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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누군가의 거짓말 五 심대주
작성일 : 16-10-20 20:26     조회 : 467     추천 : 0     분량 : 8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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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거기 옆집 여자. 걔가 아직 돌 안 지난 갓난애를 키우잖아. 거기 대빈 엄마 보러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지. 귀엽고 앙증맞은 애를 안고 있길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는데, 이후에 육아 관련해서 이것저것 얘길하다 서로 알게 됐어. 참고로 내가 이래봬도 자식을 네 명이나 길렀거든. 거기다 손주들까지. 육아에 관해선 내가 나름 프로페셔널하지. 어쨌든 거기 엄마가 여기 와서 안 쓰는 육아용품들을 챙겨간 적이 있어. 최근 손주들한테 썼던 거.”

 

 소파가 없고 TV맞은편 벽엔 큰 등받이 베개만이 있는 거실에서 화와 라영이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있고, 그들 앞 작은 상 위에 감귤과 사과가 놓여 있다.

 

 앞 말의 주인공인 정씨 할머니가 그들과 마주보고 앉아 과도로 사과를 고이 깎고 있다.

 

 살이 포동포동 찌고 얼굴이 넙치마냥 넙적한 그녀. 살찐 몸매와 매치되는 얼굴로, 인상이 강렬하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면서 호탕하다. 머리카락은 나이에 걸맞지 않는 순흑이다.

 

 그러나 검은 머리와 달리 얼굴은 여기저기 잔줄을 숨길 수 없다. 게다가 머리칼도 잘 보면 염색한지가 좀 됐는지 뿌리 근처로 흰색 아니면 회색인 부분이 보인다. 염색한 지 며칠 아니 몇 주 지났는지 모른다. 적어도 한 달 이내일 것이라고 라영이 속으로 짐작한다.

 

 라영이 할머니의 두발(頭髮)에서 시선을 떼고 거실을 스윽 둘러보며 생각한다.

 

 ‘서순하씨 집하고 같은 구조는 아닐까? 동은 다르지만. 아니. 첫 숫자가 다르고 구역이 다르니 평수와 구조가 다를 가능성이 더 높겠네.’

 

 이번에도 이곳에 들어와서 라영이 질문을 주도하고 있다. 화는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묵묵하게 말이 없다. 경비하고 있을 때부터 여태까지도.

 

 반면 정할머니는, 눈앞에 직접 보면서 느낀 거지만, 이것저것 말이 많은 편이고 정겨우며 나름 살가운 듯하나 한편으론 오지랖이 넓은 거 같다는 것이다.

 

 “근데 서순하씨와는 어떻게 친해지신 건가요?”

 

 “대빈 엄마하곤 아파트 공원에서 몇 번 자주 보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됐지. 나이도 비슷하고. 또 나이 들면 할 게 별로 없잖아. 애들도 출가하고. 그렇게 알고 지낸지도 십년 가까이 됐지.”

 

 “바깥분 돌아가시고 나서 서씨 할머니는 어땠나요?”

 

 “내색은 잘 안 하긴 했는데, 그래도 쓸쓸해 하는 듯 했지. 해서 내가 자주 찾아가서 챙겨줬어. 심심할까봐. 주변에 여기저기 데리고 갔지. 영화관에도 가고, 미용실 좋은데도 같이 가서 염색도 했지. 새카맣게. 젊어 보이고 기분 전환하라고.”

 

 “그때 같이 염색을 하신 거죠?”

 

 그 말에 정씨 할머니가 자기 머리카락을 한 가닥 집어 올려다본다.

 

 “응. 딱 그 전날이었어. 아니 정확히는 그제였지.”

 

 정할머니가 침울하게 힘없이 답한다. 라영이 눈치를 살피며 화제 전환 겸으로 곧장 새로운 질문을 한다.

 

 “저기, 자식들은 아세요? 서씨 할머니 자제분들이요?”

 

 “자식들이야 그 여편네 얘기로만 들어왔지. 사실 걔들 제대로 본 건 장례식 때였어. 두달새 두 번이나 상이 있었으니 요새에 많이 만난 셈이지.”

 

 “서순하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하고 트러블은 없었고요?”

 

 “내가 아는 선에선 없었어. 근데 또 모르지. 아낙네가 성격이 무르니깐. 자식들을 좋게만 얘기하니까. 근데 실은 속앓이를 했을지 어찌 알겠어? 대빈이 엄마는 속이 물렀어, 너무. 바깥양반은 대쪽이었는데 말이지. 요새 효도법이다 뭐다 있잖아? 자식 놈들이 말 안 들으면 재산 안 주는 법 말이야. 그걸로 애들을 확 휘어잡고 했어야지. 뭐, 지금은 소용없는 얘기지.”

