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보호하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아이는 요즘에는 그럭저럭 예전보다 잘 지내고 있다. 확신 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거의 표정도 없고, 말도 없고, 얼굴도 잘 볼 수 없었다. 지금도 딱히 큰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지금 겨울이다. 사람들은 곧 이 겨울이 끝날 거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춥다고는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표정들이 좋아보였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저기 내가 보호하는 아이는 오늘 따라 더 안 좋은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터운 옷에, 목도리로 얼굴의 반 이상은 덮은 모습이었다. 걸음도 느렸고, 힘도 없어 보였다. 오늘의 주의사항에는 감기라는 말만 적혀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인 아이는 이 복잡한 거리에서 유난히 외로워보였다. 그냥 아플 거라는 생각에, 아이의 표정에, 그리고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렇게 보이게 했다.
아이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나는 아이의 옆에서 같이 걸었다.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이 아이가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그렇게 함께 걸었다.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의 신발들을 정리했다. 집안은 깜깜했다. 아무 인기척도 없었고, 모든 건 잘 정리 되어 있었다. 아니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게 더 맞는 것 같았다.
아이는 겨우 외투와 목도리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운지 자꾸만 눈이 감기고 있었다.
아이는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작은 봉투를 찢어 안에 있는 것을 입에 넣었다. 탁자 위에 있는 물병을 들고 절반 이상을 마셨다.
다시 아무 움직임 없이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한쪽에 서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내가 웃겼다. 내가 뭘 기대했나 싶어서 그냥 웃어버렸다. 나는 그 공간의 공기도, 아이의 온도도 그리고 아이가 가지고 있을 감정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아이는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몸에 돌돌 감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그 자리로 오기에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아이는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티비를 켰다. 보고 싶은 게 없었는지 티비 화면이 계속 바뀌었다. 그리고는 쿠션을 베고 누웠다. 티비도 껐다. 한참을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던 아이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나는 내가 딱히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얼굴이 잘 보이는 자리로 갔다.
아이는 끙끙 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많이 아픈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혼자 이곳에 있는지 궁금했다. 아픈데 왜 아무도 이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걸까.
나는 그냥 이 아이에게 생길지 모르는 일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이 아이는 나의 보호가 아니라 정말 이 세계의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이 아이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해 정말 모르는 게 너무 많은 보호자였다. 안타까움이었는지, 부족함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몰라도 오늘따라 이 아이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아이의 잠들어 있는 얼굴에도 표정이 있었다. 대부분이 미간의 주름이었고, 알 수 없는 고통이 얼굴 위에 스쳐지나갔다.
얼굴을 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감정에 살짝 불편해졌다. 이상했다. 나도 이런 걸 느낄 수 있다니 신기했고,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앓는 소리가 더 자주 흘러나왔다. 아이가 덜 고통스러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추운지 이불을 얼굴 쪽으로 더 당겨 덮었다. 나는 이 아이의 아픔을 나누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지, 나의 능력에 그런 게 있는지 몰랐지만 그러고 싶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니 잘 모르겠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의 온몸에 전해졌다. 그리고 아이는 나의 손의 느낌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표정이 안정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인데, 나는 이상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면서 목까지 차오른 울음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누가 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떼야 되는데,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 아빠... 아빠... ”
아이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나는 울어버렸다. 나는 눈에서 끝없이 흐르는 눈물에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었다.
“아빠...”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는 다시 기억이 났다. 우리 은호였다. 내 앞에 우리 은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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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는 눈을 떴다. 눈에서 눈물이 아직 흐르고 있었다.
“제가 또 기억했죠?”
선우는 자신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다시 기억할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그 순간일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선우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당신의 기억 너머에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만 당신이 기억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뭘까요? 왜 저의 다짐과 다르게 자꾸만 기억할까요?”
선우는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괴로웠다. 그래서 힘들었다.
“당신의 모든 기억이 당신의 딸을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어렸을 적 느꼈던 아픔과 그때의 슬펐던 기억조차도 당신의 딸과 연결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선우에게 말했다. 그리고 더 말하지 못했다. 은호가 선우를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서있는 누군가에게 선우가 먼저 말했다.
“다시 저의 기억을 지워주세요. 저는 다시 은호에게 가겠습니다.”
선우는 은호의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혼자서 그렇게 아파하던 은호 때문에 괴로웠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은호 옆에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혹시 제가 은호의 이마에 손을 얹은 것도 이 모든 것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선우는 혹시나 자신의 잘못이었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당신의 딸은 당신의 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좋을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선우는 은호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선우와 은호 둘 다 힘들어 질 수 있었다. 이쪽세계와 저쪽세계는 다른 곳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제가 조심할 수 있게 제 기억이 사라진 후 주의사항으로 말해 주실 수 있나요?”
누군가는 선우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먼저 눈을 감았다. 곧 기억이 사라질 것이었다. 은호를 기억에서 지워야했다. 지워지기 전에 은호를 떠올렸다. 다시 만날 은호가 안 아프길 간절히 바랐다.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