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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여배우 월화의 생애
작가 : 한계령
작품등록일 : 2016.9.18

조선 최초 스크린의 여배우인 이월화의 일생 입니다.
척박한 조선 연극계와 영화계을 거치며 질곡의 삶을 산 그녀의 비극적인 생을 조감 합니다.

 
제4장 여배우의 삶 (24)구원
작성일 : 16-10-16 15:17     조회 : 637     추천 : 0     분량 : 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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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여배우의 삶 (24) 구원

 

 오늘도 종화는 노모의 닦달에 가까운 잔소리를 들으며 집은 나섰다. 그의 집은 대대로 양반가의 가문으로 조부 안상홍은 종 2품의 벼슬을 지냈고 부친 역시 통화랑(通化郞)이라는 벼슬길을 밟았다. 그런 서슬 퍼런 가문에 양광대가 태어나다니.. 이제 청상과부가 된 노모 는 오늘도 외출하려는 아들에게 호소에 가까운 통사정을 한다.

 

 “이놈아! 네놈이 미쳐서 활동사진 광대가 되던 극장 귀신이 되든 난 이제 상관 안한다. 그래도 안 씨 가문의 장손으로 후손을 이을 의무는 다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발 부탁이니 언챙이든 배냇병신이든 여자만 데려와라. 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혼사를 주선 할테니까.. 아! 광대 판의 사내들은 연애질도 잘 한다는데 네놈은 어찌된 게 그 주변머리가 그 모양이냐?”

 

 정말 그렇다. 어디로 보나 인물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요. 성격이 별난 것도 아니다. 영화배우를 할 만큼 잘생긴 얼굴에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그런데도 막상 종화한테는 그 흔한 애인 하나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종화한테 문제가 있다. 왠지 종화는 여자가 별로이다. 그저 여자가 귀찮고 아직은 여자를 사귈 때가 아니라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종화는 집을 나와 바쁘게 인사동에 있는 승동교회로 향했다. 며칠 전 들은 소문으로는 월화가 상하이에서 돌아온 후, 아무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교회당에 나가고 있다는 소식만이 들려왔다.

 

 월화가 달랑 유골상자 하나를 품에 안고 서울로 돌아오자 제일로 놀란 건 조 씨이다. 피골이 상접하다 못해 해골에 가까운 얼굴로 그것도 거지꼴의 딸을 보고는 그만 기절초풍을 하고 만다.

 

 그동안 조 씨는 중병을 앓아 누어있는 상태 였다. 병명은 담석증 이었는데 담낭이 돌처럼 굳어지는 병이었다. 조 씨는 진통을 막는 약값을 대기 위해 안방을 세주고 문간방으로 쫓겨나 있었다. 조 씨는 월화를 보자마자 통증이 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입에 거품을 품고 욕을 해대기 시작 했다.

 

 “이런 불효 막심 한 년 같으니라고! 늙은 어미가 고이 모아둔 패물이랑 보석에 현금까지 모두 훔쳐 내 개벽다구 같은 사내를 따라 상해로 도망을 쳐! 그래 상해에 가서 얼마나 호강을 하고 왔기에 얼굴이 반쪽이 되서 돌아 왔누? 그 남루한 옷차림은 또 뭐고?”

 

 조 씨는 신기하게도 월화가 일본이 아니라 상하이에 가 있다 온 것 을 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불편한 몸으로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밥을 지어 월화를 먹인다. 월화는 그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병든 조 씨 옆에 누어 유골상자를 껴안고 사흘을 내쳐 잤다. 사흘 후 깨어난 월화를 조 씨가 설득해 우선 그 유골상자부터 치우기로 했다.

 

 “언제까지 그 잿더미를 끼고 있을 참이냐? 산에 뿌리든 강에 뿌리든 없애야 하는 게 아니냐? 나하고 진관사의 수암 스님을 찾아 가보록 하자.”