 

 라영이 줄곧 열심히 할머니를 심문하는데 반해, 화는 듣는 둥 마는 둥 느긋하게 그것도 아주 천천히 조심하듯이 귤껍질을 까고만 있다. 라영이 불만의 눈으로 흘겨보나, 애초 그의 시야엔 그녀의 눈은 있지 않다. 상념에 들어가 있는 그의 초점은 귤 아니면 귤껍질인지에 멍하니 있는 듯하다.

 

 “자식들 얘길 들어보니까 집 유품 관리를 힘들어하셨던 거 같던데.”

 

 “응. 물품들을 이웃들에게 이것저것 주던데. 나이 든 아낙네가 그 많은 것들을 챙기기가 쉽지는 않지. 블루레이라고 요상한 디스크도 우리한테 주던데. 저기 쌓여 있지.”

 

 할머니가 지목한 거실장 위로 블루레이 디스크 케이스들이 오십여 개쯤 쌓여 있는 게 보인다.

 

 <매드맥스(1980)>라는 옛날 액션영화가 보이고, 또 <매드맥스(2015)>라는 최신 액션영화도 보인다. 이외에 <람보 시리즈>, <리쎌웨폰 시리즈>, <다이하드 시리즈> 등 남성적인 액션 영화들이 대부분. 원래 소장했던 할아버지의 생전 영화 취향을 손쉽게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거기 바깥양반이 영화광이였거든. 아낙네는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자기 딴엔 볼 일도 없고 그냥 놔두기도 아까우니까 우리한테 그냥 주더라고.”

 

 “혹시 사고 직전 날에 서씨 할머니를 만나보셨나요?”

 

 “응. 때마침 그날 점심에 전복죽을 해서 갖다 줬어. 냄비채로. 그때 대빈이 엄마 얼굴을 보니까 광댄가 관자놀이엔가 밴드가 큰 거로 붙여져 있었지. 물어보니까 아침에 혼자 요리하다 찬장 문 모서리에 부딪혀서 상처가 좀 났다고 했어. 어쨌든 고맙다면서 애들 오면 주겠다고 챙겼지. 아, 죽이라 하니까 오늘 동짓날이라 동지죽 좀 했는데 좀 먹을래요?”

 

 “아뇨. 괜찮아요.”

 

 라영이 살짝 미소를 머금고 손바닥을 절레절레하며 상큼하게 거절한다.

 

 그러고는 옆에 화를 다시 보면, 어느덧 다 깐 귤을 통째로 한입에 삼킨다. 그가 그녀를 말끄러미 보면서 귤을 우물우물 씹어 먹는다.

 

 

 ***

 

 

 어둑해진 하늘 밑 아파트 옥상. 화와 라영이 난간 앞에서 고층의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각자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서성이고 있다. 라영은 긴 머릿결이 곱게 날리는데 비해서, 화는 가뜩이나 수염도 있는데 머리까지 흩날리는 게 어수선해 보인다. 그럼에도 힘 있는 눈매와 매끈한 얼굴선은 어딜 가지 않는다.

 

 화가 곁에 라영을 두고서 호기롭게 담배를 피우면서, 마치 낙원을 만끽하는 듯한 얼굴을 취한다.

 

 라영은 연기를 피하려는 건지 아니면 같이 붙어 서 있는 게 불편(?)해선지 두 걸음 정도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다.

 

 “아파트에서도 함부로 담배를 못 태운다니. 이 나라가 흡연자에겐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어. 헬(Hell)흡연의 나라라고.”

 

 “그렇게 푸념하지만 말고, 이참에 이왕 담배를 끊는 게 좋지 않겠어요.”

 

 목을 조금만 내밀면, 난간 밖 아래로 아까 경비원과 얘길 나눴던 지점이 보인다. 바로 사고 현장, 추락 지점이리라. 어쩌면 그들이 서 있는 위치가 서순하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위치일지도 모른다. 고층아파트 옥상답게 느껴지는 높이가 아찔하다.

 

 “여기서 그녀가 떨어졌군요.”

 

 라영이 눈과 코 부위 정도까지만 난간 너머로 내민 채 말한다. 화가 답이 없다. 담배만 물고 있다

 

 “떨어진 게 맞나요?”

 

 라영이 재차 묻는다.

 

 화가 아무 답 없이 거의 다 탄 꽁초를 허공으로 튕기는데 아득히 아래로 떨어진다. 순식간에 점처럼 사라진다. 바닥에 부딪혔는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화의 눈이 서글프다. 라영이 원하던 그 답변은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물음을 던진다.

