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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판타지 세상을 모험하는 소녀는 터프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가 : 빈성
작품등록일 : 2021.1.1

마법 쓰는 소녀 일레나 린의 유쾌 & 시리어스한 판타지

#1인칭 #여자 주인공 #개그 #가끔씩 시리어스

표지는 미완성입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여관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4-
작성일 : 21-01-06 21:30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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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귓가에는 마치 벌레 수천 마리가 동시에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며 시야가 빙글빙글 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는 부서진 나무 조각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나무 상자 따위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다.

 아… 모퉁이를 돌자마자 무너지는 상자더미에 깔렸지.

 나는 조금 전 벌어진 사고를 떠올렸다.

 응?

 눈앞에 발목까지 오는 가죽부츠를 신고 있는 발이 보였다.

 무심코 잘록한 발목을 따라 탄탄하게 뻗은 다리를 지나 고개를 들자 한 없이 영롱한 한 쌍의 녹빛이 보였다.

 미처 왜? 라는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엘프의 안면근육이 꿈틀거리더니─

 “훗.”

 바람 빠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가볍게 땅을 차며 멀어지는 엘프.

 “…후후후후후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잘도 비웃었겠다?”

 가축을 훔치는 건 용서해도 이 나를 비웃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 없다!

 후회하게 해주겠어!

 

 “저기 있다!”

 앞서가는 엘프의 뒷모습을 발견한 것은 마을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허리 높이까지 길게 자란 초본식물 사이로 난 좁은 길 위로 풀색 스커트를 살랑이며 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이쪽을 떨쳐냈다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방심한 모습이었다.

 “잡았다아아아아!”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엘프는 경악한 표정으로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분명 쓰러뜨렸을 텐데?!”

 “후후후후, 아까는 잘도 했겠다?! 각오는 됐겠지?!”

 “히익!”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내 얼굴에 걸린 환한 미소를 본 엘프는 기겁한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아!

 아까는 낯선 골목길이라 다소 헤맨 탓에 전력으로 달리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헤맬 필요도 없는 곳에서는 자제 할 필요가 없지!

 오랜만에 해볼까?

 달리면서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서서히 숫자를 빨리 외우면서 숫자에 맞춰 속도를 끌어 올렸다.

 스승님에게 배웠던 달리기 방법으로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시에는 어째서 달리기를 배워야 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마력의 근본은 정신력, 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스승님의 지론 하에 배워야 했지.

 그 때만 생각하면… 그만두자 지금은 그런 끔찍한 기억을 떠올릴 때가 아니니까.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돌연 엘프가 도망치기를 멈췄다.

 그에 맞춰서 나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멈춰 섰다.

 “이제 도망치는 건 그만둔 거야?”

 비꼬는 듯한 말투에 한 쌍의 녹보석 눈동자 사이에 옅은 고랑이 생겼다.

 “끈질기네. 어디까지 쫓아올 거야?”

 “당연히 너를 붙잡을 때까지지. 순순히 항복하는 건 어때?”

 “…타협의 여지는 없는 모양이네.”

 내 친절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엘프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후회하게 될 거야. 얘들아!”

 “얘들아?”

 그 말의 의미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사사삭. 사사삭.

 뭔가가 빠르게 지면을 스치는 소리.

 푸드덕.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고 주위에 갈대들이 요란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사사삭.

 하나? 둘? 아니, 그보다 많아!

 정확하게 숫자를 파악 할 수 없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경계하면서 뭐가 나타나도 대비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흔들리는 갈대 안에서 검은 뭔가가 쇄도 했다!

 급히 몸을 날려서 검은 형체를 피해내며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핑크색 엉덩이와 앙증맞게 말려 들어간 꼬리가.

 저 낯이 익은 뒤태는 분명ㅡ

 “돼지?!”

 “얘들아 이리로 와!”

 놀란 내 목소리와 엘프의 목소리가 한데 겹쳤다!

 그리고 갈대 사이에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닭, 돼지, 소 따위의 가축들!

 이내, 깨달았다.

 도둑맞은 가축들이 어디로 갔는지.

 어째서 피해자들은 야심한 시각에 가축을 도난당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그런 거 였어.”

 상대가 숲의 종족이라는 이명을 가진 동물과 친화력이 높은 엘프라면 가축 입장에서는 주인보다 친근할 터,

 강제로 끌고 간 게 아니라 스스로가 따라간 거라면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도대체 이만한 숫자의 가축들을 빼돌려서 어쩔 생각이야?!”

 “나는 그들을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줬을 뿐이야! 인간들은 항상 그래왔어! 주변을 파괴하고 억압 시키고 굴복 시키려고만 하지! 그때도 내게…!”

 “그때도?”

 엘프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할 말은 잔뜩 있지만 꾹꾹 눌러 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응?

 주위를 살피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주위를 둘러싼 가축들의 숫자와 던칸 씨가 말한 도둑맞은 가축의 숫자가 맞지 않는다.

 “잠깐만!”

 나는 손을 들면서 외쳤다.

 “도둑맞은 가축 숫자와 맞지 않는데, 나머지는 어디 있지?”

 “읏?! 알 필요 없어! 모두! 저 여자를 해치워!”