 

 조 씨는 자신이 다니는 절에 유골을 안장하자고 했다. 다음날, 월화와 함께 엉굼 엉금 아픈 몸을 이끌고 극락전에 올라 불쌍한 혼백의 극락왕생을 빌고 빌었다.

 

 “살아생전 사고무친인 불쌍한 인생입니다. 내 딸을 동기간처럼.. 정인처럼 정주고 맘 주고 살다 낮선 땅 타국에서 억울한 죽음으로 노중객사 하였으니 부디 부처님의 은공으로 극락왕생 하옵기를 빌고 비옵나이다.”

 

 어떻게 그렇게 기성에 대해서 잘 아는지... 그야말로 눈치 하나는 바싹한 조 씨이다. 더욱이 조 씨는 월화의 몸이 홀몸이 아님을 알아채고 황주부네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 왔다. 약은 엄청 쓰다 못해 오장이 뒤틀리듯 아파 왔다. 약을 먹자마자 바로 하혈이 시작되고 월화는 피를 한 빠깨스나 쏟아 내었다. 낙태는 성공이었고 조 씨는 역시 황주부가 명의 중에 명의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중얼거렸다. 그렇게 눈물이 많던 월화는 한 방울의 눈물로 흘리지 않았다.

 

 슬프고 허망하고 뭔가를 잃어버린 듯 한 상실감이 가득 찼지만 한 빠께스의 피로 죽어간 가엾은 아이의 영혼 앞에 눈물을 흘린다는 건 더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성의 49제가 끝나는 날 절의 스님들은 염불과 공덕으로 기성이 극락왕생 하였음을 조 씨와 월화에게 알렸다. 그러나 월화는 믿을 수가 없다. 마냥 기성의 가엾은 혼백이 구천을 헤매는 환상에 잠을 이룰 수 없고 기성의 혼은 생시에도 월화를 괴롭혔다.

 

 “누님! 나 놈들한테 맞은 데가 너무 아퍼...아파서 견딜 수가 없수.”

 

 그렇게 기성이 자신의 멍든 몸을 보여주며 통증을 호소할 때면 월화의 몸에 까지 온통 먹빛 멍이 들기도 했다.

 

 “기성아! 이제 나보고 어쩌려고? 아이를 띤 건 안됐지만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울 수는 없지 않니? 제발 나를 원망 말고 나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좋은 데로 가라.”

 

 월화는 울며 사정해도 기성은 월화의 곁을 통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좁은 문간방에서 월화는 기성의 혼백과 함께 한 달을 더 살았다.

 

 보다 못한 조 씨가 집을 팔아 굿을 하기로 했다. 용한 무당이 자신 있게 월화에게 달라붙어 있는 귀신을 떼어내 구천으로 쫓아 버린다고 했다. 월화는 그런 큰 소리 치는 무당을 믿을 수가 없다.

 

 이때 그런 월화에게 구원으로 다가온 건 한 장의 전도지 이었다. 이 전도지는 복동이가 길에서 주워 온 것으로 열여섯 살의 복동이는 언문에 쉬운 한문까지 깨쳐 아무 거나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

 

 죽어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세상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처음엔 믿을 수 없었으나 전도지의 큼직한 활자는 점점 월화의 마음과 영혼을 부르며 손짓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교회당의 종소리를 따라 무작정 교회당으로 향했다. 교회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천상의 소리처럼 들려 왔다.

 

 “내 영혼의 그윽한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혼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그 곡조가 월화의 귀에 가득 들려오자 그야말로 평화, 평화 였다. 그동안 지쳤던 몸의 피로가 풀리고 안식과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회의 기도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우리를 구원해줄 영원한 주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야 돌아온 당신의 불쌍한 딸을 긍휼히 여기시어 당신의 품안으로 받아 주옵소서. 당신의 영과 생을 믿고 당신의 하늘나라를 영원히 믿사옵니다. 오! 할렐루아!”