 

 “근데 누군지는 알겠어요? 고발자가.”

 

 “아니.”

 

 화가 담담히 답한다.

 

 “혹시 우리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 중에 있진 않을까요?”

 

 “그것도 모르겠는데.”

 

 요번에도 태연히 답한다.

 

 “그럼 아는 게 뭐죠?”

 

 핀잔을 주는 라영.

 

 “아까 질문한 거 빼고 전부. 고발자를 뺀 모든 진상.”

 

 “정말요? 주민들하곤 별로 말도 하지 않던데.”

 

 “모순이 이미 나왔었거든. 그래서 이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지. 그리고 그 때 하는 얘기들은 다 듣고 있었어. 단, 내가 알아챈 진실과 맞춰보고 있었을 뿐이지. 이 뇌로.”

 

 손가락 끝으로 자기 이마를 툭툭 친다.

 

 “그게 뭔데요?”

 

 “아직은 때가 안 됐어요, 왓슨 양. 셜록은 언제나 맨 나중에 밝히잖아.”

 

 장난스레 연극 톤으로 답변하는 화. 돌아서서 난간에 양 팔꿈치를 걸쳐 등을 기대고는 정상적인 톤으로 바꿔 얘길 잇는다.

 

 “거기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아. 고발자는 누군지는 아직이고. 또 마지막 퍼즐 단추가 남았잖아. 마지막 증인. 범도 제 소리하면 온다더니.”

 

 턱을 들어 자기 앞쪽 옥상 한복판을 가리킨다. 이에 라영이 돌아보면 어느 틈에 왔는지 30대, 정확힌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멀찍이 떨어져 다부지게 선 채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

 

 딱 봐도 얼굴형이 대빈과 흡사하다. 대신 열 살 정도는 젊어 보이긴 하지만. 그 덕에 그가 대빈의 동생이자 삼남매 중 막내인 대주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웃음기가 없는 무미건조한 표정이다. 보는 상대방마저 웃음이 싹 가시게 하는 사뭇 진지하면서 쓸쓸한 낯빛을 하고 있다.

 

 그새 화가 담배를 한대 더 꺼내 손으로 바람을 막고는 불을 붙인다. 그 다음 우두커니 정지해 서있는 대주와 서로 뚫어지게 마주보며 연기를 한 모금 뱉어낸다.

 

 

 ***

 

 

 띠리리리리, 스르르륵, 철컥. 아직은 깜깜한 집 안. 누군가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딸깍. 불이 켜졌다. 현관문 바로 옆 전등 스위치를 대주가 눌러서 켰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는 화와 라영 그리고 대주. 대주가 이번에도 앞장서 거실 스위치를 켜니 백열등이 켜지면서 정씨 할머니 집보다는 더 큰 아파트 호실의 거실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휑한 느낌이다. 한동안 누구도 살지 않은 듯 가구들이나 집 안 물품이나 너무 정갈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라영이 어깨를 움츠리면서 으쓱한다. 집 안 분위기가 싸한 것도 있지만 초겨울에 한참 난방을 안 해 내부가 진짜로 싸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의식한 대주가 곧장 다용도실로 간다. 이어 머지않아 우우웅 보일러 켜지는 소리가 전해 온다.

 

 “둘러봐도 될까요?”

 

 라영이 묻는다.

 

 “네.”

 

 대주의 간결하고 무미한 음절 하나가 저쪽에서 들려오기만 한다.

 

 말 그대로 둘러보면 집 안은 대체로 간결하고 조촐하다. 서재로 보이는 곳에 비어있는 책장과 휑한 책상만이 도드라지고, 아무도 안 쓰는 게 확실한 침실에는 침대 위에 시트만이 홀로 덮여 있다. 통째로 빈 방도 두 개가 있다.

 

 전반적으로 방들이 지나치게 단정하고 깔끔한 게 사람이 살지 않는 게 오히려 명백히 인지된다. 사람이 사는 게 아닌 귀신이 사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적이 없다는 게 확연히 전해진다.

 

 그렇게 집을 두리번거리며 다니다 베란다로 가니 화단에 눈이 간다.

 

 화단의 꽃들이 눈부시게 화사하다. 베란다와 창 사이 1/3 정도의 공간이 흙으로 채워진 화단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한가득이다. 동백꽃, 수선화, 베고니아, 시클라멘 등등. 서순하가 생전에 꽃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화단 앞 베란다 바닥 위 화분들까지 꽃 천지다.

