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上) - 하루
작성일 : 16-10-25 12:43     조회 : 538     추천 : 0     분량 : 814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당신의 기억은 조작됐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럼 그게 뭔가요? 그들이 바꾼 게.”

 

 남자가 묻는다.

 

 “조작을 한 건 그들이지만, 시킨 건 당신 자신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뭡니까? 나의 기억 중 뭘 손본 겁니까?”

 

 그녀가 답을 준다. 낭랑한 발음으로.

 

 “조작된 건 당신의 ……”

 

 

 ***

 

 

 난 평범한 사람이다.

 

 바로 현대사회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 말이다.

 

 어쨌든 평범한 인간인 나는 현재 꽉꽉 막힌 내 인생처럼 차량들로 찬 도로 한복판 차 안에서, 이제는 어디서든 마음껏 필 수가 없는 담배를 실컷 피우고 있다.

 

 다차선임에도 다섯 개 도로가 교차하는 곳이라 출퇴근시간이면 막히는 곳이다. 평소라면 피할 길이지만, 정해진 퇴근 시간과 또 정해진 되돌아 가야할 곳이 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마흔이라는 삶의 어중간한 지점에 해당하는 나이와 한창 어린 자식들의 부모라는 위치에 의해서 말이다. 아직 어렸을 때는 나만 생각하고, 내가 비범하게 될 거란 기대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 속 가장인 나는 나뿐 아니라, 사랑이라 꾸며진 ‘의리’에 의해, 가족원을 위해 평범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평범한 나는 평일이면 매번 막히는 이 길에서 이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것도 없어지는 게 멀지 않았다.

 

 올라가는 담뱃값과 줄어드는 흡연 장소 그리고 애들 건강에 안 좋다며 간접흡연을 증오하는 아내의 잔소리.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의 담배가 짜증을 더 퍼주고 있으니 끊어버려야지. 지금 태우는 것도 진짜담배가 아닌 전자담배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금의 나만할 때는 어디서나 아무 때나 담배를 피웠지만, 세상은 한 세대만에 애연가에겐 혹독한 세상으로 천지개벽했다. 사실 나는 애연가가 아닌 일개 평범한 흡연가지만.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데, 세상은 따라갈 틈도 안 주고 휙휙 변해간다. 그렇기에 평범한 자는 유행에 밀리며 그저 늙어갈 뿐이다. 세상에 뒤쳐진 채.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삶도 평범하다. 하루도 평범하다. 아니, 반복된다는 표현이 더 걸맞겠지.

 

 평범한 나, 평범한 삶, 평범한 일상. 특출 날 거 없는 나, 보잘 것 없는 삶, 그리고 똑같이 되풀이하는 오늘의 일정.

 

 다람쥐 쳇바퀴 돌 듯, 24시간 내내 돌아오는 시계의 시침처럼 지겨워할 겨를도 없이 반복 재생하는 하루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기 전, 애들을 학교에 먼저 데려다주고, 차들이 뻔히 몰리는 길에 어쩔 수 없이 몇 십분을 뻔히 허비하며 회사로 간다.

 

 직장에서의 일이야 일반 중견 상사(商社)의 사무직으로, 어느새 십년 이상을 해온, 언제나 다 비슷비슷한 거라 어떤 경우건 관성적으로 대응을 한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꺾이고 순발력이 딸리니 남은 건 잘난 경험뿐이다.

 

 입사 땐 전혀 소중하지 않았던 일자리가 이제는 별 거 없는 내 인생의 유일한 버팀목이 됐다. 젊은 시절 생고생하면서 ‘언젠가는 그만 두련다.’ 맘속으로 수백 번 되뇌었던 곳에 지금은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간에 잡초처럼 무조건 버티고 있다.

 

 나이 마흔에 아직 과장이다. 그나마 과장인 게 다행일까? 나이처럼 애매한 직책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둘 다 눈치를 봐야 한다. 그래서 편히 있을 시간이 없다. 점심시간마저 편치가 않다. (식사를 혼자 하진 않으니까.)

 

 사실 이 나이가 되니 단신(單身)으로 있을 때가 안락(安樂)하다. 어릴 때는 홀로 있는 게 싫었고, 혼자 있는 게 왕따인 거 마냥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있을 시간이나 있어야지. 회사에선 상사(上司)나 부하직원이, 집에선 십년새에 무섭게 ‘변신’한 아내와 웬만하면 오냐오냐 해줘야 하는 자식들이 딱 버티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직장을 참아내고 ─ 아니, 그저 아무 의지 없이 습관처럼 그냥 갔다 오는 거겠지. ─ 그 직장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가정을 향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줄줄이 밀린 차들의 꽁무니를 그저 뒤쫓으며 되돌아갈 뿐이다.

