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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9화 <사건>
작성일 : 20-03-03 17:01     조회 : 75     추천 : 0     분량 : 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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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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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고사 첫날이었다. 하루에 네 과목씩 3일. 덕분에 학교는 오전으로 끝났다.

 어떤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하고, 어떤 아이들은 독서실로 향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안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이거이거, 우리 엄마가 이번에 만든 건데, 나름 먹을 만 해.”

 “치즈케이크네? 맛있겠다.”

 “맨날 부녀회 가서 이상한 거만 배워 오시더니, 이번 거는 그래도 선방했다.”

 “이상한 거? 대체 뭘 배워 오셨길래?”

 “팬케이크랑 브라우니랑 카스테라랑 무슨 쿠키랑...”

 “왜~ 그거 다 맛있는 것들이잖아.”

 “오븐에서 제대로 만들면 맛있겠지. 문제는 밥통으로 만든다니까. 이것도 밥통으로 만든 거야.”

 

 밥통이라는 말에 안나는 깔깔 웃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비웃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안나를 좋아했다.

 

 빵을 자르는 칼이 없어서 그냥 스테인리스 식칼로 대강 잘랐다. 치즈케이크의 안은 카스테라처럼 포슬포슬했다.

 

 “이거 봐라. 이게 대체 빵이야, 치즈케이크야? 아무래도 내가 아는 거랑은 좀 다른데?”

 “밀가루를 좀 많이 넣으셨나보다. 그래도 색깔은 죽인다.”

 “어디서 누룽지 냄새 나는 거 같지 않아?”

 “아무렴 어때. 맛만 있으면 됐지. 나 한 입만.”

 

 칼로 대충 한 조각을 잘라 안나에게 내밀었다. 케이크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안 밑으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까르르르, 한 입 무는 순간 퍽퍽하게 입안에 퍼지는 빵에 또 까르르르 웃었다.

 

 “야, 진짜 맛있는데? 커피랑 같이 먹으면 짱이겠다.”

 “어? 너 커피도 마셔?”

 “진한 건 못 마셔. 물 많이 넣어서 연~하게 만든 것만.”

 

 같은 나이이지만, 안나는 어쩐지 어른 같았다. 내가 겪지 못한 것을 안나는 겪었고, 내가 겪은 것을 안나는 이미 한 발 먼저 겪은 상태였다. 그렇게 나의 세계에 없는 것들이 안나의 세계에는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늘 안나가 부러웠고, 늘 닮고 싶었다.

 내가 가진 부러움의 일부분은 자격지심이었고, 또 다른 부분은 열등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현될 틈은 없었다. 안나는 세련된 매너와 폭 넓은 배려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안나의 곁에서 나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안나의 성격과 능력을 또다시 부러워하곤 했다.

 

 [띵동]

 

 “어? 엄마아빠 오셨나보다.”

 

 그 날은 모처럼 아빠가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데리고 그동안 못했던 건강검진을 죄다 받고 오겠다며 병원 순례에 나섰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아빠의 옆에는 남동생이 있었다. 마침 중학교도 시험 기간이라 저쪽도 일찍 끝났던 모양이다.

 

 “안나도 와 있었네?”

 “네, 어머님. 오늘 집에서 같이 공부하려고요.”

 

 공부한다는 말에 그저 기분이 좋아진 아빠는 용돈이라며 만원을 쥐어주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수면내시경을 해서 그런지 몸에 기운이 없다며 알아서 맛있는 거 사먹고 공부하라며. 무뚝뚝한 전형적인 군인이었던 아빠가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애정표현이었다.

 

 “참, 엄마. 집에 커피 있어요?”

 “커피? 다 떨어졌는데. 커피는 왜?”

 “치즈케이크 먹는데 같이 먹으려고.”

 “아니야. 없어도 괜찮아.”

 

 안나는 괜찮다며 말렸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고 부러워했던 안나에게 뭐든 제일 좋은 걸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거 같다. 혹은 어쩌면 모든 게 너무나 번듯했던 안나의 앞에서 무엇 하나 번듯하지 못했던 나의 상황을 어떻게 커버하려는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있어 봐. 내가 가서 금방 사올게. 저기 집 앞에 원두커피 내리는 데 새로 생겼거든.”