 

 화와 라영이 화(花)들을 살피면서도 감상하는 가운데, 베란다 출입문에 대주가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여기 집은 사고 직후 그대로인가요?”

 

 이번엔 화가 묻는다.

 

 “네.”

 

 이번에도 한 음절 답이다.

 

 “조금이라도 손댄 건 없고요? 어떤 물건이라도.”

 

 “네.”

 

 “분명한 겁니까?”

 

 화가 힘을 주어 재차 추궁한다.

 

 “네. 저 혼자 멋대로 함부로 정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형, 누나와 의논을 해야 되는데 하필이면 둘 다 한동안 바빠서 여건이 안 됐습니다. 저도 연말이라 술집 일이 많았고, 게다가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아마도 그 개인 사정이란 게 여자 문제였죠?”

 

 “네. 그녀와는 이제 완전히 헤어졌죠.”

 

 화가 여자 문제를 캐물었던 게 마뜩지 않았는지 대주가 무심결에 따가운 시선을 드러낸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화가 앞장서 베란다에서 나서고 라영이 따른다.

 

 빙 돌아서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전망이 좋군요.”

 

 화가 추운데 굳이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진즉에 깜깜해진 밖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역시 밑이 경비와 얘길 나누었던 그 위치다. 14층이라선지 아찔한 거리이다.

 

 화가 창을 닫고는 아예 거기 기대선다. 라영은 벌써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대주는 거실 중앙에 건들건들하게 서 있다. 두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

 

 “앉으세요.”

 

 라영이 대주에게 제안한다.

 

 “전 일어나 있는 게 편해요.”

 

 무덤덤하게 응답한다.

 

 “이곳에서 모였겠군요. 여기에 해답이 있겠군요.”

 

 화가 시작했다. 라영이 부랴부랴 녹음기를 꺼내 작동시킨다.

 

 “오늘이 십이(12)월 이십이(22)일 동짓날이고 십이(12)월 일(1)일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죠. 그리고 바로 전날 십일(11)월 삼십(30)일 저녁에 여기서 당신을 포함한 세 자녀분이 어머니를 만난 거죠?”

 

 화가 도전하듯이 힘주어 묻는다.

 

 “네.”

 

 이에 대주가 이번에도 한 단어로만 툭 답한다.

 

 두 남자 간에 팽팽한 기류가 흐른다. 혼자만 앉아있는 라영이 걱정스런 얼굴로 마주하고 서 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본다.

 

 “당시 유산 문제로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셨다더군요.”

 

 “제가 눈치는 있습니다. 형과 누나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글고 제 딴엔 큰 욕심도 없었고요.”

 

 대주가 방어를 하듯 차분히 답한다. 대빈과 경미에게서 들었던 문제아라는 사전 이미지와는 다른 찬찬한 태도에 라영은 속으로 뜻밖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에 관해선 어머니와 같이 살란 형님의 제안을 거절했다던데요?”

 

 “당시엔 같이 사는 여자가 있었으니까요. 그 여잘 무시하고 멋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거든요. 지금은 갈라섰지만.”

 

 대주가 답변을 하면서도 심란한지 한숨을 아주 기일~게 내쉰다. 그렇지만 화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형님, 누님하고 사이가 안 좋더군요.”

 

 “뭐 제 탓이 크죠.”

 

 고분고분한 대답에 라영이 또 놀란다.

 

 ‘오늘 낮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그 사고뭉치가 정말 맞나? 나이가 들어 철이 들은 것일까? 연거푸 당한 부모님 상으로 정신을 차린 것 일까? 하긴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음울한 듯한 인상이었지.’

 

 라영이 어떤 생각을 사건말건 화는 심문을 이어간다. 때맞춰 라영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질문을 건넨다. 단 한마디로.

 

 “후회하나요?”

 

 “후회?”

 

 대주가 헛웃음을 뱉는다. 울적한 표정으로.

 

 “당연하죠. 전부 후회합니다. 이렇게 두 분 다 돌아가시니 이제서야 진짜 어른이 됐달까요? 내가 살아온 삶이 덧없다고 여겨지더군요. 내가 자라면서 해온 게. 시도 때도 없이 반항해 온 거, 가족들 속 썩인 것이든. 얼마 전까지도 그래온 게 다 헛되고 부끄러운 짓이더군요.”

 

 목소리에서 적적함이 역력하다.

 

 “언제나 나 자신만 생각했죠. 자만에 빠져서. 내가 잘났다. 나 혼자 잘날 것이다. 더 잘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잘하면 된다. 나중에 챙겨드리면 된다. ‘나중에’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은 벌써 이렇게 지나갔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됐어요.”