 엘프는 당황한 태도로 다급하게 주위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마치 들키면 안 될 걸 들킨 표정인데… 일단 접어두고 눈앞에 집중하자.

 엘프의 지시를 받은 가축들이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으니까.

 단순 가축이라고 해도 이만한 숫자면 위험하다. 닭은 그렇다 쳐도 소나 돼지는 무시 못 할 상대다.

 하지만.

 “파이어 볼.”

 콰콰콰쾅!!

 이미 완성해둔 파이어 볼이 땅에 작렬하면서 매캐한 폭연과 불씨가 흩날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석상처럼 굳은 가축들.

 “덤빌 거야? 참고로 이. 번. 에. 는 안 빗나가.”

 흉하게 파헤쳐진 땅과 나를 번갈아보던 가축일동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마… 마법? 그런 거 듣지 못했어!!”

 엘프의 경악 섞인 비명이 뾰족하게 울려 퍼진다!

 “말 안 했으니까.”

 당당한 내 태도에 엘프는 낭패한 신음을 토한다.

 “큭!”

 타오르는 화염너머로 아름다운 엘프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자아, 우리도 이만 끝내보실까?”

 나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발을 뗐다.

 초조한 듯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엘프.

 “도망가면 이번엔 뒤에서 마법세례야. 마을 안이 아니라서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읏…!”

 멈칫거린 그녀는 이내, 이를 악물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앗!!!”

 “호잇, 한 번 더 파이어볼.”

 거센 폭발이 들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매캐한 폭연이 바람 앞에 흩어지고 새카맣게 탄 갈대가 흩날리다 가라앉는다.

 “우우…… 인간 따위에게 지다니…!”

 시커멓게 그을린 채 쓰러진 엘프가 분한 얼굴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인간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그래…! 인간들은 그들은 내게…….”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는 그녀.

 어쩐지 입 안이 쓰다.

 잠시 후, 진정이 됐는지 엘프는 물기가 남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족을 나선 때였어. 모든 게 신기했기 때문에 나는 한 인간 가족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 그들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저녁을 대접한다고 말했지.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의심하지 못했던 거야… 그들이 내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할지를……! 시간이 흘러 석양이 질 무렵 나는 약속대로 그 집에 방문했어. 그리고…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온통 풀! 오로지 풀 뿐이었어!!”

 “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자기들은 고기반찬을 먹으면서 그들은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끔찍한 거짓말로 오로지 풀만 줄 뿐이었어!”

 “잠깐?!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게 그거?!!”

 “그거라니?! 상상해봐! 눈앞에 고기반찬이 가득한데 풀만 먹어야 하는 심정을!”

 으음, 확실히 어떤 의미로는 끔찍하긴 하지만….

 “나도… 나도…… 고기가 먹고 싶었단 말이야!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소고기며, 짭짤한 비계와 살코기가 조화를 이루는 돼지고기, 담백한 닭고기 같은 거 말이야!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내가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풀만을 줬어!”

 “그거야 엘프라고 하면 살생을 싫어하고 육식을 기피하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애당초 자연 어쩌고 더럽게 으스대면서 살생을 안 하는 건 너네 엘프들이잖아.”

 “더럽게 으스대다니… 확실히 200년 전부터 최근까지는 그런 유행이 돌긴 했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녀.

 하지만 이백년 전부터 유행이라니, 엘프다운 스케일이라 해야 할까?

 “어째선지 그게 엘프라는 이미지로 굳혀졌지만… 진정한 자연이란 건 살아있는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섭취하면서 삶을 연장해간다! 이거야 말로 궁극의 자연이라고!”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엘프가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좀 새로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가축을 훔친 거야?”

 “그래!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그래. 그런데 훔쳐간 가축들의 숫자가 맞지 않는 이유는?”

 흠칫.

 엘프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 그건 그러니까….”

 시선을 회피하며 얼버무리던 그녀는 뻔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을 실토 했다.

 “애당초 인간들 때문이야! 고기를 구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결국 잡아먹었다는 얘긴데… 뭐어, 다 좋은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여기서 그런 말을 해도 돼?”

 “응?”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한 듯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엘프.

 나는 턱 짓으로 주변을 보라고 했다.

 엘프 주위로 몰려드는 가축들.

 “얘, 얘들아?”

 위화감을 느낀 엘프가 가축들을 불렀지만 멈추지 않는다.

 이윽고─

 “자, 잠깐! 애들아…? 후끼약!!”

 소, 돼지, 닭 가릴 것 없이 엘프에게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 끼야악!!”

 으음, 본인들을 앞에 두고 먹느니, 고기 맛이 어쩌니 했으니.

 나는 동물들에게 엘프가 린치를 당하는 꽤나 참신한 광경을 보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린치가 끝날 때까지.

 

 그 후ㅡ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엘프는 영주 성으로 호송된 것 같다.

 자칫하면 이종족간에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영주성에서 그 처분을 정할 예정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던칸 씨는 촌장직을 박탈당하고 영주 성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그간 벌여온 부정이 영주의 귀에 들어간 탓이라고 하던데, 영주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비밀이다.

 아무튼.

 잘됐어.

 
작가의 말
 

 눈이 많이 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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