 

 그나마 오늘은 운이 좋았다. 야근이 없었으니까. 내가 한창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야근이 아직도 당연시 된다는 게 애석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내 자식들은 그런 시대가 아니었으면 하지만, 나도 어릴 적에 내가 커서도 아버지처럼 똑같이 죽어라 일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오늘 운 좋게 야근이 없었다 뿐이지. 평소엔 수당도 없는 야근이 어이없게도 당연시된다.

 

 참고로 회사에서 지난달에 ‘야근 없는 요일’이란 행사를 했는데, 참 어이가 없는 짓거리였다. 추가 페이도 없고, 사전 예고도 없는 야근이 애초부터 잘못된 건데 야근이 없는 특별한 날이라니. 뒤집어 보면, 야근이 당연하다는 소리 아닌가? 야근 없는 날 빼고는 야근을 내내 하라는 뜻 아닌가? 야근의 의미조차 모른 윗대가리들이 뻘짓을 한 것이다.

 

 이거, 뭐. 야근 없는 날이라고 내가 별의별 생각을 다하네.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에겐 저녁이 없다. 오늘은 운이 좋아 나에게 저녁시간이 생겼지만, 그래봤자 가는 곳이 날 감싸주고 위로하는 게 아닌 고단하게 하는 집이니 그게 그건가? 직장이나 가정이나 고달픈 건 매한가지인 셈이군.

 

 가족이란 게 몸들은 서로 같은 집이란 공간에 있으나 각자의 마음은 닫혀 있고 쓸쓸한 집단이니. 내가 어릴 때 실속은 텅 비었던 허울뿐인 가족이 내가 가장이 돼서도 반복되는군.

 

 이 세상에 평범한 이는 나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남을 위해서만 일한지. 전혀 친하지도 않고 누군지도 모를 회사 주주들, 호랑이 같은 아내 (정확힌 아내의 등쌀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돈을 모으겠다고 열심히 버는데, 티끌은 쌓아봤자 티끌일 뿐이다. 수입은 늘지 않는데,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월급은 잘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매년마다 잘도 올라간다. 여느 가정처럼 맞벌이를 하는데도 돈 모으기가 쉽지가 않다.

 

 날 위해 쓰는 돈은 얼마 없는데, 경제권은 아내가 쥐고 있다. 그렇게 쥐꼬리 같은 용돈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담뱃값은 오르고 자빠졌으니 내 더러워서라도 담배를 끊지.

 

 이런 식으로 푸념 같은 상념들을 하던 새에 어느덧 아파트 지상주차장에 당도했다.

 

 전면주차를 해야 돼선지 시간이 걸린다. 요새 반상회에서 뭔 바람이 들었는지 전면주차를 하라고 난리 부르스다. 아파트 건물 가에 ‘전면주차’라고 팻말들을 촘촘히 박아 놓은 것도 모자라 간간이 벌금을 물리고 있다.

 

 전면주차라는 게 후면주차에 비해 차를 넣는 것도 빼는 것도 힘든데, 거기다 주차장 공간이 넓으면 모를까. 좁아터진데다 주차하는 차량도 많아서, 밤만 되면 선표시가 안 된 구역도 중립 주차된 차들로 줄줄이 막혀진다.

 

 지하주차장이 있으면 편할 텐데, 이 아파트는 그런 건 없고. 그렇다고 주차장 때문에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1, 2층 주민들만을 위해 이 무슨 지랄인지. 매연이건 헤드라이트건 그런 불편은 감수하라고 1, 2층에 입주한 거 아닌가?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 소위 소수의 횡포다.

 

 그런데 이렇게 불만이 있어도 나는 절대 입 밖에 내질 않는다. 내지도 않을 것이다. 나서면 나만 손해니까. 현실은 바뀌지 않고 괜히 나만 찍히니까.

 

 평범한 사람은 결코 나서지 않는다. 나섬으로써 주변으로부터 이목을 받는다는, 그런 ‘위험’이 생긴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런 걸 어릴 때부터 수없이 배워 왔으니까.

 

 왜 이럴까? 왜 내가 평범하다고 자조하며 별것도 없는 내 삶을 자꾸 되돌아볼까? 내 삶을 결코 아름답지 않는 미(美)명하에 끊임없이 되짚어보고 있다. 인생의 권태기라도 된 걸까? 결혼 생활은 진즉에 권태기지만.