 

 온통 눈물이 쏟아지는 통곡의 기도가 계속되자 월화는 기적을 보게 된다. 강대상 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초상이 그림 속을 빠져 나와 월화에 다가와 손을 내민 것이다.

 

 “내 딸아! 이제 너의 고통은 끝났다. 이제 나의 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리라.”

 

 인자한 그리스도의 곁에는 오색구름이 둥둥 떠 있고 그 곁에는 기성이가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월화를 향해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월화는 기성의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제 월화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 믿고 따르며 평생을 살 것을 다짐하고 다짐한다. 그동안 자신이 지금 컷 살아온 온 적잖은 인생과 그 인생에 점철되어 고통으로 극복하려던 연극과 활동사진의 세상이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는 짓이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월화는 그런 꼭두각시 같은 배우라는 배역을 주저 없이 버리고 새로운 영혼으로 새사람이 되어 다시 새 세상에 태어 난 것이다.

 

 종화가 인사동 초입의 승동교회를 찾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바로 민중극단이 공연을 자주하던 조선극장 바로 뒷골목에 승동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 주일예배가 끝나고 남녀 신도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이 교회는 주로 대갓집 소실들과 장인, 백정 들이 예배를 본다 하여 첩장교회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그만큼 아직도 남녀가 유별하는 시대에 교회는 개화의 모습을 보여 주나 봉건의 깊은 뿌리는 아직도 기독교에 대한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신도들 틈에 성경과 찬송가를 소중히 품에 안은 월화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 건강이 좋아 보이는 월화이다. 양 볼에 살도 도톰히 오르고 예전보다 더욱 예뻐지고 얼굴에 편안함이 가득 했다. 월화를 보자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의 간곡한 말이 떠올랐다. 당장 월화의 손목을 끌고 가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갖고 싶지만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종화에게 있어서 월화가 그렇다. 실은 그런 생각도 안 가져 본 것도 아니지만 두 사람에게는 친구 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다. 종화는 월화를 근처 양과자점으로 데리고 갔다. 월화는 종화에게 대뜸 입을 연다.

 

 “종화야! 너도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

 

 정말로 많이도 변한 월화이다. 종화는 생각해 본다. 과연 야소교 신도가 된 것이 월화에게 당연한 것인가? 여배우로써의 여러 가지 힘든 질곡의 삶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종교에 빠져든 월화가 과연 정당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의 월화는 무척이나 행복하고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 인 것 같다. 그럼 되었지 뭐? 인생이 뭐 별거인가? 하여튼 월화의 안정된 모습을 보았으니 종화는 안심이 되었다. 월화와 헤어지며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사실 종화는 월화를 영화에 출연시키고자 온 것이다.

 

 “혹시 영화출연 할 생각은 없는 거야?”

 

 “영화출연?”

 

 “응...김태진 감독이 뿔빠진 황소라는 영화를 만드는데 출연을 요청 해 왔어.”

 

 “난 이제 영화출연은...”

 

 월화는 채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월화의 진심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혼돈하고 있다. 잠시 지치고 피곤한 영혼을 위로받기 위해 교회를 찾았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주님을 위해 살 것을 맹서 했다. 그러나 그 길이 진정한 월화의 길이 아니었다. 배우가 되기 위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상하이까지 갔던 월화가 아니던가?

 

 “결정해! 출연 할 거야? 안 할 거야? ”

 

 종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월화의 머릿속에는 십자가에 피 흘리며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대신 수많은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3개의 별이 유독 월화의 머릿속에 더욱 빛나며 빤짝이고 있다. 그 별은 아직도 월화의 운명 속에 빛나는 세 개의 문성별 이었다.

 

 ‘아!...아직도 내게는 세 개의 문성별이 살아 빛나고 있다.’

 

 그 3개의 문성별이 생각나자 월화의 얼굴은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 월화의 환한 얼굴을 보자 종화는 ‘역시 그럼 그렇치..’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다음날, 월화는 오랜만에 화장을 곱게 하고 옷장을 열어 제일로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종화가 적어 준 약도를 들고 본정통에 있는 영화사로 향했다. 조 씨는 그런 월화를 얼 떨떨 바라보지만 이제야 내 딸이 본 쾌도로 돌아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월화를 지켜본다.