 

 방금 아빠가 쥐어준 만원도 있으니 돈도 충분했다. 안나에게는 교과서 펴놓고 먼저 공부하고 있으라며 여유를 부리고는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게 내 행복의 마지막 날이었다. 따뜻한 커피를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갓 내린 커피보다 더 뜨거운 불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9층이나 되는 계단을 정신없이 달려 올라갔지만, 이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보이는 그림자... 아파트에서 본 적 없는 낯선 남자의 그림자였다.

 

 ‘저 남자를 붙잡아!’

 

 하지만 그도 잠시,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너, 저 남자를 붙잡을 수는 있어?’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주문이었다. 그 주문에 홀려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한다. 그것은 혐오스럽게도 ‘안도’였다. 저 두려운 남자를 대면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안도.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없었으니 괴로워할 것도, 후회할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뻘건 불길이 점점 번져 나오는 그곳. 바로 집이었다.

 

 아직 집 안이 완전히 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면 신발장 바로 옆에 소화기가 있다. 여차하면 그 옆에 화장실 문이 있으니, 바로 뛰어 들어가 물을 틀면 된다. 어차피 불을 모두 끄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는 가족과 안나의 생사만 확인하고, 다시 문 밖으로 뛰쳐나와 아직 생존자가 있다고 알리면 된다.

 

 머릿속에서는 모든 계획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몸이었다. 차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현관문에서 제법 떨어진 복도에까지 느껴지는 열기.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 열기를 뚫고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위이이이이이이잉]

 

 그 때,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의 고민은 끝이 났다. 내가 있던 자리는 안전하게 완전무장한 어른들의 차지가 되었고, 나는 건물 밖으로 밀려났다. 집을 덮은 불길은 소방관이 껐고, 가족과 안나의 생사 확인도 그들의 몫이었다.

 

 며칠 뒤, 신문과 뉴스에는 작은 단신으로 가족과 안나의 소식이 실렸다.

 

 ‘현직 군인과 일가족 4명 사망. 흉기로 살해 후 방화. 범인은 수색 중.’

 

 헤드라인의 밑에는 엄마아빠와 동생의 이름, 그리고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나의 이름은 없었다.

 경찰이 범인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 단서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을, 나는 TV와 신문으로 들어야만 했다.

 

 

 

 범인이 잡힌 것은 7년 후의 일이었다.

 죄목은 수 건의 살인과 방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몇 건의 살인과 방화를 더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안나’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방청객으로 들어간 법정의 분위기는 지루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 지루한 하품 소리. 창 밖에선 나른한 햇볕과 함께 간간히 들리는 ‘저녁 뭐 먹지?’ 하는 잡담 소리. 그곳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었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판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서류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의 말은 입 속에서 웅얼거렸다. 어차피 정확한 내용은 나중에 서류로 보면 그만이니 매뉴얼대로 읽자는 투였다.

 

 웅웅거리는 판사의 말 중에 한 단어만큼은 분명하게 전달이 되었다. 무기징역형. 꽤나 무거운 선고가 내려졌다. 피고인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을 굴려 방청석을 조용히 훑을 뿐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이름이 아닌 숫자가 붙어있었다. 1092. 그것이 이제부터 강경식이란 이름 대신 그를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아닌 일련번호를 가진 비품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방청석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던 그의 눈이 나에게서 멈추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피고인석을 뛰쳐나와 나의 목이라도 조를 기세였다. 두 눈에 가득한 살기에 나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어떠한 소란이 일어나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그가 저 관리인들을 모두 뿌리치고 내게 덤벼들 수도 있다. 어쩌면 총도 빼앗아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의연하게 있을 것이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지 뭐.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포승줄에 묶인 채 문 밖으로 사라졌다. 조용한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그럼 다음 피고인.”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루한 법정의 공기는 여전했다. 귓가에 들려오는 하품 소리, 창 밖에서 들어오는 나른한 햇볕과 잡담들, 웅얼거리는 판사의 목소리. 피부에 느껴지는 몸의 감각도 전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침내 복수를 이뤘다는 홀가분함 따위...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다. 수 년 간 안나를 괴롭혔던 갈증과 고통도 그대로였다. 그게 안나를 더 화나게 했다.

 

 ‘뭔가가 더 없을까...’

 

 잘근잘근 자신의 입술을 씹던 안나의 머리에 무엇인가 떠오른 것은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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