 

 요사이 들어 더욱 그런 거 같다. 나이 때문인가? 딱 마흔이니까. 그래서 한 예능프로의 제목처럼 나를 돌아보는 것일까?

 

 불현듯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칠흑 같은 색상의, 후드 달린 추리닝을 입고 줄 달린 금색 시계를 한 손에 만지작대고 있는 남자.

 

 왜 그 남자를 떠올리지? 만난 적이 있나? TV에서 본 적이 있는 건가? 근데 오래된 기억은 아니다. 최근에 본 광경이다. 그치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봤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어째서? 내 뇌가 노화(老化)로 인해 부식(腐蝕)이라도 된 걸까?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린다. 이제야 집이다.

 

 하루하루 일정은 틀에 찍어낸 듯 똑같다. 달라지는 건 없다. 이렇게 나는 쉼 없이 매일을 반복하는데, 하나도 바뀌지를 않고 매번 고생하는데, 세상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휙 바뀌겠지. 그런 게 인생이지.

 

 현관문을 연다. 누군가 마중 나오리라는 기대 따윈 하진 않는다. 밝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결혼 이전의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어차피 가족이란 것도 일상의 반복에 의해 유지되고 형성되는 것 아닌가? 가족을 유지하는 건 애정이 아니다. 구성원들 각자의, 되풀이되는 하루에 의해 새겨지는 습성과 이로 인해 굳어지는 타성(惰性)때문이지.

 

 아무 소리가 없다. 가족들이 없나? 그럼 편하게 TV나 볼까나? 아니면 PC로 고스톱 게임이나 해볼까? 다른 때엔 아내 눈치, 자식들 눈치가 보여 못했는데.

 

 어? 이게 뭐지? 가족들이 같이 있다. 그것도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서. 근래에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누구 생일이거나 그런 게 아닌데. 왜?

 

 “어? 왜 다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가족원들을 살펴본다. 젊었을 적엔 예쁜 천사 같았지만 현재는 나를 잡아먹는 마녀가 된 아내. 아직은 그나마 귀엽고 예쁜 자식들. 곧 중학교에 들어가면 속을 썩일 테지만.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미리 조금씩 열이 받치게 하는 것도 같다. 어쨌든 아내에 대해 식은 애정을 대신해 주는 예비 중학생인 큰딸과 날 닮아 재수가 없지만 그래도 애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둘째 아들. 이 애들이야 말로 평범한 내가 이 험난하고 잔인한 삶에 맞서고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루(堡壘)다. 그리고 보물(寶物)이다.

 

 하여튼 사유(事由)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족들이 다 모인 적이 얼마만이지? 나는 야근, 아내도 야근, 애들은 학원 아니면 친구들. 이러면서 가족 네 명 전원이 이렇게 다 같이 저녁에 있을 일이 좀처럼 있지가 않았는데.

 

 근데 가족이 다 모였다는 것과는 다르게 가장인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고와 보이지 않는다.

 

 표정들이 음산하다. 특히 아내의 눈빛이 싸느랗기 그지없다. 한편 애들은 퉁명하고 풀이 죽은 얼굴이다. 아마 아내 때문에 지들 방에서 하고 싶은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 친목질을 못한 채 끌려 앉아 있기에 그럴 거다.

 

 그리고 바보같이 뒤늦게야 눈치를 챘는데, 가족만 있는 게 아니다. 긴 소파 끄트머리에 젊은 처자로 보이는 여자도 있다.

 

 ‘친척인가? 아니, 친척일 리가? 저렇게 선녀 같은 여자가 마귀 같은 와이프의 핏줄일리는 없어. 그럼 아는 여자? 아는 학부모? 에이, 딱 봐도 나이가 띠동갑쯤이겠는데. 저 여자가 같은 반 학부모라면 성년 이전에 애를 낳았다는 소리잖어.’

 

 눈앞에 아내가 없다면 치근덕대고 작업을 걸고 싶을 만큼의, 자식들이 없다면 사귀고 싶을 정도의 미모다.

 

 ‘근데 저 정도 미인은 콧대가 하도 높아서, 내가 저 나이일 때도 사귀기는 하늘의 별따기 아님 그림의 떡이었지.’

 

 그냥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주저하는 것, 나서지 않는 것도 평범한 것이지. 언제든 평범해야만 편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덜 힘들 거 같으니깐. 그래봤자 나중에 다 고생하는 건 피차일반이지만. 그래도 평범하지 않으면 더 피똥 싸기 십상인 게 이 세상이니까.