 

 말을 마치고 한번 훌쩍이는 대주. 떨어져 있는 라영에게도 보일만큼 대주의 눈가에 물기가 감돌고 있다.

 

 “좋습니다. 넋두리는 이만 됐고 사건 해결을 위한 질문들을 하죠.”

 

 화가 얄짤없이 신문(訊問) 태세로 되돌린다.

 

 “그날 저녁 형님이 다른 남매들이 오기 전에 분리수거를 했다는군요?”

 

 “맞을 겁니다. 당시에 필요 없는 유품들 놔두는 방 안에 남아 있는 게 없었으니까.”

 

 “난 키우는 법은 아나요? 난초 말입니다.”

 

 화가 질문을 몰아붙이듯 정신없이 이어간다.

 

 “모릅니다. 가족 중 생전 아버지와 형 말고는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형이 여기 들릴 때마다 관리해왔다고 알아요.”

 

 “어머니가 난 관리 때문에 애를 많이 쓰셨다는데.”

 

 “그러셨죠. 형이 매일 여기 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대주가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식사는 그 때 이 집에서 했습니까?”

 

 “다들 식사를 하고 왔어요.”

 

 “그럼 음식은 전혀 안 되어 있었고요?”

 

 “아니요. 죽이 있었죠. 전복죽이요.”

 

 “죽이요?”

 

 화가 관심이 동한건지 눈살을 찡그린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 게 아니더군요.”

 

 “그건 어떻게 알죠?”

 

 “직접 맛을 봤으니까요. 제가 식사는 하고 왔어도 출출해서 조금 먹었거든요. 처음엔 어머니가 하신 건 줄로만 알았는데 입에 대보니 어머니 맛이 아니더군요.”

 

 “그때 오고가고하면서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가령 주차장에서 뭔가 특이한 걸 본 건 없었고요?”

 

 “그러고 보니 떠날 때 특이한 차를 한 대 봤습니다. 컨버터블칸데 아파트로 들어가는 문 옆에 있더군요. 장애인 구역에 말이죠.”

 

 “차가 외양이 어땠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기억나는 대로.”

 

 대주가 순순히도 화의 요구대로 묘사한다.

 

 “색이 검정. 아니, 지붕이 검정이었고 다른 부분들은 죄다 붉은색이었죠.”

 

 “차 아래는 어떻던가요?”

 

 “차 아래요? 아하, 그게 너무 좁더군요. 차하고 바닥 사이가. 그렇게 밑이 낮은 차는 처음이라 더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가요?”

 

 화가 알았다는 듯한 의미로 턱을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날 가장 늦게 떠난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화가 창가에서 한 발짝 거실 안쪽으로 움직인다. 대주를 향해. 그와의 거리는 여전히 떨어져 있지만.

 

 “어머니 얼굴은 어떻던가요? 이전과 크게 달랐던 게 있었나요?”

 

 “아뇨.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군요.”

 

 대주가 덤덤히 말한다. 화가 무슨 연유(緣由)인지 대주를 반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씩 들어올린다. 화가 더 이상 질문을 않자 두 남자 사이와 라영을 둘러싸고 편찮은 침묵이 흐른다.

 

 “이제 질문은 끝난 겁니까?”

 

 대주가 쏘듯이 역으로 묻는다.

 

 “예. 더 할 필요가 없군요.”

 

 화가 예사로이 받아넘긴다. 그리고는 녹음기를 손에 든 채 앉아 있는 라영을 지그시 바라본다.

 

 “아직 식사를 안 해서 그러는데 저기 여자분하고 나가서 저녁 좀 먹고 오도록 하죠.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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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누군가의 거짓말 四 정명진 2016 / 10 / 18 622 0 8212   
13 누군가의 거짓말 三 심경미 2016 / 10 / 16 556 0 8954   
12 누군가의 거짓말 二 심대빈 2016 / 10 / 14 563 0 7538   
11 누군가의 거짓말 一 임재용 2016 / 10 / 12 415 0 8363   
10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下) 2016 / 10 / 10 514 0 8803   
9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中) 2016 / 10 / 7 531 0 7580   
8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上) 2016 / 10 / 4 525 0 8392   
7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後) 2016 / 10 / 1 463 0 9509   
6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前) 2016 / 9 / 28 398 0 8676   
5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後) 2016 / 9 / 25 380 0 6916   
4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前) 2016 / 9 / 22 432 0 8498   
3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下) - 전말 2016 / 9 / 19 432 0 11782   
2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中) - 추리 2016 / 9 / 16 424 0 6133   
1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上) - 단서 2016 / 9 / 13 995 0 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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