉. 엘리온, 너도?

 나도! 푸흐흐.

 교수님 저도 그런 말 많이 듣는데요?!"

 

 그 얼어 붙던 타이밍에 체리가 등장했고, 그녀의 장난이 더해지자 다들 빵터졌다.

 얼음왕자 리베론조차 그녀를 보며 웃었을 정도니.

 

 그렇게 나는 눈치없는 집적러가 되었고, 체리는 센스있는 분위기메이커가 되었다.

 그녀가 입학도 전에 유명해진 이유가 이거였구나.

 나라도 체리의 센스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 센스의 제물이 나만 아니었다면.

 

 나는 또 체리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이 정도면 개명해도 될 것 같다.

 엘리온 체징으로.

 나는 패잔병이 되어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애써 웃으며 잠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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