 

 본정 일본인 거리에 있는 조선키네마 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영화사는 바로 그 유명한 나운규의 조선최고의 불후의 명작<아리랑>을 만든 곳이다. 이곳에서 나운규는 <풍운아> <들쥐><금붕어>등 의 영화를 만들었다. 월화는 내심 나운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나 기대를 해 보았지만 나운규는 이미 이 영화사를 떠난 후였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미 연락을 받은 제작부장이 아는 채를 하며 정중히 월화를 안내 했다.

 

 “어서 오세요 이 여사님!”

 

 제작부장의 얼굴이 무척 낮이 익다. 생각해 보니 연극단체에서 잡일을 보던 진행요원이었다. 그도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열약한 연극무대를 떠나 영화판으로 옮겨온 것이 분명 하리라.

 

 제작부장의 안내로 중역실로 들어섰다. 중역들 틈에 감독은 검은 안경을 벗으며 반갑게 월화를 반긴다. 중역들과 감독 역시 낮 익은 얼굴들이 분명하다

 

 “월화 씨! 안녕하시오 날 알아보겠소?”

 

 “어머! 남궁 운 선생님 아니세요?”

 

 “이제 나를 김 감독이라고 불러 주시오 김태진 감독이 나요.”

 

 <뿔빠진 황소>는 김태진 감독의 작품이다. 김태진은 배우 출신으로 예명은 남궁운이다. 월화와 함께 민중극단에서 함께 연극을 하였고 나윤규의 <아리랑>에 영진의 친구인 대학생 현구 역에 출연을 하고서부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때, 그는 약관 24세의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영화계의 관록을 쌓고 그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본명을 내세워 원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것이다.

 

 이런 저런, 인사가 끝나고 월화는 제작부장이 건네주는 대본을 받아 들고 막 펼쳐보려는 순간, 한 미모의 아가씨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자 김 감독은 이 아가씨를 반기며 대뜸 월화에게 소개 한다.

 

 “월화 씨 인사하시오 이번에 같이 영화를 찍을 신인배우 김소영 양이요”

 

 김소영이라는 신인 여배우는 월화를 잘 안다는 듯 깍듯이 인사를 해 온다.

 

 “선배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김 감독이 부언설명을 하듯

 

 “처음 주인공을 맞는 거니까 월화 씨가 많이 도와 줘야 할 거요?”

 “주인공이라니? 그럼 내가 주연이 아니란 말인가요?”

 

 김감독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월화는 조역 이었다. 월화의 역은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남의 집 하녀를 살다가 주인집 아들의 유혹에 넘어가 카페의 여급으로 전락하고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마는 비련의 여인 역이었다.

 

 그러나 여주인공인 김소영의 역할은 역시 가난한 소작인의 딸이나 두 남자의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애정에 휩싸여 괴로워 하다가 결국 진실한 남자 쪽으로 사랑이 이루어져 헤피 엔딩을 이루는 행운의 여인 역으로 그 역할의 차이가 뚜렷이 구분 된다. 월화는 배역의 역할을 설명 듣고 어처구니가 없다. 주연 여배우가 결정되었는데 왜 자신을 불렀냐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난 내가 당연히 여주인공이리라 알고 왔단 말이예요?”

 

 그런 월화의 발언에 감독과 중역들은 난감한 표정들을 지을 뿐이다.

 

 월화는 그들의 무책임한 표정에 너무도 화가 나서 영화사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 감독인 김태진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달랜다.

 

 “월화 씨! 꼭 영화에 주연여배우만 있는 게 아니잖소? 주연에 버금가는 연기력을 지닌 조역도 필요하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

 

 “난 모든 무대든 영화든 주인공만 해 왔어요.”

