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몇 일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새벽 5시가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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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샘 그만두니까 어때요?”
유미는 내가 퇴사를 했지만 틈틈히 연락을 하며 안부를 전했다…
“빨리 돌아와요…원장은 더 또라이됐어요…아주 무슨 롤러 코스터에요 아주 그냥 왔다 갔다…”
“사람이 좀 바껴야 할텐데…유미가 고생이 많다…”
“돌아와요.. 애인 샘 보고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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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연차를 쓰고 쉬고있는 것 같은…
유미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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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그만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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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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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모르는 번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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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모야.. 내 번호 지웠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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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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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현아야 잘 지내지?”
“모야 오빠 그만뒀다면서”
“응 그렇게 됐어”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좀 봐야지”
“으….응…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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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별 특별할 대화없이 서로의 안부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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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아로부터의 연락이 왔을 때….
너무 좋았었다…
설빙이 먹고 싶다..하며
다음 약속을 잡을 이야기를 했을 때는 나랑 다시 만나고 싶은건가라는…생각도…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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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면 안됐다…현아 랑은…
은규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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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긴 했었지만….
나의 짐을 현아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고…
은규에게는 나처럼 마음만으로 안아줄 수 있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아빠가 필요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러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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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원을 그만 둔 지금….
‘병원에는 별 일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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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가 그만뒀을 때도…
현주가 그만뒀을 때도…
결이가 그만뒀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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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일없는듯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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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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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의 몸은
더 이상 나의 몸은 병원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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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의미 없는 사람으로……되버리면 어떻하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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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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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시간의 방에 들어간 손오공처럼…
나의 1주일은 하루와 같았고…한 달은 마치 1주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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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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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꽤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핸드폰이 울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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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한국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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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였다…
내 기억 속에 현주에게 마지막인듯 냉정하다 못해 차가운 말 만을 뱉어냈던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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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다시 내게 다가와주었다…
“어…현주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어디야? 완전히 돌아온거야?”
“응….”
“…………………..”
“우리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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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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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현주를 반기기에 내 집은 적당하지 않았고…
난 현주와 즐겨찾았던…동네 꼬치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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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나만 알고있고 싶은 그런 곳 이였지만…
불편해진 몸으로 다니기에는 더 이상 무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반겨주시는 사장님…
내가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먹는 걸 여전히 기억하시는지…서비스로 주신다
오랜만에 만난 현주와의 만남은 녀석의 성격 덕분에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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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화장실 좀 다녀올께…”
“………………..”
“………………..”
“잠깐…같이 가”
그리고 현주는 말없이 일어나 내 왼쪽 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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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술 마셨잖아… 넘어지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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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듯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나에게 내주고…
나와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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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가 쉽사리 나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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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것이 마음 깊은 곳 하나 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고 싶지 않고…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면….
그 하루….
누군가를 위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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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보고…놀이공원도 가고…술도 마시고….
계단도 막 두 칸 씩 올라가보고 싶고…
지각해서 헐레벌떡 뛰어가보고 싶고…
몸짱도 되보고 싶고…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들어주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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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내가 너한테 신세를 많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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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쑥쓰러운듯 시선을 돌린 채 짦은 고마움을 표현한다…
어쩌면 내가 그리 심하게 말했던 것도…
나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이기심때문은 아니였을까….
“전생에 부부였나 보지…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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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근데..이제 무슨 일하려고…”
“……………………”
“…………………….”
“모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이제 병원 일은 할 생각이 없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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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없었지만…나의 답답함과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고 있었을 것이다…
“오빠…병원에서 하려고 했던…… 더브러는”
“………………….”
“어려운 사람들 돕고 싶다고 했었잖아”
“…………………..”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부딪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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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가장 꿈꿔왔던 것이 있었다…
현아와 같은 미혼모들은 현실 속에서 그 어떤 것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설사 지금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꾸기 위한 용기를 내기도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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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장애인이 되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도…
그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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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치료를 받지 못하고…
어쩌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주류로써 살아가도록 선택되어진 사람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그러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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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내가 생각했던 의미 있고…옳은 명분을 가지고
모두가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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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야 고맙다….’