 

 나 참, 왜 내 머릿속은 줄창 평범 소리야! 우선 이 난해한 상황부터 정리해야지.

 

 “그쪽은 누구시죠?”

 

 답이 없다. 저 정체 모를 여자도, 가족도. 누구 하나 당장 원하는 답을 내주지 않는다.

 

 “왔어요.”

 

 그저 아내의 식상한 멘트만 건네질 뿐. 평소에 내가 이 집에 와서 어쩌다 마주치게 될 때, 얼굴도 안 보고 한 입으로 던지고 한 귀로 흘리게 하는 뻔한 한마디.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말은 똑같은데, 낯은 불안함과 경계심이 한껏 드러난다.

 

 “외식하게 나가자.”

 

 애들한테 하는 말일 텐데 나를 뚫어져라 보고서 얘길 한다.

 

 아직은 어린 아들은 좋아라 하고, 상대적으로 나이든 딸은 툴툴댄다.

 

 “당신은 아니에요.”

 

 내가 뭐라 묻기도 전에 단칼에 잘라버린다. 평소 나에겐 자비가 없는 그녀답지만, 그 무(無)자비함이 보통은 무(無)관심에 기반한 거라면,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대하는 눈빛, 표정, 소리를 고려하면 다른 무언가가 있다. 이 일상을 깬, 이례적인 상황을 만든 ‘어떤 것’이.

 

 ‘이 여편네가 불만이 잔뜩 든 모양인데. 또 뭐가 문제야?’

 

 여자들은 별것도 아닌 걸로도 사정을 모르는 남정네들에게 짜증을 부려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주위에선 그 별것도 아닌 게 그네(그녀)들에겐 민감한 거라고 일러 줬지만, 좌우지간 이유를 알아야지. 지금이 딱 그 꼴이다. 단, 수상한 여인이 있다는 건 별개지만.

 

 애들은 아빠는 왜 같이 안 가냐 물어봐야 으레 마땅하나, 애 엄마의 분위기에 압도된 건지 어미사자를 따르는 새끼 마냥 졸졸 뒤쫓아 간다.

 

 ‘근데 저 여자는 도대체 뭐지? 왜 저 여잔 가만히 있는 거지?’

 

 “당신은 이분과 이야기를 나눠야 해요.”

 

 나를 지나쳐 현관으로 향하는 아내의 말투가 숙엄하면서 단호하다.

 

 마눌님 왈 내가 얘길 나눠야 한다는 화사한 저 여인은 정작 아직까지도 말이 없다. 대신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듯하다. 저 어여쁜 처자가 십년 더 늙은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까라는 흐뭇한 망상을 잠깐 한다. 어쩌면 진짜 미소를 보낸 게 아니라, 미모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일 지도.

 

 드디어 아내가 나간다. 현관을 나서며 뒤돌아 날 보는 눈초리가 형언하기 참 그렇다. 당장 봐선 매섭지만 떨리는 눈망울에선 불안감 같은 게 서려 있다. 냉담하지만 그 안엔 깊은 수심(愁心)이 담겨 있다. 십 년 이상을 함께 살면서 저러는 건 처음이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 건지.

 

 문이 닫히고 내 집에서 나 혼자와 생판 모르는 젊은 여자 둘만이 있다.

 

 나를 제외하고 홀로 있게 된 여자를 이번엔 제대로 살펴보는데 정말로 매력적인 여자다. 비뚤어짐 하나 없는 원(圓)과도 같은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얼굴이다. 마치 내가 그녀의 얼굴을 예술품마냥 감상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제 소개가 늦었죠.”

 

 여자가 일어서서 싱긋대며 입을 열었다. 치아도 하얗고 가지런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이라영이라고 해요. 신문기자였고, 지금은 진실을 밝히러 이곳에 왔어요. 김성훈씨, 맞으시죠?”

 

 ‘기자? 진실을 밝히러? 나처럼 평범한 중년남자에게 기자가 뭘 알아볼 게 있다고.’

 

 침묵이 흐른다. 이 여자는 여유를 부리는 건지, 아니면 신중을 기하는 건지. 왜 말을 않고서 뭘 기다리고 있어?

 

 “그럼……”

 

 그네도 외간 남자와 단둘이 있긴 부담되는 건가? 나름 쑥스러워서. 시원스런 얼굴과는 다르게.

 

 “김철수라는 남자 기억하세요?”

 

 그래도 여자의 발음은 또박또박하다.

 

 근데 김철수라고?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흔해빠진 이름이군.

 

 “글쎄요. 딱히.”