 

 그러자 김 감독은 딱 하다는 얼굴이 되어

 

 “이제 세월을 인정하시오. 이 배역도 종화 군이 적극 추천하여 월화 씨에게 돌아 간 것이요.”

 

 “아! 이런 수모가 어디 있담?”

 

 월화는 마치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변한다. 결국 종화의 우정의 배려가 나를 도우려 했으나 월화의 자존심은 억망이 되고 말았다. 이런 순진한 남자를 내가 친구라고 믿었다니..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가 되어 이곳 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꼭 주역만으로 영화에 출연하라는 법도 없다. 결국 월화는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만다. 또한 출연료를 주연여배우와 동일하게 받는 선에서 그녀의 자존심과 명예를 바꾼 것이다. 출연료 오백 원은 큰 거금이었다.

 

 월화는 출연료를 받아와 먼저 조 씨의 담석증 수술부터 하였다. 또한 안방에 세든 사람들도 내 보냈다. 이제 다 찌그러진 오막살이 집이지만 다시 온전한 내 집이 되었다. 쌀과 반찬 등 양식도 들여 놓고 화신상회에 가서 영화 출연 시 입을 의상도 몇 벌 구입 하였다.

 

 촬영은 함경도 지방의 탄광지대에서 로케이션으로 진행 되었다. 신인여배우 김소영은 신인임에도 연기도 잘하고 선배인 월화에게 싹싹한 인사성과 예의 바른 태도로 다가 온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신인 여배우들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미모가 예쁘고 연기자로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울뿐더러 현장이나 사생활에서도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선배로써 월화는 이제 이런 후배에게 한 수 배우는 경우가 되어 벼렸지만 월화는 그런 후배 여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러나 촬영은 졸속으로 만들어져 극장개봉을 서 둘렸고 감독 김태진의 연출력은 평단의 졸작으로 평가 되었다.

 

 그래도 관객들은 왕년의 여배우 이월화의 컴백 작품으로 관심을 갖고 극장으로 몰렸으나 그녀의 모습은 잠시 화면을 누비다가 풍덩 물속에 빠져 죽으며 스크린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만다. 결국 영화는 감독 김태진의 몰락과 함께 월화의 컴백 작품은 태작으로 남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출연한 영화였다. 그 결과는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 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여러 연극 단체에서 연극에 출연하자는 연락이 왔지만 월화는 모두 거절 했다.

 

 한동안을 집안에만 칩거 했다. 뒹굴뒹굴 먹고 자고 그런 시간이 흘렀다. 그런 월화를 보다 못한 조 씨가 한마디 한다.

 

 “에그..이런 집안에 돈이 떨어졌는지 쌀이 떨어졌는지 통 관심이 없으니..도대체 어찌 살려고 넌 이렇게 유유낙낙이람 말이냐?”

 

 그 말에 월화는 어리둥절하며

 

 “아니.. 내가 출연료로 오백 원이나 가져다주었잖아요?”

 

 “그 돈이야 단 솥에 물 묻기지...우리 생활비가 쓰니 안 쓰니 해도 오십 원은 있어야 한 달은 버틴다는 걸 왜 모를까?”

 

 조 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남자라도 만나라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월화는 내심 마음을 졸였지만 조 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애꿎은 화투목만 만지고 있었다. 월화는 내심 생각한다. 사람이 왜 태어나고 왜 사는가? 먹고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별 신통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월화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료한 낮잠에 빠져든다. 얼마 후 경성의 참새 떼들이 조잘 되기 시작했다.

 

 “호호..애들아! 굿 뉘우스인데.. 이월화가 기생이 되었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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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2장 여배우의 적 (8) 친구 2016 / 9 / 22 595 0 3534   
7 제1장 여배우의 꿈/ (7) 문성별 2016 / 9 / 22 471 0 4977   
6 제1장 여배우의 꿈 (6) 배우수업 (2) 2016 / 9 / 21 456 2 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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