 

 여자가 또 뜸을 들인다.

 

 내 눈을 똑바로 보네. 뭘 기대하는 거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설명해주지 않고.

 

 “추리닝 입은 남자는요? 온통 검은색에 후드가 달린 추리닝이요.”

 

 추리닝 입은 남자? 가만, 혹시……

 

 “회중시계를 가지고 다니죠. 황금색에 줄이 있는 시계.”

 

 맞아! 세상에 이럴 수가!

 

 “네.”

 

 힘없이 답한다. 순순히 인정한다. 바로 내 자신이.

 

 “다행히 떠올리시는군요? 당신은 그 남자와 김철수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들을 부른 이유는 바로……”

 

 “기억이죠.”

 

 그렇다. 언젠간 깨질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될 수 있을 거란 설명은 들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 줄이야. 너무도 태연스럽게. 근데 저 여자는 대체 뭐지? 그들과 아는 사이인가?

 

 “그럼 그 기억이 뭔지도 아시겠어요?”

 

 바로 그게 문제다. 아직은. 내가 나의 기억을 조정하고 싶어서 일명 기억을 조작한다는 그들을 부른 게 맞다. 그리고 그들을 만난 것도 맞다. 그것까진 기억이 난다. 이 여자의 지적들로 인해서.

 

 그런데, 그들이 손댄 기억이 어떤 내용이었는지가 아무리 되짚어 봐도 나타나지가 않는다. 도무지.

 

 그렇다. 그들의 시술은 여전히 유효하다. 금만 간 것일 뿐 깨지진 않았다.

 

 “네. 그들에게 의뢰를 하고 불렀던 건 기억이 납니다. 그치만 그 기억이 도대체 무엇이었는가는……”

 

 이마를 움켜쥐며 신음소리를 뱉는다.

 

 “그래요? 어쨌든 김성훈씨 당신의 기억은 조작됐어요.”

 

 “그렇담 그게 뭔가요? 그들이 바꾼 게.”

 

 “조작을 한 건 그들이지만, 시킨 건 당신 자신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뭡니까? 나의 기억 중 뭘 손본 겁니까?”

 

 그녀가 이제야 실마리를 준다. 낭랑한 발음으로, 또렷이.

 

 “조작된 건 당신의 ‘삶’이에요.”

 

 “네? 삶이라고요?”

 

 “예. 당신의 삶. 그 삶에 대한 기억. 성훈씨가 기억하는 삶 중에 조작된 게 있어요.”

 

 “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별 거 없는 삶을 살아왔을 뿐인데.”

 

 그녀가 차근히 반박한다.

 

 “야뇨. 성훈 씨는 지금 본인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결단코. 당신은 평범하지 않아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시공 時恐 - 시간의 공포 프롤로그 2 2016 / 12 / 28 1 0 1872   
23 시공 時恐 - 시간의 공포 프롤로그 1 2016 / 12 / 28 1 0 771   
22 그 이름 (後) - 永 2016 / 10 / 29 382 0 6792   
21 그 이름 (前) - 和 2016 / 10 / 28 505 0 6477   
20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下) - 사람 2016 / 10 / 27 574 0 7176   
19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中) - 삶 2016 / 10 / 26 687 0 9385   
18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上) - 하루 2016 / 10 / 25 539 0 8148   
17 누군가의 거짓말 七 박은수 2016 / 10 / 24 500 0 9808   
16 누군가의 거짓말 六 서순하 2016 / 10 / 22 516 0 6754   
15 누군가의 거짓말 五 심대주 2016 / 10 / 20 468 0 8377   
14 누군가의 거짓말 四 정명진 2016 / 10 / 18 623 0 8212   
13 누군가의 거짓말 三 심경미 2016 / 10 / 16 557 0 8954   
12 누군가의 거짓말 二 심대빈 2016 / 10 / 14 564 0 7538   
11 누군가의 거짓말 一 임재용 2016 / 10 / 12 416 0 8363   
10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下) 2016 / 10 / 10 515 0 8803   
9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中) 2016 / 10 / 7 532 0 7580   
8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上) 2016 / 10 / 4 526 0 8392   
7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後) 2016 / 10 / 1 463 0 9509   
6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前) 2016 / 9 / 28 399 0 8676   
5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後) 2016 / 9 / 25 381 0 6916   
4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前) 2016 / 9 / 22 432 0 8498   
3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下) - 전말 2016 / 9 / 19 432 0 11782   
2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中) - 추리 2016 / 9 / 16 425 0 6133   
1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上) - 단서 2016 / 9 / 13 997 0 992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